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 yoon
드릴 장르를 선보이는 래퍼. 만수 크루 멤버로서 랩 하고, 아침에는 등교하는 인천 토박이 학생이었다. 2022년 처음 도전한 <쇼 미 더 머니> 시즌 11에서 활약해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전속 모델 자리까지 꿰찼다.
만수의 게토
게토.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뜻하는 속어다. 지금은 미국의 흑인 밀집 빈민가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좋은 뜻을 가진 단어는 아니지만 흑인 특유의 스웨거 문화가 ‘게토’라는 단어와 맞물리며 미국에서는 고유명사 비슷하게 되었다. 힙합은 흑인 게토 문화권에서 태어난 장르다.
언젠가 NSW 윤을 만나 음악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는 자신의 본거지와 게토에 대해 가볍게 언급했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사에도 게토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NSW 윤 버전의 ‘게토’는 인천 남동구다. 그는 작업실이 위치한 ‘만수역’의 이름을 따서 힙합 크루 ‘만수’를 만들었다. 취재를 위해 처음 가본 만수는 게토라 불릴 만했다. 만취한 중년들이 길거리를 배회했다. 유흥가의 조명이 만수역을 밝히고 있었다. 열아홉 살 NSW 윤에겐 거칠고 아쉬운 동네였다.
NSW 윤은 처음 지원한 <쇼 미 더 머니> 시즌 11에서 예선은 물론 세미 파이널 직전까지 올랐으며 더 콰이엇, 릴러말즈 등 다양한 래퍼에게 인정받았다. 이후 스포츠 의류 브랜드 모델로 발탁되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급등했다. 그런 그가 열여섯 살에 처음 음악을 시작한 작은 지하방이 만수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NSW 윤의 말처럼 이곳은 너무 ‘게토’였다.
인천 남동구 출신의 취향
NSW 윤과 함께 처음 간 곳은 서창동에 있는 인천성산교회였다. 취재 날이 마침 교회 청년부 예배날이었다. NSW 윤은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함께 교회에 들어서자 청년부 학생들이 가족처럼 그에게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졌다. 촬영이라고 나름 꾸미고 온 그에게 “어디 배달하러 갈 것 같아”라는 교회 선생님의 말에 “아니에요!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준 옷이란 말이에요”라고 받아쳤다. 사람들은 그에게 “디스 배틀 무대 잘 봤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예배가 시작되자 NSW 윤은 눈을 감고 진지하게 기도했다. 때론 성경 말씀을 성실히 받아 적었다. 한 시간 동안의 예배가 끝나고 NSW 윤은 교회에서 주는 핫도그와 사이다를 받았다. 에디터와 사진가의 몫까지 챙겨주었다. 교회를 떠나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그와 나눈 대화의 8할은 연애였다. NSW 윤은 “솔직히 저는 5년 정도 장기 연애해보고 싶거든요”라며 연애가 어려운 이유를 말했다. 여자친구와 오래 만나고 싶지만 실패하는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이야기를 전부 밝힐 순 없지만 NSW 윤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연애 이야기로 한창 꽃피우다 어느새 작업실에 도착했다.
만수역 앞 낙후된 상가 2층에 위치한 작업실은 2평 남짓한 음악 스튜디오들이 독서실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제일 안쪽 방이 NSW 윤이 작업하는 공간이다. 문을 열자 의외로 좋은 향기가 났고, 깔끔했다. “헉! 빨리 치울게요”라며 먹다 남은 커피 한 잔을 다급하게 들었다. 고작 한 잔이었다. 스피커 위에는 래퍼 ‘팝 스모크’의 바이닐이 세워져 있었고, 헤드셋, 컴퓨터, 믹싱 장비, 그리고 꽃이 꽂힌 디퓨저가 놓여 있었다. 책상 오른쪽에 세워둔 마이크 앞에 서더니 공개하지 않았지만 최근 작업한 리믹스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NSW 윤 특유의 사포로 갈아낸 듯 거칠고 두꺼운 목소리가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누가 문을 두드렸고 NSW 윤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같은 작업실의 다른 방을 쓰는 ‘4K사카이’였다. 그도 힙합 뮤지션으로, 이미 싱글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그의 이름은 NSW 윤이 지어줬다. 복도 맞은편 끝 방이 그의 작업실이었고 그 방도 NSW 윤이 물려줬다. 4K사카이의 방에 모인 친구들은 만수 크루 멤버 ‘YT소사’와 ‘TMG슬렌더’였다. 이들은 랩 하며 알게 된 친구들이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NSW 윤은 “방 꼴이 이게 뭐냐, 제발 좀 치워라” 등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들의 대화는 주제가 없었다. 서로를 디스하거나 게임 이야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됐다. 이를테면 다운펌 하고 온 4K사카이에게 “머리 안 감았냐?” “다운펌 한 거 100% 거짓말이다” 등등 디스전를 펼쳤다. 그들을 구경하다 시선을 돌리니 벽에 붙은 ‘Ladies’ 표기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뜻을 물었다. “아, 제가 이 방을 쓸 때 여기엔 여자만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로 붙여놓은 거예요. 하하하.”
“얘들아 저녁은 파스타 먹자.” 의외로 양식 취향인 NSW 윤, 작업실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레스토랑 카사 플레이트로 향했다. 각각 다른 종류의 파스타 다섯 접시와 피자를 주문해 먹는 동안 이들은 게임 레벨로 논쟁했다. YT소사가 꽤 높은 등급을 말하자 NSW 윤은 거짓말 아니냐, 붙어보자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매우 천진난만했다. <쇼 미 더 머니> 디스 배틀에서 보인 눈빛과는 다른 아이 같은 순수함을 풍겼다.
거친 랩과 다른 반전 성격
결국 이들은 PC방으로 가 피파 게임을 하기로 했다. 잠깐 나갔다 들어오며 마주친 4K사카이가 내게 말했다. “근데 누나, 승윤(NSW 윤 본명)이 형이 진짜 착해요. 맨날 먹을 거 사주고 동네에서 랩 하는 친구들 두루두루 챙겨줘요. 진짜 사람 좋아요. 저 음악 시작할 때도 많이 도와줬어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취재하며 내내 느낀 점이기 때문이다. NSW 윤은 교회에서 굳이 사진가와 에디터의 음식까지 챙겼다. 더 넓은 작업실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좁은 방을 쓴다. 먹다 남은 커피 한 잔이 실례가 될까 황급히 치운다.
하루를 함께 보내며 NSW 윤이 왜 그렇게 가사에서 성공을 외쳤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뒤에는 그를 신뢰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NSW 윤은 그 사람들을 챙기고 사랑하는 삶을 산다. 신뢰와 응원의 마음은 열여섯 살부터 만수의 작은 지하방에서 음악을 해온 NSW 윤의 성실함 덕에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Polodared
랩을 2020년 12월에 시작해 2021년 싱글 <DDC>로 데뷔했다. <쇼 미 더 머니> 시즌 10은 아쉽게 마무리했지만, 2022년 시즌 11에 재도전하여 디스 배틀 무대까지 올랐다. 2023년 1월 1일 밤, 성인이 된 기념으로 홍대 클럽에서 성대한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DDC로 향하다
서울에서 한 시간가량 달려 동두천으로 향했다. 고속도로가 길어질수록 산, 논, 밭, 하늘 풍경만 보였다. 창문을 열자 장작 타는 냄새가 풍겼고, 동두천에 가까워지자 분위기는 더욱 삭막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폴로다레드와 만나기로 한 동두천 아트박스에 도착했다.
그곳은 세 구획 정도에 걸쳐 즐비한 10층 높이의 상가 중 하나였다. 주변에서 음악 공연장이나 악기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식당, 학원, 술집, 카페가 전부였다. 폴로다레드가 가사에서 말한 ‘유난히 어둡고 춥던 길거리’가 이곳 ‘DDC’인가. 문득 음악은 반드시 합정, 홍대, 상수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전혀 없는 곳에서 폴로다레드는 힙합 음악을 해 <쇼 미 더 머니> 시즌 11에서 디스 배틀 무대까지 오른 전력이 있다. 다양한 힙합 뮤지션들의 ‘샤라웃’도 받았다. 그의 화제성은 꼭 방송 때문만은 아니다. 폴로다레드는 일명 DDC 신드롬을 일으켰다.
폴로다레드의 곡 ‘DDC&ME’에는 동두천에서 음악을 시작한 계기와 이유가 담겨 있다. DDC는 동두천을 뜻한다. 늘 DDC를 외치고 다니는 폴로다레드 덕에 동두천을 찾는 팬과 아티스트도 늘었다고 한다. 폴로다레드에게 일상 그 자체를 취재할 거라고 전했더니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근데 누나, 저 친구들 데려가도 돼요?” 우리가 동두천 아트박스 앞에서 만났을 때 폴로다레드는 친구를 열 명이나 데려온 채 서 있었다.
동네 친구들
옹기종기 모여 몸싸움을 한다. 손가락 네 개를 올려 보이는 힙합 제스처를 한다.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춤춘다. 사진가와 에디터가 포착한 그들의 첫 모습이었다. 이들은 폴로다레드의 동네 친구들이다. 그중에는 10년 지기도 있었다.
친구 열 명 모두가 뮤지션은 아니었다. 비트 메이커 ‘루이찹스틱보이’와 힙합 뮤지션 ‘리에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음악과 관련이 없는 동네 친구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거나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앞둔 친구 등 다양했다.
음악 하는 친구 둘의 직업도 신선했다. 루이찹스틱보이는 음악 하는 시간 외엔 만두 공장에서 일했다. 리에츄는 동두천 미군 부대 내 피부 관리 숍 직원이었다. “게임 한 판 하고 저녁 먹으러 갈 거예요”라는 폴로다레드의 말과 함께 ‘게임박스 멀티샵’이라는 오락실로 향했다.
일상이 가사
폴로다레드는 천원짜리 지폐 열 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농구, 총 게임을 했다가 철권 기계 앞에 앉았다. 자신은 철권만 한다며 조이스틱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말한 대로 정말 ‘한 판씩’만 했다. 친구들의 게임 값을 모두 계산해준 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식사 장소는 ‘앗싸! 곱창.’ 얼핏 듣기로는 한 친구의 ‘썸녀’가 일하는 곳이란다. 폴로다레드는 “내가 쏘겠다”며 야채 곱창 6인분을 주문했고, 추가로 볶음밥과 콜라, 사이다까지 시켰다. “이모, 들깻가루 주세요”라고 외치는 폴로다레드는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동두천 내 고장, 지금 먹는 건 곱창.” 폴로다레드는 곱창을 먹으면서도 즉석으로 가사를 만들어 불렀다.
먹고 난 후 폴로다레드 무리는 야구, 볼링, 골프를 놓고 사다리 게임으로 무얼 할지 정했다. 결국 볼링장으로 향했다. ‘금강산 볼링장’은 낡은 볼링장이었다.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손님들도 볼링장만큼 오래되었는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전부 볼링 전문가처럼 보였다. “여기만 오는 이유가 제 전용 볼링공이 있거든요.” 폴로다레드는 스포츠에 진심인 사나이 같은 면모가 있었다. 이날 폴로다레드의 애버리지는 190점. 두 게임 후 먼저 작업실로 떠난다며 친구들 볼링 값까지 계산하고 유유히 나갔다.
작업실은 금강산 볼링장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집이다. 걸어가는 길에 다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집에서 잠깐 촬영해도 돼?”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푸들을 안은 채 우릴 반겼다. 작업실은 191cm 거구인 폴로다레드가 쓰기에는 상당히 좁아 보였다. 헤드셋과 마이크, 컴퓨터가 전부였다. 다른 음악 장비는 없었다. 방문에는 엄마가 붙여놓은 글귀가 한가득이었다. ‘아무리 작은 관계여도 신중하게 맺자’ ‘작은 것부터 편하게 시작해보자’ 같은 문장이었다. “엄마가 붙여준 문장들은 꼭 찍어주세요!” 폴로다레드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뒤 녹음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폴로다레드의 가사는 대부분 가족, 성공, 돈, 명예, 의리로 귀결된다. 특히 ‘엄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엄마 앞에선 몸집만 거대한 아이가 되는 폴로다레드다. 하지만 밖에선 친구들 밥값과 게임 값을 계산해주는 의리파다. 전용 공까지 보유한 볼링 실력자라는 사실과 어린 시절부터 지낸 좁은 방에서 녹음하는 모습에서 일단 열심히 하는 집념을 보았다. 친구 교정기를 놀리는 소년이지만 곱창 먹을 때도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성실한 힙합 음악가다. 욕설 많은 가사를 쓰기도 하지만, “누나 다음 장소는 여기 가도 돼요?”라며 허락을 구하는 예의 바른 래퍼다. 취재 날 하루 안에 동두천 출신 래퍼 폴로다레드의 가사가 전부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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