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3일뿐인 짧은 일정 탓에 충분히 둘러보진 못했는데, 감각적이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더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아쉽다.
오늘 10 꼬르소 꼬모 서울을 위한 특별한 캡슐 컬렉션을 론칭한다. 캡슐 컬렉션에 대한 소개와 제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과 함께한 캡슐 컬렉션은 유행을 따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와이프로젝트(Y/Project)의 제품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람들의 삶과 성격이 묻어나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착용한 셔츠는 진중한 자리에서는 깔끔하게 입을 서울수 있지만 단추를 풀어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연출할 수도 있다. 진지하다가도 장난스럽고 때로는 섹시해질 수 있는, 입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 가능한 변화무쌍한 옷들이다.
와이프로젝트의 2022 F/W 컬렉션도 일부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컬렉션에선 장 폴 고티에와의 협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아카이브에서 그의 상징적인 토르소 디자인, 트롱프뢰유 기법을 적용한 이유가 있나?
나와 장 폴 고티에의 공통점은 옷의 구조를 변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자주 했던 작업보단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1990년대 초반, 장 폴 고티에가 인체의 일부를 옷에 프린트한 컬렉션을 흥미롭게 느꼈고 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콘셉트는 장 폴 고티에에서 착안했지만 셰이딩, ‘더블 보디(두 개의 몸)’를 사용하는 아이디어 등의 그래픽 디자인은 와이프로젝트에서 진행했다.
하나의 제품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흥미롭다. 이러한 디자인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나?
좋은 질문이다.(웃음) 처음엔 돈이 없어서 시작했다. 9년 전 우리는 매장이 5개밖에 없는 작은 브랜드였다. 컬렉션을 완성해야 했지만 수많은 옷을 만들 만큼 돈이 없었고 ‘다르게 입을수 있는 옷’이라는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런웨이에서 하나의 옷을 여러 방식으로 돌려 입으며 완전히 다른 옷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시작은 그랬지만 우리 모두 이 과정을 즐겨, 이젠 와이프로젝트의 언어가 되었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배고플 때 떠오르는 법이다.(웃음)
와이프로젝트는 감각적인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컬렉션 중 하나기도 하다. 스타일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런웨이를 통해 예시를 보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입는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스타일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당신의 작업에서 출발점은 언제나 데님이라는 인터뷰를 읽었다. 이토록 데님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마찬가지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웃음) 데님은 비싸지 않아 경제적일뿐더러 옷을 만들기 쉬운 원단이다. 튼튼하고, 볼륨 또한 뻣뻣하게 유지된다. 초기엔 이런 이유로 데님을 사용했고, 작업을 거듭할수록 갖은 변화를 시도했다. 요즘엔 예전보다 레이어를 많이 더한 데님 제품을 만든다.
쇼는 물론 브랜드 룩북, 카탈로그를 촬영할 때도 개성 있는 모델을 기용한다. 모델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기준이 있나?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표현하려고 한다. 내가 그리는 미래는 모든 사람이 성별, 종교, 국적, 경제력에 상관없이 공생하고 존중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와이프로젝트는 2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그들의 나라는 약 20개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가 ‘멜팅포트’를 이루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곳곳에 많은 팔로워가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만드는 옷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더라도 온라인과 SNS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단순한 역할 외의 것들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드 웹사이트에 상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모델들의 이름과 개인적인 특징을 써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오렐리는 아침으로 라면을 먹는 길티 플레저입니다’ 혹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등.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델이기 전에 사람이다.(웃음)
건축을 전공한 후,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건축에 대한 배경 지식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내가 소유한 첫 번째 브랜드인 와이프로젝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와이프로젝트는 건축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실험을 한다. 모든 걸 건축에 대한 것으로 채울 만큼 초반에는 내가 만든 옷들을 건축물로 여기기도 했다. 어떻게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까 하는 고민과 비슷하달까?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나?
여러 패션 디자이너들을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아한다. 그들이 옷에 접근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다. 오늘날 살아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에 꼽자면, 피비 파일로. 그가 어서 좋은 컬렉션으로 복귀하길 기다린다. 존 갈리아노가 맡았던 디올의 팬이기도 하다. 디올에서 그의 작업은 환상적이었다. 창의적인 컬렉션으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모으는 조나단 앤더슨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마르지엘라. 마르지엘라는 패션 학교나 다름없다. 미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대신 옷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컬렉션은 언제나 관능적인 요소들이 넘쳐난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꾸준히 논의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와이프로젝트와 디젤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재미를 추구하고 삶을 즐기자는 거다. 성적이고 관능적인 것 역시 이에 포함된다. 우리에게 그런 요소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삶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땔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웃음)
젠더리스, 젠더 플루이드 같은 이슈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고정관념이 만연하다. 성별을 넘나드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당신의 방향성과 지향점은 어떤가?
성별의 경계가 나뉘지 않고 그저 ‘구매자’만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가 그리는 꿈이다. 와이프로젝트와 디젤의 컬렉션 또한 이를 지향한다. 아우터의 절반을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를 위해 만드는 것처럼. 물론 모든 시장이 이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장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 아까 말한 모델 캐스팅을 포함한 이런 논의는 결국엔 자유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서로를 존중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로운 사회를 컬렉션에 반영하고자 한다. 그리고 옷 또한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잘 어울릴테니까.
디젤과 와이프로젝트, 두 개의 브랜드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작업 방식에 차이점이 있나?
브랜드가 가진 태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둘 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브랜드가 대화하는 사람, 그리고 제품이다. 디젤에서는 모두와 대화한다. 고등학생, 소방관인 내 형제, 파리에 있는 엄마 등. 서로에게 힘을 주는 친구 같은 존재랄까? 그게 핵심이다.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쇼는 실험적이지만, 결과적으로 매장에 걸리는 옷은 입기 편하고 활동성에 초점을 둔 것들이다. 와이프로젝트는 콘셉트가 뚜렷하고 옷의 구성에 집중하기 때문에 보다 패션 지향적인 손님들과 대화힌다. 패션을 알고, 사랑하는 이들 말이다.
와이프로젝트에서 간결한 프린트가 있는 베이식한 티셔츠를 만들 일은 없겠지만,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가격을 4백에서 5백50유로 정도로 책정해야 할 거다. 그만큼 많은 수고가 들어갔기 때문에.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은 물론, 고객은 실제로 옷이 약 2백50유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디젤은 가격이 약 60~70유로로 책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픽 프린트가 들어간 티셔츠를 만들어도 되고, 손님들에게도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디젤에서 이런 섹시한 그래픽 티셔츠를 만드는 작업을 즐긴다. 심플한 베이식 티셔츠지만 매일 입을 수 있으니까.
와이프로젝트는 다른 브랜드와의 긴밀한 협업으로도 주목받는다. 어그, 휠라, 멜리사 등 .
우리끼리 만들어낼 수 없는 제품들의 경우 협업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몰드가 크게 발전한 멜리사의 신발이나 기능성이 뛰어난 캐나다 구스가 그 예다. 우리의 시설이 너무 작거나 기술이 부족한 경우 협업을 통해 해결한다.
한국은 물론,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자유로운 사고방식 때문인 듯하다. 로고, 스포츠웨어 같은 것들이 트렌드로 자리한 후 모든 것이 비슷해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좇기보단 색다른 개성과 재미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좋지 않은 시기에 우리같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조그만 기쁨을 전달해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아직 11월이지만, 이 인터뷰는 2023년 1월호에 실리게 된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나?
항상 똑같다. 언제나 운동을 계획하지만 절대 하는 일이 없다.(웃음) 하지만 이제 40세가 되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금연을 다짐하지만 2주 만에 다시 흡연하고, 운동을 다짐하고는 짐에 두 번 가고. 올해도 변함없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나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일도 많이 하지만 놀기도 많이 놀고, 놀라운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사실 지금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 같은 생활이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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