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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들이 돌아본 2021년

올해 보고 듣고 만지고 먹은 것. 그중에서 획기적이었던 것. 너무 놀라워서 <아레나> 에디터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만 꼽았다. 10명의 에디터가 30개의 이슈를 소개한다. 공감되는 항목이 있다면, <아레나> 에디터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일 수도.

UpdatedOn Decembe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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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20TH TELEVISION

© 2021 20TH TELEVISION

01 더 심슨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는 2022 여름 컬렉션을 런웨이 대신 레드카펫 포토 콜과 쇼트 필름 관람이라는 색다른 두 가지 파트로 소개했다. 먼저 유르겐 텔러, 카디비, 뎀나 그바살리아, 이자벨 위페르 등 호화로운 라인업의 셀럽과 모델들, 그리고 발렌시아가 팀 멤버들이 새 시즌의 의상을 입고 플래시 세례가 터지는 포토 월을 지나 극장으로 입장한다. 이들이 발렌시아가 시사회에서 감상하는 건 심슨의 스페셜 에피소드인 ‘더 심슨 발렌시아가(The Simpsons | Balenciaga)’다. 10분 정도의 쇼트 필름은 호머 심슨이 마지의 생일을 잊어버린 걸 만회하려고 발렌시아가에 선물을 보내달라는 메일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스프링필드의 주민들이 발렌시아가의 런웨이에 서게 되는 게 이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 뎀나 그바살리아와 안나 윈투어가 등장해 심슨 특유의 풍자적인 대사를 툭툭 던지는 것도 유쾌한 데다 영상에 등장하는 발렌시아가의 의상을 보는 재미 역시 톡톡하다. 패션 아이템에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귀엽지만 지겨워지던 참이었고,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참여한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은 멋있는 반면 만연한 방식이었다. 이와 반대로 애니메이션에 브랜드를 통째로 등장시켜 화제성과 신선함 모두를 인정받은 발렌시아가를 보니 어쩐지 통쾌해지는 기분.
EDITOR 이상

  • 02 오픈시

    올해의 사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뱅크시의 작품이 NFT에서 고가에 거래된 것이다. 뱅크시 본인도 몰랐을 거다. 가상자산의 폭발적인 유동성은 디지털 아트 시장으로 번졌고, NFT는 레거시 아트 마켓을 뛰어넘는 규모를 갖추게 됐다. NFT 거래는 이미 지난해부터 이어져왔지만 본격적인 성장을 이룬 건 올해 초의 일이다. 터무니없는 ‘움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됐다. NFT를 실체가 없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이미 쏟아진 물이고, 그 물이 바다를 이뤘다. 전 세계 최대 NFT 거래소는 ‘오픈시(OpenSea)’다. 2천만 개 이상의 NFT 작품이 등록되어 있다. 이 수치는 매월 빠르게 늘고 있다. 오픈시에서는 뛰어난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볼 수도 있지만, 웃기고 허접한 파일들도 많다. 그런 것들도 오픈시에서 거래된다면 디지털 아트로 분류될 거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이냐를 논하는 건 오픈시에서는 의미 없다. 희소성과 투자가치가 중요하다. 그럼, 다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었느냐로 회귀한다. 오픈시는 투기를 조장하고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근원적인 질문을.
    EDITOR 조진혁

  • 03 애플 M1 맥스

    애플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해왔는데, 대부분은 관점을 달리한 기능과 디자인, 생태계 구축 등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난 10월 공개된 M1 맥스 칩은 좀 다르다. CPU와 GPU 등 애플이 직접 개발한 칩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애플이 만든 칩은 뭐가 대단해? 사실 별 기대 없었는데, 난리가 났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전작인 M1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그래픽 처리 속도가 최대 4배 빠르다. 전력은 덜 소비하고, 발열도 적은데 성능은 몇 배나 앞선다. 그리고 이 엄청난 칩이 맥북프로에 들어간다. 유튜브나 보는 글쟁이 입장에선 맥북프로는 너무 사치스러운 사양이지만 끌린다. 4K 고해상 영상이나 3D 작업을 워드 사용하듯 가볍게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재료가 준비됐으니 요리해봐”라고 애플이 말하는 듯하다. 근데 요리 못 하는데 어쩌나.
    EDITOR 조진혁

  • 04 홀 리뱅

    방송사만 다를 뿐 노래 한가락, 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끼를 뽐내고, 가끔 신파극도 보여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제 한물갔다고 여겼다. 그런 와중에 보기 시작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모든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문화 전반에도 돌풍을 일으켰다. 마이너 신에 머물러 있던 댄서들을 주인공으로 카메라 앞에 세우고, 그들의 춤과 정체성과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대중에게 알렸다. 댄서들의 댄서가 모여 벌인 생존 게임에서 우승한 팀은 홀리뱅. 초반에는 하위권에 머물며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수십 명의 댄서들이 참여한 ‘메가 크루 미션’에서 보란 듯이 1위를 하며 정통 힙합 크루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리더 허니제이는 강하지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팀원들과 의견을 조율했고, 그 끝에서 탄생한 작품성에 대중은 열광했다. <아레나> 11월호에서 만난 그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등 해도 기억에 남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만족하고 사람들도 좋아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은 거죠.”
    EDITOR 노현진

  • 05 <씨스피라시>

    지난 3월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된 환경 다큐 영화 <씨스피라시>. 바다(sea)와 오염(conspiracy)을 결합한 제목으로 바다 생태계 오염의 주범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뤘는데, 시청 후 머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미디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보내는 해양오염의 실상에 관한 이미지는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바다거북 등이지만, 영화에 따르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46%는 어업 장비이고 빨대는 0.03%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현대화된 조업 방식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해결되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굉장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양업계는 반발했고, 내용이 과장되었음을 주장했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지속가능한 어업’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구의 푸른 바다는 죽어갈 거라는 것 말이다.
    EDITOR 노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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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몬스타엑스

올해의 나에게 영향을 준 인물, 이 질문에 ‘몬스타엑스’를 떠올리게 된 시작점은 당시 로 컴백을 앞둔 몬스타엑스 민혁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부터였다. K-POP 시장의 특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룹. 기승전결이 몰아치는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며 격한 댄스 브레이크를 소화하는 아이돌. 본업을 잘하는 것은 물론 팬덤과 각별하며 소통에 살뜰하기까지. 그날의 인터뷰에서도 팬들에게 질문을 남긴다면 ‘어떻게 나를 그리고 우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답변에 ‘아이돌’이란 직업관과 세계관을 200% 이해한 그룹이라 느껴졌다. 그 이후 원고가 써지지 않는 날에는 몬스타엑스의 노래를 노동요로 삼고, 고된 하루의 끝에는 멤버들의 케미가 터지는 ‘짤’들을 검색하며 마무리하게 되었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이 시점에도 내적 에너지를 선물해준 ‘몬스타엑스’를 내 마음속 올해의 인물로! 그들의 곧 있을 컴백과 미국 활동 역시 응원하는 바다.
EDITOR 이아름

07 비트코인 ETF

다시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인 ‘프로셰어즈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가 출시되면서 그 정당성이 상당 부분 인정됐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선물이란 미래 일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현재 시점에서 약정하는 거래로, 결국 미래의 가치를 사고파는 것이므로 비트코인을 암호화폐 거래소 밖에서도 매매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기대했던 비트코인 현물 ETF는 승인이 나지 않았지만, 이더리움 역시 ETF 출시를 검토 중이라고 하니 화폐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인 CBDC 발행을 준비 중이고, 이에 쓰이는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일상을 가상세계에서 보내고, 그곳에서 CBDC나 암호화폐로 월급을 받으며, 물건을 사지 않을까 하는 허황되지만 현실성 높은 망상.
EDITOR 노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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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머드 사우루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가던 나의 호시절은 비디오 하나면 행복했다.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빛의 전사 마스크맨> <초전자 바이오맨>의 주인공처럼 지구를 지킨다는 생각에 마냥 들뜨기도 하고, 평화를 핑계 삼아 동생에게 악당 역할을 일임하기도 했다. 그만큼 ‘특촬물’ 시리즈의 영웅들은 나에게 피할 수 없는 클래식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이 다시금 떠오른 건 최근 눈여겨본 <아머드 사우루스>의 티저 영상 때문이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 기계 군단에 맞서는 파일럿과 공룡의 이야기. ‘어벤져스’급 서사도 모자라 애들이라면 환장할 만한 로봇과 공룡을 합체한다는 설정도 기가 막혔다. 더 놀라운 건 국내에서 만들었다는 사실. 넷플릭스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하니 ‘K-어린이 드라마’의 화력을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다. 올해의 완구 시장은 <아머드 사우루스>가 점령할 거다.
EDITOR 차종현

09 DokeV 도깨비

국뽕’ 맛을 제대로 저격한 ‘K-게임’이 등장했다. 들어는 봤나? ‘DokeV’. 도깨비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독특한 세계관에 넣었다. 쉽게 말해 가상공간과 현실을 실감 나게 표현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세계 3대 게임쇼 <게임스컴 2021>에서 미리 공개한 트레일러 영상은 터지다 못해 감동을 선사했다. 처음엔 응? 그다음엔 아? 마지막엔 와! 보는 내내 소름 돋는 그래픽과 스토리 구성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말았다. 서울이 연상되는 배경하며 한복을 입고 요리조리 움직이는 캐릭터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수능 금지곡 1순위에 두어야 할 중독성 짙은 ‘브금’도 알고 보니 아이돌이 참여한 곡이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은 어느새 제작사인 ‘펄어비스’의 주가를 상승곡선으로 바꿨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대로만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날은 연차 내고 ‘부먹’하겠다.
EDITOR 차종현

10 현대차 아이오닉 5

전기차는 미래적인 이미지를 내포해야 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내연기관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시장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미래적인 이미지가 잘 먹힌다. 아이오닉 5는 올해 초 출시됐다. 현대차가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전기차를 공개할 거란 소문은 작년 하반기부터 불거졌고, 과연 얼마나 대단한 차를 선보일지 눈을 뾰족하게 뜨고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아이오닉 5는 현대차의 전기차 시대를 개막하는 상징적인 모델이자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다. 과감한 디자인과 획기적인 주행가능거리, 긴 휠베이스와 광활한 공간 등 장점이 많지만 핵심은 V2L(Vehicle To Load)이다. V2L은 차량 배터리의 전력을 일반 전원(220V)을 이용해 외부로 전달하는 기능이다. 차 내부의 220V 플러그에 노트북이든 전자레인지든 김치냉장고든 전원 케이블을 꽂으면 집과 다르지 않다. 외부 환경에서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를 제약 없이 사용하게 만들었다. 이제 전기차는 이동하는 커다란 배터리 역할도 겸한다. 아이오닉 5의 배터리를 이용해 캠핑은 물론이고 대규모 콘서트를 여는 등 상업 활동도 가능하다. V2L은 전기차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것이라는 주장에 납득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수긍시킨 기능이다. 아이오닉 5가 미래 모빌리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EDITOR 조진혁

11 낫싱 이어 1

올해의 ‘라이징 테크’로 ‘낫싱 이어 1’을 꼽겠다. 이유는 없다. 예쁘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케이스가 일단 마음에 든다. 그동안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하입’이라고 해야 하나?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글로벌 브랜드라는 점도 좋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주저리 떠들 수 있는 것 포함해서 말이다. 그럼 기능은 어떨까? 주변 소음을 차단해주는 노이즈 캔슬링 옵션은 기본이고 미세한 잡음만 제거하는 ‘클리어 보이스 테크놀로지’ 모드를 도입했다. 청음에서 가장 중요한 음질도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이다. 어쨌거나 이 정도 디자인에 안 어울리는 착한 가격도 인정할 만한 부분이다. 배터리마저 넉넉하니 걱정 없이 귀에 넣어주면 된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빠른 품절이라 매 순간 ‘눈팅’의 수고로움을 해야 하는 정도다. 이쯤 되면 올해의 이어폰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EDITOR 차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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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귀멸의 칼날>

일본 문화는 더 이상 붐을 일으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음악과 영화는 2000년대 초반에서 정체되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극장판이 등장하면서 편견이 깨졌다. 2021년 1월, 코로나19로 한산했던 극장가가 북적였고 표는 피케팅 수준으로 구하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뒤에서 다섯 번째 중간 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국내에 오타쿠가 이렇게나 많았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을 때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봤고 영화관을 나올 때 나는 이미 카마도 탄지로가 되어 있었다. 신작임에도 관객수 1백50만 명을 훌쩍 넘길 수 있었던 건 지브리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영상 퀄리티 덕분이다. 격투 신과 액션 신 연출이 훌륭했다. <진격의 거인>은 산으로 가는 이야기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졌고 결국 중반부부터 정지 상태로 둔 게 2년 전 일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용두사미와는 거리가 멀었고 시리즈와 자연스레 이야기가 연결됐다. 일본 하면 애니메이션이지만 최근 기대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이 위상을 세웠다.
EDITOR 정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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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구찌 가옥

구찌가 하우스 브랜드로는 이례적으로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고? 이 소식만으로도 관심 집중인데 위치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수의 하우스 브랜드가 청담동에 자리 잡은 것과 달리 구찌의 새로운 집은 이태원에 들어섰다. 스토어의 명칭을 가옥(GAOK)이라 명명한 점도 독특했다. 한국의 고유한 환대 문화를 표방한 것이라는데, 동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외관 파사드, 색동 문양에 영감받은 제품들, 보자기와 노리개를 활용한 패키지를 보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메탈릭한 타일과 다채로운 조명이 마치 1970년대의 디스코 클럽을 연상시키는 내부는 이태원의 분방한 지역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대개 하우스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자신들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구찌의 새집은 달랐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성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셈. 당분간 이태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EDITOR 김성지

14 NUDAKE

‘누데이크’는 F&B로 예술을 선보인다. 평범하지 않은 건 물론 특이하기보단 기괴하다. 조각상이나 미술 오브제 같은 케이크를 만드는데 질감은 그대로 구현되고 맛도 보장된다. 인간의 코와 입을 형상화한 석고 같기도 하고, 화강암이나 우주 식량 같기도 하다. 케이크 디자인을 제외하고도 누데이크의 행보는 걷잡을 수 없이 앞선다. 새끼손톱만 한 크루아상을 만들어 이슈를 불러오기도 했다. 마케팅 소재도 상상을 뒤엎는다. 외계인 같은 모델이 무표정으로 케이크와 빵을 든 채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지 않으면 누데이크 케이크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누데이크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오감을 만족하는 체험을 갈망한다. 직접 보고, 만지고, 먹는 것. 전시가 됐든 뭐가 됐든 말이다. 누데이크는 오감을 만족시킨다. 맛도 맛이지만 눈을 행복하게 하는 디자인과 공간의 분위기는 완벽하다. 남들은 못 할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누데이크.’
EDITOR 정소진

  • 15 빅 브랜드×빅 브랜드

    살다 보니 구찌 쇼에서 발렌시아가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올해 100주년을 맞은 구찌의 휘황찬란한 쇼에 발렌시아가의 아워글라스 재킷이 등장했다. 두 브랜드의 로고가 나란히 나열된 패턴도 참 별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명백히 구찌의 런웨이였다. 2022 봄 발렌시아가 클론 컬렉션엔 반대로 GG 로고를 그대로 카피해 만든 BB 로고가 채워진 구찌의 시그너처 백들이 등장했다. 만우절 장난 같기도 한 이 컬렉션은 두 빅 하우스 유산의 코드를 완벽하게 뒤섞은 ‘해커 프로젝트’.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합법적 도용’이라고 설명했다. 펜디의 F, 베르사체의 V를 결합한 펜다체(Fendace)도 있었다. 이들은 서로의 비전에서 영감을 받은 ‘스왑’ 방식이었으며, 펜디 모노그램과 베르사체 그리스 키 모티브를 조합하여 완성한 베르사체 by 펜디, 도나텔라 베르사체 스타일의 펑크로 재탄생한 펜디 by 베르사체로 구분된다. 정말이지 근 몇 년간의 이슈 중 가장 유별난 장면들이었다. 당장 오늘 아디다스와 나이키, 맥도날드와 버거킹 협업이 출시된다해도 놀라지 않을 거 같다.
    EDITOR 최태경

  • 16 백신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후에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다. 더 깊고, 길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백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전체 인구 대비 80%가 1차 접종을 마쳤다고 한다. ‘백신’의 등장은 ‘미지수’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너무 빠르거나 위험한 건 아닌지, 언제 어떤 것을 맞을 것인지, 접종 후의 상태 등 고민과 선택 그리고 불안의 연속이었다. 잔여 백신을 찾아 앱을 켜고, 진통제를 미리 사두고, 팔의 통증에 대한 밈이 생성되는 등 처음 겪는 상황들투성이였다. 나의 경우에는 2차 접종 후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고 저릿한 증상이 있었다. 몸 상태에 이렇게 예민하게 주시한 적은 처음이었다. 접종 완료 후 불안함이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 한 걸음의 노력만큼이라도 코로나와 거리가 생겼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긴장을 늦출 순 없다.
    EDITOR 이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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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강철부대

화제성, 놓칠 수 없지!’의 의무감으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편이다. <강철부대>의 티저를 접했을 땐 자극적이거나 과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 무서운 기세로 입소문이 퍼져나가자 시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인과 각 부대의 특징에 대한 접근, 승부욕과 자존심 사이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무엇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부분이 매주 화요일마다 <강철부대>를 본방 사수하게 만든 힘이 아니었을까.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도 끝까지 해내려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고백하자면 점차 떨어지는 스스로의 체력과 정신력을 돌아보고 자극을 받기도 했다. 얼마 후 UDT 대원들을 촬영장에서 만났다. 직접 마주한 그들은 프로그램 속 모습과 같이 매 순간 열심과 진심이 배어 있었다. 그야말로 파이팅 넘치는 현장이었고, 촬영이 끝난 후 남모를 전우애가 피어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시간 맞춰 챙겨보고 마지막 회를 기다린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EDITOR 이아름

18 오메가 도쿄 2020 리미티드 에디션

2021년에 진행된 2020 도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모든 게 불안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로 인해 사상 초유로 올림픽이 미뤄지는가 하면, 아예 개최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이었고, 대부분의 파트너사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메가는 그 현장을 굳건히 지켰다. 오메가가 올림픽의 공식 타임키퍼 역할을 한 건 올해로 벌써 29번째. 이번에도 오메가는 모션 센서와 포지셔닝 시스템 도입 확대로 올림픽 계측의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했고, 최첨단 센싱 기술을 통해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선수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 분석했다. 선수 및 코치뿐만 아니라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끊임없이 응원하는 관중들에게도 명확한 데이터를 통해 현장의 긴장감과 에너지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정확하고 명료한 건 오메가가 아니었을지. 오메가의 29번째 올림픽 엠블럼이 새겨진 씨마스터 아쿠아 테라 도쿄 2020 리미티드 에디션이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이유.
EDITOR 최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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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슈 by 보테가

올해 초 보테가 베네타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웨이보의 계정을 삭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SNS에 목매기 바쁜 지금의 시대에 이런 탈현실적인 행보는 오히려 큰 뉴스거리였다. 대신 다니엘 리와 하우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저널인 ‘Issued by Bottega’라는 사이트를 열었다. 컬렉션 일정에 맞춰 1년에 4번 발행하는 이 저널은 이슈(Issue)라는 이름 뒤에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는 식. 보테가 베네타만의 아이디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시각을 담은 비주얼 매거진은 가장 최근 이슈 03이 발행되었다. 그런데 #newbottega 창조자 다니엘 리가 얼마 전 돌연 퇴임했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보테가 베네타 레디투웨어의 디자인 디렉터였던 마티유 블라지가 맡게 된다. 과연 #newbottega의 세계관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EDITOR 최태경

  • 20 2021 키아프 서울

    ‘키아프’라는 국제아트페어가 생소했을지라도 올해 진행된 키아프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번 키아프는 새로운 기록과 많은 의미를 가져다줬는데, 가장 큰 이슈는 5일간 6백50억원어치의 수익을 거뒀다는 것.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키아프의 신기록이었다. 특히 슈퍼 컬렉터가 아닌 MZ세대가 저 수익에 한몫했다는 점이다. 내가 갔을 땐 키아프 마지막 날이었음에도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미 작품이 많이 팔려 텅 빈 가벽이 멀거니 있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엔 솔드아웃을 상징하는 빨간 딱지가 붙었고, 팔린 작품은 그 자리에서 포장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2021년의 또 다른 이슈인 가상화폐, NFT, 주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보단 그저 눈에 보이고 확실하게 소유의 느낌이 드는 미술 시장에 MZ세대는 더욱 열광하는 걸까? 이미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을 단순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팬데믹, 무궁무진한 디지털 세계 등 많은 사회적 이슈가 담긴 2021 키아프였다는 생각이 든다.
    EDITOR 유선호

  • 21 2020 도쿄올림픽

    열릴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잠시, 많은 걱정에도 올림픽은 개최되었다. 그것도 작년 연도인 2020 도쿄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단 채로. 누가 이 위험한 시국에 선수들을 마음 놓고 타국으로 보낼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했지만 막상 시작되니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여러모로 힘든 시기에 다 함께 응원할 수 있었던 스포츠 경기는 유일한 희망이었나 보다.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올림픽에 출전해 4강 신화를 만들어낸 ‘식빵 언니’ 김연경과 여자배구팀,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쓴 대한민국 양궁팀, 남자 사브르 단체전의 주인공 어벤져스 4인 등 많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번 올림픽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위로’였다고 할 수 있겠다.
    EDITOR 유선호

22 <오징어 게임>

뭐 이런 내용이 다 있을까 싶다가도 눈을 뗄 수 없고, 다 보고 나면 허탈한 느낌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 아이러니한 스토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징어 게임>이 실제 있다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아니다. 이미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비윤리적 게임이라는 장치로 현실적인 사회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자본주의를 비꼬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하나하나 짚은 탄탄한 구성이었다. 이 작은 칸에 <오징어 게임>의 깊은 이야기와 흥행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 없어 아쉬울 뿐. 최근 <오징어 게임> 시즌 2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황동혁 감독은 “(시즌 2 제작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실 텐가? 참여에 응한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그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DITOR 유선호

  • 23 패션 메타버스

    디지털 플랫폼이 익숙해진 만큼 올해는 어떤 기발한 쇼들이 내 상상력을 자극할지 기대됐다. 구미가 당겼던 여러 쇼 중 딱 두 가지만 뽑았다. 우선은 발렌시아가. 워낙 디지털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라 기대가 컸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미래 도시와 디스토피아 세상을 탐험하는 비디오 게임 형태로 쇼를 전개했는데 게임 속 NPC들이 컬렉션 피스들을 입고 있어 둘러보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의외였다. 언제나 점잖은 무드로 영화적 이야기를 선보인 그들이 이번 가을과 겨울에는 우주를 조망했다. 토르의 고향 아스가르드를 연상시키는 배경을 캔버스 삼아 PVC 케이프, 체인 원피스, 스쿠버 유니폼에 영감받은 보디수트 등 미래적 요소를 결부시킨 것. 올해는 제페토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3D 가상세계에서 개성 담긴 아바타를 꾸미는 제페토 역시 패션 브랜드의 이목을 끌만한 좋은 수단이었다. 더 이상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제페토라도 다운로드해야겠다.
    EDITOR 김성지

  • 24 하우스 도산

    젠틀몬스터가 올해 2월 문을 연 하우스 도산은 이제까지 없던 플래그십 스토어는 아니다. 젠틀몬스터는 단순히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 누데이크가 입점한 복합적인 공간보다는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매장 1층이 가지는 고정관념과 잔상을 전환하기 위해 기능과 효율 대신 거대한 3D 설치물로 생경한 장면을 선사하는 것부터, 공간마다 다른 콘셉트와 이를 관통하는 미디어 인스톨레이션으로 긴장감과 리듬감을 조성해 끊임없이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 비주얼부터 음악, 아트 영역까지 아우르는 여러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감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했다. 하우스 도산이 피상적인 플래그십 이상이라는 건 분명하다. 단지 지금 정의하기 어려운 건 하우스 도산은 젠틀몬스터가 향후 몇 년간 선보일 프로젝트의 시작점이기 때문. 젠틀몬스터가 그리는 퓨처리테일의 방향성과 그 규모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EDITOR 이상

  • 25 크록스

    올 한 해 가장 뜨거웠던 스니커즈를 하나만 뽑는다면 단연 크록스! 작년부터 저스틴 비버, 포스트 말론 등 팝스타들과 협업을 하더니 빔즈, 산쿠안즈, 디스이즈네버댓과도 합을 맞췄다. 그 활약은 비단 패션 브랜드뿐만이 아니었다. 코카콜라와 농심 등의 F&B 브랜드와도 경계 없는 만남을 이어간 것. 그중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발렌시아가와의 협업이었다. 어글리 슈즈에 정평이 난 두 브랜드의 만남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그 자체. 최근 공개한 두 번째 협업에서 부츠와 힐 형태의 신발을 공개했는데 캠페인 비주얼이 가히 신선했다. 신발이 돋보이게 몸을 비튼 모델이 눈에 띄었는데, 신체와 용도를 왜곡하는 예술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안나 우덴버그와 사진가 크리스티나 나겔의 합작이란다. 만약 당신의 연인의 신발장에 크록스 하나 없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떨지?
    EDITOR 김성지

  • 26 Donda

    칸예 웨스트. 아니, 예(Ye)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만일 그가 보편적이고 지루한 걸 한다면 세상은 무너질 거다. 비범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가 정규 10집 <Donda> 앨범과 함께 신의 경지에 올랐다. 앨범은 1번부터 27번 트랙으로 다 들으려면 두 시간이라는 대장정을 떠나야 한다. 발매 당시 언론과 대중의 호오가 갈렸다. 개인적으로 명반이라 생각하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맞먹는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반응도 꽤 있다. 우선 앨범 제목 ‘돈다(Donda)’는 세상을 떠난 칸예 웨스트의 어머니 이름이다. 왜인지 그가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그는 논란의 길을 걸어왔다. 2020년 대선 출마, 킴 카다시안과의 이혼 등 숱한 전쟁을 겪었다. 그런 그는 종교의 힘을 빌렸고 기도했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힙합을 가스펠과 버무렸고 고차원적인 음악을 창작했다. 경기장을 빌려 진행한 리스닝 파티 현장도 무시무시하다. 칸예 어머니의 연설로 시작하여 거대한 십자가가 걸린 집을 설치하고, 불태우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대혼돈의 파티였다. <Donda> 앨범 속 ‘Come to Life’의 뮤직비디오는 닉 나이트 감독이 연출한 것으로, 거기에서도 하늘로, 우주로 멀리멀리 날아다니는 칸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 산업에 손을 뻗은 칸예가 <Donda> 앨범 발매와 함께 ‘DONDA’ 스템 플레이어라는 뮤직 플레이어까지 내놓았다. 어찌됐든 앨범은 단숨에 각국에서 차트 1위를 거뒀고 빌보드 핫100 차트 1위까지 차지했다. 이쯤 되면 칸예 웨스트 자체가 종교가 아닌가 싶다. 칸예 웨스트, 아니, 예(Ye)에게 2021년 최고의 이슈메이커이자 ‘일에 진심인 사람 상’을 주고 싶다.
    EDITOR 정소진

  • 27 알베르 엘바즈

    지난 4월,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그 자체로 패션 아이콘인 알베르 엘바즈가 코로나 합병증으로 갑작스러운 비보를 전했다.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하우스의 부활을 이끌던 그가 2016년에 홀연히 브랜드를 떠난 지 5년 만에 자신만의 브랜드 ‘AZ 팩토리’로 복귀했던 게 올해 초였기 때문에 상실감은 더 컸다. 팬데믹 이후 그나마 활기를 되찾은 2021 S/S 파리 컬렉션에서 AZ 팩토리는 그를 기리는 추모 컬렉션을 선보였다. 컬렉션은 드리스 반 노튼, 장 폴 고티에, 릭 오웬스를 비롯한 45명의 디자이너가 알베르 엘바즈의 면면을 오마주한 룩들로 이루어졌다. 이 컬렉션의 제목은 ‘Love Brings Love’. 재능 많은 디자이너가 꿈꾸던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모든 여성이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패션이었다. 비록 모두에게 사랑 받던 알베르 엘바즈는 우리 곁을 떠나 아쉬움이 남지만 그의 업적은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본다.
    EDITOR 이상

  • 28 브레이브 걸스

    브레이브 걸스는 예비역이라면 모를 리 없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전역하는 선임이 아끼던 귀한 물건을 물려받듯이, ‘Rollin’’ 무대 영상과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거나, 춤을 따라 추는 게 관습처럼 이어졌다. 하지만 그건 군대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회로 나오면 추억처럼 과거에 두었다.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던 때, 별안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올해 2월, 유튜브 알고리즘이 예비역들을 군대의 추억으로 인도했다. 브레이브 걸스 ‘Rollin’’의 뮤직비디오와 위문 공연 영상이었고, 거기엔 각자 군대 내에서의 추억과 영상 속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국군 장병들의 엄청난 호응을 본 사람들의 재밌고 신기하다는 식의 댓글이 뒤따랐다. 어떤 장병은 내 선임이 춘 것보다 더 못생긴 방식으로 브레이브 걸스를 향해 흥을 방출했다. 이후 브레이브 걸스는 EXID나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시리즈가 데려온 과거의 이름과는 다른 양상의 인기를 누렸다. 거리 곳곳에 ‘Rollin’’이 울려 펴졌고, 레트로가 아닌 신곡처럼 인기를 끌었다. 공중파 음악 방송 1위에 오른 걸 봤을 때는, 어쩌면 악몽처럼 묻어둔 군생활에 대한 기억을 보상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양준일처럼 한 계절짜리 문화 현상 같은 인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지난 6월 공개된 브레이브 걸스의 후속타 ‘치맛바람’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3천6백만, ‘운전만해’의 후속곡과도 같은 ‘술버릇’은 2개월 만에 2천2백만에 달하며 기세가 좋다. 브레이브 걸스는 어쩌면 우리의 추억을 타고 돌아와, 현재를 순항하는 새로운 의미의 데뷔를 2021년에 치른 게 아닐까.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 29 방탄소년단

    2021년에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거부하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국내 최초는 물론 빌보드 62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어 노래로 빌보드 핫100 1위라는 빛나는 수식어에 앞서, ‘Dynamite’는 잘 빠진 디스코 팝이었다. 보랏빛 일곱 소년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건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난 후였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로 빌보드 역사상 네 번째로 1위 데뷔 곡을 다섯 곡이나 보유한 가수가 됐다. 올해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는 방탄소년단의 수익이 매년 약 5조7천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뉴스를 접하고 K-아이돌만이 가진 세계관이,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이 궁금했다. 소년들의 성장기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충실한 인물 묘사가 돋보였다. 유명 소설을 읽는 것만큼 짜릿했다. 방탄소년단의 의사와 별개로 국회에서 방탄소년단의 업적을 치하하며 군 면제 논의까지 나왔을 때쯤에는 그들의 완전한 팬이 되어 있었다. 플레이리스트 상단에는 항상 이들의 곡이 있었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트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최초, 최고, 최다.’ 이제는 방탄소년단을 따르는 익숙한 수식어다. 현재 방탄소년단은 12월 3일에 열릴 미국 공연을 앞두고 있고, 20만 장의 티켓은 보란 듯이 당일 매진됐으며, 암표 티켓 가격은 2천1백65만원까지 치솟았다. 방탄소년단의 저력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졌다. 이 보이 그룹의 지구적인 인기 요인은 도대체 뭘까? 이런 의문에 앞서 이들은 데뷔 이래 긴 공백 없이 신곡을 발표했고, 관객을 대면하기 어려운 시국에도 온라인 비대면 공연 무대에 올라 팔다리가 찢어져라 춤췄다.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 30 제페토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필수품인 오늘날의 아이들은 메타버스의 적응이 쉬웠을까. 2G 폰을 경험한 어른으로서 고민의 답을 다 찾지 못하던 때,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번졌다.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현실을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인 메타버스가 팬데믹으로 대면이 어려워진 시대에 새로운 소통 대안으로 자리 잡는 걸 보면서 의문이 커졌다. 그중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 네이버제트의 제페토가 거둔 세계적인 성공 뉴스를 봤다.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해 똑 닮은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앱을 통해 세계 명소를 재현한 공간을 누비며, 아바타는 다른 사용자와 친목을 도모하는 분신 같은 역할을 하는 앱이라고 했다. 이제는 친구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 귀한 순간이 되려는 걸까? 제페토의 인기는 커뮤니티에서 멈추지 않았다. 구찌, 랄프 로렌 등 세계적 패션 브랜드는 제페토를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선 공개하거나 아바타를 위한 옷을 출시했고,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아바타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최근 제페토 가입자 수가 2억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와 나란히 있는 ‘10대들은 실제로 만나서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제페토를 통해 다시 만난다’는 학부모의 하소연 같은 인터뷰를 보며, 새 시대를 실감한다. 제페토가 SNS의 새로운 대안일지, 진정한 의미의 요즘 시대 소통 방식일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테지만.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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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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