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른, 아홉> 촬영은 끝났죠?
1월 초에 끝났어요. 푹 쉬고 있었습니다. 유튜브도 한동안 쉬었어요. 휴식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이제 다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서른, 아홉>에서 맡은 김소원은 설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인물이에요. 우울의 밑바닥을 찍어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저는 캐릭터를 잘 털어내는 편이에요. 소원이의 감정을 오래 잡고 있진 않았어요. 촬영 기간에는 인물의 감정을 연기하고, 한 장면이 끝나면 다음 신을 준비해요. 소원이의 끝을 받아들이고, 또 잘 털어냈어요.
배우에게 궁금한 건 감정을 어떻게 털어내는가예요. 여러 인물을 연기하면, 그 인물들이 자신 안에 남아 있지 않아요?
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금세 털어내기도 하지만 오래가는 인물도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연기했던 인물의 모습이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는지요. 그런데 있더라고요. 영화 촬영이 끝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싱글라이더> 지나의 모습이 저에게 녹아 있었어요.
내게 남아 있는 연기의 흔적은 언제 발견돼요?
생각하지 않았을 때요.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느껴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평범한 순간에요. 또 그 캐릭터와 장면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툭툭 연기의 흔적이 발견될 때가 있어요.
그러고 보면 소희 씨는 일상적인 배경이 담긴 작품을 많이 했네요.
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부산행>은 장르적인 특성이 강한 영화라 진희가 떠오른 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싱글라이더>나 일상적인 연기를 했을 때는 종종 연기의 흔적을 발견해요. 단편 <메모리즈>를 찍고 나서도 느꼈어요. 연기한 캐릭터가 제게 녹아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실제 저와 비슷한 인물이고 공유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캐릭터는 제가 가진 것들로 만들어서 더 끌리고 공감이 돼요. 제가 가진 것들로 <서른, 아홉>의 김소원를 개발한 것이죠. 그래서인지 작품을 끝내고 난 후에는 본래 제가 가진 어떤 점들이 소원이 같다고 느끼는 거죠.
소희 씨가 가진 김소원다운 면모는 어떤 건가요?
소원이가 가족에게 굉장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또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서인지 순수한 면이 있어요. 해맑고 티 없어요. 그런데 기저에는 불안하고 어둡고 또 슬픔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이 부분이 저는 더 와닿았어요.
쓸쓸함은 자신이 가족 구성원이 아닌 혼자라는 점에서 기인한 거겠죠?
드라마에서 예진 언니가 맡은 차미조가 이런 말을 해요. 너무 좋은 환경에 입양되어 사랑을 많이 받고 잘 살았지만 입양아라는 기억과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고요. 소원이도 애기 때 입양된 게 아니기에 입양 전의 기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어요. 밝은 모습으로 자랐지만 입양 전의 기억을 잊지는 못할 거예요.
고독의 정서를 연기하려면 비슷한 경험이 필요할까요?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상황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원이가 가진 불안은 아버지와의 불안정한 관계에서 기인해요. 아버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요. 안전해 보이는 환경이지만 사실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불안함이 커졌을 거예요. 어릴 때는 보호받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혼자 살아가야 해요. 혼자 살아야 하는 사회인으로서 불안을 느낄 것도 같아요. 그 불안은 다들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소원이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저도 일하면서 불안했던 적이 많았어요. 좋은 날들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불안이요.
소희 씨가 느꼈던 불안은 뭐였어요?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어요?
저는 잘 극복하지 못해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 들였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환경이 바뀐 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원더걸스 당시 미국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전과는 다른 힘듦이었지만 제가 고민하고 불안해했던 것들은 사라졌어요. 미국에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대중의 관심이 언제 끝날지 고민할 것도 없고, 지켜야 할 것도 없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자연스레 극복하게 됐어요.
<서른, 아홉>에서 김소원이 인상적인 순간은 술집 앞에서 오빠(김선우)를 만났을 때예요. 충격을 받은 오빠에게 소원이는 화를 내요. 민낯을 들킨 사람처럼요. 만약 소희 씨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제일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킨 상황이죠. 저 역시 소원이처럼 화를 냈을 거예요. 소원이는 이제 죽는 것밖에 할 게 없다고 말해요. 오빠가 여기 술집 앞까지 찾아왔다면 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요. 저도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할 것 같아요. 제 끝을 보여준 것 같아서, 이제는 진짜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제 마음이 정말 많이 아플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잘해주는 사람에게 화를 낼까요?
저도 언니에게 제일 화를 많이 내요. 저에게 친언니의 존재가 소원이에게는 선우 오빠겠죠. 그만큼 편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니까. 잘해주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내가 화를 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유튜브 얘기도 할까요. 유튜브 채널 ‘안소희’의 댓글창은 청정 지역이에요. 다들 예쁜 말만 남겨요. 왜 그럴까요?
제 콘텐츠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냥 무조건 고마워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글쎄요. 제가 편안한 모습을 보여서 좋게 말씀하시는 거 아닐까요. 관심 있는 주제로만 콘텐츠를 만들거든요. 흥미 있는 주제나 해보고 싶은 것들 위주로 제작하다 보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콘텐츠가 자극적인 재미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편해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유튜브의 세계는 기획력이 절반을 차지하지 않습니까. 기획은 누가 하나요?
함께하는 팀이 있어요. 회의에서 많은 얘기를 나눠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그래 이걸 해보자! 이렇게 아이디어가 갑자기 나오기도 해요.
소희 씨 유튜브를 보는 이유 중에는 신기함도 있어요. 소희 씨가 연예계 활동을 오래했지만 말을 많이 하는 걸 못 봤거든요.
활동한 기간에 비해 편안한 모습이 많이 노출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튜브에선 저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다들 제가 말이 많다고 하세요. 그런데 조용하던 예전 모습도 제 모습이에요. 10대 당시에는 말이 없었어요. 낯도 더 가렸고요. 멤버들끼리 있을 때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떠들기도 했어요. 또 당시에는 새로운 사람을 자주 만나니까 낯을 더 많이 가리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편안해졌고, 제가 노력한 부분도 있어요. 배우는 작품마다 팀이 바뀌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제가 마음을 열어야 할 필요성도 느꼈어요. 그래서 변화가 생겼고, 유튜브에서는 더 말을 많이 하려고도 해요.
대중은 소희 씨의 진솔한 모습을 좋아해요. 하지만 새로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직업이라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관객이 소희 씨의 실제 모습에 익숙해지면, 소희 씨의 연기에 몰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으리란 우려요.
그렇죠. 그 부분도 고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유튜브 시작 전까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요즘에는 시청자들도 캐릭터와 실제를 구분해서 잘 받아들여주세요. 연기와 가수를 병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배우들도 예능에 많이 나와요.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과거에 저를 돌아봤을 때는 원더걸스 소희라는 가수 이미지밖에 없었어요. 가수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요. 예능에도 잘 안 나갔고요. 가수 소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조금은 다른 색으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이제는 제 이미지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소희 씨 인생 작품이 궁금하네요. 드라마, 영화 다 좋아요. 하나만 꼽아보죠.
영화는 하나 꼽기가 너무 어려워요. 드라마는 보고 또 보는 걸 좋아하는데, 제일 많이 본 드라마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에요. 제 인생 드라마 중 하나예요. 노희경 작가님 글이 소희 씨와 잘 맞을 것 같아요. 진짜 좋아하는 작가님이에요. 노희경 작가님 작품을 많이 봤어요. <괜찮아, 사랑이야>도 보고, <디어 마이 프렌즈>도 봤어요. 그래도 저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제일 좋아요.
소희 씨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애정하는 건 누구예요?
<메모리즈>의 주은을 뽑고 싶어요. 비교적 최근에 한 작품이라 더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많이 공감한 캐릭터예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는 당시 제 상황과 똑같아서 겁이 나서 못할 것 같았어요. 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 정도로 와닿은 캐릭터라 가장 애착이 가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저는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만나고 싶은 캐릭터는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생각하지 못한 것도 해볼 수 있잖아요. 그래도 꼽자면 몸 쓰는 액션 캐릭터요. 여성 캐릭터가 몸 쓰는 액션물이 많지 않으니까 도전해보고 싶어요.
무대가 그리울 때도 있어요?
안 그립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가수 활동을 한 거고요. 무대에서 느끼는 것과 배우로서 느끼는 건 완전히 달라요. 감사하게도 큰 무대를 많이 경험했어요. 5만 명의 에너지를 받는 건 무대에서가 아니고선 느낄 수 없잖아요. 그 에너지가 그리울 때도 있어요. 콘서트 관람 가면 그립기도 해요. 무대 위의 저 사람은 그 에너지를 느끼고 있잖아요. 하지만 아쉽지는 않아요. 저희는 투어를 많이 해서 무수하게 무대에 섰어요. 그래서 그립기는 하지만 아쉽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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