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끊기면 생명력은 사라진다. 내가 살던 마산에는 낙후된 동네가 많다. 건물들이 삭고 변색되었으며, 대를 이어온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훌쩍 자라고 나서야 알게 된 우동집은 91세인 할머니가 20대 때 내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었고, 줄지어 먹던 떡볶이 가게는 한국전쟁 때부터 이어온 곳이다. 하지만 이젠 사람들의 시야를 벗어나 소외된 곳이 되었다. 곧 사라진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 가게들이 줄지은 거리는 명동처럼 화려하고 북적였지만, 세월의 흐름과 변화한 시대를 견디지 못해 생명력을 잃었다. 성수동 거리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붐비지만, 근간인 수제화 골목은 카페와 복합문화공간들 사이에서 간신히 호흡하고 있다. 골목 2층 간판 없는 구두 수선집도 그중 하나다. 직접 가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기 어렵다. 50년의 세월을 버텨온 박창수 선생의 가게다. 그가 겪은 세월의 깊이는 직접 경험할 때까지 절대 모를 테지만 마음이 아닌 피부로라도 느껴보고자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선생님, 50년을 버티게 해준 구두 수선을 어쩌다 시작했나요. 오랫동안 이어온 데는 직업에서 남다른 힘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20대 초반부터 했으니까. 내가 지금 70대거든. 50년 맞는데 한 3백 년은 더 하고 싶어. 어릴 때 금강제화에서 신발 만들었어. 근데 버리기 아까운 신발 있잖아. 그 아까운 신발을 내가 고쳐볼까 했지. 그때는 습하고 먼지 많은 지하에서 일했지. 열악한 환경인데도 신발이 너무 좋은 거야. 수선한다고 하면 편견 갖지? 근데 나한테 신발 수선은 예술이고 창작 활동이야.”
박창수 사장은 구두 수선하면서 얻은 삶의 철학에 대해 말을 이었다. “일 시작하고 인생 공부 참 많이 했지. 똑같은 신발을 1백 개 만드는 건 쉬워요. 하지만 똑같은 신발을 1백 명이 신을 순 없어. 수선 맡긴 사람들 신발을 요모조모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성향과 인생이 보인다고. 그만큼 다 달라. 성공한 사람들은 발만 봐도 보여. 얼마나 바쁘게 열심히 살았는지. 그런 말도 있잖아.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몸으로 뛴다고 안 하잖아. 그만큼 발이 중요해요. 세월을 담아내니까.”
신발을 만질 때 신발 주인의 삶이 보인다는 박창수 사장은 수선할 때 무엇을 생각할까. “생각 안 해. 그저 몰입된 상태로 해야 해요. 이 작품에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손으로 만져 창작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 있는 거야. 이게 힘은 들어. 근데 막상 새로운 게 탄생하잖아? 아주 큰 희열을 느껴. 그래서 계속하는 거야. 어려운 걸 하나씩 하다 보니까 세월 가는 줄 몰랐네. 나는 작업한다고 안 해. 작품 만진다고 하지. 작업이다 생각하면 힘들잖아. 근데 작품을 만들어낸다 생각하면 즐겁거든. 항상 일을 즐겁게 해야 돼. 인생사 더 즐거워야 된다고!” 즐거워야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별로 즐겁지 않은 것 같아요, 선생님! “지금 이 시대가 아주 빡빡해. 여유로운 게 하나 없어. 지금은 평생직장이 없잖아. 그러니까 불안 속에 사는 거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강박을 항상 품고 살아가잖아. 옛날에는 20년 30년 장기근속하는 사람 많았어. 그러니까 나도 ‘여기는 내 집이야’ 하면서 수선 시작했어. 평생직장이 가능했을 때는 자유로웠어.”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시대다. 걷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들 모습만 봐도 그렇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온갖 종류의 사람이 다 있다. 여느 시대가 안 그래 왔냐고 생각하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개성이 존중된다는 점이다. 어떤 상태로 다니고 어떤 행위를 하건 사람들은 타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박창수 사장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바뀐 성수동의 풍경도, 손님의 취향도 이해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엄청 강해. 헌 신발도 어차피 새롭게 고칠 것 같으면 자기 취향대로 하는 거야. 옛날에는 안 그랬거든. 그냥 알아서 고치라고 던져줬어. 이제는 자기들이 디자인하고 이렇게 만들어달라 한다니까? 그리고 그들은 헌 신발 사서 고쳐 신어. 옛날 사람들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고급 신발만 사는데 요즘 애들은 달라. 근데 그 점이 굉장히 좋아 보여.”
구두선생의 수선비는 저렴하다. 성수동 상권을 고려하면 아주 값싼 편이다. 1백만원대의 고급 브랜드 신발 수선 비용이 몇십만원대인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만원대다. 선생님, 그렇게 저렴하게 받으면 도대체 남는 게 있나요. “손님들은 의아하게 생각해. 자기 생각보다 훨씬 싸니까. 근데 인건비만 받으면 돼. 바가지 씌우고 그러면 안 돼! 그런 사람은 양심이 없는 거야. 기술을 자랑 삼아 돈 더 받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해. 양심껏 세끼 밥 먹고, 죄 안 짓고 사는 게 사람 사는 거지.”
대화 중간에도 가게에 손님이 세 차례 드나들었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닥터마틴 로퍼를 들고 들어왔다. 다른 곳에서 세 번이나 거절당한 신발이란다. 발등을 덮는 가죽 끈이 잘려 있었다. 닥터마틴은 가죽이 워낙 두껍고 견고해 수선이 여간 힘든 신발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창수 사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을 갖고 오는 손님이 한둘이 아닐 텐데. “감동적인 일이 한 번 있었죠. 젊은 친구였어. 신발이 낡아도 너무 낡았어. 이건 고쳐도 못 신는다고 했거든, 내가. 근데 죄송하지만 밑창 떨어진 것만이라도 좀 고쳐달래. 대학 들어갈 때 어머니가 선물한 신발인데 어머니 돌아가신 지 한참 됐대. 그 얘기를 듣고서 머리가 멍해졌지. 어떻게 해줄까 물어봤더니 그냥 예쁘게 고쳐만 주면 머리맡에 두고 어머니 고마움을 생각하겠대.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처음 샀을 때 모습처럼 고쳐줬어. 그랬더니 돈을 많이 주는 거야.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돌려줬어. 그냥 선물로 주고 싶었어. 이런 사연을 만나면 나도 반성하게 돼.”
한 직업에 평생 몸담으면 깨닫는 게 많지 않을까요. “글쎄. 내가 좀 미련스러워서 깨달음이라는 걸 별로 못 느껴. 왜. 그냥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즐거우면 되니까. 일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아니냐는 거지. 누구한테 손가락질 안 당하고 내가 내 자리에서 내 기술 갖고 임한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 갖는 거지.”
그라고 불행한 적이 없었을까. 하지만 덤덤하게 인생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그가 불행을 웃으며 이겨내는 내공이 궁금했다. 힘들 땐 어떻게 버텨야 하나요? 경험이 부족해 사소한 어려움을 마주하면 거대한 바위가 몸을 짓누른 듯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그래요. 어려운 게 있으면 받아들이는 거야. 내 몸으로 받아들여야 해결되는 거지. 오는 걸 자꾸 거부하면. 오히려 내가 무너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피하지 말고 도전할 생각을 해야지. 나는 여태까지 피해본 적 없어. 이 일을 오래 해서 그냥 척척 해낼 것 같지? 아니야. 매일 새로워. 정말 어려운 신발을 만나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수선을 시작해. 잠도 못 자면서 말이야.”
어쩐지 박창수 사장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50년간 반복된 삶이라도 여전히 어렵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장인정신이란 뭘까요? “장인이라고 하는 건 엉터리 같아.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좋아서 하다 보니까 오래 한 거지.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일을 할 것 같아. 또 하나의 내 인생 철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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