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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에 대한 세 가지 시선

선택장애, 넷플릭스의 독과점,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 산업과 심리, 관객의 입장에서 OTT를 본다.

UpdatedOn November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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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TT와 결정장애

심리학적인 흔한 오해가 있다. 선택의 가짓수가 많을수록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나서 금방 일어날 것인지, 5분 더 잘 것인지 갈등하다 깨어난다. 그러곤 어떤 옷을 입을지 옷장의 옷들을 하나씩 들춰보면서 고민한다. 어디 그뿐이랴, 점심때 어떤 식당을 갈 것인지 식당 리스트들을 검토하는 것도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곤 디저트로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이 버거울 무렵 이렇게 외친다. 나도 똑같은 것으로…. 그렇게 어려운 선택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TV를 켜면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선택들의 공격이 이어진다. 수많은 채널 사이에서 어떤 것을 볼 것인가라는 선택 말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어렵사리 고른 옷과 음식, 콘텐츠가 정말 끝내주게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선택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선택하는 일에 버거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이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선택이 왜 힘든 일인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택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선택에 대한 후회가 두렵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는 다른 선택지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짜장면을 선택한다는 것은 짬뽕 국물의 얼큰함을 포기해야 가능하며, 알람을 끄고 달콤한 잠을 5분만 더 자는 선택은 여유로운 출근 준비를 포기해야 가능하다. 만일 1천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 OTT 선택지들 중 어떤 한 프로그램을 고른다는 것은 9백99가지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내가 고른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다 보니 2배속 보기나 빨리 넘기기가 시청 패턴으로 굳어져버렸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이색적인 주장을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진행한 선택과 관련된 실험에서 잼을 23종류 진열한 진열대 앞의 손님들과 6종류밖에 진열하지 않은 진열대의 손님 중 실제로 잼을 구매한 손님은 23종류의 잼 진열대가 아니라 6종류를 진열한 곳에서 훨씬 많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매한 물건에 대한 만족도도 오히려 6종류의 잼 중에서 선택한 사람이 더 높았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OTT가 예전 공중파 3~4채널 TV를 보던 시절보다 더 볼 것이 없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 말이다.

심리학에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현상을 ‘햄릿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던 4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그 햄릿 말이다. 그 옛날 부족함에 시달리던 시대에 다양한 선택은 배부른 자들의 호사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풍족함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누구나 햄릿이 될 수밖에 없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회자되는 현실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리라.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선택의 어려움은 선택으로 해결하는 꼼수를 발휘하기도 한다. 바로 선택을 미루기와 다른 사람 혹은 추천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선택이다. 선택에 대한 압박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도 후회가 일어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 벗어날 수 있는 후회라면 <햄릿>이 고전으로 살아남았을 리 만무하다.

우리가 늘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매번 똑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선택을 미루는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수많은 TV 채널 리스트 중 매번 보는 것만 보면서 볼 게 없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재미있다는 것들, 추천 리스트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남들이 재미있다는 것을 쫓아다니다 보니 정작 자신이 뭘 재미있어 하는지 취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늘도 잃어버린 취향을 찾아서 채널 리스트를 오르락내리락 왕복하는 당신은 수많은 장소 중 하필 TV 앞이라는 옹색한 선택을 한 것이 가장 큰 원죄일지도 모를 일이다.
WORDS 이장주(심리학자)

2 OTT 독과점 시대, 미래를 위한 전쟁

광화문의 코리아나 호텔 외벽에는 넷플릭스 광고가 붙어 있다. 이 커다란 광고만 봐도 넷플릭스의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콘텐츠의 힘’을 강조하는 넷플릭스의 주장은 이러하다. “약 5조6천억원에 달하는 5년간의 동반성장, 넷플릭스와 콘텐츠의 힘이 대한민국 경제에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과연 동반성장을 이끄는가? 또한 OTT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에 도움이 되는가? 답부터 공개하면, 그렇지 않다. 드라마 제작사가 작품 제작비의 15~20%에 해당하는 금액만 수익으로 챙기고, 영화처럼 러닝 개런티를 받거나 부가판권 및 IP를 활용한 수익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주장은 문화침략자의 변명일 뿐이다. 현실을 바라보자. OTT 플랫폼의 독과점은 이미 시작되었다. 넷플릭스는 국내 시장의 반을 장악했다. 웨이브, 티빙, 시즌, 왓챠 등 이른바 토종 OTT는 코로나19 시기 동안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고, 넷플릭스 사용자 수와 비교해 큰 차이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11월 12일에는 디즈니+가 국내에 착륙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왕좌를 놓고 쟁탈전을 펼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 사례를 보면 이들은 양립 가능하다. 즉 상당수 시청자들이 두 개의 플랫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블과 픽사 스튜디오, <스타워즈> 시리즈의 콘텐츠를 지닌 디즈니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두 개의 플랫폼이 70%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서 토종 OTT가 어떻게 생존할지가 숙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토종 OTT 플랫폼의 위기가 당장 콘텐츠 제작사나 크리에이터들에게 악영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징어 게임> 등의 국내 작품들이 불평등한 계약을 한 것은 맞다. 콘텐츠 권리 전체를 넷플릭스에 넘겼으니 ‘악마와의 계약’으로 보일 수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보통 60% 정도의 제작비를 받고, 나머지 비용은 드라마 제작사가 직접 광고, PPL, 해외 세일즈 등으로 충당해야 하는 국내 제작 여건에서 작품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15~20%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회다. 더욱이 2009년부터 아이디어를 품은 황동혁 감독이 꿈을 이룬 것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있어서 가능했다. <오징어 게임>의 잔혹성(폭력성)은 국내 방송이나 OTT가 떠맡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영화와 드라마, 극장과 TV의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제작자나 감독, 배우 등에게 넷플릭스가 좋은 미래를 약속할 것이다(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것처럼 한국어로 연기하면서 에미상을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언어나 문화의 장벽 없이 장르, 소재나 표현의 수위 등에서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다. OTT 세계는 경쟁 과정에서 메기 효과가 일어나면서 글로벌 OTT에 맞서기 위해 국내 드라마 제작 여건이 개선될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OTT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메이저 회사들의 전쟁이 재미있는 볼거리다(1만4천원을 내고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9천9백원을 내고 디즈니+를 한 달 즐기는 것이 더 설레는 유혹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작은 장르나 작품의 색채에서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한국 콘텐츠를 넷플릭스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종속될 것으로 우려할 수 있지만, 그건 기우에 가깝다. 국내 극장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 천만 영화가 공존하는 것처럼 넷플릭스뿐 아니라 디즈니+의 선호도와 특색을 충분히 활용해 한국 제작사들이 다양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크리에이터들은 제약이 많은 조건에서도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더욱이 웹툰이나 웹드라마 등 계속 이야깃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저수지가 존재한다.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과 위상이 커진 만큼 수익을 더 요구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문제는 토종 OTT가 넷플릭스와 쉽게 경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좌절은 금지다! 글로벌 OTT의 독점은 이제 1라운드를 알렸을 뿐이다. 후발 주자에 속하는 토종 OTT의 반격이 2라운드에서 펼쳐질 것이다. 티빙이 얼마 전 1천5백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플랫폼 경쟁력과 오리지널 콘텐츠 강화에 신경을 쓴 것처럼 토종 OTT들도 계속 덩치를 키우고 있다. 꾸준히 투자할 체력이 얼마나 있는지 지켜봐야 하지만,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열쇠는 넷플릭스의 충고대로 콘텐츠의 힘에 있다. 즉 절대반지는 한국 드라마다. 글로벌 OTT가 한국 오리지널 작품에 투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의 킬러 콘텐츠가 전 세계 신규 가입자 유입을 위한 마중물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청자 수의 한계를 고려하면, 토종 OTT는 국내에서 근육을 키우는 동시에 넷플릭스 모델을 벤치마킹해 직접 제작한 한국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한다. 2라운드에서 글로벌 종속을 새로운 성장으로, 하청화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토종 OTT 플랫폼에는 고유한 한국 드라마를 제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결국 콘텐츠를 지닌 자가 OTT를 지배한다.
WORDS 전종혁(영화평론가)

3 기대와 여운의 힘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간 게 2년 전이니까, 옛날 맞다. 옛날에는 문화생활이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거였다. 가끔 미술관도 가지만 미술은 어렵고, 서점도 가지만 책은 어디서든 읽는 거고. 콘서트? 비싸서 자주 안 갔다. 연극이야 바쁜 직장인한테 사치고. 접근성 좋고 저렴하고, 누구하고나 즐기기 좋은 문화생활이 영화 관람이었다.

또 데이트하면 갈 곳이 뭐 있겠나. 카페 아니면 영화관이지. 연애할 때 영화관은 매주 간 것 같다. 일주일에 두 번 갈 때도 있고, 그냥 영화관 앞에서 만날 때도 있고. 영화는 안 보고 팝콘만 사먹기도 했다. 독립영화 극장이나 아트영화 극장 같은 곳도 다녔다. 혼자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둘이 갔다. 영화-밥-카페-술은 데이트 코스 정석이다.

그러고 보니 혼자 영화 보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영화학도의 학술적인 감상을 제외하고.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를 혼자 보는 사람들이 ‘아싸’로 불린 치욕의 시대였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타인과 문화적 체험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함께 영화 보면 가까워지기도 하고, 애틋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다 그러지 않았나. 어느 커플은 극장에서 첫 키스를 했다던데, 영화 보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야 클리셰니까. 더는 설명 안 하겠다.

영화만큼 중요한 건 영화관을 오가는 과정이었다. 기대에는 힘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들뜬 마음은 몸을 움직이게 하고,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극장으로 향하는 과정. 교통체증이나, 영화 시간을 앞두고 카페를 전전하거나, 거리를 걷거나, 무언가를 보거나, 사거나, 읽거나, 만지거나. 그런 과정이 OTT에는 없다. 이 별거 아닌 경험들은 내 안에 축적된다. 날씨나 차가운 공기라든가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기다리며 축적한 경험은 영화를 감상할 때 영향을 미친다. 어떤 형태로든. 극장을 가지 않은 이후로, OTT로 영화를 본 이후 나는 그 과정을 상실했다.

영화는 무엇이었나. 어렵게 구한 표를 들고 극장에 갈 때의 설렘. 시간은 다가오는데 팝콘 줄은 줄어들지 않고. 버터구이 오징어와 콜라와 팝콘을 들고 앉아 스크린으로 광고를 보는 재미. 광고가 재밌다기보다는 축제를 즐기는 기분이다. 그래, 영화 관람은 축제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취향과 기대감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축제. 누가 웃으면 따라 웃고, 야한 장면 나오면 정숙해지는 일심단결 축제.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모습. 여운이 남아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썰물의 모래알처럼 사람들에 밀려 극장을 나서고, 집으로 가는 길.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서 영화를 곱씹었다. 그런 것도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텅 빈 집에 홀로 들어가면, 그제야 스크린에 빠졌던 혼이 돌아왔다. 축제에 다녀오면 자취방의 적막은 어색했다.

외로움은 빈방의 불을 켰을 때 드러난다. 그제야 나는 관객에서 빠져나와 오롯이 개인이 됐다. 자아를 마주한 것이다. 축제 후의 고독, 영화의 메시지, 몇몇 신들의 강렬한 이미지, 대사와 분위기들이 머릿속에 남아 그것들은 펜을 들게 부추긴다. 창작자가 되도록 한다. 그것이 여운이고, 여운이 갖는 힘이다.

OTT로 콘텐츠를 보는 건 편하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라고 부르는 건 어쩐지 좀 촌스럽다. 그냥 콘텐츠라고 하는 게 맞겠다. 자기 전 휴대폰으로 본다. 소리는 끄고 자막만 켜서 본다. 사운드가 끝내주는 작품이라도 어쩔 수 없다. 지루한 부분은 빨리 넘기기를 누른다. 1시간짜리 콘텐츠는 40분 내에 감상하는 편. 전개가 지루하다면 더 빨리 끝내기도 하고. TV로 OTT를 볼 때는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본다. 아내는 그런 내게 집중하라고 하지만, 심심하다. 심심한 걸 어떡하나. 게임하면서 슬쩍슬쩍 본다. 그래도 보긴 본 거다. 시청자를 몰입시킬 정도로 흡입력 있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 그런 콘텐츠라면 딴짓 안 하고, 빨리 넘기기 안 하고 볼 자신 있다. 극장 환경이 아니라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일 거다. 내가 산만한 걸 수도 있고. 빨리 넘기기는 이야기의 목적인 결말에 빨리 도달한다는 점에선 효율적인 감상법이다.

OTT에서는 서사도 부분부분을 생략하기 쉽다. 나만 그러는 건 아니다. 재생 옵션에 1.5배나 2.0배 재생 속도가 있는 걸 보면 과정을 줄이는 효율적인 감상은 콘텐츠 관람의 전 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변화다. TV 채널을 자주 돌리는 버릇처럼, 광고가 나오면 라디오 주파수를 바꾸듯. OTT 형식에 맞는 감상법이다.

다시 잃어버린 힘에 대해 생각한다. 영화관에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교통체증과 다툼, 불가항력인 우연들. 잃어버린 것은 과정들이다. 영화를 마주하기 전까지의 내 서사는 OTT에선 없다. 내 삶도 부분부분 생략됐다.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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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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