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마냥 기쁘죠. 얼마나 상상하던 일인데요. 원래는 2020년에 와야 했어요. 단독 콘서트를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취소됐어요.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던 때라 취소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불안했을 테고요. 그렇게 7년이 지난 거죠. 사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23’에서 공연 요청을 했을 때 고민이 앞섰어요. 새 앨범이 나온 것도 아닌데 내가 지금 뭘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래도 한국에 왔네요. 이번에도 관객의 호응은 엄청났고요.
맞아요. 한참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어요. ‘그냥 하자. 한국 팬들을 너무 오랫동안 못 봤다.’ 7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굉장히 놀랐어요. 모두가 더 강해졌다고 느꼈거든요. 그동안 우리가 함께 성장했구나. 감정적으로도 더 성숙해졌구나. 무대 위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공연을 마친 다음 날 아침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어나서 어떤 노래를 들었나요?
어제 잘 때는 빗소리를 틀어놓고 잤어요. 아침에는 세르지우 멘지스(Sérgio Mendes)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오늘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세르지우 멘지스의 무대가 있어서요. 마침 오늘 비가 오네요. 비 오는 서울에서 세르지우 멘지스의 공연이라니. 완벽하네요.
이번 공연에서 한국 팬을 위해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나요?
‘Good Guys’는 꼭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팬들이 예전처럼 너그럽게, 아주 큰 목소리로 따라 불러준다면 ‘Good Guys’를 꼭 부르겠다고 다짐했어요. ‘Good Guys’는 앨범에 수록된 버전보다 라이브로 불렀을 때 더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거든요.
어제는 무대에서 태극기와 호랑이 탈을 선보여서 화제가 됐어요. 직접 준비해온 것인가요?
그럼요. 무대의상과 장치는 전부 다 새롭게 제작했어요. 제게는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소규모 특수제작팀이 있어요. 무대의상으로는 발렌티노 쿠튀르 제품과 저희 의상팀이 만든 의상을 함께 착용합니다. 저는 패션을 사랑하지만 공연할 때 입는 옷은 패션이 아닌 공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호랑이 탈은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작품이고, 태극기는 팬이 만들어준 거예요. 태극기에는 하트 형태의 태극 문양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저의 ‘M’ 로고가 새겨져 있어요.
한국을 자주 찾는 편인데 방문 시 꼭 먹는 음식이 있나요?
치킨이죠. 한국 프라이드치킨은 최고니까요. 그리고 잡채. 치킨이랑 잡채는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말 정말 최고예요. 보통 외국 아티스트들이 한국에 오면 코리안 바비큐 많이 먹잖아요? 그것도 좋아요. 장점은 파무침과 채소를 곁들여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미카의 한국 사랑은 유명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나의 커리어와 음악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한 나라”라고 했고요. 한국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곡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이 질문에는 아주 솔직하게 답변해야겠네요. 처음 한국에 와서 노래 불렀을 때 팬들의 반응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어요. 음악에서 언어는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곡의 분위기나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 후로 ‘다른 언어로 노래를 만들 수 있겠다’ ‘어떤 언어로 쓰든 나의 곡이기만 하면 된다’는 용기를 얻었고요. 그래서 프랑스어로 곡을 썼어요.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나다움’이니까요. 이 노래는 한국에 가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만일 한국을 주제로 곡을 쓴다면 어떤 노래가 나올까요?
확실치는 않지만 에너지로 가득 차고 멜로디가 많은 곡이 되지 않을까요? 다양한 멜로디를 섞을 것 같아요. 일본에 유명한 영화음악가이자 팝 작곡가가 있어요. 칸노 요코라는 뮤지션인데 <카우보이 비밥> OST를 만들었어요. 칸노의 음악을 들어보면 전 세계 음악을 정말 절묘하게 포괄하고 있어요. 천재죠. 일렉트로, 팝, 컨템퍼러리를 모두 활용하거든요. 저도 칸노처럼 접근해보고 싶어요. 한국의 전통악기를 쓰면서 다양한 장르를 녹여낸 음악을 만든다면 정말 멋질 거예요.
화려한 수트를 즐겨 입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공연에 앞서 옷을 고를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옷은 항상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더라도 그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해요.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고요. 제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실루엣입니다. 실루엣은 무드를 바꾸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요. 때로는 무대에서의 태도까지 결정짓죠.
이를테면 어떻게 바뀌나요?
예를 들어 어깨가 아주 넓은 재킷을 입는다면 당당하고 팝한 몸짓을 할 거예요. 반대로 어깨가 달라붙는 옷을 입는다면 조금 더 다가가기 쉽고 상냥한 느낌을 주겠죠. 원단이 갖고 있는 무게감이나 분위기가 저의 움직임을 바꾸거든요. 그 움직임은 팬들에게 다가가는 저의 태도를 좌우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합니다. 만일 공연에서 정장을 네 벌 입는다면 매번 다른 스토리를 전하고 싶어서일 거예요.
대단히 실용적인 이야기네요. 그러면 평소 쇼핑할 때는 어떤가요?
만일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해야 한다면 첫째로 퀄리티를 따져보라고 하고 싶네요. 성별이나 스타일링에 상관없이 퀄리티가 중요합니다. 록스타가 입든, 운동선수가 입든 옷의 퀄리티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두 번째로는 나만의 드레스 코드를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만일 정말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데 예산이 부족하다? 그럼 여러 벌 살 돈을 아껴서 내가 원하는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입어보세요.
꼭 슈퍼히어로 수트 이야기 같아요.
사람들은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겉모습은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잖아요. 외모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처음 당신이라는 사람을 인식하고 첫인상을 판단하죠. 돈이나 체형의 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에 관한 문제죠.
미카가 꼽은 미카 최고의 곡 5
Blue, 2019
Happy Ending, 2017
Tiny Love, 2019
We Are Golden, 2009
Lola, 2012
2007년 첫 정규앨범 <Life In Cartoon Motion>을 내고 ‘제2의 프레디 머큐리’로 불렸습니다. 커리어가 쌓일수록 이런 수식은 족쇄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Grace Kelly’를 통해 직접 그 마음을 전한 바 있고요. 지금 가장 듣기 좋은 수식이 있나요?
이제 완전히 해방됐어요. 당시에는 저도 어려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냥 입 다물고 있었죠. 지금은 어떤 수식으로도 불리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저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말 그대로 저 자신이 됐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어떠어떠한 누구’라는 말을 듣는 건 끔찍해요. 세상이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 누가 등장하면 “제2의 누구다” 식으로 틀에 넣고 규정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거든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동안 깨달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이 있어요. 가장 먼저 자기만의 세계를 가져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 음악을 진짜로 받아들여줄 겁니다. 깊이도 있어야죠. 뮤지션의 세계 안에는 수많은 층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요. 그리고 무대에 서야죠. 공연은 아티스트만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미카는 ‘팝 뮤지션’으로 통하지만, 디스코, 일렉트로닉, 올드팝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음악에 녹여냈잖아요. 스스로는 미카의 장르를 어떻게 정의 내리나요?
얼터너티브 팝. 팝 음악은 소비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장르라고도 생각해요. 그조차 장인이 공예품을 한 땀 한 땀 수작업하듯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일렉트로닉 팝을 오가면서 곡을 만들어요. 아프리카 악기를 쓸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자유롭다고 느껴요.
첫 앨범 <Life In Cartoon Motion>부터 5집 <My Name Is Michael Holbrook>까지 모든 앨범은 미카의 자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있을 텐데, 그런 미카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유죠. 지금 제가 가장 몰두하는 주제는 자유예요. 법적인 자유가 아니라 정서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느끼는 자유. 사람이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을수록 그것이 날 더 무겁게 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발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생각해요. 그 방법을 찾으려고 굉장히 몰두하고 있어요. 그걸 알아낸다면 행복하게 나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사를 읽다 보면 독백이라기보다는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대표곡으로 꼽히는 ‘Popular Song’ ‘Relax, Take It Easy’ ‘Elle Me Dit’이 그렇고요. 가사를 쓸 때 어떤 점을 고려하나요?
저는 그걸 ‘정면적인 접근(Frontal Approach)’이라고 불러요. 저는 작사할 때 어떤 주제를 이미지화하고 묘사하기보다, 그 주제를 가지고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어떠한 상황이나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하려고 하고요.
정말 많은 연구를 해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가가 이야기할 것 같은 내용이에요.
실제로 저는 단숨에 핵심을 찌르는 스타일의 작가를 좋아해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렇죠. 뮤지션 중에는 패티 스미스가 있어요. 패티 스미스의 곡은 직설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에요. 그의 작사 방식을 좋아하고 저도 그 방법을 쓰고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만든 곡도 있나요?
‘Blue’의 경우에는 이미지를 좀 더 신경 썼어요. 거대한 이미지를 통해서 핵심 단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슬픔과 상처까지도 사랑할 거야”라고 말해요. 바로 이때 제가 등장하죠. 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맞닿아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2인칭을 즐겨 사용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노래에서 ‘너’ ‘당신’이라고 계속 부른다면 분명 ‘이 사람 나한테 얘기하는구나’ 느낄 거예요. 얼마나 강렬하게 와닿겠어요.
한국에서 수많은 팬이 ‘떼창’을 하는 것도 결국 소통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훗날 미카는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여전히 창조적인 사람이구나’ 하고 이야기한다면 좋겠어요. 여전히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요.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연장에서 불리든, 극장에서 영화음악으로 들리든, 갤러리에 전시되든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었을 때 ‘아, 내가 미카의 세상에 발을 들였구나’ 즉각적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요. 마치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을 돌이켜볼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저도 팬들도 많이 변해 있으면 좋겠어요. 변화하는 사람은 창의적이니까요.
멋진 기준이네요. 그럼 미카가 생각하는 좋은 뮤지션은 어떤 뮤지션입니까?
청자가 온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좋은 뮤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음악을 더 큰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뮤지션이겠죠. 거창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수도 있어요. 정작 뮤지션 본인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의 이름보다는 음악으로 기억되는 뮤지션이라는 뜻이겠네요.
맞아요. 파바로티를 보세요. 파바로티는 럭비 선수 출신에 평생 테니스와 파스타를 좋아했어요. 악보는 읽을 줄도 몰랐어요. 성악의 이론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으로 접근한 사람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음악 그 자체가 되었잖아요. 빌리 홀리데이도 마찬가지예요. 죽을 때까지 약물중독자로 살았지만 음악을 할 때만큼은 음악 그 자체였어요. 음악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음악이 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뮤지션일 겁니다.
지금 미카가 즐겨 듣는 아티스트 5
사마라 조이
재닛 잭슨
에이바 맥스
칸노 요코
폴 사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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