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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식 #4 미식의 책

까다로운 음식 평론가가 보내온 미식의 책 8권.

UpdatedOn May 30, 2023

1 미식 예찬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 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미식이 궁금하다면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을 권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최초의 음식 평론가라는 나름의 위상을 누리는 18세기 프랑스의 법관이다. 옛날 책인 만큼 <미식 예찬>이 미식에 대한 직접적이고 본격적인 실마리는 아니다. 다만 브리야 사바랭이 무려 5백80쪽에 걸쳐 구구절절 보여주는 태도는 현대의 미식 및 미식가와 닿는 지점이 있다. 그 태도는 일종의 ‘젠체’다.
<미식 예찬>의 원제는 ‘맛의 생리학’. 나름 맛의 과학적 인과관계를 분석한 원리 이해에 초점을 맞추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과학적이다. ‘기나피의 비만 치료 효과’ 같은 글은 평양냉면집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읽는 메밀의 효능에 대한 글 같다. ‘어여쁜 비만 여성에게 승마 권하는 세 가지 조건’도 있다. 이게 미식이다. 오늘날의 미식 역시 여전히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2 와인 폴리

매들린 퍼켓·저스틴 해먹 지음, 차승은 옮김, 영진닷컴

음식 안에서도 시각적 사고가 특히 더 많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지리와 상관이 있는 와인이나 커피가 그렇다. 경도와 위도는 물론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따라서 원물의 맛과 향이 확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도를 그려가며 공부해야 하고, 관련 서적도 상당 부분 또는 비율로 지도책인 경우가 많다. 성격에 따라 그다지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수도 있다.

<와인 폴리>는 소믈리에와 개발자가 함께 빚어낸 블로그에서 시작한 책이다. 본질적으로는 여타 와인 지도책과 비슷하지만 현대적인 손길로 붙임성을 높였다. 다양한 색상을 사용한 그래픽, 꼭 필요한 요점만 골라 담은 글 덕에 와인 서적이 풍길 수 있는 느끼함과 재수 없음을 원천 차단했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 수상작이라는 딱지가 보장하는 완성도가 있다.

3 서양골동 양과자점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 장수연 옮김, 서울문화사

쭉 따라 읽기만 하면 디저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책이 있다. 네 권짜리 만화책인데 한 질을 관통하는 서사는 스릴러라 읽는 맛도 있다. 길쭉한 미남들의 알콩달콩 ‘밀당’도 즐거운데 책의 핵심일 디저트, 특히 케이크류의 작화도 좋다. 그런 책이 정말 있다고? 있다. 요시나가 후미의 <서양골동 양과자점>.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지금 당장 사서 책장에 모셔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서양골동 양과자점>은 1990년대 말부터 내 책장 맨 위쪽 고정석에 있다. 요즘도 읽는다. 여전히 재미가 각별하다. 요즘은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이유로 괴물처럼 흉측해진 디저트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만화 속 케이크의 양태는 본의 아니게 고전이 되어버렸다. 이 만화를 보다 보면 한국은 모든 것이 유행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변하기만 하는지 궁금해진다.

4 커피 아틀라스

제임스 호프만 지음, 공민희 옮김, 디자인이음

제임스 호프만의 유튜브 채널을 모른다고? 이 글을 읽기 전에 구독부터 하고 올 일이다. 바리스타 월드컵 초대 챔피언으로 명성을 얻은 그의 채널은 커피의 세계 전반을 아울러 잘 추출해낸 뒤 유머의 크레마를 끼얹어 마무리한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음식 전반에 관심이 많다면 모르고 넘어갈 수 없다. 유튜브도 내용이 알차니 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목에 ‘아틀라스(지도책)’가 붙었으므로 책 내용은 상당 부분 커피 산지와 특징 등에 지면을 할애한다. 커피의 기본적인 내용에도 충실하다. 원두 보관법, 커피 콩 가는 요령, 추출을 위한 물 선택, 도구별 커피 추출법 등 커피를 (특히 집에서) 내려 마시는 데 도움이 될 내용이 많다. 차고 넘쳐나는 커피 책들 가운데서 딱 한 권만 고르라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집어 들 수 있는 책이다.

5 음식과 요리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이데아

나는 음식 관련 서적을 추천하는 원고에서 <음식과 요리>를 빼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으으, 또 이 책이야라고 해도 미안하지만 그렇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흥미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서사가 전혀 없이 항목별로 사전처럼 과학적 사실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회 닿을 때마다 이 책을 권하고 또 권한다.

이유가 뭐냐고? 소위 ‘미식’을 비롯해 현존하는 모든 음식이 그 맛과 향과 질감을 갖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입과 혀로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음식/미식 역시 다른 분야처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하다. 음식과 조리는 그 이론의 초석이 되는 책이다. 번역이 조금 아쉬우나 추천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

6 요리를 욕망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김현정 옮김, 에코리브르

사실 마이클 폴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팔자 좋고 나이브한 1세계 백인 남성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위시한 대표 서적들은 읽을 가치가 있다. 미식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당면한 음식의 과제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게다가 <요리를 욕망하다>는 개중 붙임성이 좋다.

음식에 대해서는 거의 다 썼다고 생각했을까? 마이클 폴란은 고대의 4가지 요소, 즉 불, 물, 공기, 흙으로 요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간다. 그들에게 요리를 한 수 배우는 과정을 역사와 얽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든 음식을 만드는 요소인 시간을 음식에 너무 안 쓰는 것 같다는 게 그가 펼치는 주장의 핵심이다. 절판이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7 제3의 식탁

댄 바버 지음, 임현경 옮김, 글항아리

댄 바버는 ‘팜 투 테이블’ 운동의 선구자 격인 미국 셰프다. 뉴욕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블루 힐스’는 아예 농장 안에 자리한다. 문자 그대로 거의 모든 식재료를 그곳에서만 수급한다. 그게 댄 바버가 보여주려는 음식과 식재료의 미래상이다. 각각 완결된 생태계인 농장을 설립해 육성하는 것. 그 농장들이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이다.

댄 바버의 주장은 사뭇 급진적이다. 블루 힐스처럼 자체로 다양성을 갖춘 다품종 소규모 농장 네트워크가 계속 이어지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전국이 택배 일일 생활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베트남 새우, 미국 쇠고기, 일본 가리비 등은 식탁에서 사라지겠지만.

8 Japanese Cooking

츠지 시즈오 지음, 고단샤 아메리카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도 한 권 골랐다. 왜? 읽어볼 만하니까. 지은이 츠지 시즈오는 일본의 요리학교 츠지원의 설립자다. 츠지원이라는 상호가 낯익다면 2000년대에 한국에도 합작 진출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굉장히 접근성이 좋은 영어로 쓰여 있어 되려 읽기 쉽다는 게 장점이다. 일본 ‘국뽕’이 없는 듯하지만 사실 책의 존재 자체가 국뽕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노라면 생각이 많아진다. 츠지 시즈오는 학생들에게 진짜 프랑스 요리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기자를 그만두고 요리학교를 차린 사람이다. 그런 그가 결국 자국의 요리 세계를 영어로 엮어냈다니.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언제쯤 나타날까? 미사여구 대신 담백한 말로, 한식의 폭을 접근성 좋은 영어로 엮어내 소개할 사람 말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다.

* <한식의 품격> 등 다수의 저서와 <실버 스푼>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다만 그는 이 원고에는 본인의 저서와 역서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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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이용재 음식 평론가.

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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