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악역을 맡았어요. <해적: 도깨비 깃발>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요?
연출하신 김정훈 감독님을 믿고 출연했어요. 편하고 좋은 분이에요. 전작 <탐정:더 비기닝>을 함께했고, 차기작도 함께하려고 해요. 신뢰가 두터운 감독님이 제안해주셔서 바로 승낙했죠. 그리고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어요. 결이 다른 영화들이요. 소위 말하는 센 영화도 해보고 싶고요. 영화 관계자분들이나 관객에게 <해적: 도깨비 깃발>을 통해 저의 다른 결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어요. 이번 작품이 제 캐릭터 변신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감에 시작하게 됐어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맡은 부흥수는 어떤 인물이에요? 많이 나쁜가요?
유쾌한 어드벤처 영화예요. 캐릭터들이 전부 재밌어요. 코미디가 두드러지는 와중에 부흥수만 진중해요. 재물 욕심보다는 권력욕이 앞설 정도로 권력에 대한 집착이 큰 인물이에요. 보물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우무치(강하늘)와 해랑(한효주)을 추적하죠.
관계자들에게 어필하겠다는 말이 절박하다는 뜻으로 들려요.
저는 항상 절박해요. 지금도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해요.
모든 작품마다요?
매번 그래요.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야 나도 있어! 두고 봐!”라고 영화계에 외치고 싶어요.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에요.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저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요.
현학적인 영화도 있고, 슬픈 사랑 영화도 있고 다양한 영화들이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액션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요.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데, 한국 영화계에는 액션에 특화된 배우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권상우만큼은 꾸준히 액션 영화에 몸담아왔어요.
액션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해왔어요. 지금도 속편을 준비 중인 액션 영화가 있고요. 그리고 제가 예전에 오른쪽 발목 인대 수술을 했어요. 오른쪽 다리 상태가 안 좋아요. 이 정도 부상을 당하면 액션 연기를 못하거나, 할 수 있더라도 자제해야겠죠. 그래서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젊었을 때는 점프력도 좋고, 신체적인 능력이 되니까. 걱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부상을 당하고 나니까 과연 내가 몇 살까지 액션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저는 액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라고 생각해요. 카메라의 프레임을 조절해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몸짓의 속도감이 살아 있어야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액션이 완성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제가 언제까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지…. 나이 드는 걸 생각하면 겁이 나요. 내가 몇 살까지 액션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액션 연기의 시간이 모래시계의 모래 빠지듯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제작에도 욕심을 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시나리오만 만들어놓고 흐지부지했다면, 이제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액션을 준비하려고 해요.
<600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도 쉰 살까지 액션 연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슬로모션이긴 했지만.
(웃음) 제가 지향하는 액션은 아니에요.
액션은 타격감도 중요하지만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서부영화를 보면 총격 신은 몇 번 안 나오지만, 총을 뽑기 전까지의 긴장감이 묘미잖아요.
물론 서스펜스도 중요하지만 액션은 기본적으로 몸짓이 중요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몸짓을 보여주는 것. 분명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신의 한 수: 귀수편>의 액션은 타격감이 두드러졌죠. 절권도가 연상됐어요.
귀수의 액션이 그렇죠. 절권도는 아니지만 합이 타이트하고, 스피드 있게 찍었어요.
귀수가 제임스 본에 가깝다면, <히트맨>의 준은 성룡의 액션을 닮았어요.
맞아요. 이번에 미국 다녀오면서 비행기에서 본 시리즈를 1편부터 4편까지 다시 정복했어요. 본 시리즈의 액션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시간이 지나도 좋은 액션 영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들고 싶은 액션 영화도 그런 부류이고요. 그리고 저는 어릴 때 성룡 영화를 보고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우리나라에는 성룡 영화 같은 액션 영화가 없을까요. <히트맨> 제작 당시 감독님과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우리도 액션신에서 합을 맞출 때 성룡 영화의 느낌을 조금씩 주기로 했어요. 장르적으로는 코미디니까 액션 중간중간에 재미를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성룡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히트맨>에서 1980년대 홍콩 영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예요. 숨 쉴 겨를 없이 긴박하게 몰아치는 액션 영화를 해보고 싶고, 웃음과 해학이 담긴 액션도 하고 싶어요.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만든 액션에선 성룡의 체취가 느껴져요.
류승완 감독님의 <베테랑>에도 성룡 영화를 오마주한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이 감독님도 성룡 세대임을 느꼈죠.
성룡과 함께 <차이니즈 조디악>이란 작품도 촬영하셨죠.
아, 그때 너무 좋았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어요.
최근 작품 중에서 인상적인 액션 영화를 꼽는다면?
<익스트랙션>에서 소총을 활용한 액션이 굉장히 멋있어요. 소총으로 저렇게 멋진 액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고 놀라웠죠. 신선한 액션신을 보면 꿈은 더 커져요.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우리나라는 총기 허용 국가가 아니다 보니, 영화에서 총을 다루는 건 현실감이 없고요. 대신 날붙이를 사용한 액션들이 발달되었죠.
저는 검술 액션은 지향하지 않아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는 검술 액션이 많이 나오는데, 손가락을 다쳐서 살점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실제 검을 사용했나요?
날카롭고 무게감 있는 검이었어요. 손가락뼈가 다 보일 정도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제 다 나아서 어딜 다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 인생의 액션 영화는요? 한 편만 꼽아보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알 파치노의 <스카페이스> 예요. 초등학생 때 혼자 극장 가서 본 액션 영화거든요.
유혈이 낭자하고 코카인이 흩날리는 <스카페이스>를 초등학생이 어떻게 봅니까?
그걸 본 일화가 되게 웃겨요. 외삼촌이 형과 저에게 극장 가서 보라고 심형래 씨의 <각설이 품바 타령> 영화 티켓 두 장을 줬어요. 그날 형은 학교 갔고 때마침 저는 학교 안 가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극장에 갔죠. 대전에 중앙극장이라고 있었어요. 거길 딱 갔는데, 영화가 바뀐 거예요. 옛날에는 갑자기 영화 내리고 다른 작품으로 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근데 집에서 극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서 도착했단 말이에요. 그러니 그냥 되돌아가기는 너무 힘들고, <스카페이스>는 내가 못 볼 것 같았는데, 입장이 되더라고요. 그냥 들어가래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 처음 본 액션 영화가 됐어요. 영화가 굉장히 강렬하잖아요. 몇 년 전에 다시 봤어요. 근데 어릴 때의 추억을 제외하고도 영화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모텔방에서의 그 긴장감이나 베개 밑에서 따발총 꺼내는 장면들은 지금 봐도 대단해요. 액션이 화려하진 않지만 서스펜스가 대단한 영화예요.
인생작이 성룡 영화일 줄 알았어요.
그 외에 몸으로 부딪히는 액션 영화들 중에서 인생작을 꼽자면 역시 성룡 영화죠. <쾌찬차> <프로젝트 A>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너무 많죠. 1980년대에 그런 영화를 찍었다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미친 거죠. 성룡 영화의 스턴트는 지금 봐도 진짜 멋있어요.
스턴트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배우 하기 전에 한창 운동 좋아하고, 잘 하니까 스턴트맨을 꿈꾸기도 했었죠.
데뷔하고 나서도요?
그때는 ‘배우가 낫다. 액션을 잘하는 배우가 되겠다’로 바뀌었죠.(웃음)
<신의 한 수: 귀수편>의 처절함과 타격감이 버무려진 액션을 또 볼 수 있을까요?
꼭 하겠습니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액션 영화가 많아요. 누아르와 전쟁물에서도 액션이 있었고요. 자신의 대표 액션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옥상이 생각납니다.
저도 그 장면을 생각했어요. 촬영 당시 이정진 씨도 그렇고 다들 며칠씩 액션신을 찍었는데, 저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빨리 끝내고 <천국의 계단>을 촬영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제 머리가 짧아서 <천국의 계단> 초반에는 머리에 헤어피스를 붙이고 출연했어요.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고요. 어쨌든 <말죽거리 잔혹사> 옥상 신 촬영할 때 카메라를 서너 대 사용했어요. 요즘은 별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한 장면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게 큰일이었어요.
필름을 사용해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기 쉽지 않았군요.
그렇죠. 옥상 신을 이틀 동안 찍었어요. 한여름이었고요. 컷을 많이 안 나누고 찍었어요. 그래서 영화 보면 마지막에 발차기할 때 힘이 빠진 게 다 드러나잖아요. 발을 좀 더 세게 차야 하는데, 에너지의 흐름대로 이해하면 지친 게 맞죠. 그리고 빨리 촬영해야 하니까. 액션신을 찍을 때 보호대를 하나도 안 했어요. 그런 거 착용할 시간도 없었고요. 날아차기를 한 스무 번은 했는데,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질 때 아무리 낙법을 잘해도 다치잖아요. 그래서 촬영 마치고 나서 한 이틀 동안 옆으로 못 누웠어요. 바닥에 부딪힌 쪽이 전부 피멍이 들었거든요. 진짜 열심히 몸을 내던졌어요. 잘하고 싶어서 정말 간절했어요. 그 노력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요. 그래서 대표 액션신을 굳이 뽑자면 <말죽거리 잔혹사>의 옥상 신입니다.
그 장면에는 날것의 거친 느낌이 있어요.
그렇죠. 잘 만들어진 액션신이 아니라 진짜 학생들이 싸우는 날것의 느낌이죠. 옥상 신에서 제가 싸움이 끝나고 호흡할 때 관객들이 박수를 치더라고요.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너무 큰 감동이 밀려왔어요. 당시 무술 감독님과 유하 감독님이 그 장면으로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무술 감독님은 몰아붙여야 한다고 하고, 유하 감독님은 호흡을 줘야 한다고 했죠. 결국에는 유하 감독님이 맞았어요. 관객들이 다 박수를 쳤으니까요. 액션 영화는 액션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함을 배웠죠.
액션도 드라마 위에서 펼쳐져야 하는 거죠?
맞아요. 액션은 잘 다져진 드라마상에 존재해야 해요.
액션 스타라는 칭호는 어떤가요?
그렇게 불러주면 너무 좋죠. 한 가지 장르를 고집하진 않아요. 멜로도 좋고, 코미디도 연기하면서 즐겁고요. 액션에는 저 스스로의 도전과 절제가 들어 있어요. 저에겐 액션이 가장 큰 목표죠. 그리고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요. 50세가 되었을 때, 저 나이에 저게 가능하냐는 말이 나올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예요.
나이가 부담되나요?
부담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절박해요. 연기 활동을 하다가 군대에 가는 배우들과 달리 저는 군대를 제대하고 데뷔했어요. 냉정히 보면 유명 가수나 배우는 현역으로 입대한다 해도 군 생활 동안 대중에게 이름이 남잖아요. 군 복무 기간에도 그들은 유명한 사람이지만, 저는 배우를 꿈꾸는 청년이었을 뿐이에요. 미래에 대한 보상도, 정해진 것도 없는 상태로 제대하고 배우를 준비했으니 늘 시간에 대한 절박함을 느꼈어요. 이제는 한국 나이로 마흔일곱이에요. 잠깐 신경 안 쓰면 금방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지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도 한 해에 많아야 세 작품도 못 해요. 특히 액션 연기를 하겠다는 마음이면 더 스트레스가 크죠.
배우로서 이룰 거 다 이루지 않았어요?
아직 못 보여준 게 남았다고 생각해요. 다 이뤘으면 미련이 없겠죠. 제 욕심일 수도 있고,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못 보여준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권상우만의 액션은 무엇일까요?
스피드가 유지되고 힘이 느껴지는 동작. 맨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떨어지는 날것 같은 액션이죠.
날것의 액션을 보여주려면 몸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하겠네요.
운동은 지속하고 있어요. 몸이 기본이에요. 체력을 갖춰야 다치지 않죠. 근력이 떨어지면 지형지물도 잘 이용하지 못해요. 지금도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지금 배우 권상우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해적: 도깨비 깃발>의 흥행이죠. 작품의 흥행은 모든 배우에게 생명줄이죠. 또 기운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고요. 이번 영화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고의 한국 액션 영화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참고로 저는 <테러리스트>입니다.
명작이죠. 최민수 선배님은 액션을 정말 잘하세요. 몸을 진짜 잘 쓰세요. 저에게는 박중훈 선배의 <게임의 법칙>이 최고예요. 마지막 장면까지 정말 너무 좋아요.
배우 권상우의 행보는 어디로 나아갈까요?
다양하게 하고 싶어요. 촬영하는 작품 중에서 시리즈로 준비 중인 액션물도 있어요. 대중에게 권상우는 두루두루 다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다양한 작품을 연기하는 게 저도 즐겁고요. 또 다양한 장르를 유연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해요. 사실 그게 제일 듣고 싶은 말이에요. 유연하게 액션도 하고요.
그럼 악역도 많이 하시겠네요?
영화 <숙명>에서 조철중이라는 악역을 했었는데, 영화가 잘 안 돼서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역할이 너무 재밌었어요. 캐릭터가 재밌고 몰입도 더 잘 되고요. 그런 악역을 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유쾌함과 비열함을 모두 가진 역할이요.
비열한 권상우의 모습 신선합니다.
아직 안 보여줘서 그렇지 큰 무기일 수도 있어요.
요즘 본인을 자극하는 건 뭔가요?
음…. 강아지요. 개를 안 키우는데, 제가 요즘 외로움을 느끼나 봐요. 강아지나 귀여운 친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갈등도 많이 해요. 키우고 싶다가도 막상 쟤를 어떻게 평생 책임질까.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갈등하고 있어요.
고독한 액션 스타에겐 강아지가 어울리죠.
<존 윅>처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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