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K-서사
불평등, 연대, 갑을 관계, 일반인 히어로들, 치열한 경쟁. 한국형 서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연대 #공동체
혼자 싸워선 이길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은 1987년일 것이다. 아니면 1980년 5월 혹은 더 오래전인 1960년 4월 19일, 그것도 아니면 이 나라 탄생 이전의 집회와 봉기들일 것이다. 압제에 저항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은 우리의 DNA에 새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분열된 상태를 지속해왔고, 나뉜 조각들은 퍼즐처럼 규합해 다른 세력과 대항해왔다. 개인의 연대와 집단의 분열은 자유를 향한 강한 생명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연대할 때 생존하고, 공동체를 이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 사회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 임박한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지지 세력과 서유럽 세력으로 분열된 상태다. 미얀마에서는 민주화항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시위가 계속된다. 보통의 개인이 연대하여 압제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이어져왔기에, 연대의 힘을 다룬 서사는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연대의 서사에선 저항하고 싸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공동체의 가치도 발견된다.
01 <지금 우리 학교는>
좀비물의 공통점은 생존자들의 연대다.
‘무리에서 벗어남’은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는 쪽을 선택하지만, 연대하지 않는 개인도 등장한다. 좀비물에서 개별 활동을 하는 경우는 감염되어 생존이 불가능하거나, 구성원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경우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개별 활동을 하는 것은 생존자 집단의 외부 존재들인 가족이다. 동생을 찾기 위해 학교에 진입한 누나, 좀비 사태에서 자식의 안위를 걱정해 학교로 달려온 엄마, 딸을 구하러 홀로 온 아버지의 서사를 비중 있게 다룬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 학부모의 정서가 드라마에 짙게 깔려 있다.
02 <경이로운 소문>
귀신은 해병대가 잡는 줄 알았는데,
<경이로운 소문>에선 ‘카운터’라는 반신반인 초능력자들이 ‘악귀’를 잡는다. <경이로운 소문>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르인 히어로물이다. 드라마에서 악귀는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악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국수집 종업원들로 분한, 각각 다른 능력을 가진 카운터들이 힘을 합쳐 악귀를 잡는다. 소시민들이 연대해 악을 물리치는 서사다. 보다 보면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악귀들에 비해 네 명의 강력한 카운터가 힘을 합쳐 싸우는 모습은 정당해 보이지 않아 악귀를 응원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도 연대하면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이다.
03 <마인>
재벌가라는 막강한 권력 집단의 피해자들이 연대한다.
그녀들은 자본주의의 위계에 대항하는 동시에 가부장제의 부조리에 맞선다. 여느 재벌과 신데렐라 서사처럼 재벌가 며느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극 중반을 지나면서 서사는 뒤틀린다. 재벌 왕자님은 소시오패스이고, 재벌가는 부정한 권력 집단이다. 며느리들은 연대해 이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우며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04 <갯마을 차차차>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
주인공 홍두식(김선호), 윤혜진(신민아)은 서울에서 쫓겨나듯 밀려나 동해 어촌 마을 공진동에 터를 잡았다. 메인 플롯은 두 청춘 남녀의 유쾌하고 알콩달콩하며, 때로는 슬프기도 한 사랑 이야기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서사가 특별한 것은 캐릭터를 감싼 배경 마을 때문이다. 공진동이라는 어촌 마을 공동체의 따뜻한 정서는 시종일관 이야기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한국의 시골 정서를 가진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다정다감한 태도로 두 남녀의 플롯을 에워싼다. 낙원 같은 공동체에서 홍두식과 윤혜진의 사랑은 보호받으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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