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가 남아 있네요.
목이 잠기면 사투리가 절로 나와요. 요즘은 표준어도 사투리도 아닌 변질된 말투가 튀어나와요.
<유미의 세포들> 속 유바비의 철두철미한 모습과 달리 진영 씨는 호쾌하네요. 팬층 두터운 웹툰 원작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어렵지 않나요?
원작 팬분들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렇지만 웹툰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면 제 본연의 연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웹툰 <유미의 세포들> 초반부와 유바비 등장 부분만 읽었어요. 유바비 역할에 몰두하기 위함이었죠.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 다른 역할의 세포마을은 상세히 설명되지만, 유바비 역할의 세포마을은 자주 나오지 않더라고요.
바비는 내면이 많이 드러나면 안 되는 인물이거든요. 세포의 종류, 즉 바비의 생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건 감독님의 좋은 설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결말에서 바비가 유미에게 상처 주잖아요. 인턴 ‘다은’에게 마음이 흔들려서 . 만일 초중반부에 바비에 대한 서사가 길고 섬세했다면, 바비의 행동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달랐을 거예요.
공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있었을까요?
인턴 다은에게 마음이 흔들려서 바비의 세포마을에 지진 났던 부분요. 다은에게 설렘을 느꼈다면 여자친구인 유미에게 즉시 알리는 게 맞죠. 하지만 그러지 않고 감췄죠.
바비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제가 봤을 때 유바비는 그런 사람이에요. ‘여기서 나만 조용히 하면 모를 거야, 지나가면 될 일이야’라는 심리의 사람. 바비의 행동은 잘못됐는데 단지 어리석었던 거예요. 변호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어른스럽게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미성숙한 사람인 거죠.
그렇지만 바비는 성숙한 사람이 맞아요. 사귀는 동안 작가가 되고 싶은 유미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잖아요.
유미가 다은에게 흔들리는 바비의 마음을 알아채고 바로 돌아서버린 건 그만큼 바비가 유미에게 잘했기 때문이에요. 성숙한 모습만 보여주던 바비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에 더 큰 배신감이 든 거죠. 스킨십이 바비와 유미가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준 수단이기도 했어요. 김고은 배우, 감독님과 함께 논의한 후 선택한 방법이죠. 시청자가 더 큰 배신감을 느끼도록 <유미의 세포들> 시즌 1보다 2에서 스킨십이 진해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예리한 바비, 반면 진영 씨는요?
저는 말 안 하면 몰라요. 그래서 많이 물어봐요. 이거 괜찮아? 어떻게 생각해? 하면서요.
확인받아야 하는 타입이군요.
맞아요. 저는 아직 너무 어린 햇병아리라.
2년 전 작품들과 현재를 비교하면 진영 씨 눈빛에서 성장이 느껴져요. 동의해요?
이런 마음가짐이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예전보다 덜 불안해요. 잘되면 좋지만, 내가 어떤 결과를 만들든 불안감을 안고 시작하진 않아요. 이것을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진전이 더딘 적도 있었겠죠.
20대 중반에 방황했어요. 저는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부정적인 시기를 보낸 적도 있어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내가 생각한 만큼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들이 쌓여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그전에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거든요. 자존감이 낮아지니까 사소한 말이 마음에 비수로 꽂히더라고요. 그것들이 덩어리져 경직된 상태로 지냈어요. 근 2년 동안 부정적인 에너지를 빼내려 노력했어요.
지금은요?
못하면 뭐 어때? 하는 생각을 가진 뒤로 부담이 줄었고, 자신감은 높아졌어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딱딱했던 내가 말랑해졌고요.
연기를 왜 시작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최근에 해봤어요. 첫 연기 <드림하이 2>에 임할 땐 ‘하고 싶은 마음’으로 했다면 거짓말이에요. 이유를 모른 채 연기했죠. 당시 열아홉 살이었거든요. 적성에 맞는지도 불확실했어요. 그러다 <사랑하는 은동아>의 ‘1995년 박현수’ 역을 연기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주체적인 서사가 있는 캐릭터를 처음 해본 거였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속 진영 씨의 덤덤한 연기가 기억에 남아요.
저도 좋았어요. 대본 읽고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일을 하며 나다운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는 타인의 잣대와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일단 흥미가 생기면 나를 던져요.
휘둘리지 않는 게 참 어렵죠.
그렇죠. 저는 솔직해지고 싶은 사람이에요. 솔직하게 내 연기와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럼 가장 나다워질 수 있어요. 근데 또 인생은 너무 솔직하게 살면 안 되잖아요? 적당히 해야 하죠.(웃음)
20대는 뿌리를 내리는 시기고, 30대는 자라난 줄기를 단단하게 키우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진영 씨의 뿌리는 깊숙이 자리 잡았나요?
열심히 내렸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성공 말고 대인관계에서요. 홀로 서 있었다면 금방 허물어졌을 텐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뿌리를 내려서 강풍이 와도 저는 잠깐 부서질지언정 그 뿌리가 휩쓸리진 않을 것 같아요.
20대의 끝자락에 얻은 깨달음은 뭘까요?
깨달음이라는 표현은 너무 거창한데요? 너무 거창하면 쑥스러워서요. 그저 드는 생각은, 사람이 중요하구나. 내가 못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것들도 채워줄 좋은 사람들이 많아 행복해요. 갓세븐으로서 임할 땐 멤버들이 없었다면 참 공허했을 것 같고요.
30대에 자라날 줄기는 어떻게 하면 단단해질까요?
예전에 하던 것들을 꾸준히 지속해야겠죠.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 목적, 이유를 가끔 떠올려봐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요.
30대가 두렵진 않아요?
두려울 시간이 없어요. 당장 해야 할 게 너무 많거든요. 그 나이가 돼봐야 알 것 같네요.
반면 설레는 점은요?
도전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외모도 변할 테고, 맡을 수 있는 캐릭터도 다채로워질 거라 기대해요.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 수염을 길러보고 싶은데, 팬분들이 이해해주시겠죠. 안 그러면 합의 봐야죠.(웃음)
요즘은 어떤 책 읽어요?
가끔 성경 읽어요.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하루 한 장이라도요.
지금 진영 씨가 믿는 건요?
나. 자신에게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싶어요.
스스로 믿음을 잃지 않는 방법은 뭘까요.
많이 생각하고, 연습해야죠. 준비가 덜 됐는데 마냥 믿을 순 없잖아요.
그 방법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극제는요?
좋은 영감. 최근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브로커>와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을 봤거든요.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심리 묘사가 큰 자극이 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좋은 영화가 원동력인 것 같네요. 없던 흥미도 생기게 해주니까요.
배우 박진영의 미래는 어디로 이어질까요?
어딘지 몰라도 오래오래 이어지면 좋겠어요.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일을 지속하는 선배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단단한 모습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박진영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요? 어차피 안 이루어질 것 같은데, 웃긴 사람이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해야 이뤄질 것 같은데요. 아직 제 유머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이 꿈을 이룰 때까지 열심히 연마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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