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사람
베르디는 1987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별도로 명함을 가지고 다니진 않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 ‘웨이스티드 유스’ ‘걸스 돈 크라이’의 설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소개된다. 베르디는 지금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지난해 7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는 파리 생제르맹 FC와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이날 파리 생제르맹 FC의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주니오르, 킬리안 음바페가 입은 어웨이 유니폼이 베르디 작품이다. 일본 킥복싱 챔피언, 나스카와 텐신은 최근 첫 프로 복싱 경기에서 베르디가 디자인한 트렁크를 입고 링 위에 올랐다.
베르디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곳은 학교다. 미술 시간은 아니었다. 교과서 위에 ‘슈퍼 마리오’를 수도 없이 그렸고, 지금은 눈을 감고도 슈퍼 마리오를 그릴 수 있다. 베르디는 만화 팬이다.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일본 시간으로 매주 월요일이 되면 <주간점프>에 접속해 각종 만화의 최신화를 확인한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원피스>와 <헌터×헌터>. 두 만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루피와 곤이다. “역시나 <원피스>에서는 루피, <나루토>에서는 나루토, <드래곤 볼>에서는 손오공이죠. 이건 바뀌지 않습니다.” 베르디는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만화 취향을 말해주었다.
베르디에게도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다. ‘빅’과 ‘비스티’다. 빅과 비스티는 지난 1월 발행된 매거진 <올 곤 2022(ALL GONE 2022)> 커버를 장식했다. <올 곤>은 2006년부터 17년간 매년 발행돼온 잡지다. 발행인 마이클 듀포이는 한 해 동안 전 세계에 출시된 물건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스트리트 걸처 아이템’을 한 권에 소개한다. 그래서 제목도 <올 곤>이다. 최신호에는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 협업 나이키 ‘에어 포스 1’, 구찌와 아디다스의 협업 ‘가젤’, 슈프림과 버버리의 협업 ‘트러커 재킷’ 등이 소개됐다. 한국 브랜드 중에는 카시나, 디스이즈네버댓이 각각 나이키, 뉴발란스와의 협업 스니커즈로 이름을 올렸다.
아빠의 아침
베르디의 아침은 사무적으로 시작된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밤새 쌓인 이메일들을 차례대로 확인한다. 베르디의 동료는 그가 살고 있는 도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도시에 퍼져 있다. 지난해부터 새롭게 추가된 모닝 루틴이 있다. 분유를 타는 일이다. 작년 봄 베르디는 첫아이를 출산했다. 이름은 토아. 토아의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르디와 아내는 딸에게 분유와 이유식을 먹이고 나서야 자신들의 끼니를 챙긴다. 베르디는 한국에 오면 한국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이날 그는 호텔 식당에서 제육볶음과 김치볶음밥, 나물, 양념치킨을 접시에 담았다. 후식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신 뒤 베르디는 방으로 돌아와 아기띠를 둘러멨다. 베르디 부녀는 코알라처럼 서로를 안은 채 성수동으로 향했다.
우리가 베르디를 만난 날은 3월 26일이다. 3월 26일은 일명 ‘에어 맥스 데이’다. 나이키가 자신의 대표 모델인 에어 맥스 출시를 자축하며 지정한 기념일이다. 나이키만의 추석이자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세계 곳곳에서는 에어 맥스 데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서울 성수동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장소는 ‘튠’. 디스이즈네버댓에서 지난 3월 새롭게 오픈한 편집숍이다. 튠은 에어 맥스 데이를 맞아 매거진 <올 곤 2022> 에디션 사인회를 열기로 했다. 베르디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이번 사인회 때문이다. 나와 포토그래퍼는 행사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매장 앞에는 이미 20명 정도가 줄지어 있었다. 행렬은 사인회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길어져 차도 건너편 보행로까지 이어졌다.
성공한 팬심
베르디와 마이클 듀포이는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팬들을 맞았다. 사인회는 팬들이 A4 종이에 이름을 영어로 쓰면, 두 사람이 철자에 맞춰 <올 곤> 첫 페이지에 사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글씨체를 매번 의도적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사인한다는 점이었다. 베르디는 이름뿐만 아니라 빅의 그림도 그렸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김밥 싸기 달인’처럼 베르디는 분주하지만 정교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30분째 보고 있자니 ‘그림 그릴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베르디가 답했다. “제게는 수천 권 중 하나지만, 받는 분들에게는 딱 한 권이잖아요. 사인이든, 그림이든 ‘조금이라도 이 사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게 뭘까’ 신경 써서 그립니다.” 미쉐린 3스타 스시 장인이 할 법한 이야기였다.
단순 반복처럼 느껴질 법한 일에도 베르디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이유는 자신도 누군가의 사인을 받고 기뻤던 적이 있어서다. “한 번은 오사카에 마크 곤잘레스가 왔어요. 사인을 부탁해서 받았는데 엄청 기뻤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기쁨을 주고 싶어요.” 마크 곤잘레스는 세계적인 스케이트보더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다. 그의 아트워크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런던, 파리,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의 슈프림 매장에서 볼 수 있다.
베르디가 사용한 볼펜은 미쓰비시연필에서 출시한 유니 포스카였다. 그의 목에는 손에 쥔 포스카와 똑같이 생긴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차이는 두 가지. 다이아몬드가 박힌 뚜껑, 포스카 로고를 대신한 ‘웨이스티드 유스’ 로고다. 사인회 현장은 흔히 생각하는 연예인 사인회와 큰 차이 없었다. 팬들은 저마다 한두 권씩 <올 곤>을 옆구리에 낀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마이클 듀포이는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팬들에게 먼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도 그 모습을 담았다.
인상적인 팬들도 있었다. “타투를 새긴 분들이 계셨어요. 종이가 아닌 피부에 ‘WASTED YOUTH’ ‘Girls Don’t Cry’가 적힌 걸 보니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에서 와주신 팬도 있었어요. 오늘 사인회 때문에 서울에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아직 공지를 안 했는데 곧 도쿄에서도 사인회를 열거든요.” 직접 그린 <올 곤> 커버를 마이클 듀포이와 베르디에게 선물한 팬도 있었다. 베르디는 자신도 좋아하는 미국 록 밴드가 일본에 왔을 때 자신이 직접 그림을 전달한 적이 있어 무척 감사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3시간 동안 앉아 약 1백50권에 사인했다.
수많은 팬을 갖게 됐지만 베르디 역시 누군가의 팬이다. 다만 아주 성공한 팬이다. 퍼렐 윌리엄스, 니고, 무라카미 다카시, BTS 제이홉, 블랙핑크, 두아 리파, 키드 커디, 포스트 말론, 심지어 애플의 팀 쿡까지 베르디의 옷을 입거나 그를 보기 위해 도쿄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여기까지 원고를 쓰고 베르디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보니 3시간 전 지드래곤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지드래곤이 입은 올리브색 재킷에는 베르디가 그린 ‘G-Dragon’ ‘Peace Minus One’ 그래픽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베르디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지만, 사실 그 이름은 도쿄와 관련 있다. 베르디는 일본 J리그 소속 축구 클럽 ‘도쿄 베르디’에서 따온 이름이다. 도쿄 출신의 부모님이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도쿄 베르디의 유니폼을 입혔고, 자연스레 베르디라는 별명을 얻었다. 베르디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점이 마음에 든 베르디는 한때 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였다고 한다. 서울 출신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부산 소년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다 베어스라는 별명을 얻고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음 날.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디스이즈네버댓 사옥에서 다시 만났다. 첫 질문은 이랬다. “오사카 출신이죠. ‘빵!’ 하면 ‘윽!’ 해줍니까?” 오사카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손으로 ‘빵!’ 하고 총알을 날리면 누구나 ‘윽!’ 하고 반응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걸 그룹 르세라핌의 오사카 출신 멤버 카즈하는 유튜브에서 이를 몸소 증명한 바 있다. 친절한 베르디는 이렇게 답변해주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사실 일본에서도 이 질문 많이 받습니다. 전 지금 도쿄에도 살고 있어요. 오사카 사투리도 별로 안 쓰고요.(웃음) 오사카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팔로워 66만 명의 글로벌 셀럽이 되면 어딜 가든 사인 요청을 받을 것 같았다. “평소 사인용 펜을 들고 다니십니까?” 한국어 질문이 디스이즈네버댓 직원을 통해 일본어로 통역되자 베르디는 아무 말 없이 청바지 주머니에서 포스카 한 자루를 꺼냈다. 그는 꼭 사인용은 아니지만 어딜 가든 펜을 몸에 지닌다고 했다. 포스카 외에 평소 들고 다니는 것도 궁금해졌다. 또 한 번 통역이 끝나자 베르디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하나둘 책상에 올려두었다. 루이 비통과 니고의 협업 카드 홀더, 아이폰, 빅이 그려진 케이스티파이 케이스, 베르디와 파리 생제르맹 FC 협업 스티커, 쓰고 있던 검은색 뿔테 안경. 유일하게 브랜드를 알 수 없던 안경의 출처를 물었다. 그는 한동안 OAMC의 안경을 썼지만 생산이 중단되면서, 이제는 아무 안경점에나 들어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검은색 안경테를 고른다.
소녀여 울지 마라
오늘의 베르디를 있게 한 ‘웨이스티드 유스(WASTED YOUTH)’와 ‘걸스 돈 크라이(Girls Don’t Cry)’는 그가 살면서 느낀 감정을 문장과 그래픽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베르디에게도 무명의 시간이 있었다. “29세까지 아무도 제 작품을 알아봐주지 않았어요. 거기에서 끝냈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하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웨이스티드 유스’는 무명 아티스트였던 베르디가 ‘여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 쓸모없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걸스 돈 크라이’ 또한 브랜드로 전개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내와 LA에 갔을 때 ‘항상 건강하게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그린 그래픽이었다. 베르디는 자기 그림의 차별점이 ‘마음’에 있다고 말했다. “사실 남들 것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개성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을 쏟아붓습니다. 그게 저의 무기가 됐어요.”
인터뷰 현장에는 베르디의 가족도 함께했다. 남편이 자신을 생각하며 지은 ‘걸스 돈 크라이’가 전 세계에 알려진 기분이 궁금했다. 베르디의 아내가 직접 답했다. “‘걸스 돈 크라이’는 ‘울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옷을 입은 분들께 ‘다그치는 느낌보다는 응원받는 느낌을 준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제게도 큰 응원이 됐습니다.” 전날 딸 토아가 입은 핑크색 스웨트 셔츠에도 ‘Girls Don’t Cry’가 적혀 있었다. 아내를 위해 디자인한 옷을 딸이 입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았다. “울지 말라는 뜻으로 입힌 건 아니에요. 토아는 아기니까 울어도 되죠.(웃음) 귀엽고 예쁜 딸에게 제가 만든 걸 입혀주고 싶었어요.” 베르디는 예나 지금이나 일과 노는 것을 구분 짓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걸 계속하는 겁니다. 그게 ‘일’이 됐다고 해서 싫어지진 않아요. 그냥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내는 거죠.” 일만으로도 즐거운 베르디에게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하지만 작년 파리 생제르맹 FC 협업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풋살을 하러 간다.
마지막으로 베르디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거창한 건 없어요. 나중에 토아가 15세쯤? 아빠가 하는 일을 이해할 때가 되면 큰 개인전이나 협업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 루이 비통이랑 협업했다’ 말할 수 있으면 엄청 좋아하지 않을까요? 자랑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네요.” 일본으로 돌아간 후, 베르디가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사진 속 배경은 미국 LA 선셋 대로다. 그곳의 대형 광고판에는 빅과 함께 ‘coachella’가 그려져 있다. 사진 아래에는 베르디가 ‘2023 코첼라’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코첼라’는 지금 북미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뮤직 페스티벌 중 하나다. ‘2023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는 프랭크 오션과 블랙핑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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