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나요?
문화생활이라고 해야 되나? 전시회 다니고, 미뤄둔 책도 읽고, 드라마도 챙겨 봤어요. 지금까지 놓쳐왔던 것들, 겁나서 안 했던 것들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드라마 많이 봐야 하죠?
네, 진작에 봤어야 했는데, 이제야 몰아 보고 있어요. 오히려 볼 게 많아서 좋아요. 언제 다 보지 했는데, 드라마 한 시리즈는 3일이면 다 봐요.
책도 많이 읽었다고요?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지구 끝의 온실>과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어요. 예전에는 책을 엄청 좋아했어요. 어릴 때 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공부는 못해도 책은 읽어야 한다고 하셔서 많이 읽었거든요.
육상 했다고 들었어요.
네 운동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몇 년간 놓고 지냈죠. 일하느라 바쁘고, 정신적인 정비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놓고 지낸 거죠.
데뷔 이후 4년 동안 놓친 게 많은 것 같네요.
그 시간 동안 제 인생 최고의 커리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만들고 있고요. 남들이 볼 때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꿈을 이뤘잖아요.
배우로서 다시 시작하는 시점이에요. 무엇이 필요한가요?
제게 필요한 것들을 찾고 있어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거죠. 이전에는 남들이 정의한 제 모습에 맞춰갔다면, 이제는 스스로 내가 누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저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들은 자신을 꺼내어 보는 연습을 한다고 해요. 그 작업이 꼭 필요한 것처럼요.
맞아요. 선배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너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하느냐고요. 저라는 사람을 잘 파악해야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다는 뜻이죠. 저는 정말 자신을 몰랐어요.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지금은 저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예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알아요?
친한 친구와 대화를 자주 해요. 이건 TMI인데, 그 친구와 심리치료 연극을 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친구가 직설적으로 저에 대해 말해줘요. 그러면 집에 가서 되돌아보는 거죠.
연우와 이다빈은 다른가요?
아니요. 똑같아요. 연우도 다빈이도 아직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요. 방송 나오면 친구들이 “너 그래도 되는 거야?”라면서 그렇게 솔직해도 되냐고 연락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차이를 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아이돌 활동을 하면 때로는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지 않나요?
저는 다행스럽게도 제 솔직한 모습을 팬들이 받아주셨어요. 드러내면 안 되는 것들은 말을 안 하고 조심하죠. 굳이 거짓으로 꾸며내지는 않아요. 그런 건 금방 들키더라고요.
요즘은 진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진심이 아닌 행동이나 말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진정성이자 솔직함을 무기로 삼는 때가 된 것 같아요. 저도 3년 전만 해도 숨길 건 숨겼어요. 그래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진정성을 보여주고, 진짜가 아닌 것들은 버리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도 자신을 포장했던 것들을 많이 버리는 것 같아요.
4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문득 여유가 생기니까.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그렇다고 불안함이 계속된 것은 아니에요. 나중을 위해 지금 시간을 저축한다 생각하고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저는 힘든 이야기를 안 해요. 힘든 것, 슬픈 것들은 친구나 가족에게도 절대 말 안 해요. 그런데 작년부터 힘들다고 말하니까 해소되더라고요. 안 하던 속 얘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나 불안하다고 한마디 하니까 불안함이 사라져요. 처음에는 이걸 어쩌지 싶었는데, 저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언제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스스로가 언제든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함에 젖어들지 않아요.
그래도 청춘이 지나가는 게 아쉬울 법한데.
무섭지 않아요. 걱정되지도 않고, 그냥 쉬는 것도 저는 좋았어요. 제가 막 논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눈 거라 아깝지 않아요. 젊음이 지나 간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래요. 이미 지나간 것을 붙들고 걱정하는 것을 안 좋아해요. 후회하는 건 한두 시간이면 돼요. 걱정에 빠져 있고 싶지 않아요. 지나간 것은 과거의 일이니까. 미련 갖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고자 해요. 그리고 미래도요.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도 그려지나요?
지금을 잘 즐기면 미래는 알아서 그려지고 과거도 알아서 정리되겠죠.
그럼 지금 연우는 뭘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진짜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뒤에서 하는 것들은 당연히 있죠, 공부하고, 궁금해하고,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저는 무엇을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티나고 어색해요. 그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미래를 기대하지는 않고요?
엄청난 배우나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은 없어요. 대신 미래에도 제가 건강하게 생각하고 좋은 사람이길 바라요. 그게 꿈이에요. 저는 미래에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항상 말해요. 추상적이죠?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제 일도 잘하고 있지 않을까요? 미래에는 기왕이면 배우를 하면 좋겠네요. 아니 할 거예요. 배우 하려고요.
자존감이 튼튼해요.
많이 무너진 거예요. 무너지다가 결국에는 단단해진 거예요. 탄성이 좋아졌다고 해야겠죠. 회복이 잘되기 시작했어요. 많이 무너지고 다치다 보니까 적응했어요.
좌절이 잦으면 적의가 생기지 않아요? 그게 동력이 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저에게 독이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내가 뭐라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저를 움직일 때도 있었는데, 결국에는 그게 저를 축내더라고요. 긴 시간 지속할 수 없음을 경험해봤어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데 원동력으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인생의 동력으로 삼는 건 너무 힘든 방법이에요.
연기 활동의 동력은 무엇인가요?
승부욕도 있고 연기를 위해 미팅을 하다 보면 되게 비수처럼 꽂히는 말들이 있잖아요. 아니면 내가 화면에 보였을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는 좋아요. 좋게 다가와요 그게 막 복수심이라든가 이런 게 아니고 오케이 다음에 한번 보자. 내가 뭐라도 보여줄게, 이렇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이제는 독기를 품고 막 이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런 자극이 저한테 좋은 동력이 되는 거죠. 상처도 안 받고 그냥.
탐나는 캐릭터 있어요?
지금까지 부잣집 딸이나 밝은 인물들을 연기했어요. 이제는 평범한 가정이나 역경을 겪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 못 해본 캐릭터들에 관심이 가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도전할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연기의 매력은 뭐예요?
한계를 깨는 거요. 어렵다고 느껴진 신을 시원하게 해내면 기분이 좋아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좋고요. 함께 만든다는 점에서 연기는 재밌어요. 구체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연기가 재밌다는 거예요.
경력이 쌓이다 보면 연기가 부담되는 순간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연기가 재미없어지는 순간이요.
그때는 딴 거 해야죠. 안 되는 것을 끝까지 붙잡는 건 자신에게 미안한 행동인 것 같아요. 그런데요, 저는 연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확신해요?
네, 지금은 확신해요. 아니 한 달 뒤에도 확신할 거예요.
멋있어요.
누가 나를 믿어주겠어요. 내가 믿어야죠.
무대에 다시 설 날도 올까요?
기회가 된다면요. 그런데 다시 노래하겠다는 말은 조심스러워요. 제 무대나 음악을 기대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분들에게 희망 고문이 될까 봐 확답드리기 어려워요. 책임지기 힘든 말이니까요.
자존감이 높고, 책임감도 있어요. 어른이네요.
아니에요. 저 서른다섯 살까지는 그냥 애 하려고요. 자존감과 책임감을 가지려고 마인드컨트롤하는 거예요. 내 마음이 단단해지도록 담금질하는 거죠.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여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시도를 몇 번이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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