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국내 OTT 시장에 디즈니플러스가 착륙했다. 19일 동안 31만 명(결제액 1백72억원)이 가입했지만 기대와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마블을 빼면 볼 것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디즈니플러스의 준비는 견고하지 못했다. 특히 번역 수준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심의가 늦어지면서 멀티버스를 다룬 애니메이션 <왓 이프…?>는 한 달이 지나서야 국내에 공개되었다. 멀티버스 소재는 극장 개봉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연계되는 작품이다. 의 쿠키 영상이 예고한 대로 옐레나(플로렌스 퓨)가 디즈니플러스의 최신 드라마 <호크아이>(6부작)에 등장해 호크아이(제러미 레너)와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즉 극장에서는 <스파이더맨>, OTT에서는 <호크아이>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렸다. 이쯤 되면 마블 스튜디오의 전략은 확실하다. 극장과 OTT(디즈니플러스)를 오가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4를 펼치는 것이다. 이 결과는 2021년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봐야 하지만,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에 압승을 거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을 통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11월 한국 시장에서 7백68억원을 벌어들인 넷플릭스를 단숨에 앞서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결제한 사람의 32%가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미국에서처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공존하면서 국내 OTT 시장에서 ‘양강 체제’를 굳건히 할 터전을 마련했다.
글로벌 콘텐츠 공룡인 디즈니조차 왕좌를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넷플릭스가 OTT 플랫폼의 최강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디즈니플러스와 함께 나타난 애플TV플러스는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Dr. 브레인>을 선보였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2022년에는 워너미디어가 출시한 HBO맥스도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멘탈리스트>와 함께 들어올 예정이다. 이쯤 되면 국내 OTT 시장에서 각축전(OTT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즈니, 애플, HBO맥스 등 후발주자들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시장에서 제2의 넷플릭스를 꿈꿀 순 있지만, 결코 제2의 넷플릭스가 될 순 없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넷플릭스의 성공법을 알아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넷플릭스처럼 각양각색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어떻게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먼저 넷플릭스의 진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났다.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넷플릭스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하던 작은 회사가 지구촌의 OTT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의 힘(절대반지)’을 예견한 데 있다. 아날로그 필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코닥이 파산한 것과 달리 디지털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생존한 후지필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전환의 시기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그 회사의 미래를 결정한다. 넷플릭스는 2007년 다운로드가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 기술을 선택했고, 2013년부터 자신의 콘텐츠를 갖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6년 <기묘한 이야기> 등이 성공하며 궤도에 오르자 미국 외의 글로벌 국가에서 오리지널 작품을 발굴하는 데 관심을 두면서 2017년 스페인의 <종이의 집>, 2021년 한국의 <오징어 게임>처럼 비영어권 콘텐츠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켰다.
으레 넷플릭스는 고객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콘텐츠 제작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으로 평가받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폭력이나 선정성 같은 제약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고객이 선호하는 장르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넷플릭스의 성공은 아무런 전통이 없다는 데 있다. 극장이라는 올드 플랫폼의 제왕 디즈니와 비교한다면, 넷플릭스의 색깔은 더욱 분명해진다. 디즈니가 오랫동안 지켜온 보수적인 가치와 전통이 있는 반면, 넷플릭스는 역사적인 뿌리나 지켜 할 신념이 없다. 넷플릭스는 고객이 좋아하는 장르 영화들을 즐겁게 소비하도록 높은 퀄리티로 제작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한국에서의 성공 이유가 미국과 다르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영악함은 한국 콘텐츠의 활용 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를 시작으로 한국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국의 웬만한 영화 시나리오는 넷플릭스에 먼저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신경을 썼다. <D.P.> <오징어 게임> <지옥> <고요의 바다> 같은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해 새로운 가입자를 유입시키는 동시에 한국의 주요 인기 드라마를 확보해 기존 가입자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넷플릭스는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뿐만 아니라 CJ ENM(tvN, OCN), JTBC 등에서 방영한 드라마들을 확보해 방영 이후 바로 서비스했다. 최근에는 SBS의 <그 해 우리는>, KBS의 <연모> 등까지 서비스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TV나 IPTV를 통해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넷플릭스만 있으면 편하게 인기 드라마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계약한 한국 드라마는 전 세계에 오리지널로 공개해 해외에서의 만족도나 기대치를 높임으로써 신규 가입자 유입에 활용된다. 즉 넷플릭스는 미국의 콘텐츠로 한국 OTT 시장을 거머쥔 것이 아니라,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그 힘으로 한국과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한국 성공 과정을 파악하고 나면 픽사, 마블, 루커스 필름 등을 내세운 디즈니의 전략이 왜 한국에서 크게 먹힐 수 없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스타워즈> 마니아가 없는 한국에선 <만달로리안> 시리즈 같은 수작이 평가를 받지 못한다. 디즈니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론칭과 함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했고,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는 2022년에 넷플릭스 등과 경합을 펼칠 예정이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오리지널 작품을 내놓는 순간이 넷플릭스와의 제2라운드가 될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잠시 위축되었지만 극장과 부가 판권(캐릭터 산업), 호텔 및 어트랙션 등에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디즈니는 OTT 시장이 또 하나의 기회인 반면, OTT에 올인하는 넷플릭스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디즈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기보다는 픽사, 마블, 루커스 필름, 폭스 등을 인수함으로써 외연 확장 방식을 택했다. 디즈니의 콘텐츠는 여러모로 넷플릭스의 콘텐츠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전략과 전술이 다르다. 디즈니 역시 발 빠르게 OTT 시장에 뛰어들어 전력투구한 덕분에 유료 회원 수 1억 명을 돌파하며 팬데믹 시대에 생존할 수 있었다. OTT 플랫폼에서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를 쫓아가는 후발주자인 반면, 넷플릭스는 스스로 자신과 경쟁하고 있다. 비영어권 콘텐츠에 집중한 전략이 <오징어 게임> 같은 메가히트를 만들어낸 것처럼, 넷플릭스의 다음 단계는 또 다른 잠재력을 지닌 콘텐츠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것이 넷플릭스가 가장 잘하는 일이며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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