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를 상상한 다섯 명의 SF 소설가
K-콘텐츠의 상상력은 텍스트에서 출발한다. 지금 한국 사회를 SF 관점으로 해석한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등 다른 분야로 재창작되고 있다. 시네마틱 노블 시리즈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서는 다섯 작가들이 한국 사회를 통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본 대담에서는 오누이, 정현욱, 김지원, 황모과, 배명은 작가와 10년 뒤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며, SF적인 솔루션을 모색했다.
Agenda 01
미래, 긍정 혹은 부정?
미래를 상상해보죠. 10년 뒤 2035년 정도 어떨까요?
김지원 10년 동안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기술이 뭘까? 생각해보면 자동 번역이나 VR, AI에서 변화가 크지 않을까요. 스마트폰 처음 나왔을 때 서로 가까워진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관련 범죄도 발생했잖아요. 기술로 인한 윤택함도 있겠지만 새로운 범죄도 우려됩니다.
오누이 갑자기 떠올랐는데 10년 안에 큰 전쟁이 나지 않을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단이 될 수도 있죠. 성숙한 어른은 전쟁을 안 할 거라 생각했는데 쉽게 일어나더라고요. 지성은 발전하는 것 같지만 퇴화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어이없게 일어난 전쟁을 어이없게도 못 막는 상황을 보며 무력감을 느껴요. 그러니 전쟁이 한 번 더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을 꼽자면 10년 안에는 사람이 죽음을 극복할 것 같아요. 바이오산업에서 노화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고 들었어요. 노화를 자연 현상이 아니라 질병으로 정의하고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개발되지 않았을까요? 10년 후에 모든 사람이 죽지 않는 건 아니지만 노화 치료 기술은 개발됐을 것 같아요. 노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람들의 등장이 긍정적인지는 모르겠네요.
김지원 오누이 작가님 소설 <D-1>은 타임루프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결국 전쟁까지 나아가거든요. 설득력이 있어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소설적인 가정하에서, 세계인이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면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황모과 이전 같으면 정보 접근의 평등성과 수평적 네트워킹, 접근이 용이한 고도 기술 등을 긍정적으로 보았을 텐데 이젠 그것도 어려워진 듯해요. 슬프지만 좋은 점이 없는 것 같아요. ‘인류애가 제로’인 상황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배명은 기술 발전으로 보다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든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술 발전은 빨리 이뤄지고 있습니다. AI와 로봇이 삶을 지원해주면서 사람들은 여유롭게 살겠죠.
유전자 가위로 노화 세포를 조작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김지원 2035년에 노화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류가 가장 염원하는 기술이니까.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연구에 속도가 붙는 순간 노화 솔루션 시장이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소재를 다룬 SF는 진짜 많아요.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도 많으리라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 분위기를 예측해볼까요?
정현욱 방향은 암울하게 보고 있어요. 10년 뒤에도 사회와 문화는 지금의 연장선일 거예요. 지금은 세대, 젠더, 계급 갈등에 소수자 혐오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설마했는데, 진짜 전쟁이 일어났고.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이기에, 10년 뒤엔 현재 문제가 심화돼서 갈등이 더 극렬하게 발산되지 않을까요.
황모과 긍정적인 면을 하나도 떠올릴 수 없는 점이 가장 부정적이네요. 한때는 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도 있었는데 왜 사라졌을까. 이것도 재밌는 주제인 것 같아요.
오누이 그중에서도 세대 갈등이 제일 크지 않을까요?
정현욱 갈등을 심화시키고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기술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미래에는 기술이 갈등의 촉매가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누이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김지원 유튜브 알고리즘만 해도 극단적인 주장을 다룬 동영상이 인기를 얻어요. 그 점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 같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BBC 드라마 <이어즈&이어즈>가 생각나네요. 10년 후 미래가 배경인데, SF 버전의 <왕가네 식구들> 같은 드라마예요.
정현욱 해결책이 없어서 혁명이 일어나며 드라마는 끝나요. 혁명보다는 폭동에 가깝죠.
김지원 현실적인 디스토피아였어요.
정현욱 이 문제의 핵심은 인터넷이 발달하며 생기는 커뮤니티 문화라고 생각해요. 심각해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학생들이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활동하면 자기 생각을 키우기보다는 커뮤니티의 방향성을 체화해요. 커뮤니티는 여러 사람이 모이지만 여러 의견이 공존하지 않는다는 속성이 있어요. 토론을 하다 보면 한두 명씩 떠나고 결국에는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만 남죠. 커뮤니티는 단일 의견만 갖게 돼요. 지금 어린 친구들이 커뮤니티 주장을 체화한 상태로 고민 없이 생각하니까. 양극화되는 거죠.
황모과 기껏 모두가 정보나 기술 접근이 쉬워졌는데, 쾌락이나 혐오 생산 등 가장 타락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 같네요. 특히 SNS를 멀리해야 정신 건강에 좋은 듯합니다.
배명은 동감합니다. 전 트위터 중독인데, 하다 보면 우울증 와요.
황모과 SF 작가들이 그렇게 표현하던데, ‘남의 가장 원초적인 추악함에 전뇌 접속하듯 접속하는 SF적 설정이 지금의 SNS’라고. 부정적인 면이 계속 얘기되는데 불균형 문제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낙수효과라는 말이 코웃음 터지는 낡은 밈이 됐다는 거예요. 소수 상위 그룹이 전 지구적 자원을 거의 전부 가졌고, 시스템 면에서나 집단 지성 혹은 그 어떤 기술적 장치로도 제어되지 않는 상태가 가장 암울하다는 거죠.
배명은 부정적인 건 일자리가 없어지며 노인들이 기계에 적응 못하고 도태될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동네 사진관이 문을 닫은 것처럼요. 편리한 기술이 어떻게 쓰일지 몰라 무섭고, 악용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건 통제 불가능하죠. 노인뿐만 아니라 기계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 즉 제 걱정이 큽니다.
정보 접근성이 낮아져서 우리가 많은 정보를 수용할 기회를 얻었지만,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편향된 정보만 얻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죠?
정현욱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라 전체 문화가 편향돼가는 것 같아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인기 있는 아이돌이 많잖아요. 애초에 기획사가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콘서트에 오고 앨범을 살 수 있는 팬덤 3만~4만 명만 확보할 목적을 갖고 있어, 모든 활동의 방향성을 팬덤에 맞춰 극도로 편향되는 거죠. 같은 성향 사람들이 모이니까 생각이 넓어지지 않죠.
오누이 옛날에는 온 가족이 TV라는 하나의 매체를 보고, 같은 유행가를 불렀다면, 지금은 유튜브만 보더라도 자기 취향대로 큐레이션되잖아요. 그게 꼭 나쁜 건가? 생각하면 내 취향과 생각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긴 거예요. 저는 지방에서 살면서 답답증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위 문제들은 우리가 거쳐야 할 성장통이 아닐까. 어쨌든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Agenda 02
기후변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는 기후변화일 겁니다. 기후변화는 느린 속도로 우리의 생활을 바꿔왔습니다. 10년 뒤 우리 생활은 물론이고 산업과 일도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질 겁니다. 무엇이 변하리라 생각하나요?
김지원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탄소 배출을 줄여야죠. 친환경적인 소비, 윤리적인 소비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죠. SF적으로 생각하면 그래 봤자 인간은 망할 것 같아요. 제 소설에선 미래 법정을 다뤄요. 부부가 재산 분할로 싸우는데, 재산이 해저 부동산과 가상 부동산이에요. 인류가 망해서 대체재를 찾으리라 생각해요. 좀 더 먼 미래를 상상하면, 더위나 추위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듣는 구전 동화, 추억의 대상이 되는 거죠. 더위나 추위를 인공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신경계를 교란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해저 기지에 살면서요.
정현욱 10년 후면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많아질 거라고 얘기하는데, 인간은 적응하며 산다고 봐요. 하지만 부동산은 재밌어질 것 같아요. 대도시는 해안가나 강가에 위치하잖아요. 해수면이 상승해 물에 잠기면, 입지 좋은 지역도 바뀌겠죠. 해저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다 자체가 부동산이 될 수도 있겠죠. 해운대 앞바다 자신의 땅에 부표를 띄워 표시하거나, 바다 위에 수상가옥을 띄워 생활하거나, 부동산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을까요.
황모과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인데 연일 37℃에 육박하는 폭염을 경험하고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주요 통신사는 이틀간 먹통이었어요. 에어컨이 없거나 작동하지 않아 탈수증으로 죽을 수 있고, 통신 마비로 심지어 119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저는 더위에 강한 편인데 에어컨 빵빵한 곳에만 머물면서 대책 없이 과신하다간 곧장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2019년에는 호주 여행 중에 호주 전체 숲의 14%를 태워버린 최악의 산불을 마주했어요. 뉴스와 지도를 확인하고는 당시 머물던 지역과 먼 곳이라 안심했는데, 연기가 자욱했죠. 우연히 어디에 머물렀느냐에 따라 내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서울 및 수도권에서 온난화, 산불, 지진 등을 체감하긴 힘든데, 저처럼 경험 폭이 적다고 대책 없이 과신하면 안 돼요. 생존을 위해서라도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발동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SF 소설 많이 읽어주세요!
배명은 저희 부모님이 소소하게 농사일을 하시는데, 올해 가뭄으로 차질이 생겼어요. 수확량이 줄고 열매 크기가 작습니다. 장마가 왔으나 비가 안 온 곳도 있어요. 가뭄이 식량문제로 이어질 겁니다.
오누이 일본 같은 섬나라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잘 적응하리라 생각해요. 기후변화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나라 날씨의 변화만큼 빠르지 않을 거고, 우리가 극단적인 사계절에 적응하며 사는 민족이기도 하고요.
정현욱 해명을 좀 하면,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화산 옆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요. 화산재 닦는 게 일상이죠. 주인공은 왜 그들이 화산 옆에 사는지 이해 못해요. 화산 옆에 살아도 문제없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산다는 거예요.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요? 지구의 변화 앞에 언제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나요?
오누이 기후위기는 다가오고 있어요. 개개인이 막을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작아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클수록 할 수 있는 건 없고, 이렇게 무력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되나 싶어요.
김지원 이 문제를 극대화하고 과장되게 그린 얘기가 있어요. 지상이 망하고 해저 기지에서 사는 사람들 간에 난리가 벌어지는 거예요. SF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보여주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하리라 기대해요.
오누이 환경문제는 우리 세대 이전 산업화 시대부터 발생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되나요? 어떻게 보면 기후위기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예요. 기후가 나빠지면 인간이 살기 힘들지 해양 생물은 살판나는 거 아닙니까?
김지원 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도 기후위기에서 초래됐다는 얘기가 있어요. 제가 지금 크리처물을 쓰고 있는데, 기후위기로 심해에서 바이러스가 올라오면서 해양 좀비가 만들어지는 내용이에요. 기후위기는 모든 종의 위기라는 얘기가 많아요. 근데 말씀하셨듯이 개인이 불안과 죄책감을 부담하는 식은 힘들 것 같아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요.
정현욱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기후위기가 음모론으로 치부되잖아요. 찾아보니 기후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최근 들어서 가속화된다고 과학자들이 말해도 안 믿는 거죠. 기후학자가 영화 <돈 룩 업>을 보고 “나는 매일 저렇게 살고 있다”고 말했죠.
오누이 우리가 다음 세대를 배려할 수 있는 존재인가? 기후변화는 이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일론 머스크한테 ‘우리가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어요. 지구는 그냥 물 행성이 되는 거고, 인류는 다른 행성에 거주하는 거죠.
정현욱 SF적인 얘기를 해보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어 과학적으로 인위적인 개입을 해요. 지구 밖에 태양열을 막는 장치를 설치하는 거죠.
황모과 지금도 늦었지만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사회경제 시스템을 한 번에 총체적으로 전환해야 해요. 기득권 방어 논리가 보편성을 획득한 한국의 여론 지형상 쉽지 않을 듯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남은 일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난을 매년 실감하게 될 뿐이죠.
오누이 먹고살기도 힘든데, 여러 환경문제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은 무력감과 죄책감만 가중시켜서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것 같습니다.
Agenda 03
식량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이 식량난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어요. 식량위기 상황이 도래하면 우리 식문화가 어떻게 변할까요?
오누이 전쟁으로 위기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식량은 충분하대요.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잉여분이 있고,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분배가 안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식량 위기는 정치와 외교와 분배의 문제가 아닌가요. 식량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아요.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많잖아요. 어떻게 하면 덜 먹을까 계속 고민하지 않을까요?
김지원 덜 먹는 것도 중요한데 뭘 먹을까가 더 중요해질 거 같아요. 제 소설을 읽고 이 질문을 하는 줄 알았어요. 소설에서 대체육과 배양육으로 성공한 외식 사업가를 그리고 있거든요. 식생활은 습관이잖아요. 그래서 쉽게 변하기 힘들어요. 대체육 시장이 정권이 두 번 바뀔 동안 엄청 활성화될까? 당장은 부정적이에요. 맛이 보장되고 품질도 유지되고 가격 경쟁력도 있고 보관도 용이한 대체육의 등장은 단기간엔 어려울 것 같아요. 미식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앞으로 나갈 수 있지만 퇴보하기 힘들어요. 다양한 걸 많이 먹는 문화가 바뀔까요? 소설의 시나리오 버전을 보면, 여자 주인공이 레스토랑을 운영해요. ‘인간의 손맛’을 강조한 마케팅을 펼쳐요. 대체육, 배양육이 보편화되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 인간이 만든 음식, 가공을 덜한 음식이 상위 레벨이 되는 거죠. 그런 SF적인 미래를 생각했어요.
생산과 조리가 효율적이고 대량인 것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더 가치 있다?
정현욱 요새 수온이 높아져서 물고기가 많이 안 잡힌다더군요. 우리 어촌이 10년 후면 망할 거라는 소리도 들려요. 그러면 수입에 의존해야 되고 전쟁 영향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은 심화되겠죠. 가격이 점점 오르면 희소성이나 고급화 전략이 시장을 형성할 것 같고요. 이를테면 갑자기 메밀이 희귀해지면 평양냉면 먹으러 ‘오픈런’ 뛰는 거죠.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으니 일반적으론 뭘 먹고 사냐면, 우리나라 곤충 산업이 발전했어요. 시장 규모가 5천억원이 넘어요. 곤충을 갈아서 빵 만들고, 밀가루 비율을 낮추고 곤충을 갈아서 가공하는 대체식품이 개발되겠죠. 과연 벌레를 먹는다는 혐오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영양이나 효율은 최고거든요. 곤충이 단백질 덩어리잖아요. 실제로 요즘 BJ들이 벌칙으로 ‘귀뚜라미 먹방’ 하잖아요.
김지원 곤충 요리가 힙해지고 맛있어져야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 같네요.
배명은 식량난으로 풍족했던 음식은 꿈도 못 꿀 수 있어요. 미래 사양 산업 1순위가 축산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단백질 대체식품으로 줄기세포로 만든 고기와 곤충 먹는 트렌드가 유행할지도 모릅니다. 저의 어머니는 대체식품으로 곤충을 먹을 것이라며 ‘바선생’을 보고 있어요. 얼마 전 윤기가 반지르르하고 통통한 놈을 보았는데, 그걸 먹을 생각하니 호러가 따로 없었어요.
황모과 <설국열차>의 양갱은 잘 조리된 축에 속하는군요.
김지원 지금은 많이 먹는 게 푸드 포르노잖아요. 근데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음식을 먹는 게 푸드 포르노처럼 되면 오히려 인류한테는 더 좋은 것 같아요.
황모과 저는 먹거리 위기 이전에 푸드 포르노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맛있게 먹으며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일, 지인과 맛있는 식탁을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인간의 여러 욕망 중 단시간에 비교적 값싼 비용으로 충족 가능하기에 먹는 욕망만 허락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일본도 ‘푸드 포르노’ 사회인데, 미디어에서 아침부터 심야까지 프로그램의 중요한 테마가 음식이에요. 다른 이슈를 덮어버린다는 면에서 매우 정치적이죠. 한국 사회도 음식이 본래 기능 이상의 정치질을 하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과도하게 음식 중심의 일상을 보낸다면, 지나치게 엥겔계수가 높다면, 그리고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한다면 정치적으로 선동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해요. 당장 좋은 집 사고 좋은 차를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오늘 저녁 무리해서 몇만원짜리 밥을 먹는 건 가능하니까. 일본이 먼저 그런 사회에 도달했고 한국이 한 10년 간격을 두고 미디어에서 똑같은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오누이 먹방이 시작된 지 오래되지 않았죠. 제가 먹는 걸 유희로 즐긴 게 언제부터인가 생각해보면,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어요. 음식 사 먹을 때 임팩트가 없으면 손이 안 가요. 어떤 맛을 먹었다는 강렬한 느낌을 원하고, 작지만 확실하게 자극을 주는 뭔가를 찾는 것 같아요. 가짜 허기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고요. 영양 섭취보다도 뇌에 도파민을 주기 위한 수단인 거죠. 이것도 SF적으로 넘어가면, 일론 머스크가 뇌에 칩 넣는 뉴럴링크를 개발하잖아요. 나중에는 퍽퍽한 닭가슴살 먹으면서 휴대폰으로 프라이드 치킨 먹는다고 입력하는 날이 올 것 같아요. 식문화를 영양 섭취와 뇌에 자극을 주는 것으로 나눴을 때, 지금은 후자에 쏠려 있는 것 같아요.
김지원 장기적으로 식량 위기는 큰 문제죠. 기후위기처럼 전 세계의 다양한 오가닉 식품을 공유하는 게 힘들어질 수 있잖아요.
정현욱 요즘 채소를 공장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더군요. 품질 좋고 가격 저렴하고 비료도 안 쓰니까 환경에도 훨씬 좋고요.
오누이 음식이라고 해도 영양분과 물질의 구성이잖아요. 그래서 SF 드라마 보면 3D 프린터로 음식을 프린트해서 먹는 광경도 많이 보여요. 배양육을 구성하는 물질을 원자재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걸 프린트해서 집에서 먹는 세상도 아주 멀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맛은 뉴럴링크로 경험하고요.
황모과 다른 감각 재현에 비해 미각 재현은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울 거라고 합니다. 어제 일본에서 컵라면을 하나 샀는데 프로테인과 식이섬유가 들어간 건강한 식품이 1천3백원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저급한 식품을 저소득층이 소비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싶네요.
Agenda 04
일자리 감소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불안한 시각이 존재해요. 일자리가 줄면 생계 위협을 받고, 소비 욕망과 교육의 질도 우려됩니다.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는 공포도 있겠죠. 대한민국 노동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배명은 기계보다 인간의 노동력이 저렴할 경우, 인간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겠지만, 기계가 못하는 노동은 인간을 갈아 넣겠죠. 저렴하니까요. 계급 격차도 커질 거예요. 중산층이 없어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되겠죠. 임금은 안 오르고, 계급 이동이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 수도 있겠죠. 잉여 노동자는 기본소득도 없는데 돈을 쓸 수 있을까요? 여가를 즐기는 것은 가진 자만 가능할 것 같아요. 황모과 작가님의 <배내똥 거래소> 같은 결말이죠.
황모과 제가 썼지만 슬픕니다.
배명은 저는 그런 실직자들을 잉여 노동자라고 썼습니다. AI로 사라지는 직군 중 작가도 있더라고요. 당연하겠지만, 너무합니다.
유튜브에선 저런 걸 누가 보나 싶은 콘텐츠도 수익이 큰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유튜버가 높은 순위에 있고요. 미래에는 콘텐츠 생산이 보편적인 일자리가 될까요?
배명은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유튜버 하고 싶어요.
황모과 유튜브는 텔레비전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포맷만으로 전달했던 정보가 다각화된 것이라고 봐요. 유튜버는 예전 TV PD나 방송 작가와 유사한 직업군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옛날에도 방송국에서 일하겠다는 장래 희망이 많았으니까요.
배명은 현실은 예전과 같지 않죠. 노동력만으로 돈을 버는 사회가 아니고요. 작가 같은 경우는 글만으로 돈을 벌 수 없어요. 2차 창작이 필요합니다. 강의나 영상화로 돈을 벌어요. 유튜버가 돈을 많이 벌지만 얼마나 많은 이가 가능할까요. 될 사람만 되지 않겠습니까.
황모과 소비 패턴이나 니즈가 다각화되니까 다양한 방식의 정보 선별, 소개, 확산, 인플루언서 등의 역할도 늘어날 것 같아요. 유튜버나 마케터도 이런 차원에서 보게 돼요. 배명은 작가님 말씀처럼 모두가 최저 시급 이상을 버는 노동자는 아니니까.
노동의 형태가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황모과 휴양지에서 놀면서 일한다는 식의 광고가 보이던데 기만이라고 봐요. 사업체가 경치 좋은 바닷가에 직원용 주거지를 세우고 생활 비용까지 지원해준다고 해도 짬을 내는 휴식은 불가능해요. 일터에서 몸과 마음이 떠나야 휴식할 수 있으니까. 현재의 노동집약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라이프스타일만 질적 향상을 꾀하라는 것은 노동자를 이중으로 괴롭히는 마타도어예요. 그럼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저라면 현재 벌고 있는 연봉보다 대폭 낮아지겠지만 캠핑카로 전 세계 여행하면서 여행지에서 물품을 조달해 수공예품 만들어 팔고, 그 수입으로 여행을 지속한다면 대안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려면 노동과 벌이보다 삶에서 휴식과 여행에 방점이 완전히 옮겨가야 하죠. 삶의 중요한 기준은 제각각일 테니 자신이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해야 합니다. 배명은 작가님의 <선샤인은 저 너머에> 속 대사처럼 ‘나는 나를 선택하겠어요’ 이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인간다움에 대해 더 고민할 수도 있겠네요?
황모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라는 대의가 아니더라도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양성을 기본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주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배명은 사람들이 가지는 최소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자세도요.
김지원 SF에서는 AI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내용이 많아요. 하지만 AI 기술이 단기간에 급격히 발달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챗봇 모델링 작업을 했는데, 우리는 영화 <그녀> 같은 미래를 상상하지만 보편화된 AI 기술은 “밥 먹었어”라는 텍스트 보고 물음표를 인식 못해요. 질문을 인식 못하니 두 상황에 다 어울리는 답변을 해야 돼요. 이런 AI와 사랑에 빠지기는 너무 힘들다는 거죠. 결국 남는 건 감정적인 일자리겠죠. 요즘 오은영 박사님부터 시작해 인간을 개별적으로 상담해주는 시도가 각광받아요. MBTI도 같은 맥락이죠. 정신과 상담도 늘었고요. 미래에는 감정을 다루는 분야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현욱 메타버스가 자주 언급되는데, 메타버스가 기존 온라인 게임과의 차이는 경제활동이라고 봐요. 메타버스에서 하는 행위가 경제적으로 환원돼서 유저가 돈을 버는 시스템인 거죠. 내가 게임하는 것처럼 일을 한다는 건데요. 실제 해외에서는 현금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게임이 대박 났어요. 코로나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집에만 있는데, 게임으로 돈을 버니까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고 해요.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돈이 유입되는 것이군요. 말씀하신 사례와 같은 메타버스는 게임으로서 재미가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을 모아 경쟁시키는 플랫폼에 불과할까요?
오누이 메타버스는 경제활동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정현욱 작가님 소설 <유어 라이프>의 게임도 현실 이상의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김지원 메타버스는 의미가 있어요. 쓸모를 새로 발명하는 거잖아요. 탄소 배출도 일어나지 않고, 기후에도 좋고. 새로운 소비가 발생하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오누이 AI를 적대시하는 의견이 많지만 저는 기대해요. 우리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면 폭력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을 위로해주는 ‘동반 로봇’ 같은 AI가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또 AI는 우리보다 고등 지식을 가진 존재잖아요. 우리가 언급한 문제를 AI가 해결하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는 AI에 의존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꼭 우리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건 아니죠.
정현욱 그래서 SF 보면 AI가 결국 지구를 위한 해결책이라며, 인류를 없애잖아요.
황모과 AI 부서에서 일한 적 있는데, 자동 처리되지 않는 예외 코맨드를 수동으로 변경하는 것도 담당 업무 중 하나였어요. 재밌고도 서글픈 일은 예외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모든 정보가 빅데이터 덕에 사람 손을 안 타도 좋을 정도로 자동화되지 않아요. 기술이 더 발전해 특이점에 도달하는 가정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행동 패턴을 생각하면, 저는 사회 전체의 완전 자동화는 당분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의사도 놓치는 암 진단을 AI가 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던 모 인공지능이 단기간에 몰락한 것처럼 지나친 낙관도 경계해야 해요. AI와 무인화가 오히려 노동집약적인 형태로 드러날 거라는 전망을 저도 <배내똥 거래소>라는 작품 속에 드러냈어요. 외진 곳에 놓인 무인 3D 김밥 프린터가 고장나자 운영자들은 결국 유지 보수될 때까지 사람이 프린터 안에 들어가서 김밥을 마는 게 싸다는 판단을 내리는 식이죠.
인간이 무의식을 발현하려면 자유의지가 필요해요. 자유의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억압적인 규제에 반대하고, 규칙을 깨고자 하는 욕구도 있어요. AI가 규칙을 세워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줬을 때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요?
정현욱 그러니까 디스토피아 작품에는 풍요롭고 완성된 사회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꼭 등장하죠.
오누이 인간의 욕구까지 AI의 고려 요소에 넣으면 유토피아가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원 AI 기술은 너무 유연해서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를 떠올릴 수도 있죠.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은 너무 많으니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미래를 소설로 써봤어요.
오누이 디스토피아를 다룬 SF 작가가 미래에 관심을 덜 쓰자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종종 비관적인 예측으로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면, 오히려 그런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다룬 <D-1> 같은 픽션을 보며, 조금은 관조적으로 상황을 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SF 소설의 한 가지 가치가 될 것 같아요.
Agenda 05
에너지 전쟁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일상에서 더 많은 전자기기의 편의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럼 우리는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겠죠. 특히 전기차는 그 어떤 가전제품보다 많은 전력을 소비해요. 전기차가 보급된 시대라면 에너지 갈등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누이 결국 기후문제와도 얽혀 있는데, 석유는 계속 써도 남아돈다고 해요. 근데 그걸 안 쓰고 전기차로 전향했잖아요. 에너지가 부족하다기보다는 분배의 문제라고 봐요. 세계 각국이 배려해야 하는 문제고, 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도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메타버스가 고도로 발전하면 지금만큼 에너지가 필요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디에 갈 필요도, 많이 먹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황모과 사막에서 몇 시간씩 걸어서 우물물 뜨러 다니듯 개인용 배터리 들고서 에너지 찾아다니는 세상이 곧 올지도 모르겠네요.
정현욱 장기적으로 보면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사회가 재편될 것이라 생각해요. 당장은 어려우니 원전 이야기가 나오죠. 10년 후에는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겠죠. 에너지난이 생길 수도 있을 테고요. 자가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집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려 전력을 생산하거나, 바이오에너지를 사용한다거나, 또 사용자의 움직임을 에너지로 축적해 사용하는 상황이요.
재밌는 아이디어입니다. 하루 2만 보 걸으면, 20km 주행거리 포인트를 돌려받는 식이겠죠?
황모과 러닝머신으로 운동도 하고 자가 에너지도 충전하세요! 이런 광고가 나오겠네요.
정현욱 헬스장마다 자가 발전기만 설치해도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할 거예요.
황모과 김종국 같은 분이 에너지 부자가 되어 에너지 판매를 시작하면 재생에너지 시대의 석유국 왕자같이 되는 거군요.
배명은 저는 러닝머신에서 좀비를 뛰게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하는 영상을 봤어요.
정현욱 누군가에게 에너지 발전을 하도록 시킬 수 있다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겠죠. 하루 종일 전기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나오는 SF적인 상상이 펼쳐지네요.
오누이 화성에는 에너지 자원이 많다고 해요. 최근 우리나라 영화도 행성 탐사 목적이 자원 채취였고요. <돈 룩 업>에서도 지구로 다가오는 행성을 막지 않은 이유가 자원 채취 때문이었어요.
김지원 미래에는 전기와 석유 중 뭐가 더 비쌀지는 모르죠. 지금 전쟁으로 기름값이 갑자기 오르고, 경윳값이 휘발윳값을 넘어섰잖아요. 예상하지 못한 일이죠.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클래식카 대접을 받으면서 돈 많은 사람만 탈 수 있는 비싼 차가 될 것 같아요. 세금 왕창 붙으면 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될 테니까요.
황모과 오늘 작품 테마로 써먹을 얘기를 엄청 많이 들었네요! 이렇게 주섬주섬 챙겨 갑니다!!
오누이 세상은 너무 다변화되고, 우리가 감안할 수 있는 요소를 아득히 초월하는 변수가 실시간으로 관여해요. 미래를 예측하기는커녕, 현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예상은 하겠으나,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갈 수 있냐는 것이죠. 소설 <D-1>이 바로 그러한 미래 예측에 대한 염증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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