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개의 아가베와 나 | 박태현
당신은 누구인가?
순댓국집을 운영 중인 박태현이다. 아가베를 너무 좋아해서 이 식물을 통해 뭔가 재밌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
늘 식물에 관심이 있었나?
친형이 식물 수집 취미가 있었다. 아가베와 괴근식물, 파키푸스, 그락실리우스를 들여왔는데, 보면서 궁금증이 생기더라. 처음엔 ‘이게 도대체 뭐냐’ ‘왜 이런 걸 사 오냐’고 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 또한 아가베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지금까지 왔다.
아가베의 어떤 점에 끌렸나?
식물 자체가 힘이 좋았다. 마음을 움직인달까? ‘바로 이거다’라고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똑같은 종류의 아가베라도 유통명이 나뉜다. 각각 크기, 가시 등 특성이 다르다. 같은 아가베라도 개체마다 다른 매력이 있는 거다. 이 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
얼마나 모았나?
모으기까지 한 2년 정도 걸렸다. 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약 1천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거실에도, 방에도, 옥상에도 아가베가 있다. 공간의 제약도 크다. 다행히 부모님이 운영하는 건물이고, 부모님과 형 그리고 아내가 이해를 해줘서 많이 모을 수 있게 됐다.
아가베 화분이 따로 있나?
아가베 화분이라고 불리는 건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같다. 한국 소비자는 대부분 토분을 선호한다. 아가베로 인해 세라믹 화분 시장도 발전해 아가베 형태에 맞는 화분을 누군가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나도 아가베 전문 화분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철을 소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운영 중인 브랜드를 소개해달라.
‘아가베 오브 서울’이다. 서울에서도 아가베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아가베 애호가에게 영향을 받았다. 협업 제안도 받았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 중이다. 이번 달에도, 다음 달에도 있다. 점점 더 많아질 거라고 본다.
해외에서 아가베 관련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 있나?
일본에 SRL이라는 큰 브랜드가 있다. 스트리트 브랜드 네이버후드가 관련 식물 브랜드를 따로 론칭했다. 괴근식물, 아가베 관련 용품을 출시하는데, 온라인 숍에서 10초 만에 품절될 만큼 인기다. SRL은 한국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나 또한 이론의 선례를 보며 트렌드에 맞게 한국에서 재밌는 일을 벌이고자 준비 중이다. 각 사람에게 맞는 아가베를 소개해주는 ‘아가베 컨설팅’ 같은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하루 종일 아가베를 보며 ‘식멍(식물 보며 멍 때리기)’한다. 만날 똑같은 식물을 보는 것 같지만, 볼 때마다 색다르다. 그 느낌을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중에는 아가베 전시관을 열고 싶다. 물론 판매도 하겠지만 갤러리 같은 느낌을 담아서.
작품에 괴근식물을 담아 | 박진우
당신은 누구인가?
‘마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진우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사진작가 겸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괴근식물과 아가베가 삶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나?
일본 브랜드 옷을 사러 갔는데 그곳에 까만 화분에 담긴 식물이 있길래 구입했다.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이런 식물을 감도 높은 젊은이들이 많이 키운다 했다. 올해 초 용산에 있는 괴근식물 숍에 갔다가 사장님의 ‘이 식물은 조금은 무관심하게 키워야 해요’라는 말을 듣고 괴근식물에 빠지게 됐다. 그동안 사진이나 그림 작업을 통해 전하던 메시지가 사람들의 무관심과 관심, 이중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괴근식물과 잘 맞더라. 어느 정도의 결핍이 오히려 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셈인데, 매력 있지 않나?
그 다음은 무엇을 했나?
처음 몇 달 동안은 거의 매일 관련 농장과 숍을 다녔고, 괴근식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괴근식물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컬렉터를 통해 행사를 열어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시장 규모가 작은 편이라, 이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집에 괴근식물을 두어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좋아진다. 이 문화에 빠진 사람들은 ‘식멍’이라는 단어를 쓴다. 일과 후 집에서 식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나 또한 퇴근 후, 아내가 잠들면 거실로 나와 괴근식물 앞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즐긴다. 선풍기 바람에 작은 잎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소수의 문화인데, 한국에서 더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나?
작년 말, 처음 접한 괴근식물 카카오톡 단체방에 20~30명 있었다. 지금은 1백20명이 됐다. 거기서 또 파생된 단톡방도 있다. 확실히 사람이 늘어나는 게 보인다. 연령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투자의 관점으로 보면 안 되는 식물이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빠르면 3년 안에 일본처럼 괴근식물 숍이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괴근식물과 아가베 관련해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직접 그린 식물 그림과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 되게 뿌듯하다. ‘내가 괴근식물 문화에 도움이 되고 있구나’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괴근식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작가도 많고, 다양한 굿즈를 만들고 매년 새로운 전시회도 열린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괴근식물을 그리고 촬영하는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명감을 더욱 느낀다. 한국에도 이런 문화를 끌어갈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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