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늘 궁금했는데요, 연예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무슨 생각하나요?
무슨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좀 부끄러워요. 오래전에 모델을 할 때는 그게 직업이니까 계속 잡지도 보고 거기에 빠져 있었으니 표현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좀 긴장돼요. 뭘 해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나. 연기를 시작한 뒤로는 화보를 그렇게 많이 찍지 않았으니까요.
연기를 할 때 카메라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나요?
훨씬 덜해요. 대사가 있고 상황이 있으니 내가 표현할 것을 잘 찾으면 돼요. 화보는 내가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해야 하고요.
올해 준비한 작품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힙하게>와 <룩앳미>. 어떤 작품인가요?
<힙하게>는 촬영이 끝났고 방영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한지민 선배가 수의사로, 제가 열혈 형사로 나와서 둘이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예요. <룩앳미>는 촬영 들어갈 건데요, 제가 범죄 피해자 재건 성형을 하는 성형외과 의사로 나와요. 그 안에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재건 성형을 하며 사람 내면의 트라우마에도 관여하는 내용이에요.
작품 출연을 결정하는 계기는 무엇인가요?
<힙하게>는 전작 <나의 해방일지> 감독님 작품이에요. 감독님의 연락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한지민 선배도 너무 좋아하고, 대본도 너무 재미있고, 이외에도 여러 새로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룩앳미>도 제가 전문직 의사 역을 주연으로 맡은 건 처음이에요. 성형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설정은 본 적이 없었고요. 새롭거나 제가 안 해봤거나, 이런 매력이 있어야 선택하는 것 같아요.
안 해본 것들이 배우 이민기를 움직이게 하는 걸까요?
그렇죠. 장르로든 역할로든.
촬영이 없을 때도 루틴을 지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제일 안정감 있고 편해요. 일어나서 아침 먹고 운동 갔다가 점심 먹고. 아침 먹고 운동하러 가기 전에 단편집 같은 책을 잠깐 읽는다, 10분이든 15분이든 책을 읽고 나간다, 그런 루틴이 있어요.
책 읽기가 취미라고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죠. 계속 그렇습니까?
사실 예전만큼은 못 읽고 있어요. 예전에는 촬영할 때도 잘 읽었거든요. 너무 대본에 치우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도 놓지 말자는 주의라 계속 읽고는 있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책 읽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 있어요.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보고 에세이의 재미를 느꼈어요.
에세이만의 재미가 있죠. 읽을 책은 어떻게 고르나요?
선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친한 지인들은 저를 대충 아니까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책을 줘요. 그걸 읽으면 후회가 없어요. 사노 요코의 책은 같이 작업한 동생이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며 선물해서 읽고 있어요. 그걸 보면 ‘얘는 이런 책을 좋아하는구나’ 싶죠. 그런 소통이 되는 것도 좋고.
기분 좋은 일이죠. 내가 좋아하는 책 선물 받고 나도 권해주고. 책 읽기를 왜 좋아하나요?
사실 어릴 때 저는 만화책밖에 안 봤어요. 소설 등을 읽기 시작한 건 제가 데뷔한 다음 해부터였어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친한 작가님께 여쭤봤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랬더니 “다른 거 없고 책 많이 읽어”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강박처럼 읽었죠. ‘내가 이걸 안 읽으면 나는 연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서요. 내용이 안 들어오고 권수 채우기에 바빴어요. 무조건 나는 읽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 권 봤다, 두 권 봤다, 이런 식으로요. 그 습관이 쌓이니까 나중에는 진짜 읽게 되더라고요. 내용도 들어오고요. 그 뒤로는 책에서 많은 걸 느끼니까 습관적으로라도 읽으려 노력합니다. 몇 년 동안은 너무 재미있어서 막 읽은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때만큼 집중도와 속도는 없지만, 그래도 책에서 얻을 게 있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이건 놓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 기억납니까?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걸 썼지’ 싶었어요. 천명관의 <고래>도 재미있었고, 매년 간행되는 문학 단편선에도 좋은 게 많습니다. 김금희 작가님 책도 좋아해요. 신기할 때가 있어요. 책을 읽다가 ‘나 아는 감정인데, 어떻게 글로 이렇게 표현하지. 나도 내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죠.
옛날이야기지만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기억나나요?
‘나는 배우가 돼야 해’ 같은 결심을 한 적은 없어요. 모델을 하다 연기 오디션을 봤는데 붙어서 연기를 하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첫 1년은 제가 연기를 계속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오디션에 붙어서 ‘됐네’ ‘또 붙었네’ ‘무슨 일이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다음 해가 되고 나서는 ‘내가 붙었다고 기뻐할 게 아니라 해내야 되는 거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연기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성공이 참 어렵습니다. 성공한 분들이 잘된 이유는 모두 다른 것 같아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제가 데뷔할 때 감독님, 작가님과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긴장을 하지 않으니까(잘됐다). ‘나는 연기를 해야 돼. 안 하면 안 돼. 이게 내 인생의 전부야’라고 생각했다면 긴장했을 텐데, 저는 그냥 누구 대타로 어떻게 오디션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주어진 대로, “이렇게 해봐”라고 하면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봐”라고 하면 달리 해보고, 긴장을 하지 않아서 유연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신인 때는 그런 게 좋았다고 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게 거의 20년 전 이야기네요. 더 잘 아시겠지만 내가 한 번 잘되는 것과 쭉 유지하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노력했다고 하기에는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있나 싶기도 하고, 설명하기는 어렵고 운이 좋았다고만 생각해요. 인복이 많았어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영향을 받아 계속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하는 일이 답이 없는 일이기도 하죠. 저도 제 분야에서 설명 못 할 기분을 많이 느낍니다. 뭔가를 해야겠다, 혹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정해둔 건 있습니까?
사소한 거지만 예전에 어떤 선배를 만났을 때 여쭤본 적이 있어요. “선배님, 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선배의 답이 되게 쿨했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네 연기는 네가 잘하는 거고, 내 연기는 내가 잘하는 거지. 나는 나로 잘하는 거지 너처럼 연기하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겠어.”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다가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내가 너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 스태프들 이름 외워. 왜인지는 내가 설명해봐야 의미 없고, 네가 해봐야 알 거야.” 전에도 스태프분들 성함 알려고 노력은 했지만 내가 대본을 파듯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현장에 스태프들이 굉장히 많을 텐데요.
그런데 그 선배는 이미 그때 스태프 이름을 거의 다 외우셨어요. 그런 걸 배우는 거죠. 제 모토가 ‘무조건 스태프들 성함을 외운다’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가능하면 일할 때 “저기 FD분”이라고 하느니 이름을 부르는 게 저도 좋아요. 그런 걸 예의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이름을 외워서 불러보니 어떤 걸 깨달았나요?
너무 많아요. 우선 현장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건 연기적으로든 어쨌든 현장의 모든 것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예요. 좋은 분위기라는 건 작업 현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 같아요. 서로 힘을 낼 수 있고요.
저도 배워야겠습니다. 저도 매번 다른 현장에서 다른 스태프분들을 많이 뵈어서요. 그런데 배우 생활이 계속 재미있습니까? 배우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너무 모범답안 같지만 부족해서예요. 동료와 그런 얘기할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너무 좋은 작품에 너무 좋은 연기를 봤어요. 그러면 “안 볼란다.(웃음) 나는 며칠 있다 볼래. 자괴감 들잖아. 저 정도 연기를 해야 되는데 아직은 수준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자괴감도 들겠죠.
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너무 좋은 연기를 봤을 때 묘한 죄책감 같은 게 들 때도 있거든요. 부족함을 느끼니까 계속하게 돼요. ‘오늘 촬영이 100% 마음에 든 적 있냐’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없는 것 같아요. ‘부족하니까 내일은 좀 더’ 하는 생각으로 계속 하루하루 더 하는 것 같습니다. ‘나 해낼 거야. 할 거야. 명연기 할 거야.’ 이런 마음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냥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다가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더 잘하기 위한 연습도 합니까? 홈 트레이닝처럼 집에서도 계속하고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는 안 해요. 오히려 많이 연습하면 닳는다는 주의라. 제가 집에서 어떤 명연기를 해봐야 현장 가면 다르죠. 연기 혼자 하는 거 아니잖아요. 혼자 있는 신이라도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카메라도 있고 상황도 있고 현장과도 호흡을 해야 해요. 어차피 가서 그 느낌으로 뭔가 맞아떨어져야 되는 게 있어서, 많이 해봐야 닳기만 해요.
현장 특유의 분위기가 있죠. 드라마나 영화 촬영처럼 크고 복잡한 현장에서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만 수십 명은 될 텐데, 그럴 때도 집중력이 잘 유지되나요?
결국 아까 스태프들 이름 외우라던 선배님께서 해준 말씀과 통하는 이야기예요. 선배님께서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현장에 와서 카메라를 쭉 둘러볼 때 배우는 스태프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 유명한 사람 연기 어떻게 하는지 보자.’
그럴 수 있죠.
낯선 스태프들이 있으면 낯을 가리잖아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쭉 둘러서 있으면 낯설기도 하고요. 그런 시선이 느껴진다면 이름을 외우고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게 섞이다 보면 ‘아, 우리 형 잘 나와야 되는데’ ‘아, 이 조명은 우리 형 시선에 방해되겠는데’ ‘우리 동생이 이거 잘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바뀐다는 거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배우의 일일 수 있겠네요.
그렇죠. 현장 분위기가 밝으면 서로 좋죠. 가라앉아 있는 것보다는요. 산만하면 또 안 되니까 중간에 딱 있는 게 좋죠. 너무 가라앉지도 않고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작가님께 여쭤봤다는 것도 그렇고, 다른 선배님께 여쭤봤다는 것도 그렇고, 연기를 잘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군요.
그렇죠. 왜냐하면 저는 연기를 배우거나 준비했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쩌다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잘해내야 하는데 나는 방법을 모르니, 그래서 많이 물어봤죠.
그게 대단해 보입니다. 저는 물어보는 게 직업이라 모르는 걸 막 묻는 게 쉽지 않은 걸 알아요.
물어보죠. 지금도 뭐 필요하면 물어봐요. 20대 때는 그게 장점이었어요. 물어봐서 누가 알려주면 그대로 했어요. “영화 봐라. 하루에 한 개씩 봐라” 하면 진짜 하루에 한 개씩 보고, 그렇게 했어요. “알겠습니다” 하고 안 하지 않았어요.
그게 쌓여 지금의 배우 이민기가 된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사실은 별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직군의 스타 배우인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억됐다가 자연스럽게 잊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남겨지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요. 기억에 남는 작품 속 사람인 건 좋아요. 세대에 걸쳐 남는 좋은 작품에 제가 나온다면, 그 작품 안에 남아 있는 건 너무 큰 영광이겠죠.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