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는 매년 시대정신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한다. 올해는 팬데믹 속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시각을 전시했다. 지난 4월 1일 막을 내린 전시 <O! Leica 2022 – Out of the Ordinary>에서 주목할 시선을 보인 두 작가. ‘앰부쉬’ 패션 디자이너 윤안과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가 시대정신을 말한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우연이라 해야 할지 어떤 필요인지 모르겠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카를 사용했다. 한 10년째 써온 셈이다. 라이카로 꾸준히 작업해온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에게는 영광이다. 라이카 사용자로서 또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라이카의 모델을 테스트하고, 앰배서더 역할과 전시까지 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라 생각한다.
지금 어깨에 메고 있는 모델은?
라이카 M11이다.
전시의 작품들은 라이카 M11로 촬영했나?
라이카 M11은 지난 12월부터 사용했다. 지금 전시된 사진은 2013년부터 라이카로 촬영한 사진들을 구성한 것이다. M11 외에도 M 모노크롬, M240, M10 다 섞여 있다.
작품 주제가 사회적 풍경이다. 사진 선별 기준과 구성 방식 등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뉴욕 길거리 사진과 서울 길거리 사진 그리고 서울의 다른 모습이 더 있다. 재개발 지역이나 옛날 아파트를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섞어본 것은 처음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홍진환 디렉터는 친분도 있고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진가다. 그가 사진들을 섞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섞어보니 나도 몰랐던 어떤 울림과 반동이 보이더라. 새로운 이야기였다.
길거리 사진에서 재개발 지역과 옛날 아파트를 포착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진을 시작한 당시에는 포토저널리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스로 사진을 굉장히 폭좁게 규정했다.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작업 내용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2011년과 이듬해에는 뉴욕에서 학교 다니며 작업했고, 2013년부터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기자를 하려고 사진을 시작한 게 아닌데 너무 경직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던 차에 멘토인 게리 나이트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누구도 너에게 꼭 사회적 이슈만 찍으라고 한 적 없다고. 스스로를 규정할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든 그때 마침 일본 다큐멘터리 사진가 다이도 모리야마의 인터뷰를 접하고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말하길, 자신에게 사진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자 이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너무 포토저널리즘에 빠져서 사진의 본질, 내가 사진을 선택한 이유를 잊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사회적 이슈, 인권문제, 노동문제는 잊고 순수하게 사진만 찍어보기로 했다. 걸어다니면서 눈에 띄는 것들을 찍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뉴욕 작업이다. 서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사회적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일기 같은 작업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때로는 명상이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단 거리로 나간다. 그냥 나가기도 하고, 위스키 한잔하고 나가기도 한다. 사진을 찍다 보면 때로는 영상 같기도 하다. 또 어떤 때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며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큰 틀에서는 사회적 풍경이지만 깊게 들어가면 사회에 속한 나, 이 길을 걷는 지금의 나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라본 사회 풍경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그렇다. 이 작업은 사회 풍경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회 이슈를 생각하면 결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 작업에선 이슈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간중간 내가 지금 서울에서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팬데믹 당시 록다운된 뉴욕과 서울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상황에 나는 어떻게 반응했나. 그런 것들이 섞여 있다.
관심이 생기는 것에 셔터를 누른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관심 가는 현상은 무엇일까? 지금의 서울과 뉴욕에서 셔터를 누른다면 사진에 무엇이 담길까?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니 뉴욕보다는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이 크게 느껴진다.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교감하고 소통하며 통합되는 방향으로 갈 거라 기대했는데, 그 반대되는 흐름이다. 또 혐오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에 대한 기록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당장 문제를 발생시킨 사람들을 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바라봐야 하지 않나. 그러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작업을 생각 중이다.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특정 입장을 취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 한다고 보나?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 나는 중립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저것이 문제라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이미 입장은 정해진다. 중립적이라면 저게 문제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뜻이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의식을 갖는 이슈에 대해서는 한쪽 편만이 아닌 반대쪽의 의견도 반드시 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적대적인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굉장히 힘든 줄타기다.
이번 전시 주제가 ‘코로나 사태에서 달라진 순간들’이다. 뉴욕과 서울의 코로나 상황에서 목격한 변화는 무엇이었나?
뉴욕은 그야말로 아포칼립스였다. 미드타운에 살았다. 타임스퀘어와 5분 거리인데, 당시 타임스퀘어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거리에는 차도 거의 안 다녔다. 계속 걸어도 사람이 안 보였다. 지하철에도 아무도 없었다.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니 발견이라기보다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야겠다. 인류 멸망의 모습이 이런 풍경일까. 한 번은 브루클린을 갔는데, 좀비 영화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좀비의 공격을 받지만 영화 중반에는 좀비가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 등장한다. 브루클린이 그랬다. 맨해튼은 초토화되어서 사람이 없는데, 브루클린 브리지 아래 공원에선 다들 마스크도 안 쓰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다리 건너에선 세계 종말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는 풍경을 보면서 이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상황이 나아졌다. 그러다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에너지 넘치는 도시가 한순간에 에너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뉴욕과 서울 두 도시에서 인간이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숙주가 없어 결국에는 인간에게까지 전파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 우리가 앞으로 치르게 될 대가의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얼마나 더 큰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도 걱정된다. 환경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됐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현상의 문제를 발견하면 추적하는 작업도 하는지?
문제가 있다 싶으면 기록하고 이야기를 한다. 2017년에 다른 작업차 아프리카 가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가나에는 전 세계 전자 폐기물이 다 모여서 불 태워진다고 들었다. 현실은 그와 달랐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슬럼가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소규모로 전자제품을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서구 미디어에서는 마치 전 세계 전자제품의 무덤이라는 식으로 과장했다. 가나에서 2주간 있으며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들은 식민지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나에는 유럽의 쓰레기가 모인다. 사람들은 전자 폐기물을 태워 남은 구리선을 팔아서 하루를 연명한다. 누구는 폐차에서 떼어낸 부품을 팔아 생활한다. 식민 지배는 사라졌지만 경제 구조적으로 여전히 피지배 상태다. 그걸 보고 2주 더 머물렀다. 가나 서쪽 해안으로 갔다. 그 지역은 서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 무역선으로 실어 나르던 곳이다. 섬에는 노예를 가두던 성들이 남아 있다. 어떻게 이런 환경에 사람을 집어넣고 노예 취급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움직인다. 이 작업은 아직 발표는 못 했지만 노예무역이 시작된 상황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파악은 되었으니, 또 다른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상에 접근해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피사체에 매우 근접해야 한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사건의 본질인 피사체에 접근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건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다. 함께 오래 지낸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스승인 유진 리처즈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피사체와 물리적 거리 외에도 심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정말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데,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으니 유진 리처즈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 심지어는 촬영하다가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사진 찍으러 왔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부터 얘기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나는 누구고, 어떤 연유로 이 이슈에 대해, 아니면 당신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됐고,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자기 이야기부터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마음을 열거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교감하며 작업한다고 했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에너지가 넘쳐서 만나자마자 절친이 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 삶이 좋은 환경에 처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되지 않을까. 삼성 반도체 노동자 작업을 그런 식으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돕는 단체에 연락해 작업 의도를 설명하고 노동자들을 찾아가 인사드릴 때는 카메라를 안 가져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도 이야기를 한 뒤에야 사진을 찍었다. 결국 유진 리처즈의 가르침은 작업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모두 찍진 못했다. 내가 도저히 찍을 수 없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분은 일주일간 사진 안 찍고 이야기만 나눴다. 작업 방식은 작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어떤 경우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토저널리스트가 가져야 될 책무란 무엇일까?
사명감이라는 말을 굉장히 경계한다. 사명감, 정의 그런 것들. 포토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건 로버트 카파나 제임스 나크웨이같이 위대한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쌓아올린 후광이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 있는 것이지, 내가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나도 그들과 같은 존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은 독립적으로 작업한다. 단체나 기관이 권위를 준 게 아니다. 기자증이나 증명서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 누구도 권위를 준 적 없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게 사회 정의는 더더욱 아니다. 포토저널리스트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무서운 직업이 된다. 특히 사진은 굉장히 힘이 센 매체고, 폭력적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사명감은 비겁한 소리다. 사진에 대해 깊은 고찰이나 이 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사명감이라는 말 뒤에 숨는 것 같다. 포토저널리스트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캡션을 객관적으로 썼다 해도 해석이 잘못되면 사진 찍힌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가 생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소통하겠다면 무한한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