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네라이 루미노르 GMT 파워 리저브
레퍼런스 넘버 PAM01321 케이스 지름 44mm 두께 16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316L 방수 300m 버클 핀 버클
스트랩 앨리게이터 스트랩 무브먼트 P9012 기능 시·분·초·파워 리저브 표시, 두 번째 시간대 표시, 날짜
파워 리저브 72시간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8,800vph 한정 여부 없음 가격 1천2백90만원
지름이 큰 손목시계를 차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돌덩이처럼 큰 시계를 차면 불편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과시욕이 불편함을 앞설까? 손목이 굵은 사람들에게는 굵은 시계가 더 멋져 보일까? 손목이 가는 사람은 파네라이를 못 찰까? 이 리뷰를 진행하는 에디터의 손목 굵기는 16cm. 성인 남자치고는 가늘다. 가는 손목에 파네라이를 차보는 것도 나름의 경험이라 생각했다. 손목이 가는 사람이 파네라이를 찰 일이 많지 않을 테니 리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파네라이에게 착용 샘플을 청했다. 차보면 알겠지.
묵직하다. 파네라이 시계를 차본 첫날 느낀 감상이다. 오늘 빌린 시계의 이름은 파네라이 루미노르 GMT 파워 리저브. 파네라이의 대표 라인업인 루미노르에 두 가지 시간대를 보여주는 GMT 기능을 얹고 기계식 시계의 동력 잔량을 뜻하는 파워 리저브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케이스 지름은 44mm. 오른쪽에 레슬러의 귀처럼 붙어 있는 크라운 가드는 포함되지 않았다. 크라운 가드까지 포함하면 크기는 50mm에 가까워진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좋아해서 파네라이가 유명해졌는데 실제로 그럴 만하다.
의외로 편하다. 시계를 받고 종일 차본 첫날 밤 감상이다. 일부러 차고 자보기도 했다. 일어나 보니 손목에 큰 무리가 없었다. 이유를 생각했다. 크게 셋이다. 시계의 전체 길이가 별로 길지 않다. 손목시계 위아래로 튀어나와 시계 밴드가 체결되는 부분을 러그라 한다. 파네라이 루미노르는 케이스가 큰 대신 러그가 짧아서 생김새에 비해 가는 손목에도 잘 어울린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도 편하다. 케이스의 하부와 러그를 잘 설계해 시계를 감아도 이물감 없이 손목 위에 달라붙는다. 의외로 차고 있으면 케이스가 손목을 찌르거나 손목 위에서 헛도는 시계가 있다. 파네라이는 그렇지 않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버클이 묵직한 벨트를 맨다고 허리가 아프지는 않다.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의외로 덜 번쩍인다. 시계를 며칠 차보고 느낀 두 번째 소감이다. 이 시계에는 의외로 반짝이는 요소가 없다. 보통 화려한 시계는 다이얼 위에 경사를 만들고 경사면마다 반짝이는 폴리싱 처리를 한다. 다이얼 자체에 반사광이 잘 묻도록 디자인하는 회사도 있다. 다이얼 위에 금속 바를 붙이는 오메가나 브라이틀링이 대표적. 파네라이는 반대로 접근한다. 파네라이의 주요 인덱스는 양각 대신 음각으로 파낸 샌드위치 방식이다. 케이스가 번쩍여도 다이얼 쪽에 발광 요소가 없으니 멀리서 봤을 때는 존재감이 덜하다. 파네라이는 이탈리아 해군에 납품한 경력이 있고, 그 당시에는 기능성 용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때의 역사와 기조가 지금까지 다이얼 속에 남아 있다.
덜 번쩍인다는 건 착각일 수도 있다. 이 시계를 찬 날 소설가 장강명 인터뷰가 있었다. 기온이 오르던 때라 셔츠 소매를 걷고 이야기했다. 그의 소설과 저술 시장과 21세기 저자의 역할을 이야기하던 중 지금 내가 회사에서 손목시계를 담당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장강명은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는 듯 씩 웃으며 내 손목에 감겨 있던 시계를 가리켰다. 어쩌면 앙상한 감나무 같은 내 팔목에 딱 하나 매달린 홍시처럼 내내 내 팔목 위에서 빛나고 있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사실 제 기호가 아닌데요, 일 때문에 빌려 찬 겁니다”라고 말하자니 초면의 인터뷰이께 좀 구차했다. 별 수 없이 나는 ‘화려한 시계 차고 인터뷰 나온 잡지 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기능은 어떨까. 이 시계의 기능은 이미 시계 이름에 다 적혀 있다. 기계식 시계의 동력 잔량을 보여주는 파워 리저브 게이지가 5시 방향에, 초침은 9시 방향에, 날짜는 3시 방향의 별도 표시창에서 볼 수 있다. 보통 파워 리저브 게이지는 손목으로 태엽을 감는 매뉴얼 와인딩 시계에 많이 쓴다. 파네라이는 특이하게도 오토매틱 무브먼트에 파워 리저브 게이지를 장착했다.
GMT 기능은 장단점이 확실하다. 장점. 한 번에 두 가지 시간대를 보여준다. 두 가지 시간대를 표시하기도 쉽다. 크라운을 1단계만 뽑고 돌리면 시침이 1시간 단위로 점프하듯 움직인다. 단점. 날짜를 움직일 수 없다. 날짜를 옮기고 싶다면 크라운을 다시 몇 바퀴씩 돌려서 내가 원하는 날짜까지 닿아야 한다. 파네라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GMT 시계가 날짜를 바꿀 때 그러하므로 알아두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날짜창이 아예 없는 시계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차피 요즘 도시인은 날짜를 다 아니까.
3일 동안 즐겁게 차고 파네라이의 인기 비결을 조금 이해했다. 차보니 파네라이는 눈에 띄고자 하는 사람들과 별로 안 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시에 파고들 수 있다. 케이스의 존재감은 있으나 케이스만큼 내외부 전체가 화려하지는 않다. 눈에 띄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반대로 안 띄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파네라이 시계는 의미 있는 선택지일 것이다. 이 시계의 케이스와 가격을 견딜 수 있어야겠지만.
이런 게 끌린다면
• 존재감을 원할 경우에는 100점 만점에 100점
• 기계식 시계가 여러 개 있을 때는 파워 리저브 게이지가 굉장히 유용
• GMT 핸즈 기능은 해외에 나가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음
이런 게 망설여진다면
• 고급스러움을 원할 경우에는 100점 만점에 몇 점?
• 16cm 이하 손목둘레에서는 아빠 시계처럼 보임
• 모르고 보면 모든 시계가 똑같아 보이는 파네라이 브랜드의 존재론적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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