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건 가능한가? 소셜미디어 없이 미디어가 될 수 있나? 유튜브 없이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나? 미디어가 포털사이트로부터 독립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생존할 수 없다. 하물며 포르노허브도 구독과 조회수 수익 창출로 크리에이터(?)를 모으고 있다. 미디어가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출가다. 세상을 등지고 이진법의 세계로 홀연히 떠나는 고행이다. 어떤 미디어가 그런 선택을 하겠나. 아무도 안 할 것 같아서 내가 해보기로 했다.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하자. 플랫폼이 주류고, 거기서 독립한 미디어라 해서 독립 매체라고 부르진 않겠다. 이건 고생을 자처하는 수행에 가까운 행위다. 현명한 미디어가 할 선택은 아니다. 투자받아서 할 짓도 아니다. 홀로 외로이, ‘독고다이’로 정보를 생생하게 통찰해 전달하는 정보 생생통이다. 그러니 고행 매체라 부르기로 하자.
다음 선택할 것은 주제다. 전달할 정보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고양이 알레르기에 박식하다면 고양이 알레르기 관련 뉴스만 전하는 매체를 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많이 아는 건 없고, 좋아하는 건 아이스크림이나 치킨 정도니까. 빙하기에 멸종한 치킨의 조상, 공룡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매체를 만들 수 있겠다. 요지는 재미를 정보를 전달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 분야를 다루는 것이 좋다. 한반도에는 공룡 서식 증거가 다소 빈약한 편이니, 치킨 다음으로 좋아하는 여행을 매체 주제로 삼았다.
아니 이게 블로그와 무슨 차이냐고? 이제부터 매체 콘텐츠를 구성함에 있어 블로그와 차별화를 이루도록 하겠다. 블로그의 목적은 자신의 의견을 웹에 고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있다. 매체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다만 매체는 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 하겠다. 그러니 본 매체에서는 여행 산업계 동향과 사실에 기반한 정보 전달, 전문가 식견이 담긴 칼럼과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중심 콘텐츠로 운영하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하는 생동감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래도 블로그와의 차이점을 모르겠다고? 그럼 웹디자인으로 차별화를 이루겠다.
사실 1인 미디어가 블로그 양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다양한 양질의 정보를 빠르게 업데이트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값싼 AI가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내 인건비가 더 저렴한 것 같다. 대신 눈요기로 블로그와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유튜브에서 웹디자인하는 법을 검색했다. 친절한 설명을 따라 도메인을 구입하고, 호스팅 계정을 구매한 뒤 워드프레스를 설치했다. 그다음 연관 동영상에서 워드프레스로 10분 만에 웹사이트 만들기를 클릭한다. 또다시 친절한 목소리를 따라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를 만든다. 10분 더 걸린다. 만들고 보면 아쉽다. 연예인 비화 검색하면 나오는 사이트처럼 보이고, 감각적이지 못한 것 같다.
매체라면 분주해 보일 필요가 있지 않나.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읽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걸 혼자 다 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AI보다 저렴한 나는 혼자 해보기로 결정했다. 고행 매체니까 고생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행 정보를 찾아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건 단신 기사에 불과하다. 직접 체험한 것들, 현지 가이드, 여행자들의 경험을 두루두루 다룰 필요를 느꼈다. 또한 여행 산업계 이슈를 다루어야 하니 관련 업계의 정보를 취재할 루트를 찾아야 했다. 여기까지 시도했고, 정보를 취합하다 혼자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기사 업데이트 주기를 길게 잡아 긴 호흡으로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도 고민해봤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직 더 수행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고행 매체는 접기로 했다.
본 기사 작성을 위해 플랫폼에서 독립하는 것을 시도했다. 시작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이 어려웠다. 웹사이트 디자인도 쉽지 않았다. 툴은 갈수록 편리해지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웹사이트에 올린 콘텐츠를 사람들이 방문해 보게 만들려면 노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이것 좀 보라고 알리는 것이다. 주요 플랫폼에 여기 와서 이것 좀 보라고 알리다 보면 플랫폼에 종속되기 쉽다. 탈출했다가 제 발로 회귀하는 것이다.
플랫폼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은 콘텐츠 제작자로서 겪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플랫폼이 너무 많다. 콘텐츠 제작자는 같은 이야기를 플랫폼에 따라 다르게 빚어 전해야 한다. 콘텐츠를 한곳에만 올릴 수는 없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 플랫폼에 알맞은 형태로 콘텐츠를 변환해 유통시키는 것은 플랫폼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업무다. 소셜미디어 담당자라면 각 소셜미디어 채널마다 다른 담당자를 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콘텐츠를 링크 등으로 단순화해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매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기업 홍보 콘텐츠를 운영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브랜드 저널리즘이라 했던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수립해 전략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기업 콘텐츠는 재미로 운영할 수 없다. 플랫폼 종류를 줄이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조회수와 구독자 확보를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이 과정으로 야기되는 것은 크리에이터의 번아웃이다.
자칫 플랫폼 탈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얘기만 했지만, 조금 더 디깅하다 보면 훌륭한 독립 매체를 발견할 수 있다. 포털에 뉴스를 싣지 않는 한 패션 정보 매체의 경우에는 유료 구독자에게만 뉴스를 전한다. 통찰력 있는 패션 트렌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한다는 점에서 해당 분야 정보가 필요한 사용자에게 유용한 서비스다. 브랜드 보도자료 위주의 발 빠른 뉴스를 전하는 웹매거진은 많다. 신제품 리뷰 위주의 기사만 전하는 웹매거진도 많이 늘었다. 그런 것들과는 달리 저널리즘에 충실한 웹미디어도 있다. 조회수나 영향력을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해당 분야를 밀도 깊게 다룬다는 점에선 전문가나 관심 있는 이들의 핫사이트가 될 수 있다. 브랜드 친화적이지도, 정보 접근성이 낮은 것도 아닌 매체들의 생존과 운영을 보면 플랫폼 탈출이 영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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