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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아릭, 록
1 CHS
정글 사우나
음반에 대한 소개에 앞서, 연인과 집에서 바이닐을 트는 상황에서 출발해야 이 기획의 의도가 선명해질 것이다. 터치 몇 번이면 블루투스 스피커로 쉽게 검색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굳이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는 이유란 도대체 뭘까. 그러니까 적당히 취한 채로, 서로 언제 끌어안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바이닐로 음악을 튼다는 건 섹스에 어떤 도움이 될까. 레코드를 모은다는 고집스럽지만 근사한 성격과 내 집에 놓인 이상하지만 개성 강한 물건들이 형성한 무드가 나를 상대에게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터. 그 순간 음악을 튼다는 건 청각까지 사로잡겠다는 선언과 같을 것이다. CHS는 여름을 연주하는 밴드다. 해변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음악이 주를 이룬다. 바야흐로 덥고, 불편한 옷을 훌렁 벗어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이 음악에 생생히 담겼다. 더 나은 섹스 환경을 위해 여름 음악만큼 효과적인 음악이 또 있을까.
양보연 <아레나>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소울, 훵크
2 Marvin Gaye
Midnight Love
마빈 게이의 목소리는 있는 듯 없다. 손꼽히는 절창이지만, 흘러가듯 한다. 진부할지언정 비단 같다는 표현이야말로 적절하다. <Midnight Love>는 마빈 게이가 과거의 진한 모타운 소울 사운드와 결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두드러지는 음반이다.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을 적극 활용했고, 덕분에 현악기와 관악기가 휘몰아치는 ‘대곡’의 인상보다 담백한 분위기를 낸다. 그렇게 목소리에도 편곡에도 드문드문 공간이 있다. 사실 안 그래도 숨 막히는 침대에서 음악은 없는 편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빈틈과 여지를 남기며 느긋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음반이라면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마빈 게이의 1970년대 히트곡이자 첫 구절부터 치고 나가는 전 세계인의 본격 사랑 노래 ‘Let’s Get It On’에 비해 은근하게 몸을 데우는 ‘Sexual Healing’은 A면 두 번째 트랙이다.
유지성 프리랜스 에디터 겸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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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훵크
3 MFSB
Summertime
섹스에 대한 로망이 없는 편이다. 차라리 욕망만 남았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라서 그런 걸까? 내게 섹스란 쉬운 일이다. 선택하기 나름이다. 몇 년 전, 자칭 음악 애호가라는 낯선 그의 집에서 한껏 취해 있었다. 어색했던 초반과 깔깔 웃던 중반을 지나 어쩐지 눈을 오래 맞추기 민망하지만 집에 가고 싶지는 않은 후반이 왔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MFSB의 <Summertime>을 틀었다. 궁금해졌다. 가까이 다가가 묻자 음반 커버는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소화전을 틀어 샤워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라 했다. 그리고 턴테이블 위에 레코드를 올리자, 꽤 오래됐지만 근사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감싸 안고 침대로 향했다. 음악을 끝까지 들은 기억은 없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오전 그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다시 들었다.
김유진 영화 칼럼니스트 -
쿨 재즈
4 John Coltrane Quartet
Ballads
존 콜트레인이 임펄스 레이블에 속해 있던 1960년대 초에 발매한 대표적 음반이다. 발매 당시에는 혹평이 다수였으나 현재는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명반 중 하나가 됐다. 감미롭고, 따듯하며, 즉흥적이고, 로맨틱한 음악이 주를 이루는데, ‘발라즈’라는 제목이 꼭 맞는다. 특히 첫 번째 트랙 ‘Say It(Over and Over Again)’부터 세 번째 트랙 ‘Too Young To Go Steady’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농밀한 색소폰과 기승전결을 배가시키는 심벌즈 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위험하다. 여름밤, 침대에서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갈 때를 위한 음반으로 제격이 아닐까.
성민기 뮤직 바 ‘평균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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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아릭, 애시드 재즈, 다운템포
5 Various
Café Del Mar Volumen Seis
카페 델 마 볼륨 시리즈의 마지막 앨범이다. 수록곡들의 장르는 발레아릭, 사이키델릭 등 다양하다. 어쩐지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곡들이다. 침대에서의 시간이 반드시 전쟁 같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굳이 달려들지 않아도 가만히 팔베개를 놓아줄 수도, 조용한 시간을 어색하지 않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은 숙면 후 아침에 입을 맞추고 몸을 뒤섞을 때, 혹은 평화로운 섹스와 나란히 두어도 좋겠다. 혹은 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석양과 같은 섹스를 원하는 이에게 권한다. 시끄럽지 않은, 느리지만 근사한 침대에서의 시간을 돕는 음반.
라노민 DJ -
일렉트로닉, IDM
6 Gescom
Gescom EP
앰비언스와 청량한 사운드 패턴의 조화로 초현실, 초몰입의 극치를 이루는 전자음악 EP. 공간을 소리로 채우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성의 네 개 트랙으로, 곡당 평균 9분이 넘는 시간 동안 손끝과 발끝의 촉감, 시각으로는 부족했던 서로의 감각 구석구석을 느낄 수 있게 돕는다. 다분히 명상적인 측면도 있어 공간을 둘만의 우주로 채우고 싶다면 추천한다.
클로젯 이 DJ,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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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소울
7 Mac Miller
Circles
사후 앨범은 대체로 미발매 곡을 모은 형태가 많아 하나의 무드를 띠기 어렵다. 하지만 맥 밀러의 사후 앨범 <Circles>는 다르다. 전작인 <Swimming>과 접점을 염두하고 제작해 일관된 분위기와 주제를 마지막 트랙까지 이어간다. 힙합의 문법에 펑크, 인디 팝 재즈를 가미한 곡들은 장르를 특정할 수 없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템포는 연인과 뒤엉킨 침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묘한 긴장감을 더할 것이다. 흘리는 듯한 발음으로 무심하게 내뱉는 보컬과 나른함이 짙게 배어 있는 사운드에서 관능적인 공기가 느껴진다.
김나현 <아레나> 게스트 에디터 -
소울, R&B
8 Maxwell
Maxwell’s Urban Hang Suite
섹스에 흥을 더하는 음악으로 R&B만 한 게 또 있을까. 앨범 중 ‘ Til The Cops Come Knockin’은 제목부터 맹렬하다. 내게 섹스란 안정된 게 아니다. 다이내믹하고, 돌발 상황 같다. 서로의 몸이 뒤엉키고, 눕거나 앉을 수도 있고 때로는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전념을 다해 촉각을 느끼고 또 상대를 배려하는 일. 영어 가사를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들으면 모두가 침대 위에서 연인과 몸이 뒤엉킨 상황이 떠오를 것이다.
박준모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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