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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드림 키친

삼성전자의 데이코 하우스를 다녀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빌드인 주방 가전 브랜드다. 주방 트렌드는 달라지고 있는데, 급증하는 1인 가구의 집에는 주방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주방과 호화로워지는 주방 사이에서 갖고 싶은 주방을 상상했다.

UpdatedOn June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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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이 필요한가? 무슨 엉뚱한 소리냐 하겠지만 진지하게 묻는 거다. 지금 당신의 거주 공간에 주방은 쓸모 있는 공간인가?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가구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가구 구성원이 적을수록 요리보다 배달이 싸게 먹힌다. 된장찌개 하나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사는 것보다 시켜 먹는 게 저렴하다. 요리 한 번 하겠다고 식재료를 사놓고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집에서 하루 세끼를 해결할 수 없는 직장인도 많다. 재택근무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출퇴근하는 직종, 야근이 잦은 직업은 하루 한 끼 집에서 식사하는 게 어렵다. 피곤한 몸으로 요리하는 건 꽤나 번거로운 행사다. 심지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건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그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계산하면 퇴근길에 테이크아웃해가는 편이 낫다. 뒤처리도 간편하고. 밀키트도 잘 나오지 않나. 그러니 주방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해본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타협해서 이건 어떤가. 싱크대와 레인지, 냉장고 꼭 필요한 최소 기능만 남기고 주방 면적을 줄이자. 줄어든 면적을 다른 공간으로 채운다면 어떨까? 빈 공간을 게임룸으로 채워도 되겠고, 당구대를 설치해도 좋고, 트램펄린을 놓으면 신나겠지.

주방 무용론을 펼친 건 최근 둘러본 공유 거주 시설들 때문이다. 1, 2인 가구를 겨냥한 공유 거주 시설은 주방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주방이나 세탁실, 창고, 영화감상실, 오피스 공간은 다른 층으로 분리해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요리가 하고 싶으면 내 집이 아닌 공유 주방을 이용하고, 친구와 술 마시며 영화 보겠다면 홈시어터가 구비된 공유 공간을 사용하고, 재택근무나 화상회의 등은 공유 오피스 공간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집은 휴식하는 공간, 편안한 공간으로만 남는다.

집 안에는 주방과 세탁, 운동,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여유 공간들이 없으니 동일한 평형의 다른 거주 시설보다 사용 공간이 넓다. 조금 더 쾌적하게 휴식하는 것이다.

자, 정리하면 1인 가구의 거주 문화가 고시원의 확장 버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으리으리한 조망권과 깔끔한 건물, 다채로운 인프라, 이동이 편리한 입지가 1인 가구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집에서 인터넷하고 TV 보다가 잠이나 자라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럼 그것 외에 할 게 더 있나?

주방을 줄여가며 점점 더 비좁은 굴로 몰려가는 1인 가구의 현실과 달리, 다른 쪽에서는 호화로운 빌트인 주방 가전이 위세를 넓혀가고 있다. 30평형대 아파트에 맞춘 최첨단 주방 인테리어부터 중정 풍경을 통유리창을 통해 주방으로 끌어들이며 주방의 공간을 확장한 인테리어 등이다. 살다 보면 번잡스러워지는 게 주방 아니겠나 싶다가도 깔끔하게 빌트인으로 정리된 주방 쇼룸을 보면 이 정도 디자인이라면 깨끗하게 살아봐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최근 삼성전자는 럭셔리 빌트인 가전 ‘데이코’ 브랜드를 체험하는 쇼룸을 열었다. 아메리칸 럭셔리를 상징하는 데이코는 영화에서나 보던 으리으리한 상류층의 모던한 주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명품 주방 가구는 질감도 색상도 다르다. 가전 매장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냉장고만 한 와인셀러가 반드시 있고, 가전제품은 티나지 않게 빌트인되었으며, 아일랜드 테이블은 특수 폴리싱 처리된 소재로 흠이 생기지 않는다. 컵라면을 먹어도 성공한 사업가의 소탈한 일상처럼 보인다. 호화로움에 압도된다.
주방 후드는 실시간으로 실내 공기를 관리하며 생선 굽는 연기만 흡입하는 게 아니라 공기질 정도에 따라 흡입력을 조절하며 실내 공기를 정화한다. 화력의 세기를 LED 가상 불꽃으로 표현하는 인덕션이나, 온도 변화를 최소화해 식재료의 맛과 질감을 유지하는 냉장고 기능 설명을 듣노라면 거주 공간에서 주방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집에서 요리하는 삶을 생각했다. 그 과정의 즐거움도 떠올렸다. 자신이 먹을 것을 정성스레 만드는 것이 나를 아끼는 태도라는 생각도 했다. 주방이 없으면 나는 자신에게 어떻게 애정을 표현해야 하나? 편지라도 써?

1인 가구 시대에 멋진 주방을 갖는 건 사치처럼 보일까? 요즘은 사치라는 말을 안 쓰니까 여유로운 자산가라고 하겠다. 하여간 멋진 주방 갖기는 드문 일이긴 하다.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만 많아서 되는 것도, 시간이 많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에게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대접할 자존감과 집에서 요리할 여유, 요리할 수 있는 크기의 주방이 필요하다. 돈도 시간도 자신감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손맛까지 있으면 반칙이고.

돈도 시간도 실력도 없지만 자신감은 있는 나는 꿈의 주방을 상상했다. 적당한 개성과 불편하지 않은 면적, 냄비 한 세트와 접시 3세트는 보관할 수납공간, 오븐과 4구 인덕션 정도가 현실 가능한 주방이다. 구성 요소를 상상했으니, 취향을 담을 차례다. 30대 후반 남성이 가진 주방의 로망을 데이코 쇼룸에서 풀어보겠다.

쇼룸에는 검고 묵직한 분위기가 연출된 공간이 있었다. 배트케이브의 와인 바같이 생겼는데, 알프레도가 요리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바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이는 주방이 갖고 싶었다. 매혹된 것은 검고 묵직해서만은 아니다. 인테리어 소재에서 자연의 속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석장에서 스윽 잘라온 것 같은 소재, 화강암 본연의 질감을 남겨 매끄럽기보다 오돌토돌한 촉감이 느껴지는 테이블. 암석의 질감은 공간 전체로 이어진다. 냉장고의 외부 패널도 수납장 마감도 바위처럼 차갑고 거칠다. 나무로 마감한 도어들 역시 검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선명한 스테인리스 질감들이 암석과 대비를 이룬다. 철과 돌 그 안에 담긴 최첨단 기술들.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림 키친’일 뿐이다. 좋은 주방을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좋은 주방을 갖기 어려워진 시대에 주방에 대한 로망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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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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