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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내러티브 속 클리셰

한국형 서사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클리셰들.

UpdatedOn March 08, 2022

  •  

  • 광기 속에서 연대하기

    무리한 신약 개발로 좀비가 되는 역병 바이러스가 퍼지고(<해피니스>), 핵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는 미래로 타임슬립을 하고(<시지프스>), 사이비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며 사람들이 매일 군중의 심판을 받는다(<지옥>). 세상은 멸망했고 이야기는 그 세상을 구원할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멸망을 직접적으로 초래한 적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사람들의 연대를 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만난 순간, 자신이 얻은 연대의 힘으로 세상을 구한다. 이런 디스토피아 배경의 콘텐츠는 대부분 배경, 가상의 적을 판타지적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쏟지만, 한국 콘텐츠는 오히려 인물 간의 연대를 판타지적 교훈처럼 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현실이 폐허라는 합의가 있어서일까.

  • 밥은 먹고 다니렴

    ‘K-콘텐츠’는 자나 깨나 주인공의 경제적 형편을 걱정한다. ‘부’는 더 이상 권선징악의 수단이거나 해피엔딩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냥 ‘부자’가 되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전부다. 가난하다면 무조건 성실해야 하고(<이태원 클라쓰>), 성실하지 않다면 온갖 수모와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오징어 게임>). 이런 클리셰를 갖고 있는 드라마는 꼭 돈과 인생에 대한 격언을 매 에피소드마다 쏟아낸다. 보고 있으면 정신이 어지럽다. 돈의 더러운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 같지만, 전제 자체가 이미 돈을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안 될 건 없지만, 어쩐지 용납할 수 없는 모순처럼 느껴진다.

  • 남초 커뮤니티를 할 것 같은 히어로

    욕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D.P>에서 한호열(구교환)이 등장했을 때 나는 한국형, 아니 ‘우리형’ 히어로의 본질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 맞다. 한국에서 히어로를 하려면 스판 수트보다는 깔깔이나 군복이 맞겠지. 웃기되 우습지는 않아야 한다. 체구는 작지만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해야 한다. 소탈해야 하고 인정도 많아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누구에게든 참교육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의로워야 한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누구에게든 절대 지지 않아야 한다. <무브 투 헤븐> <경이로운 소문> <빈센조> <트레이서>. 꼭 닮진 않았지만 모두 우리형 히어로가 등장한다.

  • 더럽게 용감한 여자들

    여기서 ‘더럽게’란 용감함을 강조하는 수식어가 아니다. 정말 더러운 여자들을 말한다.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살며 사이코패스를 추적하는 수사관(<구경이>), 감히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고 진창에서 칼과 활을 휘두르는 조선 시대 계집아이(<연모>),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깡패 소굴에 들어가 피칠갑을 하는 여고생(<마이 네임>). 단순한 성별 반전이 아니었다. 여성 주인공만의 단독 서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은 가히 ‘성취’라 불릴 만했다. 사실 클리셰가 될 만큼 쌓인 것이 없지만 그만큼 지겨워지길 바라면서 한번 꼽아보았다.

  • ‘한드’ 클리셰를 이용하기

    출생의 비밀, 시한부 선고 같은 소재는 전통적인 ‘한드’ 클리셰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정의로운 경찰이 등장하는 수사극 역시 지겹도록 봐왔다. 최근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한 사람만>과 <괴물>은 ‘한드’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소재적 클리셰를 역으로 이용해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호스피스에서 뭉친 무서울 것 없는 여성 시한부들이 나쁜 놈들을 죽이고 다니는 과, 범인과 경찰이라는 죄의 도식 바깥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는지를 게임하듯 비추는 <괴물>은 전형적인 한국드라마의 클리셰가 없었다면 그 빛이 제대로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편 모두 한국인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안 봤다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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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복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Assistant 김나현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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