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시작하기 전에 스태프들 모두에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꾸벅 건네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저를 예쁘게 찍어주려고 모이신 분들이니까요. 사실 인사드리는 게 힘든 일도 아니잖아요. 좋은 인상도 남길 수 있고요. 어딜 가든 인사는 꼭 하려고 해요.
무표정일 땐 차가워 보이는데 웃으니까 인상이 확 바뀌네요.
그렇죠? 제 첫인상이 무서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뭐, 나쁘지 않아요. 저는 도도한 이미지가 좋거든요.(웃음)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센세이셔널한 흥행에 이어 DKZ의 ‘사랑도둑’까지 잘되고 있어요.
잠을 못 자도 감사하고 행복하죠. 팬분들이 생각보다 항상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셔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앨범 판매량이라든가, 영상 조회수라든가. 내가 이 정도 올라왔구나, 체감할 때 항상 팬분들이 그 이상을 보여주시거든요.
<시맨틱 에러>는 힘든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 더 각별하다고요.
사람들이 고3 수험생 시절을 다시 보낼 수 있냐, 없냐 농담 삼아 얘기하잖아요. 제게는 2021년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만큼 힘들었어요. 팀도 개편되고, 열심히 활동해도 성과 없는 시기였거든요. 앨범 수익은 안 나고 마이너스였죠.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우울감이 몰려올 때 <시맨틱 에러>를 만난 거예요. 정말 좋았어요. 현장도 무척 화기애애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거든요. 이 작품을 찍으면서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이거였지’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게 소중했던 작품을 대중도 좋아해주시니, 선물 같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촬영을 마친 날 그렇게 많이 울었어요?
네. 서러웠어요.(웃음) 극 중 인물인 상우와 재영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허한 기분이었죠.
버스킹을 하고, 팬이 별로 모이지 않아도 팬사인회를 하고, 출석 체크하듯 성실하게 음악 방송에 나왔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당시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은퇴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팬들 앞에 설 때는 그런 마음을 보이면 안 되니까,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죠. 그때 저를 지탱해줬던 건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나 봐요. 대중적이지는 않은 BL 장르라 부담됐을 텐데, 지금 <시맨틱 에러>는 한국 웹드라마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골랐다고 하기엔 뭐한 게, 그 작품밖에 들어온 게 없었어요.(웃음) 회사에서는 아이돌 이미지 면에서 걱정한 건 사실이긴 해요. 제게도 부담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만둘 각오까지 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후회도 해보고 하는 게 낫지, 안 해보고 후회하면 사람이 비참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무엇이든 부딪혀보려고 하는 타입이에요. 그리고 대본 리딩을 하고 상대 배역인 박서함 배우를 만나니 일말의 부담감이 사라졌어요. 정말 잘 맞았고 금세 친해졌거든요.
<시맨틱 에러>가 한국 드라마 신에 나타난 뉴 타입의 에러 같은 존재라면, 당신에게 이 드라마는 어떤 의미인가요?
기적 같은 에러죠. 사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사실 맨 처음 사진만 공개되었을 때는 원작 팬분들이 생각했던 상우가 아니라는 말들도 많았거든요. 기존의 상우를 좋아해왔던 분들에게는 원치 않은 작품일 수도 있었을 테고요. 그런데 이 멋진 에러가 제게 기대치도 않았던 성과를 가져다준 거죠.
이 작품을 만나기 전과 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신감도 되찾으면서 ‘내가 하려고 했던 게 맞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죠.
오늘 보니 추상우와 박재찬은 다른 사람 같아요. 전자가 무뚝뚝하다면 후자는 사랑이 많은 사람 같아 보여요. 맞나요?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까 저도 변한 거예요.(웃음) 받은 만큼 베풀고 싶어지니까 성격이 점점 바뀌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를 엄청 귀여워해주시니까 제가 귀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예전엔 성격이 음침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죠.(웃음) 옷도 검정색만 좋아했는데 요즘엔 밝은 것도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사실이 있나요?
저는 모든 게 다 보이는 사람이라서요.(웃음) 제가 피곤해하면 팬분들이 바로 알아채시고, 신났다는 것도 바로 아세요.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거짓말도 다 티나요.
어릴 땐 어떤 아이였나요?
호기심 많은 아이요. 사고도 많이 치고, 엄마한테 많이 혼나고. 그 와중에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건 대여섯 시간씩 가만히 앉아서 집중해서 했대요. 레고나 만들기 같은 거요. 그런데 하기 싫은 건 5분도 안 돼서 못하겠다 하니까, 제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계속 찾아주려고 하셨죠.
언제부터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대구에 살다가 열한 살 때 서울 목동으로 올라왔는데, 학구열이 치열한 동네였어요. 저는 공부랑은 연이 없어서 좀 힘들었죠.(웃음) 그러다 중학생 때 영어 시간에 과제로 저스틴 비버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걸 따라 부르다 음악에 흥미가 생겼어요. 전 하나에 꽂히면 무조건 그걸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 후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기획사 연습생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고3 때 데뷔했죠. 연습하고 작사 작곡하느라 연습실, 작업실에 하루 종일 붙어 있었어요.
그때 쓴 곡들도 있어요?
꽤 있죠. 지금 들으면 조금 부끄럽지만.(웃음) 전 회사를 나온 후 전업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적도 있어요. 그때 이후로 많이 썼죠.
작업은 주로 언제 해요?
제가 새벽형 인간이라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잡생각이 많거든요. 그럴 때 작업도 하고 가사를 쓰면서 생각을 털어버려요. 위스키를 온더록스로 마시기도 하면서. 푹 빠져서 작업을 하면 새벽 5시쯤 되는데, 이슬 맺혀 있는 시간대잖아요. 해가 뜰락 말락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습한 냄새가 나는. 그날 작업한 곡을 들으면서 그 무렵의 거리를 걸어서 집에 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
앞으로 어떤 노래를 쓰고 싶나요?
저는 DPR LIVE나 릴러말즈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을 좋아해요. 그루비한 힙합, 알앤비 곡들을 작업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필름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면서요?
맞아요. 요즘엔 미놀타 필름 카메라를 쓰고 있어요. 물론 휴대폰으로도 사진 찍고 편집 앱으로 그레인 넣어주고 색감 보정하면 필름처럼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 휴대폰 카메라는 원하는 만큼 다 찍을 수 있지만, 필름 카메라는 셔터 한 번 한 번 신중해야 하잖아요. 요새 필름 값도 많이 비싸졌으니까.(웃음) 단 한 컷을 위해 예쁜 구도를 찾고 공을 들여야 하는 그 과정이 즐거워요.
좋아하는 피사체가 있나요?
풍경 찍는 걸 좋아해요. 박서함 배우님이 군대 가시기 전에 함께 제주도에 놀러 갔는데, 그때 제주 바다를 참 많이 찍었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배역이 있나요?
로맨틱 코미디요.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드라마 <펜트하우스> 주단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나쁜 사람! 같이 해보고 싶은 감독님은, 꿈은 크게 가지랬다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님이요.(웃음) 저 <인터스텔라> 다섯 번 봤어요. 우주를 좋아하거든요.
우주가 왜 좋아요?
우주를 생각하면 사람이 한없이 작아지잖아요.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죠. 이런 생각도 해봐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의 꿈속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주를 다룬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잠들기도 해요.
만 스무 살입니다. 지금은 어떤 나이인가요?
뭘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모든 것에 부딪혀보고 깨지고 깨달으면서 달려가는 시기예요. 저는 오히려 이 시기를 얼른 거치고 나이가 들고 싶어요. 스물여섯 살 정도? 조금 성숙해질 법한 나이요. 제가 목표로 정한 건, 스물다섯 살 쯤에 차를 장만하는 거예요. 지금도 살 수 있지 않냐고요? 에이, 지금은 시기상조죠. 어릴 때는 차 없는 삶을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재찬에게 성장이란 어떤 건가요?
살아가는 이유. 어느 분야에서도 늘 나보다 앞서가는 존재는 있을 거예요.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도요. 그러니 사람은 계속 성장해 나가려고 노력해야죠.
신인 배우이자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아이돌로서 어떤 야심을 품고 있나요?
뭘 맡겨도 기본은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원대한 야심으로는 노래를 해도, 곡을 만들어도, 사진을 찍어도 이건 그냥 박재찬이구나 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고요. 사실 배우로서는 아직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잡지 못했어요. 좋은 작품 만나고, 좋은 선배님들을 보면서 습득해야 할 시기예요.
요즘 되새기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원래 하던 대로. 좋은 일이 있다고 붕 뜨지 않으려 해요. 그러면 실수하기 쉽거든요. 저는 엄마가 제 롤 모델인데요, 엄마는 늘 겸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말고 자기 것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셨어요. 그러니 저는 앞으로도 원래 하던 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