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난리가 난 ‘19금’ 호텔이 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스타급 연예인들이 직접 호텔 인테리어와 디자인에 참여한 ‘호텔 더 디자이너스(Hotel The Designers)’다. 2012년 삼성점 개관을 시작으로 홍대, 종로, 인천, 동대문, 강남 프리미어, 청량리까지 세를 불리더니 건대, 여의도점까지 오픈하며 승승장구했던 곳이다. 이곳이 19금 호텔 애칭으로 불린 건 순전히 ‘과금 방식’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 일단 택시처럼 방에도 기본 요금이 있다. 더블(트윈), 디럭스, 스위트룸까지 모두 1만~1만5천원대에 출발한다. 이후부터는 택시처럼 분당 요금이 올라간다. 더블룸은 분당 1백원, 디럭스룸은 분당 1백50원, 스위트룸은 분당 2백원씩이다. 30분 기준으로는 3천원, 4천5백원, 6천원이 각각 부과된다. 남녀가 들어간다고 치자. 짧고 굵게, 초고속으로 일(?)을 치르면, 그야말로 2만원대에도 끊을 수 있다. 모처럼 부부끼리 분위기를 내러 갔다면,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한 아내들은 이런 볼멘소리를 했을 게 뻔하다. “여보, 어서 씻어. 30초 지나면 또 2백원이라니까.”
뜬금없이 호텔 분당 과금 얘기를 꺼낸 건 휴가철 호텔과 펜션의 바가지 방값, 이른바 룸플레이션(Room+Inflation, 방값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애교스러운 분당 과금 아이디어로 거품을 빼며 승승장구했던, 호텔 더 디자이너스를 비웃듯, 바가지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캉스 바가지 버블 ‘베케플레이션(vacation+ inflation)’의 주축을 이루는 것도 룸플레이션이다. 엔데믹 분위기에, 하늘길이 뚫렸지만 베케플레이션으로, 항공권 값이 2~3배로 치솟으면서 해외는 그야말로 언감생심, 그래서 휴가족들도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데, 이게 설상가상이다. 3년 만에 거리두기가 풀린 탓에 7말8초 기간이 풀부킹인데, 그나마 방이 나와도 ‘억’ 소리가 난다. 말하자면 ‘부킹(예약)플레이션’과 ‘룸플레이션’ 쌍포의 습격이다. 기자는 ‘제주 바가지’ 시리즈를 칼럼 형태로 2020년과 2021년 연속 쓴 적이 있다. ‘호텔 1박에 89만원 제주도 방값 바가지 도 넘었다’는 단독 기사를 썼는데, 당시 원희룡 도지사(현 국토교통부 장관)가 SNS를 통해 이 기사를 포스팅해 인용하면서 “한탕주의 묵인 안 한다. 모든 수단 강구해 제주도의 바가지를 뿌리 뽑겠다”고 강력 대응을 시사, 제주 호텔가가 발칵 뒤집혔다.
취재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펜션 바가지였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신혼여행지로 제주 수요가 폭발할 때였는데, 한 복층형 펜션에 묵었던 신혼부부는 1박에 2백만원을 지불한 적도 있었다. 기사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현장 실태 점검에 나섰던 제주시의 공식 반응은 이랬다. ‘신라, 롯데 등 특급호텔의 성수기 1박 80만원대 가격은 ‘정상적이다. 원래 이 정도 수준이다. 바가지가 아니고 원년 수준으로 받았을 뿐이다. 펜션은 복층에 프라이빗 스파까지 달려 있는 최고급형이다. 푸껫 반얀트리 부럽지 않다. 2백만원 정도면 정상가로 볼 수 있다’는 것.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야, 여행족마다 다를 터이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일반실 기준 1박 80만원을 정상적으로 보는 제주시의 입장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더 심각한 건 이런 베케플레이션이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서울 경기 권역의 바가지 핫 플레이스는 양평, 가평, 남양주 인근이다. 최근 가평의 한 복층형 펜션에서 하룻밤 총알휴가를 보내고 온 후배는 방값 1백만원, 맛집 투어 비용에 기름값까지 1백50만원을 쓰고 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1박에 1백50만원이라니. 이건 웬만한 동남아 휴양지 3박 5일 패키지 가격과 맞먹는 수준 아닌가. 물론 여기까지 칼럼을 읽고, 이 정도 수준에 뭔 호들갑이냐는 분들도 있을 게다. 가격, 즉 바가지의 기준이라는 게 그렇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바가지인 복층형 1박 1백만원 펜션 가격이, 다른 누군가에겐 충분히 정상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우리 국민 말고, 해외, 다른 나라 국민이 느끼는 국내 바캉스 물가에 대한 평가.
잠깐 아래 통계를 보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격년으로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WEF) 관광 경쟁력 평가 결과(2021년 기준)를 공개했는데, 우리나라가 1백17개국 중 15위에 올랐다. 팬데믹이 덮치면서 평가 기준이 바뀌긴 했지만, 그 직전인 2019년 결과(16위)와 단순 비교하면 한 계단 오른 셈이다. 상위 10% 수준이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뜯어보면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여행지 물가 순위를 나타내는 관광 가격 경쟁력 순위다. 코로나19 시기야, 관광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없다 치고, 직전 2019년 결과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전체 관광 경쟁력 순위는 16위인데, 관광 가격 경쟁력은 103위, 사상 처음 100위권 밖으로 내려앉았다. 공항 이용료와 택시비는 30위권, 호텔 등 숙박 비용은 60위권, 기름값은 100위권 밖으로 최하위권을 맴돈다. ‘바가지 공화국’이란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결과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매년 국내를 찾는 외국인을 상대로 관광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불만 사항 상위권 리스트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게 묘하게 또 ‘물가’다. 절반 정도는 언어, 교통, 안내표지판 부족을 꼽지만, 늘 10% 이상의 답변이 몰리는 항목이 ‘비싼 물가’다.
작년 여름엔 제주도 렌터카 바가지 문제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제주시의 신문고에 한 여행족이 ‘제주도 렌터카 요금은 비트코인입니까’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됐다. 둘쭉날쭉 가격에 얼마나 속에서 천불이 났으면 렌터카 비용을 ‘비트코인’에 비유했을까. 당시 신문고에 올랐던 글의 한 대목을 소개해드린다. ‘렌터카는 취향, 편의 차이만이 아닌 부족한 대중교통의 보완재입니다. 제주도가 잘해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오갈 데가 없어서 갈 뿐입니다. 제주도는 이번을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인데, 일부 법인 배불리자고 앞으로의 제주 경제를 망칠 셈인지요.’ 바가지 주체들이여 이 신문고의 글을 가슴속에 꼭 새겨두시길. 제주도 호텔과 펜션이 좋아서, 양평·가평의 복층 펜션이 이국적이어서 여행족들이 몰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 해외 하늘길이 여전히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갈 뿐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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