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GO-WRAPPIN’ - Byrd
Editor 조진혁
낙엽이 건반 위에 떨어지는 계절에는 가사를 밟으며 걷는다. ‘Byrd’는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다. 담담하게 멜로디가 이어지면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가사는 영어인데 알아듣긴 어렵다. 화면으로 가사를 읽어야 무슨 뜻인지 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이내 절박함이 호소로 이어지고 다정함으로 인내로 결말짓는다. 천천히 고조되는 멜로디는 가을과 같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가녀린 풍경은 가을만의 것이다.
2 Sade- Paradise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샤데이의 목소리는 있는 듯 없다. 빼어난 절창이지만, 돋보이려 발악하기보다 악기처럼 스미기를 택한다. 그런 중저음의 나긋한 창법은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타악기와 만나 발레아릭(Ballearic)이라는 경계가 모호한 장르를 선명하게 만든다. 여름이 발광하는 토요일 밤과 같다면, 가을은 석양을 마주한 나른한 오후일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설 때, 불쑥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연인의 품을 파고들 때, 석양을 지나 밤으로 횡단하는 차 안에서 헐렁한 시간을 보낼 때, ‘Paradise’는 꽤 근사한 선택일 것이다.
3 Gladys Knight – If I were your woman
Editor 정소진
낙엽 밟을 때 ‘바스락’은 시적이고 외롭지만 눈 밟을 때 ‘뽀드득’은 경쾌하고 희망적이다. 가을은 고독을 몰고오나 보다. 가을이 오면 나는 건조한 사람으로 변한다. 삽상한 감정은 사라지고 고독만이 자리한다. 그게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감성에 파묻히고 싶다. 1960년대 모타운 사운드는 고독을 고조시키고, 희열을 끌어올린다. 행복감의 희열이 아니라 슬픔, 기쁨, 분노, 온갖 감정이 뒤섞인 희열이라고 말하면 아려나. 글래디스 나이트의 풍성한 창법과 웅장한 합창이 그 희열을 내 안에 불어넣는다.
4 Kings Of Convenience - Misread
Editor 최태경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Misread’는 빛이 부서지고, 코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냄새와 닮았다. 너른 잔디에 누워 통기타 튕기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나도 그 공원에서 함께 나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Misread’를 플레이하고, 비슷한 노래들이 아무렇게나 자동 재생되도록 두는 게 좋다. 운전 중엔 창문을 활짝 열고, 이어폰은 꼭 트랜스패런시 모드로. 소박한 노래들과 무르익은 가을 소음의 평온한 페어링을 위안으로 삼은 지도 어느새 10여 년이 훌쩍 넘었구나.
5 Patrick Watson - Je te laisserai des mots
Editor 이다솔
여름에는 축축 처지는 기분을 환기하려 신나는 음악을 찾아 듣지만, 가을은 좀 다르다. 어쩐지 쓸쓸하거나 우울해도 내버려두고, 가끔은 더 파고든다. 패트릭 왓슨의 음악은 보통 그럴 때 즐겨 듣는다. 늘어지고 몰아치기를 반복하는 피아노 선율과 바싹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는 목소리는 감정의 그늘을 더 짙게 드리운다. 프랑스어로 써 내려간 가사가 참 낭만적이라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자꾸 찾아보는데, 이 노래의 제목인 ‘Je te laisserai des mots’는 ‘그대에게 편지를 남길게요’라는 뜻이라고.
6 Duval Timothy - Help
Editor 이상
여느 때 즐겨 듣는 듀발 티모시의 앨범 중 가을이 성큼 다가왔을 때는 이 앨범을 내내 틀어둔다. 듀발 티모시는 원래 재즈 베이스의 뮤지션인데 ‘Help’는 얼터너티브랄까, 소리가 다양하게 들리고 장르를 계속 변주한다. 가사는 거의 없는 대신 경쾌한 템포로 소리를 겹겹이 깔아 아침에 눈뜨자마자 들으며 몽롱함에 젖기도 하고, 청명한 하늘 아래 듣고 있으면 꿈같은 기분도 든다.
7 Omara Portuondo - Veinte años
Editor 노현진
2008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이맘때 즈음이었나.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이태원의 한 라운지 바에서 흘러나오던 이 곡은 지금까지도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유일한 여성 보컬이기도 하다. 울긋불긋한 단풍 풍경을 보며 꼭 들어보길.
8 Yves Montand - Les Feuilles Mortes
Editor 차종현
가을바람인지 태풍의 잔상인지 헷갈리는 현재 시간 오전 1시 7분. 가을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뭐가 있었지? 찰나의 고민도 잠시.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샹송 가수 이브 몽탕의 ‘Les Feuilles Mortes’가 떠올랐다. 우리말 제목은 ‘고엽’으로, 직해하면 사랑에 관한 한 남자의 회고록 정도.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중년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무언가에 홀리듯 흘러나오는 전주는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후렴으로 갈수록 서서히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도, 입가에서 맴도는 묘한 그리움도 고독한 새벽 감성에 이만한 노래가 또 있을까.
9 Vampire Weekend – Step
Editor 유선호
뱀파이어 위켄드의 보컬, 에즈라 코에닉의 무겁지 않은 호흡과 음역대는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가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느다란 목소리로 호흡을 뱉는 순간 따라오는 멜로디를 듣자면, 오늘 낮에 유독 쨍했다가 또 붉은색으로 물드는 하늘과 함께 편안해지는 마음이다. 가을 공기는 아침뿐이랴. 조금은 쌀쌀해진 저녁 내음에 몸을 맡기고, 굳이 이젠 덥고 습하지 않은 온도를 즐기겠다며 야외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 노래를 트는 순간 이미 내 몸은 뱀파이어 위켄드의 ‘Step’에 맞춰지고 있다.
10 Chet Baker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Editor 이아름
퇴근길 바람이 서늘해지면 자연스럽게 플레이리스트도 바뀌게 된다. 재즈에 손이 가는 걸 발견할 때면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곤 한다. 가을이 되면 영화 <본 투 비 블루>를 꺼내 보며 OST를 다시금 듣는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들으면, 쳇 베이커를 연기한 에단 호크의 처절한 눈빛과 영화 전반에 깔린 파란 색감이 떠오른다. ‘My Funny Valentine’ ‘Blue Room’ 등을 연이어 들으면 살짝 스치는 쓸쓸함에 가을이 왔음을 직감한다.
11 Ylang Ylang - FKJ & (((0)))
Guest Editor 하예지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아티스트가 FKJ다. 사계절 내내 앨범만 바꿔가며 듣는데, 특히 가을엔 이 노래를 유독 많이 틀어놓는다. 전주부터 느껴지는 멜랑콜리함과 무력감, 그리고 공허함. 그 사이에 왠지 모를 평화로움이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직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FKJ live at Salar de Uyuni in Bolivia for Cercle> 영상을 먼저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풍경, 서늘한 가을 날씨. 아마 금세 음악에 취해버린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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