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네 스튜디오의 고요한 혼재
아크네 스튜디오는 스웨덴의 뿌리가 되는 유목민 공동체의 미학, 촌스러울 법한 벨벳과 패치워크의 믹스, 두 개의 액세서리 협업 컬렉션 등 F/W 컬렉션 전반에 전통적이고 대조적인 요소를 한데 섞고 병치했다. 남성 컬렉션에 여자 모델을 세운 것 또한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이 독특한 맥시멀리즘이 아늑하리만치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크네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과 컬렉션에 관한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이번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유목민들의 공동체에서 옷이라는 언어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각각의 스타일이 어떻게 그 고유의 방식으로 탄생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자란 곳인 스웨덴 북부의 유목민 공동체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고, 지역 전통의 뿌리를 컬렉션에 담아내고 싶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컬렉션에 반영되었나?
몇 년은 입은 듯한 느낌의 믹스매치 피스들을 담은, 굉장히 시적인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어깨가 넓은 트위드 코트나 청키한 울 소재 랩 카디건 등 아주 전통적인 아이템들을 아크네 스튜디오의 세계에 입문시켰다. 한편, 데님 라펠이 달린 워싱 처리한 턱시도라든지, 서스펜더로 고정한 울트라 하이웨이스트 트라우저처럼 전통적 요소에 반전을 가미한 아이템도 존재한다. 패치워크나 커팅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 피스도 있다. 패치워크 브로케이드 팬츠나 시어링 원단을 패치워크 스타일로 표현한 볼레로처럼 말이다.
룩들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입는 이에게 아주 창의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텍스처와 소재의 대비에 가장 큰 관심을 두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특히 니트 소재 비브(Bib)를 선보였는데, 실들 간에도 대비를 주고, 실에 엮어 넣은 나무 막대기도 실들과 대비를 이룬다. 이 비브를 전체 스팽글로 장식한 터콰이즈 셔츠에 레이어링하자 러스틱한 느낌과 화려한 느낌이 또 다른 대비를 이루게 되었다.
실루엣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나?
실용성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았다. 가슴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는 울트라 하이웨이스트 팬츠처럼 말이다. 이 팬츠는 서스펜더로 고정시켰는데, 굉장히 실용적인 의상인 것 같다. 승마 팬츠도 마찬가지다. 너무 독특한 디자인 같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커팅한 것이다. 이렇게 아이템들에 숨겨진 내구성을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아하는 디테일은 무엇인가?
이번 컬렉션은 단추에 가장 많이 집착했다. 오래된 플로럴 단추를 하나 발견하여 워싱이 들어간 가죽 트렌치코트에 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투명한 돔 안에 넣은 꽃 모양 단추들을 크러시드 벨벳 재킷에 달았고, 하트 모양 단추들은 라이너 코트에 달았다. 이 디테일들을 통해 아이템 하나하나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제시 리브스(Jessi Reaves)와 협업은 어땠나?
몇 년 전부터 제시 작품들의 팬이었다. 그녀는 다양한 아이템을 자르고, 섞고, 매치하여 놀라운 가구들을 만들어낸다. 우연히 찾은 재료들로 그녀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볼드하면서도 유쾌하지만, 그녀의 스케치들은 아주 작고 정교하다. 나는 그녀에게 뭐든 원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그녀의 스케치 같은 주얼리 피스들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협업을 할 때, 나는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을 뭐든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케로(Kero) 부츠에 대해 더 이야기해달라.
스웨덴의 케로 부츠는 새 부리 모양을 닮은 걸로 유명하다. 그 부츠 모양을 좋아하던 엄마는 어린 시절 나에게 케로 부츠를 신기곤 했다. 그땐 그 부츠가 정말 싫었다. 학교에 그런 부츠를 신고 오는 아이가 몇 명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이 부츠들을 아크네 스튜디오의 세계로 데리고 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케로가 담고 있는 헤리티지와 뿌리를 담고 싶어졌다.
남성 컬렉션을 여성들에게 입혀 촬영한 이유가 있나?
성별을 초월해보자는 의미다. 이 실험적인 룩북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다. 내게 있어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릭 오웬스의 빛나는 순간
릭 오웬스는 이번 컬렉션을 준비 중이던 지난 10월 이집트에 다녀왔다.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고대 문명의 무덤과 사원을 방문하면서 발견하게 된 이집트의 전통적인 왕관. 릭 오웬스는 유물이 된 왕관의 조형적이고 아름다운 형태에 매료됐고, 곧장 미국 출신 라이트 아트의 거장인 댄 플라빈(Dan Flavin)을 떠올렸다. 릭 오웬스는 그가 유심히 보던 왕관 디자인과 댄 플라빈의 형광등을 결합해 말 그대로 ‘빛이 형형한’ 헤드기어를 완성했다. 오버사이즈 테일러 코트와 아크릴 힐 플랫폼 니 하이 부츠를 신은 모델들의 머리 꼭대기에 불을 밝힌 헤드기어 덕에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릭 오웬스 특유의 실루엣에 방점을 찍었다. 릭 오웬스는 이번 컬렉션의 이름을 ‘Strobe’ 섬광등으로 이름 붙였다.
로에베의 매직 아이
로에베는 디지털 시대의 역설을 컬렉션에 다뤘다. 디지털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작된 완벽함, 또 다른 실재를 풍자하면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가정을 둔 의상들을 선보였다. 의도적으로 계절을 뒤섞은 아이템이나 옷의 안쪽에 자잘한 조명을 세팅해 광섬유처럼 착각하도록 했다. 컬렉션에 독창적인 상상력과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조너선 앤더슨이 자주 활용하는 특유의 방식 중 하나는 트롱프뢰유다. 이번 시즌엔 특히 신체를 중심으로 한 효과에 집중해 비정상으로 보이는 정상적인 것들을 일련의 실험적 아이템으로 풀어냈다. 맨몸을 프린트한 룩을 입어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얼굴과 몸이 반사된 것처럼 인쇄된 티셔츠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표현했다. 후프와 와이어를 사용해 어긋나게 뒤틀린 듯한 신체를 연출한 것도 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
디올 맨의 상징들
전에 없던 뉴 룩과 함께 등장한 크리스찬 디올,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그가 탄생시킨 디올 하우스가 창립 75주년을 맞았다. 남성 컬렉션을 지휘하는 킴 존스는 부임 후 유수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면서 컬렉션을 하나의 아트 프로젝트처럼 일궈왔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온전히 무슈 디올과 하우스 헤리티지에 대한 찬사를 담아 디올의 초창기 아카이브로 회귀했다.
알렉상드르 3세의 다리를 재현한, 장대한 규모의 무대 위 우아하고 견고하게 다듬어진 새로운 수트 실루엣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이번 컬렉션은 특히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빛을 발한다. 킴 존스는 무슈 디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들을 디테일에 접목했다. 장미와 은방울꽃, 레오퍼드와 카나주 패턴 등은 코트의 깃, 장갑에 덧댄 주얼리 장식, 반짝이는 싱글 이어링, 게다가 쇼 직후 화제였던 버켄스탁 협업 샌들에서조차 존재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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