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샘의 작품에는 금과 돌, 보석, 유리 등 주술적 상징물과 용, 괴수, 천사, 검과 유니콘 같은 비현실적인 도상들이 혼재되어 있다.
작가님 작품들은 색채가 밝고 뚜렷해요. 게임 캐릭터나 무기 같기도 하고요.
학창 시절 게임기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도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충북 제천에서 놀이랄 건 야외에서 뛰어다니거나 아버지가 하시는 게임을 함께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당시 유행은 대부분 JRPG 게임이었어요. 일본 문화가 개방돼 비디오 가게나 만화대여점이 늘어났어요. 어머니도 비디오·만화 대여점을 운영하셨고요. 만화나 게임으로 혼재된 어린 시절이 현재 제 미술 작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투니버스나 챔프에서 방영되던 만화 등 서브컬처가 제겐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고요. 과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서브컬처를 모방하는 행위로 이어졌죠. 만화를 따라 그린다든지, 게임에 등장하는 픽셀 이미지를 그림판으로 따라 그렸어요.
회화를 전공했어요. 회화와 디지털 그림판은 그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데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는 회화의 특성이 낯설게 다가왔었어요. 제게 그림은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그리는 것,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것이었거든요. 유화라는 낯선 재료로 작업하는 행위가 저는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졸업 후 익숙한 기법을 활용해보기로 했어요. 초반에는 비디오 게임을 만들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 종이에 출력해보기도 했죠. 출력한 디지털 이미지는 얇더라고요. 그 점을 보강하고 싶어 일부러 과도한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품이 대부분 회화가 액자에 담긴 형태예요.
그렇죠. 유럽 여행했을 때 풍경을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건축적인 요소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프레임을 계속 만들다 보니 조형의 재미를 느껴 이제는 오브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예요.
오브제나 조형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 기존 선보였던 디지털 이미지나 영상이 작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졌겠군요.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디지털 이미지가 존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모니터나 TV인데, 굳이 그 이미지를 끄집어내서 뭔가를 하는 건 불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손으로 만드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죠.
작가님 작품은 전설이나 신화적인 그림이에요. 어떤 서사가 담겨 있죠?
유럽 여행 경험과 이어져요. 서양의 종교적 도상이나 이미지가 새롭기도 했지만, 익숙하게 느껴졌죠. 익숙했던 이유는 제가 즐겼던 서브컬처와 많이 유사하기 때문이에요. 만화 그림이나 JRPG 게임 같은 서브컬처의 세계관이 신화나 전설, 종교적인 도상을 모티브로 하거든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요. 판타지 세계관이 시각적인 실험을 위한 합당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요. 어차피 상상의 세계이고, 시각적인 효과를 화려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실험의 장이죠. 영화 속 최신 그래픽 기술이 일상적인 장면에서 구현되는 일은 드물죠. 미래적이거나 판타지한 세계관이 갖춰져야 시각적인 효과나 최신 기술을 더욱 제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괴물이 아닌, 인간은 모두 발가벗은 모습이죠. 욕망 가득한 아담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굉장한 의도가 담겨 있진 않아요. 다만 나체인 건,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어요. 어떠한 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 심미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시대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죠. 옷은 시대를 특정하는 역할을 해요. 옷이 없으면 시대를 특정할 수 없고,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의 도상으로 여겨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조형 작품 소재로 레진, 에폭시, 금, 돌 같은 물질을 사용했어요.
인류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오브제의 소재는 대체로 금이죠. 프레임 안 이미지가 소중해 보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금을 사용했고요. 돌은 제가 창작 행위에 지쳐 있던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지속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지쳤었거든요. 돌은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요. 종류에 따라 모양과 색도 다양하고 질감도 독특하죠. 작가가 창작하지 않아도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를 지녔죠. 돌에 작가의 터치가 묻었을 때 훌륭한 호응을 이루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확실히 오라가 있죠.
최근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무엇일까요?
영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일상이 루틴화되면 한결 편하더라고요. 작업을 일종의 수행 도구라고 생각해서 작업 시간을 루틴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 다른 이슈는 지구 멸망이에요. 실제로 지구가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저만이 아니라 모두가 계속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작가님 작품을 보면 타로카드의 그림 같기도 하고, 점괘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제가 봤을 땐 신화적 서사가 전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연금술이나 점성술, 신성 마법 같은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고, 작품에 담겼죠. 타로카드에도 연금술의 상징이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감상을 떠올린 게 아닐까요? 오컬트나 신비적인 서사, 헤르메스주의라고도 하죠.
섬뜩한 소재를 다루지만, 색감이나 질감을 유쾌하게 표현했어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취향이고, 개인적인 미감이 유쾌해요. 그리고 해부학적 지식이 부족해 조형물을 르네상스 조각처럼 만들 수 없거든요. 차라리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드는 게 옳다고 판단했어요. 요즘 등장하는 이미지가 되게 사실적이진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나 동물을 표현할 때 많이 변형하거나, 픽셀화하죠. 해상도를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저화질로 표현하거나 레트로 감성을 가미하는 기법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머지않아 저명한 아트페어가 한국에서 개최돼요.
아직 제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이슈는 아니에요. 개최하는 날에나 느끼겠죠. 하지만 대규모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확실히 조명해야 할 부분이 맞아요. 저는 아트를 소비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열리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예술을 경험할 수 있죠. 누군가에게는 부재했던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요. 저는 이 점에 크게 주목하고 싶어요. 그리고 미술시장이 활발하다고 하지만, 마냥 또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요. 경제침체가 심각해질 전망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아트 신이 활발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요. 복합적인 감정이 드네요.
국제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은 한국 작가와 한국 갤러리가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죠. 새로운 일이니 전에 없던 변화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해외 갤러리도 많이 오니까요. 세계는 평평해지고 사람들의 소비 패턴도 비슷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단순히 해외에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라면, 과연 옳을까 싶어요. 작가나 작품에 집중하는 건 당연하지만, 로컬 작가, 그러니까 지역의 작가들과 지역이 지금 다루고 있는 미술에 관심을 두고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글로벌 아트 신에서 한국 작가와 작품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요?
영향력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아직은 미국이 문화를 주도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미국에 비하면 뚜렷한 영향력을 보이진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영향력에 대해 논하기 어려운 게, 미술은 분야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다르잖아요. 미술엔 아주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고요. 어떤 작가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자주 거래된다 하더라도 그게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보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영향력이라는 명제에도 세세한 영역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더 멋있는 걸 만들고 싶죠. 창작자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요. 작업이 패턴화된다거나 생계를 위해 작업을 해야 하는 때가 있죠. 그런 순간에 침몰되다 보면 재미있고 실험적인 시도를 놓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침몰되지 않도록 마음을 유지해야죠. 그리고 먼 미래에 어떻게든 성을 만들고 싶어요. 작게라도. 저희 외할아버지가 집을 짓다 돌아가셨어요. 집 짓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우신 게 아니고 마음대로 집을 지으셨는데 되게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정형화된 집을 짓지 않고 황토를 다듬고 요상한 장식품을 설치하셨거든요. 그걸 보면서 저도 나중에 작은 성 같은 걸 지어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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