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조세호에겐 묻지 않았다. 이 내용을 설명하려면 구구절절 엉뚱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이 글의 목적 중 하나다. 새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후폭풍이 거셌다. 왜 나왔냐 이거지. 직전 대통령이 출연 요청을 했냐 안 했냐, 다른 대선 후보가 출연 요청을 했냐 안 했냐, 이딴 게 화두가 되었다. 제작진은 안 했다고 했고, 당사자들은 출연 요청을 했다고 전했다. (진짜 구구절절이네.) 추정하기에는 제작진이 거짓말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진행자 핑계를 댔다. 정치인이 나오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그동안 거절했다나 뭐라나. 그렇다면 새 대통령은 왜? 진실이 뭐냐, 언론과 시민이 물었으나, 제작진은 입을 닫았다. 그러자 당시 여당 소속 정치인이 국민 MC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말이 없으니 진행자가 말해야 한다는 논리. 그런데 그 자리에, 그러니까 방송 현장엔 진행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아무도 그에겐 묻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니 내막을 알 텐데 묻지 않았다. 없는 사람처럼. 그러나 있으며 존재감도 명확하다.
(짧게 보태면, 여당 소속 정치인의 요청은 잘못됐다. 제작진이 대답을 안 하면, 대답할 때까지 물어야지, 왜 진행자에게 물어? 굳이 여기 적는 건, TV와 라디오에 출연해서 그 논리가 옳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하기에.)
몇 년 전 조세호는 뜻하지 않게 크게 웃겼는데 “야, 너 안재욱 결혼식 때 왜 안 왔어?” 이 질문 덕분이었다. 조세호는 안재욱을 몰라서 가지 않았다. 이 팩트는 미세하게, 안재욱을 몰라서 ‘못 갔다’로 변한다. 이 담론의 미학은 ‘안 갔다’와 ‘못 갔다’의 치환에서 발생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전제는 조세호가, 아니 조세호라면, 안재욱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왠지 안재욱 결혼식 때는 훨씬 더 잘생기고(‘얼평’ 아님, 아니 맞지만 관심 없음), 훨씬 더 지명도 높은 스타만 초대받을 것 같다. 그러니 조세호가 질문받은 찰나, 다른 패널들조차 순식간에, ‘조세호도 초대받았어? 정말?’이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조세호가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고 말하자 본인들이 느낀 의문이 공허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크게 웃는다. 조세호의 슈퍼스타적 가능성은 이 지점에 존재한다. 크게 웃어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조세호도 초대받았어? 하는 의문에는, 혹시 어쩌면, 조세호는 초대받았을 수도 있어, 라는 판단이 내재되기 때문에. 조세호라면! ‘의외로’ 인기 있는 조세호여서.
수년이 지났고, 조세호는 그때보다 유명해졌으며, 존재감 없이 강렬한 캐릭터는 지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 조세호는 조세호뿐이다. 남창희랑도 친하고, 이동욱과도 친한 조세호는 조세호뿐이다.
이런 조세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굴까? 이 글은 특정 진행자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데 관심이 없다. 굳이 적자면, 조세호의 동시대성을 다루는 글인데, 그러다 보니 옆자리에 앉은 유재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뿐. 한때 유재석을 1인자로 치켜세우며 그 자리를 가녀린 손목과 발목으로 노리던 자칭 2인자는 박명수였다. 당시엔 유재석도 박명수도 젊어서 1인자는 2인자의 난동을 제압할 힘이 있었다. 이제 유재석은 나이 들고, 사업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명성을 지켜야 할 사정이 너무 많이 생겼다. 2인자의 쿠데타를 받아줄 여유가 없다.
조세호는 2인자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1인자를 위협할 의지도 없다. 그냥 거기 있다. ‘감초’처럼, 음, 비유가 예스러워서 안 어울리는데, 그렇다면 ‘라면 스프’처럼, 아니 라면 스프는 몸에 안 좋은 느낌이니, 아이스커피의 ‘얼음’처럼. 이제 유재석에겐 1인자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2인자 혹은 스스로 2인자라고 말하며 달려드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시 처음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아무도 조세호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유재석이 어떤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지 공개된 적은 없다. 그러나 팬들이 나름대로 판단할 근거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언어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어서, 말을 곰곰이 들으면 결국 성향은 드러난다. 하지만 조세호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조세호가 슈퍼스타가 아니어서? 지금 대한민국 예능 패널 중 조세호만큼 인기 있는 사람이 꽤 많네. 뭐, 그건 그거고.
조세호의 언어는 목적성이 없다. 그의 언어는 사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시대성을 내포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그냥 거기 있는 언어다. 그러니 조세호에게 묻지 않았다. 질문엔 목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화려하고 재능 넘치고 눈치 빠르고 시끄러운 연예인들은 꽤 많다. 그들의 목적성은 아마도 더 많은 분량을 확보하는 것일 테고,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러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조세호는 그냥 있다. 그냥 있는 사람은 없는 것과 명백하게 다른데, 이 부분을 구구절절 적고 싶진 않다.
조세호의 언어에 대해 부연하자면, 약간 억울하고, 약간 철부지 같은, 못난 동생의 언어다. 오직 그 특징만이 있다. 이런 동생이 기특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의외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의외로 방 청소를 깨끗하게 해두었을 때, 의외로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 의외로! 그래서 나는 조세호를 의외로 슈퍼스타, 라고 부르고 싶다. ‘의외로’와 ‘슈퍼’는 영 안 어울려서, 조세호에게 어울릴 것 같달까.
시청자는 못난 동생이 의외로 선전할 때 뿌듯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만약, 여당 소속 정치인이 제작진이 말을 안 하니 국민 MC가 말하라, 에서 더 나아가, 국민 MC가 말 안 하니 조세호가 말하라고 했다면, 시청자는 분노했을 것이다. 아니, 조세호가 뭘 안다고 걸고 넘어져. 사랑받는 중이다. 조세호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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