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도시 괴담처럼 “장기하, 36시간 동안 상대 바꾸며 술 먹은 적 있어”라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오늘처럼 촬영 있는 날이면 끝나고 한잔하나요?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안 먹겠습니다. 요새 공연 앞두고 술에 체력을 뺏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럼 ‘공연 잘 마쳤다’ ‘나 오늘 고생했고, 만족스러운 하루다’ 싶은 때는 언제입니까?
아유 뭐 안 가리죠. 보통은 일단 맥주로 시작해서 소맥 걸쳤다가 소주로 가는 게 제일 당기지 않나 싶네요. 와인은 주로 한가할 때 마십니다. 제 나름의 술 등급제가 있어요. 1군의 소주, 맥주, 와인이 있고요. 2군에는 막걸리랑 위스키, 청주가 있죠. 고량주는 1.5군 정도 되겠네요.
막연한 상상 한번 해볼게요. 내일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이 일 년간 휴업에 들어갑니다. 어디 가서 뭘 드시겠어요?
아이고. 시간이 하루밖에 안 남은 거죠? 집 근처에 고깃집이 하나 있어요. 소고기, 돼지고기 둘 다 파는데 퀄리티가 좋아요. 싹 다 시켜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맥주-소맥-소주’ 먹겠습니다.
혹시 그 식당 이름 알려줄 수 있나요?
안 됩니다. 비밀입니다.
저는 보도자료로 앨범 소식을 조금 일찍 받아보는데, 그때마다 직접 쓰는 앨범 소개글이 기대됩니다. 글쓴이가 장기하라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꼭 가사처럼 읽히거든요. 이것도 신경 써서 준비하는지, 아니면 쓱쓱 쓰는지 궁금했어요.
둘 다인 것 같은데요. 신경 써서 쓱쓱 씁니다. 가사로도 사용하려면 할 수 있죠. 제 앨범은 제가 진두지휘해서 만드니까 누구보다 핵심 요소를 잘 알죠.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있는 그대로 요약해서 씁니다. 앨범 소개글은 또 장황하면 안 되니까요.
이번 소개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만들어놓고 계속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좀 하면 어때서? 그래서 ‘해’를 만들었어요.” 평소에 본인 음악 자주 듣나요?
아주 많이 듣지는 않죠. 저도 평소엔 남들이 열심히 만든 음악을 편하게 듣고 싶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최근에 낸 노래들을 가끔 듣기는 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이니까요.
지금 내 귀에 제일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거네요.
그렇죠. 내적 유행이 반영되죠.
연기자나 가수분들은 자신의 옛날 작품 감상하는 걸 더러 힘들어하더라고요. 기하 님은 어떠세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늘 전문성과 숙련도를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비해 내가 얻은 것도 있지만, 뭣 모르고 던지던 그 시절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솔직히 제 옛날 노래 들으면서 감탄할 때도 있어요. 당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진짜 웃기네. 이거’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웃었구나’ 싶죠. ‘웃기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들게 한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그래요. 지금 들어보면 약간 졸렬하게 부르거든요. 창법도 지금이랑 달라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옛날 장기하 모창할 때도 있어요. 그 곡들은 그때 장기하처럼 불러야 더 좋은 것 같아서. 근데 완전히 그때처럼은 못 불러요.
장기하 노래는 들을 때는 쉽게 따라 부를 것 같은데, 막상 노래방에서 부르면 분위기가 싸해지기 십상입니다. 장기하 노래 잘 부르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음정이나 박자를 생각하기보다, 가사 내용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게 되려 음정, 박자가 더 잘 맞더라고요. 차라리 연기를 한다 생각하면 좋겠네요.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소울 푸드 5
1. 삼겹살 + 소주
2. 감자탕 + 소주
3. 순댓국 + 소주
4. 생선회 + 소주
5. 갈비찜 + 샴페인
이를테면 판소리처럼요.
그렇죠. 판소리도 일종의 뮤지컬이잖아요. 연기이면서 노래이기도 한. 판소리에 크게 감탄하고서 노래 만드는 방식을 재정비한 적이 있어요. 표현력의 범위가 엄청나다고 느꼈거든요. 소리꾼은 이야기를 잘 숙지하고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점을 본받아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신곡의 제목은 ‘해’와 ‘할건지말건지’입니다. 지금 장기하가 가장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두 가지가 지금 완전히 일치하는데 공연이에요. 풀밴드 편성의 공연은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공연 이후로 이번이 처음입니다. 4년 이상을 안 한 거죠. 그렇게 4년을 쉬고서 연습을 딱 했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이미 공연이 정해졌지만, 그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지금 해야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직업적으로도요.
요즘처럼 디지털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시대에 콘서트가 차지하는 의미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마다 제일 재미있는 게 뭐냐에 따라서 다를 텐데, 저는 공연하려고 나머지 모든 걸 합니다. 인생 살면서 해본 활동 중에 제가 가장 행복을 느낀 게 공연이에요. 이번 앨범도 공연하려고 만든 거예요. 신곡도 없이 공연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평소에 할 건지 말 건지 고민 많이 하나요?
많이 하죠. 많이 하는데 빨리빨리 결정하는 편이에요. 이번 앨범 만들면서 고민은 딱히 없었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당장 내가 재밌는 걸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지만, 고민되고 스트레스 받고 어떻게 할 건지 잘 모르겠고 이런 건 없었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거나 질문을 하기도 했나요?
거의 없죠. 사실 제 마음대로 다 했습니다.
장기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기장 훔쳐보는 기분이 듭니다. 장기하 노래의 가사 중 본인 경험담은 몇 퍼센트나 되나요?
굉장히 많죠. 경험담을 있는 그대로 쓰진 않아도, 제 어떤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쓰기도 하나요?
그렇죠. ‘별일 없이 산다’ ‘등산은 왜 할까’는 저희 어머니 얘기 듣고 만들었어요. 한 번은 어머니가 “인생을 살다 보니까 남들이 “별일 없죠?” 물어볼 때는 보편적으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걸 듣고 ‘아 그러면 별일 없다고 하는 게 일종의 반격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별일 없이 산다’를 만들었어요. ‘등산은 왜 할까’는 “엄마는 등산 안 해. 내려올 건데 뭐 하러 올라가”라고 하셔서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겁니다. 사실 저는 등산 좋아하거든요.
평소에 칭찬 많이 듣죠. 어떤 칭찬 가장 좋아하나요?
칭찬은 다 좋죠. 칭찬은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다 해주세요. 허허.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대표곡 5
1. 별일 없이 산다
2. 그건 니 생각이고
3. 부럽지가 않어
4. 그렇고 그런 사이
5. 싸구려 커피
이 기사가 나갈 때쯤 단독 공연 <“해!”>가 진행됩니다. 지난 앨범 단독 공연 때는 스탠딩 코미디부터, 윤대란 안무가, 무대미술가 여신동의 참여로 화제가 됐어요. 그만큼 팬들의 기대치도 올라갔을 텐데 이번에는 어떤 걸 기대해보면 좋을까요?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제 공연에 와본 적 없는 분들은 신날 거라는 생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지인 중에 제 음악 정말 많이 좋아해주는 분이 있어요. 아직 공연에 온 적은 없는 분인데. 한 번은 제가 공연장에서 물을 뿌린다 하니까 “물을 뿌릴 만한 그런 게 있습니까?”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싸이 형처럼 흠뻑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이것도 제 책임이죠. 어디 가서 공연 신나게 할 사람처럼 안 보였기 때문에. 그럼에도 ‘와보면 신난다, 그러니 한번 와보시라’라는 말을 드립니다.
무의미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장기하 음악의 장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K-팝이죠.(웃음) ‘한국말로 하는 대중음악이니까’ K-팝이겠죠.
이제는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노래를 내는 것과 책을 내는 것은 과정도 다르지만, 성취감도 다를 것 같아요. 어땠나요?
책이 남다른 게 있긴 해요. 제 이름으로 책을 내는 일이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요. 그런데 어찌어찌 모양새가 갖춰지고 나니까 뭐랄까요.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래도 이게 말이 되는 책이라고 사람들이 찾아 보는구나. 내가 이런 것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인간이구나. 뿌듯하기보다는 신기했어요.
원고는 평소 써둔 걸 모은 게 아니라, 책을 위해 썼다고 들었어요. 작사와는 어떻게 달랐나요?
일단 완전히 달라요. 가사는 물리적으로 한 곡에 담을 수 있는 양이 정해진 셈이잖아요. 굉장히 함축적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할 말을 다 못 하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내 생각을 자세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그런 점에서 시원했어요.
작년 한 인터뷰에서 “40대가 기대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40대가 되고 보니 어떤가요?
아유 좋아요. 40대 진짜 괜찮은 것 같아요. 행복의 노하우가 확실히 좀 쌓인 느낌? 여전히 좌충우돌하지만 쓸데없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 일의 빈도가 줄지 않았을까. ‘이런 걱정해봐야 아무런 소용없고 사실은 다 괜찮다’는 걸 빨리 눈치채니까요. 그래서 효율적이에요. 예를 들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가듯 ‘행복’까지 간다. 예전에는 밤까지 달려도 도착을 못 했는데, 요즘은 오후 3시 정도 되면 ‘웬만큼 다 온 것 같은데’ 싶죠.
40대가 되고 바뀐 점이 있다면요?
술을 덜 먹죠. 일부러 덜 먹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덜 마시게 됐어요. 덕분에 더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다.(웃음) 옛날에는 너무 많이 마셨어요.
지금 나이의 두 배가 됐을 때도 음악을 계속하겠죠?
지금 기분으로는 ‘하면 좋겠다’ 싶죠. ‘죽을 때까지 하면 좋겠구나’ 싶어요.
그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작든 크든 고유한 자기 영역이 있는 사람. 그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요? 사람으로서든 뮤지션으로서든.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인생 책 5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무경계> 켄 윌버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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