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주시네요.
옛날에 소속사 없이 혼자 배우 일을 할 때 프로필 명함을 돌리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게 떠올라 인터뷰를 하면 기자들께 명함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세상을 뒤집었어요. 시청률이 20%에 육박하고,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상위권이죠. 인기를 체감하나요?
저에 대해 궁금해하시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최근 어느 행사에 참여했는데, 포토월에 선 저에게 함성을 보내는데, 놀랍더라고요. 그 순간 그라운드에 선 축구선수가 된 기분이었어요.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받으면 주변이 바뀐다고 하잖아요. 주변 반응은 어때요?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태권도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신대요. 우리 아들 연예인 다 됐다고 하시면서요.(웃음)
집에서는 어떤 아들인가요?
어렸을 때 태권도를 하다가 진로를 정할 시기가 됐을 때, 아버지께서 운동선수의 길은 쉽지 않으니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길로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주셨어요. 부모님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태권도장을 운영하셔서, 자연스럽게 네 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죠. 태권도를 계속 열심히 하면서 인천시 대회에도 나가곤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조용했고 부끄럼이 많았고.
소극적인 사람이 배우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남들 앞에 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어머니도 지금까지 ‘네가 어떻게 연기를 ’ 하세요.(웃음) 아, 그래도 초등학교 때 반장을 몇 번 했어요. 나서는 성향이 아니어서 발표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네요. 그런데 연기는 다르더라고요.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했는데, 1학년만 다니고 군대를 갔어요. 군대에서 내 전공을 살려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크루즈를 타고 세계 여행하면서 바텐더를 하고 싶은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았죠. 전역하자마자 바텐더 일을 배웠는데, 단골손님 중 PD가 있었어요. 방송국 홍보 영상에 출연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얼떨결에 참여하게 됐는데, 2주 동안 차, 요트를 타고 다니며 촬영하고, 눈뜨면 사극 세트장에 가고. 신기한 일이 가득했어요.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었죠. 그렇게 연기에 도전하게 됐어요.
커리어의 시작을 독립영화와 함께했어요.
연기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립영화를 찍었고 같이 일하던 형이 도움을 줘서 계속 꿈을 좇았어요.
나중엔 7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현재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 없었어요. 스물아홉 살 때 친구가 큰 소속사 오디션이 있다고 해서 지원해보고 싶었죠. 관계자들이 제 연기를 어떻게 볼지 평가받고 싶었거든요. 합격해야겠다는 야심은 없었어요. 당시 저는 곧 서른이었고, 더 어린 지원자를 뽑을 것 같았거든요. 마음 편하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 마음가짐을 좋게 봐주셨나 봐요.
올해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영우>를 만났어요. 대본 받고 읽을 때는 어떤 작품 같았나요?
2019년에 오디션을 봤는데, 권민우 역과 에피소드별 등장인물 몇 명을 연기했어요. 권민우는 자기 관리 철저하고 단정하게 하고 다닐 것 같았죠. 그래서 머리는 2대8 가르마로 깔끔하게, 옷도 정장 차림으로 입고 오디션을 봤어요. 감독님과 작가님이 저더러 ‘권민우 그 자체다’라고 말씀하시며 같이하자고 연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대본을 보는데 매 화가 새롭게 느껴질 만큼 재밌더라고요. 권민우라는 인물도 선하고 좋은 기운의 인물들 사이에서 현실적인 캐릭터로 다가왔죠.
권민우의 별명이 ‘권모술수’예요. 경쟁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밉상일 때가 많지만 매력이 넘쳐 좋아하는 시청자도 많아요.
권민우는 못되게 굴지만, 하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거든요. 블라인드 게시판 쓸 때도 못된 짓인데 제 목소리로 내레이션해서 누가 봐도 권민우가 한 행동이잖아요. 연기를 준비할 때는 자유도가 높았어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째려보고 싶을 때 웃고 째려보게 감독님께서도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열어두신 것 같아요. 역할의 흐름을 벗어나면 감독님께서 명확하게 디렉션을 주셔서 호흡도 좋았어요.
유독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어요?
우영우(박은빈)가 권민우에게 편지를 주는 장면. 제가 감정에 휘둘려 “사건을 엎자는 게 말이 됩니까?”라는 대사를 하는데, 유독 기억에 남아요. 연기할 때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좋은 변호사란 뭘까, 법을 넘어 감정에 휘둘려 사람을 선택하는 변호사는 어떤 변호사일까, 이런 고민이죠. 아직 결말 방영 전이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러브라인과 개과천선이라는 키워드도 있어요.
권민우의 못된 짓, 이상한 짓은 어디까지 가나요?
입체적인 매력이 보일 수 있도록 변주가 있을 거예요. 12화까지는 이상한 짓의 끝장을 볼 거고.(웃음)
권모술수가 개과천선을 한다니.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마음을 고쳐먹게 돼요. 더욱 인간미 있는 캐릭터가 된달까?
권민우를 칭하는 별명 권모술수가 밈(Meme)이 될 만큼 인기예요. 어떻게 다가와요?
감독, 작가님이 첫 만남에서 “권민우는 권모술수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대본을 읽고 그 말을 들으니, 그를 표현하기에 명확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할 만큼 맘에 들었죠. 대본에 있는 말이기도 했고요. 이게 유행어가 될 만큼 인기를 끌 줄은 꿈에도 몰랐죠. 별명이 또 다른 별명을 낳기도 하고요. 감사한 일이죠.
커리어 초반에 출세작을 만난 셈이에요. 이런 관심과 인기가 적당한 시기에 온 것 같나요?
빨리 온 것 같긴 한데, 기적 같은 일이죠. 복 받은 사람이랄까. 그래서 앞으로 더 겸손하게 행동하고, 더 나은 배우가 되어야겠다 다짐해요.
배우를 꿈꾸면 누구나 이런 인기를 상상해볼 법한데.
상상도 안 해봤어요.(웃음) 남 일 같았거든요. 지금처럼 큰 소속사와 일하게 될 줄도 몰랐고요. 새롭고 좋은 일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어떻게 나아갈 거예요?
다시 오디션을 열심히 봐야죠. 촬영은 마쳤고, 개봉일은 미정인 영화 <만분의 일초>도 있어요. 검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누아르 작품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신선하거나 재밌게 느껴지는 역할이면 뭐든 하고 싶어요. 다작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최선을 다해야죠. 누아르를 하고 싶은 건 제게 부족한 남자다운 면을 연기해보고 싶어서예요. 예를 들면 톰 하디가 찍었을 법한 근사한 캐릭터랄까? 반대로 유쾌한 코미디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연기가 참 재밌어요.
연기의 어떤 면이 그렇게 재밌나요?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잖아요. 저는 독립영화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그때의 신기함을 잊을 수 없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창의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순간이 너무 흥미롭고 재밌어요. 그 짜릿함을 앞으로도 오래, 자주 느끼고 싶을 만큼요. 행복하게, 즐기면서.
목표가 있나요?
차기작을 통해 권모술수에 달하는 별명을 얻는 것.
장기적인 목표는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할리우드 영화인의 거리에 제 손도장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세계적인 배우들만 남길 수 있으니까, 목표는 크게 잡으면 좋잖아요.(웃음) 사실 지금 인터뷰하는 것도 신기해요. 큰 관심을 받고 있구나, 새삼 느껴요. 그래서 이 일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고, 잊지 못할 나날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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