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목이 <지리산>이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걸까? 8회가 방영된 현재, 이 드라마에서 미덕을 찾기가 어렵다. 지리산의 풍광을 보여주는 것이 미덕일까? 드라마로서는 그 역시 미덕이 아닐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조차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의 옷이 차고 넘치게 나오는데, 그 옷들이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예뻐 보인다 한들, 그것 역시 드라마의 미덕일 순 없다. 전지현은 왜 여전히 아름다운 것인가, 감탄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이 미덕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판단에 동의는 한다.
원래 이 글은 제목에 적혀 있듯 <지리산>의 각본을 쓴 김은희 작가를 변명하기 위해 기획했고, 드라마를 계속 보다 보면, 그러니까 이야기가 계속 전개되면 초반의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빛나는 장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장면은 없었다. 남은 회차에서도 음, 속단이지만 없을 것 같은데. ‘이게 다 PPL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건 비논리적이다. PPL을 쏟아붓고도 성공하는 드라마가 많으니까. 그러나 약간의 변명거리는 될 거 같다. 가을에, 전지현이 주인공이고, 산이 배경인 드라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가을- 전지현-산’ 이런 흐름이 공개되었을 때, 드라마 제작 환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했을 것이다. ‘와, 등산복 브랜드가 돈을 많이 내나?’ 주인공은 전지현과 주지훈이 아니라 등산복 브랜드다. 비약인가?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응 비약이야’라고 말하는 게 애매하게 느껴진다.
드라마를 매회 볼수록 더 그렇다. 7회에서 다원(배우 고민시)은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꽤 오랫동안 산속 깊이 들어간다. 굳이,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촬영되었다. 물론 다원은 숲 어딘가에서 현조(배우 주지훈)를 만난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극의 전개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하고 의심하고 있던 사람들은 정작 현조를 만나는 장면을 보기도 전에 그 풍경과 등산복을 보며 불평을 하느라 기분이 나빠진다. ‘뭐가 중한디’라고 물을 만도 한데, 제작진이 과연 현조를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직전의 장면을 찍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주객이 전도됐다. 왜 그랬어요, 묻고 싶은데, 사실 답은 뻔하다. 이런 질문은 가능하겠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했어요? ‘적당히’가 PPL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뜬금없는 얘기지만, 현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도대체 PPL을 어떻게 활용하고 노출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드라마 앞뒤의 광고조차도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찍은 것들로 채워진다. 자연스럽게 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특정 방송 하나에 얼마나 많은 상업 브랜드가 밀착되어 있는 걸까 생각하면, 시청자가 과연 드라마를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의아하기도 하다. 시장 논리라는 입장이 있을 수는 있으나, 어찌됐건 적당한 선은 아니다. 심지어 <지리산>뿐 아니라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끝날 때 우측 하단에 제품 광고를 한 번 더 노출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드라마 속 PPL만큼 많지만 이 글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생략.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왜 산이었을까? 산… 스릴러, 장르물의 실력자인 김은희가 왜 산을 배경으로 각본을 썼을까? 물론 산에서도 훌륭한 스릴러, 훌륭한 장르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김은희라면’이라고 생각했을 거고.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산에서 어떤 스릴러가, ‘스릴러’라는 단어가 세게 느껴진다면 ‘이야기’로 바꿔서, 산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까? 하물며 주인공이 산악 구조 대원들이라면? 대부분은 흥미진진한 구출 이야기가 스펙터클하게 전개되는 걸 상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김은희는 작가적 특성상 산에 비밀스런 사건들, 범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게 김은희 스타일이고, 사람들이 김은희에게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 그런데 산이라니.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시작 단계부터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한 명은 병원 침대에 눕는다. 스펙터클은 고사하고, 두 명의 주인공이 ‘아바타’를 내세워 사건을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조의 혼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이강(배우 전지현)은 휠체어 위에서 드론을 띄워 다원을 따라간다.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남은 회차에서도 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금 왜 산이었을까? 묻게 되는 것이고, 다시 PPL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다. 산에 유명 여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가을에 필요했던 게 아닐까? (만약 김은희가 산이라는 배경을 직접 선택했다면, 죄송합니다.)
드라마 게시판을 보면 김은희가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는 글이 있다. 각본을 김은희가 아니라 장항준이 썼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다. 장항준이 그렇게 ‘까일’ 수준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과소평가한 발언이다. 아무튼 그것도 이 글에서 논쟁할 거리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김은희의 팬으로서 이번 드라마는 거의 ‘거르고’ 있다. 뭘 더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히 나는 <킹덤 시즌 3>나 그 외 작가가 선보일 신작을 궁금해하고 있다. 부디 <지리산>이 다음 작품을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드는 경험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어떤 경험이 되었을까? ‘산’에서는 김은희조차 힘을 쓸 수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경험? 음, 지금이라도 산에 좀비를 풀어야 하나? <지리산>이 남긴 건 네파의 별로 특이할 것도 멋질 것도 없는 재킷과 등산화 정도다. 진심으로 전혀 멋지지 않다.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가? 부디 또 다른 주인공, 남은 회차에는 그만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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