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테이블 앱에서 알람이 오면 즉시 앱을 켜야 한다. ‘빈자리 알림’을 신청해둔 A 스시 오마카세에 취소석이 생겼다는 의미인데, 바로 들어가도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어도 나는 매번 실패하고 있다. 이러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바꿔버릴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내 스마트폰, 사실은 앱 켜지는 데 남들보다 0.1초쯤 더 걸리는 것 아닐까?
‘스강신청’으로 고통받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니다. ‘모리아께’는 서울 신라호텔 아리아께의 스시 전설, 모리타 셰프가 담당하는 칸막이 안쪽 좌석을 부르는 오마카세 은어다. 전통적으로 예약 어렵기로 유명한 스시 오마카세인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화 예약을 잡기 위해서는 5백 번은 통화 버튼을 눌러야 겨우 연결이 될까 말까라고 한다. 물론 연결이 된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이 비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약 앱을 이용하는 스강신청이라 해서 조금이라도 만만한 면이 있지는 않다. 모리아께처럼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한 달이나 보름치 예약만 여는 것이 인기 식당들 대다수의 상황이다. 예약이 열리긴 했나 싶을 정도로, 번번이 실패다. 어느새 정착된 예약 문화와 흐름을 같이한 예약 앱 중 하나인 캐치테이블에 물어보니, 예약 마감 최단시간 기록이 0.7초였다고 한다. 이 앱에서 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페이지 서너 번은 넘겨야 하는데, 그걸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비단 스시만의 일도 아니다. 야키토리 좀 먹어볼까 해도 야키토리 오마카세 예약이 안 되고, 파스타 좀 먹어볼까 해도 ‘파마카세’ 예약이 안 된다. 예약 전쟁은 취소석을 기다려봐도 소용없다. 캐치테이블에선 예약 건수 대비 평균 4.9배 빈자리 알림 신청이 들어오고, 톱급 식당 중에선 12.5배 이상의 알림 신청도 존재한다고 한다.
2021년을 요약하는 푸드 트렌드 키워드는 집에서는 HMR, 집 밖에선 오마카세다. 지금 핫한 음식에는 틀림없이 오마카세 코드가 결합돼 있다. 생면 파스타도, 토종닭 야키토리도, 쿠시아게도, 한식 디저트도, 심지어 보양식이나 스페셜티마저도. 그리고 모두 다 예약이 쉽지 않다. 캐치테이블엔 11월 현재 2천2백여 개 식당이 입점해 있는데, 그중 스시와 한우, 가이세키 등 오마카세로 정확히 분류돼 있는 식당만 해도 3백13개다. 이 수치도 매월 평균 14%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오마카세는 아시다시피 스시부터가 시작이다. 식당에 온전히 메뉴 선택을 맡기고(일본어의 ‘맡기다’에 해당하는 ‘任せ’ 앞에 お가 붙은 말이다), 식당은 제철 재료를 재능을 다해 최선으로 조리해 조화로운 순서로 내는 형태. 스시 재료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무척 다양하기에, 각 스시 식당의 개성과 능력 한계를 보여주기 최적인 상호 신뢰 기반의 코스다. 제대로 하자면 각 손님의 취향도 살펴가며 다음 재료나 조리법, 순서를 즉석에서 변경하기도 하니 스시를 쥐는 요리사와 손님이 마주 보는 오픈키친과 바 구조가 필수적이다.
코로나19 이전 오마카세의 역습은 도산공원과 청담동 일대에 ‘스시 벨트’를 형성한 프리미엄 스시와 한우 위주, 그리고 번화가에서 주택가까지 영역을 넓힌 엔트리와 미들급 스시에 국한된 움직임이었지만, 코로나19를 만나며 폭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식이 위축되자, 오마카세가 범장르적으로 부상했다. 높은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거친 젊은 요리사들이 취업할 곳이 줄었다. 영업 시간과 모객 인원 양면으로 압박을 받은 외식업계 양질의 일자리가 종적을 감추자 실력과 자신감을 가진 요리사들이 취업 대신 개업을 택했다.
오마카세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조금씩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 형태다. 코로나19 시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출처 불명의 타인들이 밀집하지 않고 최소 인원만 헐겁게 접촉할 수 있으니 대형 식당보다 안심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넷이나 여섯이 아닌, 단둘에 가장 적합한 바 형태인 점도 유리했다.
관점을 바꿔 식당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오마카세는 일정 규모 이내에서 최대한의 운영 효율을 취할 수 있는 서비스 형태다. 우선 최소 크기의 업장에 많아 봐야 12석 이내의 좌석만 들여놓을 수 있으면 식당이 근사하게 성립한다. 잘하면 오너 셰프 혼자서, 좀 바빠도 직원 2~3명만 분주하게 움직이면 된다.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줄어든다. 사이즈가 작으니 그만큼 인테리어에 투자해야 할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른 개업을 택하는 젊은 요리사들의 자본 사정에 맞는다. 개업 후에도 경영 불확실성이 적다. 오마카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예약제는 재료 로스를 최소화해준다. 예약이 들어온 만큼만 최선의 재료를 딱 맞춰 마련하면 영업을 마친 후 버려야 할 재료가 거의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마카세는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가 주도권을 쥔 서비스 형태다. 식당이 정한 시간 동안 식사가 제공되고, 1시간 반이나 2시간 이내에 손님이 고분고분하게 퇴장한다. ‘한 병만 더’가 안 된다. 소주 한 병 더 시키고 두세 시간 더 뭉개는 손님이 있을 수 없다. 시간 대비 좌석당 매출이 크든 작든 정해져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가져온다.
MZ세대로 분류되는 젊은 요리사들의 취향에도 잘 맞는다. 식당 노동자 삶의 질에 기여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변수 없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재료 구매할 시간, 재료 준비할 시간, 서비스할 시간, 정리할 시간을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고, 딱 나올 만큼의 매출을 올린다. 이외 시간은 MZ세대 취향의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자기계발 또는 주식과 코인,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 식당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다. 독립을 앞당겼으니 어딘가 취업해 ‘꼰대’ 밑에서 참고 견뎌야 했을 억울한 시간도 겪지 않는다. 내가 아는 ‘꼰대 요리사’들은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오긴 왔을 붐이라고 말한다.
다시 소비자 입장으로 돌아와, 오마카세는 색다르고 이롭다. 커다란 솥이나 접시에 들어 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이전의 외식 경험과 판이하다. 다양한 맛의 경험을 합리적인 비용에 제공받는다. 이제 와선 오마카세와 코스 요리, 세트 메뉴가 혼재된 개념이 되다 보니, 3만~5만원대 오마카세 시장이 힘을 얻었다. ‘스강신청’이란 말에서 읽히듯 지갑이 덜 두꺼운 대학생들부터 오마카세의 핵심 소비층이다. 이 낮은 진입장벽은 <미쉐린 가이드> 도입 후 흔한 선망의 대상이 된 파인다이닝의 테이스팅 코스를 대리 체험하는 입문 역할로 연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오마카세가 최고로 이로운 점은 예약 전쟁 승리의 전리품을 SNS에 내걸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 흐름에 부응해 사진이 잘 나오도록 면밀히 설계된 조명 덕분에 ‘때깔’ 또한 기막힌 음식을 무려 열댓 가지씩이나 포스팅 하나에 다 못 올릴 정도로 으리으리하게 자랑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이로운가! 그리하여 나도 여의도의 그 스시 오마카세랑 로데오의 그 야키토리 오마카세, 그리고 삼성동의 그 파마카세 좀 먹고 자랑하고 싶다. 내일 당장 스마트폰을 바꾸러 가야겠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예약 페이지를 다 넘어가는 ‘금손’들께서는 저에게 비법 좀 공유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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