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회가 왔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의 러브콜을 받고 타이틀전에 임한다. 무려 오는 4월 10일 UFC 273 메인 이벤트이다. 정찬성의 최근 전적이 그리 좋지 못해 상위 랭커에 기회가 갈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런저런 우연이 겹쳐 생긴 둘도 없는 기회다. 2013년 조제 알도와 시합한 이후 약 9년 만의 타이틀매치기도 하다. 이 점은 분명하다. 페더급 극강의 챔피언 볼카노프스키에 비해 정찬성은 분명한 언더도그라는 점. 대부분의 시합에서 언더도그로 평가받아왔지만, 지금은 신체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데다 최근 시합에서 단점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무엇보다 챔피언이 P4P(파운드 포 파운드) 2위까지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점에서 확실히 승산은 적다.
하지만 과거 e스포츠에서 유행했던 ‘불가능이 아니다. 명백한 가능성’이라는 말처럼, 승률이 0%라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본 지면을 빌려 볼카노프스키의 최근 시합에서 보인 단점들을 간단하게 되짚어보고, 정찬성이 어떤 모양새로 벨트를 차지할 수 있을지 함께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한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찬성의 비교우위는 피지컬. 볼카노프스키가 신장 167cm에 리치 181cm인 데 반해, 정찬성은 신장 175cm에 리치 187cm로 유리하다. 하지만 피지컬 우위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평균 사이즈가 거대화된 UFC 페더급에서 볼카노프스키가 이미 많은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벨트를 차지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직전 방어전을 펼친 브라이언 오르테가는 신장 177cm에 리치 191cm로 정찬성보다 더 컸지만, 볼카노프스키가 완벽하게 타이밍을 지배하며 무려 아웃복싱 전략을 구사해 벨트를 지켜냈다. 오르테가는 정찬성이 무기력하게 패했던 상대라는 점에서 더욱 안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오르테가와의 방어전에서 볼카노프스키도 수차례 위험한 장면을 연출해 충분한 참고가 될 법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로킥 카운터. 볼카노프스키는 바로 로킥 괴물 조제 알도를 로킥으로 압도할 정도로 자주 구사한다. 단 로킥에 모든 걸 쏟아붓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횟수는 많지만 데미지는 비교적 적은 견제 및 콤비네이션용으로 사용한다.
이를 이용해 다양한 상하 킥복싱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르테가는 시종일관 밀리던 상황에서 3라운드에 로킥 캐치 카운터로 볼카노프스키를 넘어뜨리는 데 성공,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기요틴 초크, 다스 초크 등을 이용해 궁지로 모는 데 성공했다. 비단 로킥이 아니더라도 볼카노프스키는 카운터에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다. 카운터 능력이라면 UFC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찬성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부분이다.
볼카노프스키의 맷집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점도 한몫한다. 상기한 로킥 카운터도 그렇지만, 직전 경기인 맥스 할러웨이 2차전에서 몇 번 다운을 당하거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제대로 된 정타 한 번만 맞춘다면 순식간에 정찬성에게 승기가 기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6KO를 거둔 정찬성의 펀치력도 상당하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다음은 하위 그래플링 싸움 능력이다. 볼카노프스키는 어릴 적 그레코로만 레슬링을 수련하고 럭비 선수 경력도 있어 테이크다운 능력은 출중하지만, 정작 상대를 꼼짝없이 누르고 제압하는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다. 워낙 완력과 멘털이 강해 탈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오르테가의 수많은 서브미션 시도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찬성의 그래플링 능력은 8 서브미션 승으로 입증됐으며 오르테가의 스승 헤너 그레이시에게도 인정받은 만큼 어떻게든 바닥으로 끌고 들어가 주도권을 잡기만 한다면 서브미션 승이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테이크다운 디펜스 능력도 미지수다. 레슬러 이미지가 강하지만 과거 채드 멘데스와의 일전에서 볼카노프스키는 수차례 테이크다운을 당했고, 이후 경기들에서는 딱히 디펜스 능력을 보여줄 일이 없었다. 볼카노프스키가 의외로 테이크다운에 취약할 수 있으며, 상술한 서브미션 승, 혹은 파운딩에 의한 TKO를 노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정찬성은 이미 주짓수 마스터 댄 이게를 상대로 테이크다운으로 재미를 본 바 있으며, 어깨 부상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조기에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략, 상황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단점이 될 수 있다. 맥스 할러웨이 2차전 초반 생각지 못한 킥복싱 콤비네이션에 단단히 말려들었던 모습, 오르테가의 킥 캐치에서 비롯된 바닥 싸움이 매우 좋은 예다. 물론 특유의 격투 지능으로 금방 다른 카드를 꺼내 들어 다시 승기를 잡지만, 예상치 못한 의외의 전략을 준비한다면 정찬성이 충분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볼카노프스키의 단점만 나열해놨지만, 사실 그만큼 장점도 많기 때문에 상술한 요소들이 다음 달 시합 당일에는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똑똑한 데다 전략 수행 능력도 높고, 타격과 그래플링을 두루 갖춰 위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맞춤형 카드를 꺼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기마다 난전을 피하고 신중하게 임해 5라운드를 꽉 채우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정찬성도 좀비 스타일을 버린 이후 인파이팅에 의한 난전보다 카운터 위주 아웃복싱을 주로 펼친다. 지난 타이틀전 이후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어깨 부상이 다시 터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반 스퍼트를 올리는 것은 가급적 지양하고 경기 후반 모든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두 선수의 파이팅 스타일상 이번 시합은 1, 2, 3라운드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승패를 떠나 챔피언과 도전자가 각기 어떤 수 싸움을 주고받는지도 주요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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