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뉘앙스가 있다. 징크스처럼 강박적으로 잠근 단추, 바짝 조여 맨 넥타이와 같이 정중하고 빈틈없는 것들. 분명히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지만, 명확한 생각에 작은 균열이 생긴 건 틀림없다. 사실 수트를 입는 다양한 방식과 태도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꾸준히 다뤄져 놀랄 일도 아니다. 맨살에 재킷을 슬쩍 걸치고 방탕하게 걸어나오는 모델들, 수트의 세부를 자르거나 변형해 새로운 실루엣을 선보이는 디자인들은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런웨이에서만 적용될 것이라 생각했던 법칙이 피부로 느껴지는 일은 좀 새롭다. 이를 실감한 건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티모시 샬라메 덕분이다. 언제나 관념을 뒤엎는 스타일링을 연출하는 그는 오직 루이 비통의 글리터 재킷만(심지어 여성 컬렉션으로 출시된) 걸친 채 등장했다.
그뿐 아니라 농구 선수 드웨인 웨이드 또한 멧 갈라에서 ‘셔츠리스 수트’를 입고 나타났다. 탄탄한 근육을 액세서리 삼은 그의 거침없는 태도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일상에서 이런 스타일링을 활용하는 일은 드물겠지만 오히려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화끈하게 드레스업할 땐 셔츠를 입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수트의 핏. 싱글브레스트 재킷을 입을 땐 마치 수트와 한 몸인 듯 단추를 잠가 연출하고, 넉넉하고 커다란 재킷일 땐 활짝 열어 흐트러지게 입는다. 무늬나 소재에 따라 가늘거나 볼드한 네크리스로 포인트를 더하면 훨씬 세련되게 연출할 수 있다.
‘셔츠리스’가 수트의 구성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엔 수트의 형태를 변형한 것에 주목할 차례다. 피터 도는 2023 S/S 컬렉션의 첫 번째 룩으로 여느 수트와 다름없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듯했으나 모델이 뒤를 돌아 보이자 색다른 반전이 드러났다. 재킷 뒷면을 둥글게 오려낸 후 가죽 벨트를 아슬아슬하게 조여 맨 모습은 클래식한 전면 디자인과 완전히 달라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또한 어깨 라인을 은근하게 드러내 우아함을 한껏 강조한 펜디의 수트, 소매를 자르거나 허리 라인을 사선으로 커팅해 긴장감을 더한 알렉산더 맥퀸의 수트까지. 의도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수트의 세부를 변형해 변칙적으로 입는 수트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새롭지 않은 방식이 유독 새삼스레 느껴지는 이유는 성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너를 입지 않고 클리비지 라인을 드러내는 방식, 몸의 곡선과 실루엣을 강조하는 태도는 주로 여성복에서 활발했던 일이다. 정숙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한 수트가 관능적이고 호방한 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젠더 플루이드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더 이상 남자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누구나 즐기기에 무리가 있다고 여겨지던 지난날은 잊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과 태도로 담대하고 비범한 수트를 마음껏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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