사진가의 카메라 이야기가 늘 궁금합니다. 당신의 첫 카메라가 기억나나요?
일회용 카메라와 엄마의 아날로그 카메라를 썼어요. 제가 처음 산 카메라는 라이카 렌즈를 장착한 파나소닉 카메라였어요. 그때 그림자와 선에 대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당신은 여러 요소를 모으고 겹친 사진을 만듭니다. 사진을 잘라내는 ‘크롭트’도 많이 하는 편입니까?
크롭트는 잘 쓰지 않아요. 광각이나 줌렌즈를 쓰기보다는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 걸 더 좋아합니다. 길을 건너서 찍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하면 피사체와 가까이에서 찍는 걸 좋아해요. 렌즈는 주로 50mm를 씁니다.
당신의 사진에는 사람도 많이 등장하나요. 도시인 중에서는 자신을 찍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사람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프로로서 조금 더 능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스트리트 스냅이 숙달되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진 찍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 사진이 인물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제가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는 경우도 많았어요. 알아챈다 해도 말을 걸면 괜찮아질 때가 있었어요. 사람들은 칭찬 듣는 걸 좋아해요. “재킷이 너무 예쁘네요. 색깔이 좋아요” 같은 식으로 말하면 긍정적으로 화답해주세요.
도시마다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자세도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서울에서 사진 찍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유럽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약간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1920년대 뉴욕 영상 같은 걸 보면 신기해요. 지금보다 카메라가 훨씬 커서 사람들이 촬영을 의식할 법도 한데 오히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그렇구나’ 하는 느낌으로 지나가요. 그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도시 사진을 촬영하는 당신은 어떤 도시를 좋아하나요?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저는 파리와 뉴욕을 가장 좋아해요. 도시 자체에 복합적인 요소가 있는 곳에 끌립니다. 저는 프레임 안에 피사체를 구체적으로 계획해서 넣는 편인데, 파리와 뉴욕이 그런 작업을 하기에 좋은 공간이에요. 쿠바의 아바나처럼 사진작가로서 작업하기 쉬운 도시도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아름답거든요. 카메라를 대면 작품이 나오기도 해요. 서울 같은 아시아나 중동 등 다른 곳에서도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서울에 얼마나 있었나요? 어디에 머물렀나요?
서울에서는 15일 머물렀어요. 주로 북촌에 있었고, 마지막 3일은 서울역 근처의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지냈어요. 유럽인은 아무래도 동양의 전통에 끌리다 보니 북촌 쪽에 머무는 걸 추천받았어요. 익선동과 종로 쪽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곳은 한옥도 있고 도시이기도 한데 시장도 있었어요. 더 중요한 건 노인과 젊은이 등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다는 점이에요. 힙스터만 모인 공간보다는 더 다양한 느낌이 나는 공간을 찍고 싶었어요. 종로는 서울의 날것 느낌이에요. 조금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뭔가 도시의 골조를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강남이나 다른 곳에도 가봤고 한두 장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계속 을지로와 종로 쪽에 끌렸어요. 낙원상가의 음악 관련 가게들도 좋았어요.
서울의 젊은이도 을지로를 좋아합니다.
을지로는 철물점도 있지만 젊은이가 많이 찾는 동네이기도 해요. 가끔 날것이나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동네가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될 때가 있어요. 아직 을지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철물점과 젊은 분들 모두의 세상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흥미로웠고요.
서울에 오기 전에 조사를 많이 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경험한 서울은 어땠나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서울이 굉장히 크고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와서 보니 실제로 컸습니다. 또 생각보다 훨씬 더 진정성이 있는 곳, 조금 더 날것 느낌도 많이 드는 도시였어요. 작은 골목길과 작은 식당도 많았어요. 그런 걸 하나씩 알아가는 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했고, (녹지 때문에) 도시가 정글 같은 느낌도 들어요. 다른 계절에 오면 또 다르겠죠. 서울은 여름과 겨울에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진 촬영 후 사진집을 만들 때는 사진을 고르고 순서를 정하는 에디팅 작업도 중요합니다. 그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넣고 싶었는데 싣지 못한 이미지도 있나요?
저는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편이라 에디팅 과정에서는 후속 작업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에디팅은 루이 비통의 데미안도 함께했습니다. 넣고 싶었는데 싣지 못한 이미지는 3장 정도 있어요. 첫 번째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농성 시위하는 이미지였어요. 게이샤 포스터와 공무원을 찍은 사진도 빠졌습니다. 브랜드의 프로젝트다 보니 정치적인 이슈를 빼지 않았을까 해요.
루이 비통과의 협업 과정은 어땠나요? 사진들을 보니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만.
굉장히요. 거대 기업이 지원을 해주면서도 아티스트의 독립적인 스타일을 존중해 주었어요. 기업 세상과 아티스트 세상의 장점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저는 이 작업에서 필요한 만큼 통제권을 가지며 독립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함께한 분들이 미술을 정말 사랑하는 분들이라 더욱 즐거웠습니다. 이 전시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전시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사진집의 사진 중 특히 마음에 들거나 기억에 남는 사진도 있나요?
책에 사진의 배열을 정할 때는 밸런스가 중요해서 하나만 꼽는 게 쉽지 않지만, 굳이 꼽자면 두 컷이 있어요. 첫 번째는 어린 병사의 흑백사진에 제 모습이 비친 사진, 두 번째는 공중전화 수화기가 매달린 뒤로 노인이 서 있는 사진이에요. 이런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요. 상상할 여지도 있고요. 저 노인은 전화를 하다 두고 가는 건가? 같은 내러티브가 있는 사진이 재미있어요. 오래된 도시의 모습도 담겨 있고요. 이 사진들이 기억에 남네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도 있나요?
이번에 보여준 사진이 도시의 날것, 구도심 속 도시의 모습을 잡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다음에는 완전히 반대로 아주 현대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어요. 이건 제 작업 패턴과도 달라요. 저는 제 작업에 시간을 드러내는 요소, 예를 들면 아이폰 같은 걸 넣지 않아요. 그런 패턴을 지닌 채 현대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에 착수한다면, 그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는 시도가 될 거예요. 도시와 대화를 지속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 같고요.
당신은 이제 서울에 대해 책을 낸 창작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서울을 알 것 같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일단 15일 만에 한 도시를 다 알기란 불가능하죠. 서울 자체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 같기도 해요. 서울은 어떤 정체성이 있다고 꼭 짚어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는 서울이 뉴욕과 비슷해요. 뉴욕은 서울보다 10번은 더 봤는데도 여전히 어려우니까, 서울을 지금 상태에서 이해한다고 하기는 더 어렵겠죠. 지금은 사람들을 통해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애초에 어떤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진실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창작자에게는 ‘꿈의 작업’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꼭 해보고 싶은 ‘드림 잡’이 있나요?
사진 저널리즘. 어렵고 도전적인 사진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세계의 갈등이나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장면을 포착하는 일 같은 걸요. 제 작업은 시적으로 삶을 포착해내는 스타일이라 생각해요. 삶을 미학적으로 보여주는 편이라 할 수도 있겠죠. 이런 걸 어떻게 포토 저널리즘에 적용할지는 모르겠지만 포토 저널리즘에 저의 시선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사진은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상당히 중요해요. 지금은 르포르타주가 저의 ‘드림 잡’이라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어디서 지내고 있나요? 서울에 있는 동안 집이 그립지는 않았나요?
지금은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오가며 지내요. 원래는 암스테르담에 더 오래 있었는데, 이제는 파리의 집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내요. 저는 새로운 곳에 가면 빨리 동화하는 편이에요. 다른 문화의 차이점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요. 신기하게도 집과 먼 곳일수록 동화되기 쉬워서, 서울에 있을 때도 집이 그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시적인 시선을 던지는 작가. 비극적인 일이라도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작가. 어떤 작가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도시와 인간을 포착하고, 그 모든 맥락 안에서 삶의 디테일을 집어넣고 싶어요. 최근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전시를 봤어요. 그분은 인터뷰에서 “사진을 찍는 건 심장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 같은 것”이라고 했어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아름다운 요소를 포착하고, 그 아름다움을 골라 직접 보여주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라 반 라이의 사진전은 7월 2일까지 남산 피크닉 별관에서 열린다.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에 쉰다. 무료 전시지만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은 네이버 링크로 한다.
사라 반 라이의 사진집은 루이 비통에서 판매한다. 7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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