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최욱의 시대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시대. 쓸데없는 얘기를 먼저 하자면, 정치인들이 너무 웃겨서 ‘개콘’이 문을 닫았다는 말은 요즘 더 유효하게 느껴진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기다. 손바닥에 ‘왕’을 쓰고 토론회에 나오는 후보, 엉덩이에 침을 놓는 인물을 아는지에 대한 논쟁, 그리고 여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두 개 더 적자면, 음… 여당 쪽은 웃기는 건 부족한 것 같은데,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후보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재미있긴 했다. 쓸데없는 얘기에서 또 다른 쓸데없는 얘기를 하자면, 탄핵 이후 몰락했던 보수 정당이 지지율을 회복한 데는, 이와 같은 ‘웃기는 능력’이 한몫 아니 두몫하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아님 말고’는 정치인 흉내임!)
아무튼 정치가 이렇게나 재미있다 보니,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졌다. 선거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찾아오고, 지지율을 확인하며 시시각각 승패를 가늠하는 일은 ‘정치 게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흥미롭다.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들, 즉 정치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를 몇 편 찍는다. 정치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뒤에선 모략, 음모, 술수가 난무하지만 정치인의 앞면은 늘 웃는 얼굴이다. (그래서 종종 ‘싸다구’를 날려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걸 지켜보는 대중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따지고 싶은 것도 많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엘리트이고, 그중 일부는 거만하며, 꼴보기가 싫다. 대중은 그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싶고 호통도 치고 싶다. 아들이 50억을 받은 정치인이나,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겐 급여를 밀리면서 민주적인 노동개혁을 입에 담는 정치인들의 경우엔, 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안타깝게도 정치인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룰을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핵심을 찌르는 질문은 피해야 한다는 것, 즉 정치인을 당황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편향되었다는 평가를 듣는 방송인은 김어준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김어준의 힘이 세단 얘기다. 김어준은 공중파 TV에 나오지 않는다. 본인의 결정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신뢰받는 언론인을 조사해보면 최상위 순위에 늘 김어준이 있다. 신뢰와 편향 사이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알려면 알 수 있지만 알고 싶지가 않다. 매우 편향적인 사람은 매우 신뢰를 받는다. 이 모순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 그리고 정치를 둘러싼 환경이다(개인적으로 나는 김어준의 팬이며, 김어준이 편향되었다 데 동의하지만,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은 김어준보다는 힘이 약하고 다만 공중파에도 나오는 최욱이다. ‘유튜브계의 유재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 꽤 많은데, 최욱도 그중 한 명이다. 최욱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불금쇼나 매불쇼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최욱은 선을 넘어도 되는 몇 안 되는 ‘힘 센’ 방송인이다. 중요한 건 ‘힘 센’ 걸로 안 보인다는 점. 그게 보였다면 선 넘을 때 난리나겠지. 편향적이라고.
아무튼 최욱은 공중파 TV에 나온다. 무려 KBS! 월화수목 밤마다. 심지어 생방송! 프로그램 이름은 <더 라이브>. 최욱은 진행을 한다. 정치인들을 들었다 놓는다. 가끔은 높이 들었다가 예고 없이 놓는다. 당연히 다친다. 그래도 정치인은 화를 내기가 애매하다. 최욱이 평범한 동네 ‘꼬마’ 같기 때문이다. ‘꼬마’라는 표현은 최욱을 비하하기 위한 게 아니다. 최욱은 기꺼이 ‘꼬마’를 자처한다. ‘꼬마’는 정치를 모른다. 최욱은 질문하기 앞서 습관처럼 말한다. “제가 잘 몰라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정말 모를까?
정치인 입장에선 화를 내기도 뭐하고 안 내기도 뭐하다. 쟤(최욱)가 정말 모르는지 아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워낙 ‘꼬마’ 같아서 화를 내기가 애매하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 맞네? 외모의 영향이 확실히 있다. 같은 질문을 김어준이 할 때의 느낌과 최욱이 할 때의 느낌이 다르다. 김어준이 두서없이 질문하면 화를 내도 될 것 같다(물론 대부분은 ‘쫀다’). 그리고 최욱은 애매하게 진보적이다. 그러니까 진보적이다, 라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안 진보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애매한 게 뭐 이렇게 많아! 군사독재 시절엔 이런 사람을 회색분자라고 불렀을 것 같기는 한데, 최욱은 그런 어젠다 자체에서 배제된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낯설고 묘한 위치다. 정치인과 이야기하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정치 성향을 아주 약간 드러내기도 하는데, 정치적이지 않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꼬마’ 같아 보여서? 혹은 천재여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최욱은 1978년생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인이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고, 그걸 옹호하는 같은 당 정치인이나 평론가 따위를 볼 때마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때문이다. “그 양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했답니까?”라는 말조차 속 시원하게 못 하는 공중파 TV 진행자들 속에서, 물론 저렇게 거친 형태의 언어는 아닐지라도 누군가 저런 의미의 질문을 한다는 것만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래서 최욱이 웃으며 깐죽거릴 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부디, 최욱, 오래 해라!’ 음, ‘짤릴’ 수도 있는 걸까? 이것 역시 애매한 건데, 문재인 정부 초기 김어준이 SBS에서 정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7개월 만에 종영했다. 최욱은 꽤 오래 하고 있다. <더 라이브> 전에는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했다. 최욱이 줄타기를 잘하는 걸까? 최욱은 줄을 안 탄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기 모순에 빠져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굳이 최욱이 줄을 탈 필요가 없다. 적어도 자신이 저 ‘꼬마’보다 어른스러우며 아는 것도 많다고 믿고, 저 ‘꼬마’ 때문에 당황한다는 걸 절대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강박과 오만 덕분에. 역시 그 덕분에 결국 최욱이 이기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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