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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식 #2 내게 좋은 식당

외식을 한다면 세상 누구나 궁금해하는 질문. 어떻게 하면 식당을 잘 찾을까? 먹는 게 일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UpdatedOn May 29, 2023

 

1 술을 판매하는 곳

최용준(사진가)

내가 좋아하는 식당의 공통점은 하나다. 술을 파는 곳. 내가 술을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모든 식당에서 술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양한 식당을 다니다 보니 이유는 몰라도 경험상 이런 결론이 도출되었다. 술을 팔지 않는 식당은 맛이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체인 쌀국숫집에 갔을 때, 맥주 한 잔 먹고 싶어서 메뉴를 봤더니 술이 없었다. 역시 맛이 없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었는데 며칠 전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어느 서양 남자가 식당에서 와인이나 맥주가 있는지 물었다. 식당에서는 다 없고 막걸리만 있다고 했다. 남자는 “막걸리는 너무 달아서 반주로는 안 된다”며 “와인과 맥주가 없는 식당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2 셰프의 통제

박정배(음식 평론가)

좋은 식재료를 쓰는 곳을 선호한다. 좋은 재료를 쓰는지는 먹어보면 안다. 좋은 재료로 나쁜 음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나쁜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식당은 셰프가 혼자 모든 걸 다 책임지는 식당이다. 셰프가 재료 선정부터 접객에 이르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곳이 좋은 식당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부부요리단’이라는 식당이 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부부 셰프가 운영하고, 음식이나 접객 등을 다른 곳에 맡기지 않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한다. 그래서 어려운 음식을 하지 않고, 음식이 모두 수준 높다. 그런 곳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식당이다.

3 위생과 환대

조원진(커피 칼럼니스트)

위생, 깨끗한 주방이 신경 쓰인다. 요즘에는 오픈 키친도 많고 오픈 키친이 아니어도 주방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꼭 주방까지 보지 않아도 업장의 위생 상태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잔에 물때가 끼어 있다거나, 앉은자리 주변 테이블이 깨끗하지 않거나, 카페라면 그라인더 주변이 지저분하거나. 위생이 맛과 정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맛있기로 이름난 식당이라도 비위생적인 곳으로는 발길이 안 닿는다. ‘호스피탤러티’라 부르는 환대도 중요하다. 좋은 접객은 손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걸 잘하는 분들을 보면 저것 역시 본능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방문 기준으로는 홍대의 ‘화상손만두’가 그런 곳이었다. 깨끗하고 모두 잘 챙겨주었다.

4 다른 곳에 없는 메뉴

박후영(외식사업가)

좋은 식당을 찾는 기준은 간판이 될 수도 있고 외관이 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메뉴판을 볼 때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다른 식당에서 잘 보이지 않는 메뉴나 특수 메뉴를 하는 식당에는 아무래도 특별한 게 있다. 특이한 식재료나 식당의 고집이 있다는 의미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좋았던 곳이 상수역 근처에 있는 ‘홈프롬귀’라는 주점이었다. 이곳에서는 ‘다진 양고기 시가 롤’을 취급한다. 다진 양고기를 동그랗게 말아 향신료를 많이 넣고 튀긴 음식이다. 이 식당에 대한 정보 없이 갔는데도 그 메뉴가 인상적이었다. 양고기를 다진 기법도, 향신료도, 음식 모양도.

5 친구가 알려준 곳

백문영(음식 칼럼니스트)

네이버 블로그 검색 같은 건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처음 가는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주변 사람의 의견이다. 많이 먹고 다니는 사람, 외식을 자주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외식 예산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평가가 조금 더 엄정하다. 주변에 보통 직장인인데도 음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터넷 지도 앱에 맛집을 몇백 개씩 저장해두고 있다. 요식업계의 프로는 아니지만 경험 많은 사람들이 친구로 있으면 좋다. 위생, 환대, 메뉴의 항상성, 셰프의 통제도 모두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흥역 근처의 ‘요수정’. 늘 사장님이 신선한 재료를 가져와서 모든 것을 진행한다. 여기도 외식을 많이 하는 친구가 소개해주었다.

 

6 오브제와 음악

김기훈(라무라 대표)

세상에는 네 종류의 식당이 있다. 음식이 맛있고 다시 오고 싶은 집, 맛은 있는데 다시 올 것 같진 않은 집, 맛은 별로인데 이상하게 한 번쯤은 더 올 것 같은 집, 맛도 없고 다시 오고 싶지도 않은 집. 미식의 세계는 오묘하다. 맛이 좋다고 해서 모든 식당에 두 번 세 번 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매장 곳곳에 배치된 오브제와 음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똑같은 동네에 똑같은 제육볶음을 내는 식당이 둘 있다. 한 식당은 청기와가 올라간 한옥이고, 다른 식당은 <해리포터>의 해그리드가 살 것 같은 오두막이다. 취향의 문제지만 확실한 건 두 가게에서 내놓는 제육볶음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음식과 일맥상통하는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고 싶다.

7 주인장의 유무

송동진(노스트레스버거 대표)

식당에 주인장이 버티고 있다면 일단 믿음직스럽다. 주인장의 유무는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우연히 맛있어 보여 들어간 식당에 주인장이 없을 수 있다. 음식이 훌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느 가게에 갔는데 두 번 이상 주인장이 현장에 없다면 불안하다. 좋은 매니저를 둔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축구팀처럼 말이다. 퍼거슨 감독이 벤치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2007-08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8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지 않는 집

수민(뮤지션)

가성비 맛집이라는 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사실 제가 키는 작지만 유머러스한 편이거든요” 한다면 무슨 생각이 드나? 웃긴 사람은 자기가 웃기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요즘 자장면을 2만원에 파는 중국집들이 있다. ‘무슨 자장면이 2만원이나 해?’ 할 수 있지만 ‘도대체 얼마나 자신 있으면?’ 싶기도 하다. 내가 작심하고 만든 자장면이니 2만원은 받아야겠다. 이 자장면이야말로 내 요리 기술의 결정체다. 평가받을 준비는 되어 있다. 기왕 돈 주고 외식하러 나갔으면 나는 이런 집에서 먹고 싶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는 절대 돈 아끼지 말라’고 했다. 커서 보니 그게 행복의 비결이더라.

9 정성스러운 블로그 리뷰가 많은 집

김지윤(남양유업 커뮤니케이션실 홍보 1팀 사원)

기업 홍보팀 직원에게는 새로운 식당을 찾는 것도 일이다. 새롭게 찾은 식당 대부분은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간다. 내 취향만 앞세워서 갔다간 실패할 확률이 크다. 사전 검증은 필수다. 내가 신뢰하는 것은 정성스러운 블로그 리뷰다. 블로그 리뷰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예쁜 사진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든다. 내가 내 돈 주고 사 먹은 음식에 시간 들여 사진 찍고 긴 글까지 쓴다? 이건 감동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네이버 별점도 신뢰할 만하다. 네이버 별점은 불특정 다수의 동의로 빚어진 결과물이다. 정말 별로인 식당인데 네이버 별점 4.5 이상에 정성스러운 리뷰 50개 이상이다? 기꺼이 속겠다.

10 그릇과 수저

박찬용(<아레나> 피처 디렉터)

무겁고 오래된 그릇과 수저를 쓰는 곳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있다. 단순히 고급 그릇을 써서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식당 환경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을 플라스틱 혹은 속 빈 스틸 그릇으로 담아낼 수 있다. 그런 세상에 굳이 무거운 그릇을 쓴다는 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나름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럴싸하게 멋을 부린 뒤 플라스틱 그릇을 쓰는 곳도 많다. 플라스틱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멋만 부리는데 플라스틱을 쓰는 게 내키지 않아서 그런 식당은 다시 찾지 않는다. 무겁고 오래된 그릇을 쓰는 곳 중에서는 장한평 ‘대흥설농탕’이 좋았다. 그릇처럼 국물도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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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주현욱

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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