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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물론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들. 그들의 선택과 행동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021년 정치, 스포츠,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돌아본다.

UpdatedOn December 09, 2021


 SOCIAL MEDIA 
매드몬스터



친구 중에 골프 인플루언서가 있다. (당연하게도) ‘뽀샵’에 능한 친구인데, 몇 년 전 신기한 게 있다며 실시간 보정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당시는 사진(인스타)에서 영상(틱톡, 유튜브)으로 권력이 넘어가던 시기. 친구는 사진에서와 달리 본모습이 들통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참이었다. 신기술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해당 기능은 IoT, 블록체인보다 의미 있는 테크임이 분명했다.

영상 속 그의 모습은 그렇게 기괴할 수가 없었다. 빠른 화면 전환에 얼굴은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 실물과 보정 사이를 오갔다. (24fps만 되어도, 1초에 24번 ‘뽀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인위적인 비율 조정이 더해져 안 하니만 못한 수준. “차라리 살을 좀 더 빼라”며 쓴소리를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냥 놔둘걸 그랬다. 바로 그 기괴함이 2021년 가장 영향력 있는 2인조 그룹 탄생의 기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매드몬스터는 기술의 한계를 유머와 콘셉트로 승화시킨 상품이다. 바보를 연기하는 천재처럼. 혹자는 장 보드리야르를 꺼내와서 시뮬라르크로 매드몬스터를 설명한다. 콘셉트가 현실을 대체했다는 얘기다. 사실 매드몬스터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콘셉트가 현실을 흉내 내다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열광하던 이들이 균열 지점에서 실망하고 이탈하지 않을까?

결과는 정반대. 사람들은 로지처럼 뻔한 시뮬라르크보다 현대판 ‘낯설게 하기’에 ‘좋아요’를 누르고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한다. 곽범과 이창호의 얼굴이 드러날 때면 ‘오빠들에게 악귀가 씌웠다’며 항의를 하고, 멤버들의 열애설과 불화설에 반응하며 사과문까지 이끌어낸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내 열정을 사랑하니까.
WORDS 원호연(<에비뉴엘> 에디터)


 SPORT 
김연경



김연경을 보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온다. 스포츠 스타를 만드는 기본 항목들이 있는데 김연경은 그게 전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배구선수로서의 성과, 대중에게 어필하는 본능, 엔터테이너 상품성, 사회적 영향, 애국심 자극 부문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2021년 김연경은 마지막 관문인 ‘라스트댄스’까지 완벽하게, 위대하게,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쌍둥이 폭탄이 터진 흥국생명의 멱살을 잡아끌고 혼자 힘으로 챔피언결정전까지 갔다. 도쿄올림픽에서는 런던에 이어 두 번째 4강 신화를 썼다. 한일 양국 언론이 헐뜯기 경쟁을 벌이는 통에 도쿄올림픽은 우리에게 ‘뒤통수를 갈겨줘야 할’ 무대처럼 인식되었다. 그때 김연경의 여자배구 대표팀이 홈팀 일본을 상대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김연경의 포효 앞에선 없던 애국심도 갑자기 생기는 기분이 든다.

4강 티켓이 걸린 터키전은 ‘네이버’ 스트리밍 역대 최다인 동시접속 1백40만 명을 찍었다. KBS가 툭 잘라 유튜브에 올린 터키전 5세트 풀영상은 2백30만 뷰를 기록 중이다. 시차를 두고 소비되는 경기 영상은 2002월드컵 4강 신화와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정도였다.

김연경의 ‘하드캐리’는 경기뿐 아니라 여자배구라는 종목 자체를 끌어올렸다. 국내 V리그는 이미 프로야구, 여자골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 스포츠 3대장’ 중 하나로 떴다. 배구를 담당하는 종합지 후배는 “선배, 우리 죽을 때까지 이런 선수는 안 나와요”라고 단언했다. 입을 쩍 벌린 김연경의 환호는 우리에게 통쾌함을 준다. 기다란 팔을 양쪽으로 쭉 뻗는 세리머니에서 우리는 성취감을 만끽한다. 경기 중 굽는 식빵은 짜릿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2021년 사방이 답답한 한국 사회에 김연경의 외마디만 한 대리만족이 또 없다.

올림픽이 끝나고는 예능과 유튜브에서 친근한 언니, 누나로 변신해 팬들에게 다가간다. 코트 안팎이 모두 완벽하다. 김연경은 멋있다. 시원시원한 체형이 멋있다. 듬직한 리더십이 멋있다. 녹슬지 않은 기량이 멋있다. 욕해도 멋있다. ‘식빵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x나 멋있다.
WORDS 홍재민(축구 전문 기자)


 K-POP 
유영진



유영진이 돌아왔다. 에스파와 함께 아주 화려하게. 이것은 SMP가 돌아왔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써도 무방하다. ‘SM Music Performance’의 약어, SMP는 장르라 부르긴 다소 무리가 있지만, 특정 음악을 위한 용어가 존재하는 만큼 그 특징이 확실하다. 사회 비판적 가사, 빈틈없는 편곡과 그보다 더 꽉 찬 사운드, 단순 팝이라기엔 장르 음악의 뼈대를 적극 활용한 음악을 주로 SMP로 구분한다.

댄스 브레이크와 비주얼 요소까지 더해 그야말로 숨막히는, ‘맥시멀리즘’적 H.O.T.와 동방신기 이후 SMP는 흔히 말하는 정통 SMP에서 약간은 멀어진 인상이었다. SM에서 음반이 나오면 유영진보다 다른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었다. 걸그룹에 한정하면 f(x)와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의 시대가 있었고, 알앤비의 영향이 짙은 레드벨벳은 S.E.S.와 f(x)의 유산을 재해석해 고유한 길을 개척했다.

‘쿨’하기보다 화끈하고, 느긋하기보다 열변을 토하는 SMP는 필연적으로 무겁다. 흥얼거리기보다 어느 정도 ‘각 잡고’ 가사와 무대까지 같이 감상해야 그 의도와 매력을 백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약간의 진입장벽을 포함한다. 에스파는 SMP의 야심작이었고, SM이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관 SMCU(SM Culture Universe)의 시작과 더불어 데뷔했다. 마블 영화가 그 세계관인 MCU를 이해할 때 더 재미있다면, 에스파의 곡은 한술 더 떠 SMCU를 모르면 가사 해석이 어렵다. SMP의 모험이자 승부수였다.

유영진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Next Level’과 ‘Savage’를 연달아 작사, 작곡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가 한동안 몰두하던 묵직한 덥스텝이나 SMP를 상징하는 록 대신,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한 힙합의 시원함과 에스파의 신비로움이 SMP의 박력을 입자 시너지가 폭발했다. 곡 중간 불현듯 등장하는 SM식 멜로디와 창법의 갑작스러운 쾌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Next Level’과 ‘Savage’는 거꾸로 ‘디귿춤’과 ‘광야’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SMCU를 찾아보게 만드는 괴력을 발휘했다. 아니, SMCU를 몰라도 상관없다. 그 안무와 말맛 자체만으로 담론과 밈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에스파의 특별함이자 장벽을 무너뜨리는 유영진표 프로덕션의 힘이다. 이 시점에서 SM 엔터테인먼트와 유튜브가 추진한 ‘리마스터링 프로젝트’가 결코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11월 4일, SMP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H.O.T.의 ‘전사의 후예’ 리마스터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아! 니가 니가 니가 뭔데”로 시작하는 그 노래의 충격이 25년 만에 더욱 선명해졌다. 유영진의 귀환과 함께.
WORDS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ENTERTAINMENT 
임플란티드 키드


2021년 한 해 유독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가 메타버스일 거다. 메타버스는 ‘초월, 그 이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와 ‘세상 또는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대화에 참여하고자 정확한 개념을 모른 채 여태 아는 척을 해왔다면, 조금 쉽게 이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 이를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식대학’이다. 개그맨에서 유튜버로, 다양한 서사를 가진 ‘부캐’들로 콘텐츠를 만들고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즐거움을 찾는 일이 2021년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그중 느슨해진 힙합 신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혁명적인 인물이 있다. 피식대학 채널은 코로나 시대에 맞춰 ‘B대면 데이트’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이때 등장한 참가자가 바로 힙합 레이블 ‘영 칠린 더 호미’의 수장 임플란티드 키드였다. 반지하 작업실에서 가사를 쓰고 믹싱하면서 누나와 비대면 데이트를 즐기는 연하남 수민이. 말끝마다 욕 아니면 힙합 추임새인 ‘스껄’을 외치고, 있어 보이려고 ‘변곡점’ 같은 단어를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허세 넘치는 래퍼. 우리가 <쇼미더머니>를 비롯해 힙합 콘텐츠에서 종종 보던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공통점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힙합 스타를 꿈꾸던 임플란티드 키드는 실제 힙합 신의 래퍼들 관심을 사로잡더니, ‘딩고 킬링벌스’에 출연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쇼미더머니 10>에 나올 줄은 정말 몰랐는데, 1차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2차 예선에서 ‘절면서’ 불구덩이에 처박히긴 했지만. 메타버스가 올해의 트렌드로 떠오른 데에는 가상의 세계에서 부캐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고 싶은 MZ세대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임플란티드 키드처럼 현실세계에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기꺼이 가상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임플란티드 키드는 <쇼미더머니 10> 1차 예선에서 자신을 가짜라고 하는 래퍼들과 시청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어차피 니들도 살고 있잖아, 메타버스. 근데 난 현실에 나와 뱉어 킬링벌스!” 올해를 강타한 키워드 메타버스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순 없다.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POLITIC 
이준석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성공한 ‘젊은’ 정치인은 이미 멸종한 공룡 같은 존재였다. 86이라 불리는 지금의 50대가 정치계에 젊은 나이로 데뷔했을 때, 그때가 정치권에 공룡이 보이던 마지막 시기였다. 이후에도 ‘젊은 정치인을 육성하겠다’는 선언은 난무했지만, 이들 중 제대로 자리 잡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올해 6월 정치계에서 멸종된 줄 알았던 공룡이 다시 한번 발견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 주인공. 헌정사상 최초로 36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대 규모 보수정당의 대표가 됐다. 물론 이 대표가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는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권에 들어선 지 햇수로 1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대다수 발탁인사들과 달리 비례대표 등 쉬운 길을 마다했다. 대신 보수 계열 정당을 전전하며 논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5월 6일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할 때만 해도 그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자들의 스펙이 대단했다. 이 대표와 함께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인물은 나경원, 주호영, 조경태, 홍문표 의원. 모두 4~5선의 정치 베테랑들이었다. 정치권에서는 “–3선인데 4~5선 의원들과 경쟁이 되겠느냐”(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3번 나와 전부 낙선한 것을 비꼬는 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당대표 결선이 끝나자 이 같은 이야기는 구름처럼 사라졌다.

젊은 당대표는 보수야당의 체질을 바꿨다. 일단 보수당 지지자들의 연령대가 변했다. 2017년만 해도 ‘보수야당 지지자’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태극기를 가방에 꽂은 60대였다. 그가 당대표가 된 뒤로는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인구 분포가 바뀌어서일까.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덕에 보수정당의 정체성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과거 보수정당의 정체성은 반공사상을 바탕으로 한 ‘애국보수’였다면, 지금은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자유보수’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젊은 세대가 조국 사태,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 등의 이슈에서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정치권에도 공정한 경쟁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당 내 공천에 이를 도입해 실력 위주로 후보를 선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과도한 능력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그 변화가 기대된다. 매번 같은 사람, 혹은 당이 영입한 유명인만 보이던 정치권에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수혈될지도 모른다.
WORDS 박세준(<신동아> 기자))


 GAME 
김택진



엔씨소프트가 11월 야심차게 내놓은 리니지W에 대한 평가가 심상치 않다. ‘린저씨’로 통하는 지인은 ‘이게 과연 21세기의 게임이 맞나’라는 묘한 평을 내놓았을 정도다. 대표 프랜차이즈인 ‘블레이드 앤 소울’ 2편이 혹평을 받은 데 이어 엔씨소프트를 대표하는 흥행 보증수표 리니지까지 환호보다 걱정이 앞선다. 게이머들은 ‘택진이형’을 찾는다. 사람마다 재미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MMORPG 게임들 속에서 내놓는 신작마다 주목받고,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던 엔씨소프트에 이전과는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달라진 평가는 왜일까? 게임을 못 만들어서? 변화를 못 따라가서? 어쩌면 너무 변화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게임을 잘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임의 구조는 실력이나 노력에서 ‘뽑기’로 넘어가고 있다. 게임 개발사들은 패키지 게임을 파는 대신 게임 속 콘텐츠, 즉 아이템을 판다. 좋은 아이템은 곧 실력이고, 서열로 이어진다.

그 갈등은 ‘아이템 깔맞춤’으로 이어지는 컴플리트 가챠 등 고도의 수익 구조를 만들어냈고, 게이머들은 여기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아이템을 뽑느라 억대의 돈을 지불하는 이용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 초 리니지 2M은 새로운 아이템 가챠 정책을 공개했다가 뒤집으면서 이용자들의 큰 불만을 샀다. 거액의 돈을 들여 뽑기가 이뤄지는 과정은 불투명했고, 사행성 요소도 지적됐다. 유저들은 또다시 ‘택진이형’을 찾았다. 게임의 가챠 논란 속에서 김택진 대표가 직접 무엇인가를 바꾸는 결단과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장 잘 만든 가챠 중심의 게임들은 게임 업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이야기한다. 리니지를 비롯한 게임은 정치, 경제, 사회가 모두 녹아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다. 모든 경제 구조는 치밀하게 균형이 짜여졌고, 그 안에서 각자의 노력으로 이 세계관을 완성해온 것이 MMORPG의 재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금이 중심에 섰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처럼 아이템 뽑기는 고도화됐다. 그리고 게임 개발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호황을 누렸다. 그 사이에 게이머들은 ‘게임의 재미’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게이머들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해왔다. 돈을 내는 만큼 강해지는 확률 기반의 게임 구조는 신규 게이머들의 진입을 막고, 기존 이용자들도 재미보다 각자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진다. 1998년 시작된 리니지의 메타버스는 재미와 사행성의 아슬아슬한 줄을 잘 탔기 때문에 성공해왔다. 넘으면 안 되는 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김택진 대표다. 게이머들이 택진이형을 목놓아 부르는 이유다.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ART 
윤형근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거장들의 작업은 캡션 없이도 누구의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윤형근 화백의 작품이 그렇다. 엄버와 마린을 섞어 만든 고유의 청다색이 작품 속에서 윤 화백을 자각하게 한다. 올해에는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는 선명한 그의 작업 앞에 그의 삶을 두었다. 메모, 서신, 일기 등을 통해 남겨진 사람 윤형근이 대중을 만난 첫해였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는 평범한 일상 언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솔함이 수많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윤형근 화백의 삶 전체를 오롯이 조망할 수 있었기에 이 가을은 그의 계절이었다.

갤러리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눈으로 윤 화백의 작품을 보았다. 그중 가슴 한켠에 박힌 응어리를 지그시 누르는, 그렇기에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2021년은 2020년부터 이어져온 코로나 장기화로 힘겨웠다. 거부할 틈 없이 도래한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에 저마다 다른 뉴노멀을 맞이했다. 이토록 멀미 나도록 출렁거리는 시대에 윤형근 화백의 작품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깊이 있는 위로를 전했다. 나 또한 전시장에서 그동안 외면하고 숨겨둔 감정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친근하고도 담백한 언어로 전해주는 윤 화백의 품격 있고 깊은 내면의 에너지를 경청했다.

윤형근 화백은 생전에 늘 인간됨 자체가 작품이고 진실, 선함, 아름다움 중에 최상의 경지가 진실함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부분은 작가가 남긴 기록 전면에 깔린 본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더 많은 면모를 알게 된 올해 윤 화백께 더 깊이 공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WORDS 신유정(PKM 큐레이터)


 MOVIE 
황동혁



2021년 코로나19만큼 지구촌에서 위력을 발휘한 키워드는 <오징어 게임>이다. 달고나가 전 세계의 핫 트렌드가 된 상황에서 굳이 <오징어 게임>의 파급력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오징어 게임>이 UFO처럼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황동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재평가하는 일이 중요하다.

2000년에 데뷔한 영화감독 중에서 저평가받은 인물을 고른다면 황동혁을 빼놓을 수 없다. 데뷔작 <마이, 파더>(2007)에서 해외 입양아와 사형수 아버지의 만남으로 가족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가슴 저린 부성애를 선보인 그는 감추고 싶은 실제 사건을 스크린으로 소환했다.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과 학대를 고발한 <도가니>(2011)였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사회고발 영화에 4백66만 명이 동참할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이어서 CJ엔터테인먼트의 기획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흥행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국내에서 8백66만 명을 모았을 뿐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리메이크되었다.

그 후 김훈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사극 <남한산성>(2017)을 선택했다. 병자호란은 사실 누구나 연출을 꺼리는 이야기였다. 인조의 굴욕은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이라서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황 감독은 뚝심 있는 연출로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정면 승부를 했다.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황 감독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기획이지만 영화화하지 못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꽃을 피웠다. 서바이벌 게임에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레트로 열풍)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신선했지만,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드라마의 힘이었다. 복합 장르적인 요소가 가득한 <오징어 게임>은 장르의 재미를 마음껏 활용하면서도 캐릭터에 집중함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궁극적으로 작품의 성공은 캐릭터의 개성과 진솔한 이야기에 달려 있다.

황 감독은 가족 드라마를 비롯해 사회고발이나 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방법을 터득했다. 즉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노하우를 토대로 현대인의 희로애락을 장착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것이 그의 작품이 탄탄한 이유이며, 일본 서바이벌 게임 영화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좋은 드라마는 미학적인 완성도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접점(소통)을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장르 영화를 경유해 드라마의 본질에 다가갔다. 놀랍게도 그는 작가주의나 장르의 대가라는 평가나 응원 없이 스스로 최고치에 도달한 셈이다. 황동혁 감독이 영화 언어나 장르를 혁신적으로 바꾼 인물은 아니지만, 언제나 진정성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받아 마땅하다. 그가 속편을 상상하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전작을 역주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징어 게임>의 묘미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속속들이 알게 된다.
WORDS 전종혁(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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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OR Heyhoney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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