➊ 카를루스 파이앙 <Marcha Do Piao das Nicas>
2016년 10월 8일, 10일 정도 되는 리스본에서의 일정 중 마지막 전날이었다. 애초부터 나는 리스본에 파두를 들으러 갔다. 파두는 긴 세월 거쳐왔으며 그 뿌리를 리스본에 두고 있었다. 페이라 다 라드라(Feira da Ladra)로 향했다. 17세기에 도둑들이 장물을 팔기 위해 만든 이 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자국의 오래된 바이닐이었다. 부식되어 상태가 엉망인 것, 알판만 남은 것부터 제법 신상에 가까운 것까지 다양하게 있었지만, 역시 멀쩡하면서도 오래된 바이닐이 탐났고, 열심히 디깅하여 집까지 가져온 것이 바로 이것이다. 카를루스 파이앙(Carlos Paiao)은 의사이기도 했지만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포르투갈 대표로 나갈 정도로 자국민에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싱어송라이터다. 직접 곡을 쓰기도 했던 그의 음악은 팝으로 분류되지만, 파두의 영향을 짙게 받아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Marcha Do Piao das Nicas’는 한 시대의 기록이라고 해도 될 만큼 1980년대 포르투갈 음악이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곡이다.
WORDS 박준우(음악 칼럼니스트)
➋ 다케우치 마리야 <Variety>
시티팝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뜨거워져간다. 팬데믹 시대에도 낭만을 잃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일수록 시티팝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1980년대 일본 사회의 낭만, 환희, 영광이 녹아 있는 음악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한 청춘과 시대를 위로하고 있다. 일본 내 한정적인 레코드 생산 체계와 유럽의 젊은 세대 간에 AOR 음악이 유행으로 자리하면서 시티팝 레코드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나는 다행히 팬데믹 이전 레코드 바잉으로 자주 찾던 도쿄의 디스크 유니온에서 다케우치 마리야의 초판을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서도 싱글 판과 리이슈 판이 순식간에 절판되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생산된 이 한 장으로 끓어오르는 구매 욕구를 참을 수 있었다.
WORDS 예수민(DJ, 소울트레인 대표)
➌ 랭페라트리스 <Anomalie Bleue>
이상한 푸른색이란 제목처럼 이 앨범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다. 디스코 클럽의 파란 조명, 어쩌면 별이 총총한 푸른 하늘일지도 모른다. 구매는 어렵지 않았다. 폭격 수준의 더위를 잊고자 시원한 음악을 찾던 중 발견했고, 앨범을 정주한 후 구매로 이어졌다. 재치 있는 앨범 커버는 종종 에르메스와도 작업하는 ‘우고 비엔베누’의 작품이라 더 손이 갔는지도. 말랑말랑한 프랑스어와 다양한 변주가 귀를 사로잡는 앨범. 오래된 프랑스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1990년대 신스 팝에 취하다 보면 푸른 밤이 온다.
WORDS 김성지(<아레나> 패션에디터)
➍ 클라우디오 시모네티 <Opera>
해외에 체류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하는 루틴이 있다. 그 도시의 레코드숍에 들러 그 국가의 바이닐을 구매하는 것. 팬데믹 직전인 2020년 1월에 나는 피렌체에 있었다. 꽤 인상 깊었던 숍 ‘록 바텀(Rock Bottom)’에서 구매한 게 바로 이 OST 바이닐이다. 이탈리아 출신 호러 영화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의 1987년작 <오페라(Terror At The Opera)> 사운드트랙 바이닐. 영화학 석사 시절, 나름 호러 영화 마니아라 자처하던 때 만난 작품이다. 남자 친구의 살해 장면을 바라보며 눈을 감지 못하도록, 여주인공 눈 밑에 바늘을 붙이는 잔혹한 장면으로 영화는 내게 걸작이 되었다. 더 강렬했던 건 바로 사운드트랙이었다. 영화 음악가이자 키보드 연주자인 ‘클라우디오 시모네티’에 의해 만들어진 이 앨범은 호러 장르와 걸맞지 않게 아름답기 짝이 없다. 그는 (1977)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밴드 고블린의 멤버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 국내는 물론 아마존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난 이 앨범이 어찌나 반갑던지. 주저 없이 내 컬렉션 목록에 들였다.
WORDS 이주영(<아레나> 편집장)
➎ 김정미 <NOW>
레코드에 사인받는 걸 좋아한다. 존중하는 아티스트를 만날 일이 있으면 미리 레코드와 펜을 챙기곤 했다. 인터뷰차 방문한 신중현 선생님 집엔 작은 무대가 있었다. 스튜디오보다 공연장에 가까웠고, 실제 과거 무대 의상을 입은 그를 촬영하고 얘기를 나눴다. 비틀스를 동시대 뮤지션으로 여기는 거장의 음악 작업은 멈춤 없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심스레 김정미, 김추자, 신중현의 독집 음반 등에 사인을 받았다. 김정미의 <NOW>는 재발매본이라 소장의 관점에서는 희귀하지 않지만, 신중현이 진두지휘한 음반 중 가장 자주 듣는 음반이다. 결국 음악은 재생해야 가치가 발휘되고, <NOW>는 그 어떤 음반도 대신하기 어렵다.
WORDS 유지성(음악 칼럼니스트)
➏ 이디에 고르메 & 트리오 로스 판초스 <Amor>
여름에는 보사노바, 겨울에는 볼레로를 듣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앨범. 피티워모를 경유해 밀라노에서 파리로 출발하는 야간 기차를 타기 전, 밀라노 도심의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구한 이디에 고르메 & 트리오 로스 판초스의 첫 컬래버레이션 레코드다. 레코드를 처음 모으는 사람들에겐 생소하면서 새 상품처럼 깔끔하지 않은 탓에 외면받기 쉽지만 콜렉터들에게 프로모션 판은 가치 있다. 오직 라디오, 방송국 등에만 돌려 앨범을 홍보하는 데 쓰였으니 똑같은 타이틀이라 해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게다가 남미 음악 특유의 서정과 한은 어딘가 모르게 우리 음악과 닮은 점도 많아 들을수록 정이 간다.
WORDS 예수민(DJ, 소울트레인 대표)
➐ 시드니 베쳇, 클라우드 루터 <On Parade>
파리의 재즈 사랑은 남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유입된 미국의 재즈 음악은 파리와 유럽을 매료시켰고, 현재까지 유럽 곳곳에서 미국의 재즈 연주가들을 기리는 페스티벌과 연주회가 성황리에 개최된다. 2년 전 파리 출장. 파리 지성의 중추와도 같은 소르본 대학 근처 3층 건물 규모의 파리 재즈 코너 주인 피에르 씨에게 선물받은 시드니 베쳇의 음반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테마곡 ‘Si tu vois Ma mere’가 수록된 희귀판이다. 도입부를 듣는 순간 밀려드는 감동은 나의 첫 파리 출장의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이 지루한 팬데믹이 끝나면 가장 먼저 파리행 비행기표를 예매할 요량이다.
WORDS 예수민(DJ, 소울트레인 대표)
➑ 파로아 샌더스 <Thembi>(Impulse!, 1971)
레전드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가 로니 리스튼 스미스(Lonnie Liston Smith), 세실 맥비(Cecil McBee)와 같은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완성한 일곱 번째 앨범. 이 앨범의 대문과도 같은 곡 ‘Astral Travelling’처럼 문자 그대로 아스트랄한 정신적인 여정을 선사하는 앨범이다. 1천원인 만큼 커버 상태나 음질 역시 아스트랄했지만, 그것조차도 명상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WORDS 권혁인(<비슬라> 편집장)
➒ 케이알에스원 <MC’s Act Like They Don’t Know>(Jive, 1995)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더는 민망한 힙합 클래식, 케이알에스원(KRS-One)의 ‘MC’s Act Like They Don’t Know’ 12인치 싱글이다. 모자이크 서울에서 집어왔는데, 심지어 이 판은 비닐도 개봉되지 않은 그야말로 새 판이었다. A면에는 ‘MC’s Act Like They Don’t Know’ LP 버전과 인스트루멘탈이, B면에는 ‘Das EFX’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트랙, ‘Represent The Real Hip Hop’의 세 가지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WORDS 권혁인(<비슬라> 편집장)
➓ 월드 페이머스 슈프림 팀 <Hey DJ>(Charisma, 1984)
<스핀(Spin)>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 100곡’ 중 64위에 오른, 그 이름도 위대한 월드 페이머스 슈프림 팀(World’s Famous Supreme Team)의 기념비적인 파티튠, ‘Hey DJ’다. Rm.360 아니면 모자이크에서 집어온 것 같은데, 힙합에 특히 심취했던 10~20대 시절, 개인적으로도 크게 영향받은 섹시한 트랙이다. 비슬라(VISLA)가 곧 오픈할 공간, 퀘스트(QUEST)에서 이 곡을 플레이하는 그날을 상상하곤 한다.
WORDS 권혁인(<비슬라> 편집장)
⓫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도감>
사카모토 류이치의 2018년 서울 전시 <LIFE, L I F E>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백남준과 작업한 비디오였다. 그리고 이 음반 <음악도감>에는 ‘A Tribute To N.J.P.’라는 약자 그대로 백남준을 향한 곡이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전시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며 한 매체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염치 무릅쓰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선배에게 사인을 대신 부탁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덕분에 그의 솔로 음반 몇 장에 사인을 받았다. <음악도감>은 그중 제일 아끼는 음반은 아니지만, 어쩐지 전시를 본 뒤 더 애착이 생겼다. 영상 속 백남준과 같이 등장하는 젊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활짝 웃는 얼굴 때문이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여러 비화를 찾아보기도 했다. <음악도감>의 1984년 일본 오리지널 프레스엔 별도의 12인치 레코드와 더불어 ‘Tibetan Dance’의 버전(리믹스)이 수록됐는데, 원곡도 훌륭하지만 그 여유 있는 편곡을 특히 좋아한다.
WORDS 유지성(음악 칼럼니스트)
⓬ 타미 루카스 <Hey Boy>
야구장에선 대개 경기 전 사인을 받는다. 경기 뒤엔 상황이 좀 복잡해지니까. 예컨대 이긴 팀의 5타수 무안타인 선수에게는 사인을 받아도 되는 걸까. 디제이는 좀 다른 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보다 그의 음악을 댄스 플로어에서 모두 감상한 후, 똑같이 땀에 젖어 사인을 요청하는 쪽이 좀 더 적절해 보인다. 타미 루카스는 테디 라일리의 뉴 잭 스윙 트랙 ‘Is It Good To You’로 유명하지만, ‘Hey Boy’ 같은 하우스도 곧잘 불렀다. 이 곡을 프로듀스 및 리믹스한 티비 레지스포드가 서울에 왔다. 1980년대 뉴욕의 개러지 하우스를 한창 즐겨 듣던 때인 만큼, 클럽 문이 열리자마자 도착해 열심히 춤을 췄다. 티비 레지스포드는 아예 윗옷을 벗어던지고 음악을 틀었다. 그 단단한 코어 근육처럼 네 시간 내내 꼿꼿한 그를 보며, 노는 주제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힘에 압도된 시간을 보냈다. 디제이는 음악을 잘 틀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디제이 부스에 선 사람이 주는 기운이 밤을 완성하기도 한다.
WORDS 유지성(음악 칼럼니스트)
⓭ 그라임스 <Vision>(2012) / <Art Angels>(2015)
지금에야 유수의 해외 음악가들이 앞다투어 한국을 외치지만,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내한 공연은 에이징 커브를 맞이한 뮤지션의 몫이었다. 그러던 2013년과 2016년, 일렉트로닉 팝 아티스트 그라임스가 앨범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두 내한 공연 모두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신보를 각각 발표한 시점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음악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기에. 그날의 감흥을 오래 기억하고자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그라임스를 만나 그의 사인을 두 바이닐에 아로새겼다.
WORDS 키치킴(포크라노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