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TAE KIM
<아레나> 독자에게 준태킴을 소개해달라.
준태킴은 서울에 기반한 젠더 플루이드 브랜드다.
LVMH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걸 축하한다.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너무 순식간에 진행돼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얼떨떨하다. 비록 파이널리스트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LVMH에 지원하고 준비한 과정이 궁금하다.
계획대로라면 LVMH 프라이즈는 2024년도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올해는 브랜드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공교롭게도 LVMH 프라이즈 지원 기간에 파리 패션위크에서 2023 F/W 컬렉션을 선보이는 쇼룸을 진행했는데, 몇몇 LVMH 관계자가 쇼룸 방문을 희망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컬렉션을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반강제적인(?) 지원 제안을 받았다. 당시 관계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지원을 마감하는 날 저녁, 바로 지원서를 작성했고 몇 주 뒤에 세미 파이널에 진출했다는 연락이 왔다.
LVMH 프라이즈를 준비하는 과정이 꽤 길지 않나. 그때의 마음은 어땠나?
세미 파이널 진출 연락을 받은 직후, 3주 정도 LVMH 측에서 제안한 쇼룸 준비와 브랜드 화보, 영상 콘텐츠 등을 제작했다. 원래는 새 컬렉션 준비를 해야 하는 시즌과 겹쳐 동시에 진행하느라 긴장되고 정신없었지만 즐겁고 설레기도 했다.
아쉽게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그쳤지만,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나?
파이널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세미 파이널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고, 나의 창작물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인정받은 것 같다.
준태킴이라는 브랜드의 시작이 궁금하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아티스트들의 커스텀 의상이나 매거진 화보 촬영용 의상을 제작했다. 그때 유명 패션 관계자들을 많이 알게 돼 석사 졸업 쇼 이후에 그들의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졸업 작품을 구하고 싶다는 바이어들이 있었고 이를 발판 삼아 브랜드를 시작했다.
‘젠더 플루이드’는 준태킴을 이루는 커다란 뼈대라고 생각한다. 이를 브랜드의 기반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나는 한국에서 여성복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남성복을 전공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는 의복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석사 재학 시절엔 이에 대해 논문을 쓰고 졸업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고. 특히 디자인을 할 땐 과거의 여성 복식이나 코르셋의 실루엣을 차용해 남성복의 디테일, 마감, 소재에 적용하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디자인으로 풀어낼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컬렉션 곳곳에 녹아 있는 코르셋 디테일이 눈에 띈다. 이런 세부도 젠더 플루이드의 영향인가?
과거에 코르셋은 아름다움을 위해 몸을 조이는 도구였다. 나는 이와 반대로 몸을 옷에서 해방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코르셋의 실루엣은 가져오되, 모든 사람이 편안할 수 있는 형태와 디테일을 고안해 성별이 모호한 디자인으로 발전시켰다.
지금까지의 컬렉션에선 데님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이 엿보인다. 이유가 있나?
나는 과거에서 영감을 얻지만 입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꼈으면 했다. 데님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친근한 소재여서 사용했다.
브랜드 론칭 후, 총 세 번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두 사랑과 자유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사랑과 자유는 브랜드에게 어떤 의미인가?
준태킴이 상징하는 사랑과 자유는 ‘포용’이다. 준태킴을 입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사랑과 자유라는 키워드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거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인터뷰를 봤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패션이라는 매개체로 전복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며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나도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단, 매 시즌 컬렉션에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성별의 경계를 허물거나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반기를 제시하는 것,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Freedom is not real’ 선언문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들을 보고 혁명가의 면모가 엿보인다고 생각했다.
매 시즌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콘셉트와 메시지를 장문의 선언문 형식으로 발표한다. 2023 S/S 컬렉션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오래전 발표한 선언문 중의 한 구절인 ‘Freedom is not real’를 오마주했다. ‘Freedom is not reality(자유는 현실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전에 비해 자유는 현실이 되었다는 의미다. 또한 2023 F/W 컬렉션에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느낀 것을 시 형식의 선언문으로 만든 ‘Romantic Poetry’를 발표했다. 내가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매 시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언문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이끌어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준태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콘셉트가 뚜렷하고 키치한 우리의 디자인만 보고 옷의 기능성은 미비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미학적인 것보다 옷의 기능적인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집중하고 투자한다. 디자인이 아름다워도 입기 불편하면 그건 그냥 작품에 불과하니까. 브랜드 운영의 관점에서 준태킴의 중요한 가치는 합리성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디자인하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LVMH는 끝났지만 준태킴은 또 수많은 시작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예고편을 들려달라.
LVMH 프라이즈를 준비하면서 브랜드 타임라인에 집중하지 못했다. 당장은 다가올 6월에 공개할 2024 S/S 컬렉션에 집중하고 여러 브랜드들과 협업을 계획 중이다. 나아가 몇 년 안에 해외에서 프레젠테이션 및 쇼를 진행할 계획이다.
KUSIKOHC
<아레나> 독자에게 쿠시코크를 소개해달라.
2016년에 시작해 ‘RIGHT TO FAIL’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전개하는 유니섹스 브랜드다.
LVMH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걸 축하한다.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위한 유명한 패션 어워즈에서 올린 성과라 감사하다. 하지만 이곳에 지원하기엔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LVMH에 지원하고 준비한 과정이 궁금하다.
쿠시코크의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알프레도 칸두치가 참가를 제안해 지원하게 됐다.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후에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브랜드를 설명해야 하니까 옷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무래도 쿠시코크는 일상적이기보단 과감하고 쿠튀르적인 디자인이 많지 않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피스와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의 균형을 맞춰서 준비했다.
LVMH 프라이즈를 준비하는 과정이 꽤 길지 않나. 그때의 마음은 어땠나?
프레젠테이션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 쿠시코크를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도 특별했던 기억 중 하나는 런던 편집숍 머신에이의 오너인 스트라보스 카렐리스가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하며 챙겨준 일이다. 준비 과정에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기도 해서 고마웠다.
아쉽게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그쳤지만,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나?
원래 나를 사진가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 일이 내가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단순히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임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기도 하고.
2016년 쿠시코크를 처음 시작했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내가 원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운 좋게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준비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고, 다들 많이 좋아해주었다.
2022 S/S 컬렉션을 만들기까지 공백이 조금 있지 않았나?
계속 있었다. 그때는 브랜드를 사업이라기보단 프로젝트처럼 했다. 그리고 원래 스스로 잘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마음에 들 때까지 해보다 보니 오래 걸린 것도 있다. 그 사이에 사진 작업을 점점 많이 하면서 바빠지기도 했고. 브랜드는 2016년에 시작했지만 비즈니스로 하게 된 건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턴 시즌에 맞춰서 매년 두 개의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다양한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많이 알리지 않았나. 부담감은 없었나?
있었다. 그래서 만족을 더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패션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 내에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산업이지 않나. 그래서 그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부담보다는 그저 잘해내고 싶다.
‘RIGHT TO FAIL(실패할 권리)’라는 브랜드의 모토가 인상적이다. 이를 모토로 삼은 이유가 있나?
실패할 권리는 내게 중요한 가치다. 사진도, 패션도 전공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원래는 예고를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고 원하는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실패가 내가 더 열심히 사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실패라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그리고 거기서 얻는 의미가 더 크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심어주기도 했고. 2016년에 컬렉션을 준비할 즈음 프랑스 학생혁명에 대해 알게 됐다. 시위의 결과는 실패에 그쳤지만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과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슬로건을 정하게 됐다.
디자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나?
아직 찾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우선은 사람들이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쿠시코크를 입었을 때 제일 기분 좋더라. 그리고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디자이너들처럼 쿠튀르적인 요소가 담긴 옷도 만들고 싶다. 어떻게 보면 쿠튀르적인 것과 스트리트웨어가 조화롭게 섞인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구조적이고 볼륨감 있는 실루엣이 돋보인다.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세 가지 있는데, 실패할 권리, 판타지, 공존이다. 이 단어를 거름 삼아 뻗어나오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 디자인적인 요소로 표현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2022 S/S 시즌의 ‘RIGHT TO FAIL’ 컬렉션의 모티브였던 시위와 혁명을 대변하는 것은 폭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에 탄 것 같은 형상, 연기 등을 활용해 주제에 걸맞은 표현을 하려고 했다.
공존은 사람들과의 공존을 뜻하는 건가?
그보다는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에 가깝다. 서로 다른 것이 함께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까 말한 쿠튀르와 스트리트웨어를 혼합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의류뿐만 아니라 헤드피스나 주얼리 같은 액세서리 라인도 공들여 작업한 것이 눈에 띈다.
헤드피스나 주얼리 같은 액세서리가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작업을 많이 하는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도움을 받거나, 주얼리 같은 경우는 협업을 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좀 더 일상적인 디자인으로 변형해서 출시할 생각도 있다.
컬렉션 의류는 이탈리아에서 생산한다던데 이유가 있나?
우선 비즈니스 파트너인 알프레도 칸두치가 이탈리아 사람이다. ‘MADE IN ITALY’가 여전히 품질보증의 의미가 있기도 하고.
단편영화를 기획 중이라는 인터뷰를 봤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예고해줄 수 있나?
하나 정정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년쯤 선보일 단편영화를 기대해달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웃음) 아무래도 사진은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이라 이야기가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그 답이 단편영화였다. 아직 구상 단계이긴 하지만 스마트폰, AI, SNS 등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발전하면서 변화하는 우리의 생각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다.
너무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 않나. 그 와중에도 브랜드를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나?
혼자 하면 당연히 못하지만 함께하는 팀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올해가 벌써 3분의 1이 지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혹은 일적으로 이루고 싶은 바가 있나?
올해는 외국에 더 나가고 싶다. 옛날엔 익숙하지 않은 걸 싫어해서 해외에 가는 걸 꺼렸는데 요즘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까 말한 단편영화를 진행해보는 것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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