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도, 인터뷰도 오랜만이죠?
2년 만인 것 같아요. 패션에 관심도 많고, 화보도 재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질없게 느껴졌어요.
하루 아침에 질린 기분.
왜요?
패션 브랜드마다 기반한 문화가 있잖아요. 그 문화를 잘 모르는데 그 옷들을 즐기는 게 나다운 일일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스트리트 컬처를 오랫동안 좋아했으니, 무지 티셔츠에 디키즈 면바지를 자주 입었어요. 다행히 요즘은 다시 흥미를 찾았고요.
원재 씨를 종종 본 적 있는데, 모두 언더그라운드에 속하는 곳이었어요. 패션 행사 같은 곳이 아니라.
좋아하던 문화를 여전히 즐기는 거죠. 저는 대학생 때도 스트리트 편집숍에 일주일에 대여섯 번씩 가곤 했거든요. 서브컬처에 속한 멋진 사람들을 동경했고요.
그런 마음이 <쇼 미 더 머니6> 직후, 첫 활동으로 DJ 겸 프로듀서 말립(Maalib)과 합작한 앨범 <Stretch>(2017)로 이어진 셈이겠어요. 5백 장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했었죠. 엄청난 관심을 받던 때라 돈이든 뭐든 욕심을 더 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죠. 대중적인 것과 서브컬처적인 것, 다 아우르고 싶었달까. 일종의 반항심이 있었죠. 사실 <Stretch>는 좋아하는 것을 여러모로 담았기 때문에 안 할 이유가 없었고요.
예측을 벗어나는 시도를 즐기는 편인가요?
뻔하지 않은 걸 좋아해요. 다음이 궁금한 아티스트를 좋아하고요. 사실 즉흥적인 편이라, 상황에 맞게 자연스러운 선택을 한 것 같아요.
그런 즉흥적인 선택이 앨범 <BLACK OUT>(2020)에 타이거 JK 같은 알 만한 이름과 김아일, 시모 같은 실력 있는 서브컬처 뮤지션의 이름을 나란히 올린 거겠죠?
제 눈에는 다 똑같이 멋진 아티스트거든요.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른 뮤지션이에요. 음악을 떠나서도 편견과 선입견을 비롯한 사회가 정해놓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다른 의미로 예측을 벗어난 시도라면, 유튜브를 비롯한 예능에 종종 출연한 것도 있죠.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했어요.
지금까지의 선택 중 후회하는 건 없어요. 예능이나 방송을 통해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해요. 예를 들면 마틴 마르지엘라는 유명하지만, 그의 얼굴이 나온 사진이 거의 없어서 상상 속 인물 같잖아요. 그의 업적은 존경하지만, 저는 신기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예를 들면 마르지엘라의 인간적인 모습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5년, 달라진 게 있나요?
일단 시야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취향이 비슷한 주변 사람들은 당연하게 아는 음악이 있는데 그걸 모두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저를 비롯한 마니아만 아는 곡이더라고요. 모두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며 저도 변한 것 같아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마음.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더 편협했던 것 같아요. 내가 추구하는 게 제일 멋지고,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다면 지금은 제 생각과 달라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요. 내가 감히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죠.
음악적으로도 변한 게 있나요?
곧 미노이와 함께한 듀엣 싱글 <잠수이별>이 나와요. 제 파트 가사에 사랑 얘기 같은 걸 썼는데, 예전 같으면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 인생을 통틀어 연애를 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생각을 가사로 적었어요.
래퍼들도 최근 몇 년간 큰 변화가 있지 않았나 해요. 힙합다운 태도를 목숨처럼 지키는 게 당연했다면, 요즘은 래퍼들에게서 유머가 보이기도 하고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이 많은 편인데, 사실 미국 힙합 신도 만만치 않게 많이 변했거든요. 몇 년 전이었으면, 큰일 날 행동을 한다거나, 흥행하지 않을 법한 노래가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히트메이커가 ‘잘하는 뮤지션’이 된 느낌도 있어요. 요즘은 표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으니, 힙합의 소재나 트렌드도 바뀌지 않았나 생각해요.
우원재가 지키고자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없을 무(無), 의지할 의(依), 무의라는 불교 용어를 어머니가 알려주셨어요. 의도하지 않고 행동하거나 말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걸 무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가사를 쓸 때 눈치를 많이 보더라고요. 과연 이 문장은 후회하지 않을 말일까 등등 고민이 커져서 단어를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요즘은 제약을 느끼지 않고, 제 생각을 의심하지 않은 가사를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최근에 쓴 가사 혹은 문장 중 유독 마음에 남은 게 있나요?
“무슨 주의자의 모습을 띠는 건 딱 질색이라 항상 내 발을 시소의 정중앙에 올려놓지만, 사람의 척추가 다 어느 정도 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2년 전에 쓴 건데, 다시 보니 더 마음에 들더라고요. 편협해지기 싫은 사람이라 균형을 맞추고 싶은데, 결국 사람이라 한쪽으로 조금은 기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저는 곡에서 무드가 제일 중요해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음악을 들려줘도 이 곡이 이런 느낌이란 말을 듣고 싶어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2년 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이후 발매된 곡들이 개성은 달라도, 전하려는 무드만큼은 각기 명징했죠.
음악의 매력 중 하나가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게 아닐까 해요. 그게 제가 음악을 만들 때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예요. 우원재라는 뮤지션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그 무드만큼은 전달되면 좋겠어요. 저는 가사를 쓰고, 랩을 뱉는 사람이지만, 프로듀싱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가사라면 어떨까요? 곡을 만들 때, 단어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죠. 무드도 일정하고, 랩 디자인으로 청각적 쾌락도 주고 싶고, 가사로 마음의 울림도 주고 싶고요. 그래서 앨범 작업이 더뎌요. 모든 면에서 만족하는 트랙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저는 매일 작업해요. 주변에서 쉬엄쉬엄 하라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요. 그럴 때 저는 음악을 만드는 게 가장 재밌는 걸 어떡하냐고 답해요.
우원재 랩의 장점이라면 레퍼런스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있어요.
힙합과 테크노를 연달아 듣기도 하고, 발라드와 앰비언스(Ambience)를 종일 듣기도 해요. 그런 취향이 음악에 담겨 레퍼런스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요. 곡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제 기분과 상태예요. ‘이 곡이 어떻게 완성돼도 상관없다’라는 자신감이 있을 때, 새롭게 느껴질 만한 노래가 나오는 것 같고요. 겁먹고, 눈치 보면 레퍼런스를 찾게 돼요.
요즘은 어떤 상태인가요?
행복해요. 사실 지난 2년간 음악을 그만둘까 생각할 만큼 힘들었거든요. 모든 것에 싫증이 난 상태. 나다운 게 뭔지 수없이 고민했는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나다운 거라는 생각을 했을 만큼요. 그런데 이런 마음이 한 달 전 만든 어떤 곡을 계기로 바뀌었어요. 아직 발표 전이라 다 얘기할 수 없지만, 그 곡에 진솔한 제 얘기를 다 담았거든요. 덕분에 음악이 몇 배는 더 재밌어졌어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결정되는.
인생에서 음악의 비중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번아웃 상태로 미국 공연 투어를 다녀왔는데, 저를 보러 온 관객을 보며 혼란스럽더라고요. 감사한 만큼 제가 모자른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 혐오를 느낀 거죠. 그러다 공연을 할 수록 자신감을 찾게 됐어요.
지금은 다음 앨범을 위한 에너지가 어느 정도 차 있나요?
100%. 작업해둔 노래도 많고, 빨리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요.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언제나 그랬듯, 예측을 벗어난 시도와 함께 돌아오겠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멋지게 할 거고, 지켜봐주면 좋겠어요.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제 생각을 들여다보고, 다음 단계로 가려고 발악하지 않는 게 다음 단계겠구나, 생각해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