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호의 시간
송민호의 필모그래피를 살폈다. 송민호는 ‘위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위너 송민호, 래퍼 마이노(MINO), 미술가 오님(Ohnim), 그리고 그저 송민호. 그에게는 자아가 많고 각각의 자아가 벌여놓은 일이 많다. 예술 다방면에 손을 뻗은 송민호에게 여유란 무엇일까.
벌써 한 해가 저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나이가 속도라고 하잖아요. 그 말 정말 맞아요. 2021년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두 달밖에 안 남았고, 요즘 유독 그 속도를 체감하고 있어요.
왜요?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많은 게 바뀌었어요.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고, 작은 습관도 하나둘 만들어졌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꽤 오래전 일이더라고요. 2019년 하반기니까, 벌써 2년째네. 그걸 느꼈을 때 유독 빠르게 다가왔어요.
시간이 가장 느렸던 때는 언제예요?
그건 당연히 어릴 때. 어렸을 때는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어요. 왜 그랬을까요?(웃음) 방학은 고작 한 달 남짓인데 몇 달처럼 느껴졌고 1년이 너무 길었죠. 어른이 되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가더라고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때는 참, 그랬네요.
쉴 틈 없이 달려왔어요. 곡 작업에 공연, 방송까지 병행하면서요. 지치지 않아요?
누구나 지칠 때가 있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쌓인 피로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갈망인 것 같아요. 배움에 대한 갈망. 창작물을 계속 보여주고 싶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안겨주고 싶어요. 그리고 대중의 피드백도 원동력이에요. 반응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거듭해서 창작하는 거죠. 욕심이 많아요.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있어요. 근데 너무 많아요.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기도 하고요. 결과가 만족스럽든 그렇지 않든, ‘아, 이걸 다르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와요. 후회라기보단 아쉬움이죠.
여유란 뭘까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것.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고, 벌여놓은 일도 많아요. 그것들을 다 소화하느라 시간이 모자라요.
뮤지션 마이노
최근 <쇼미더머니> 시즌 10이 방영했다. 송민호에게 <쇼미더머니>는 꽤 유의미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시즌 4에서는 지원자로 참여했던 그가 프로듀서 자리에 앉았다. 참가자와 심사자가 되어본 그는 누구보다도 힙합 뮤지션들의 행보와 미래를 응원하고 있었다.
<쇼미더머니> 시즌 10에서 ‘그레이’와 한 팀을 꾸렸어요. 서로 어떻게 알게 됐나요?
작년 하반기인가 올해 초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죠. 작업한 적은 없는데 자주 만나다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잘 맞기도 하고. 그래서 <쇼미더머니> 시즌 10 측에서 그레이 형과 한 팀으로 섭외 제안을 했을 때 무조건 콜을 외쳤어요.
음악적으로도 잘 맞던가요?
아주 잘 맞습니다.(웃음)
<쇼미더머니>를 통해 지원자와 심사자를 모두 경험했어요. 무대 위가 아닌 마주하여 바라봤을 때 감정은 어땠어요?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지원자들의 마음이었어요. 그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아니까. <쇼미더머니> 시즌 4에서 절실함을 온몸으로 느껴봤잖아요. 회가 거듭될수록 지원자는 더 간절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래서 모두 잘 됐으면, 1초라도 방송에 더 나왔으면 좋겠고. 어떻게 하면 참가자 각자의 개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요.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이 되었으니까요. 그 부분이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분들이 뿜어내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느껴져 되레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다 같이 파이팅하고 싶죠.
프로듀싱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뭔가요?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고, 또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에서도 직접 무대에 임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돋보일 수 있는지 잘 안다고 믿어요. 그 점을 가장 중시해요. 각자의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요.
처음 본 참가자도 많을 텐데 새로운 뮤지션과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게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즐겁고 재밌어요. 생소한 장르를 구현하는 아티스트를 만나면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건, 참가자일 때보다 심사자인 지금이 더 고되다는 거예요. 배틀을 준비하고 기싸움하고 이기고 지고 겨루는 것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게 많아요. 프로그램 특성상 서바이벌이고, 팀이 결정된 후에도 그 안에서 팀원을 포기해야 할 때가 생기거든요. 탈락이 시스템이고 룰이라 따라야 하니까요. 탈락까지의 과정 속에서 쌓인 끈끈한 정 때문에 떨어트리는 게 괴롭더라고요.
관계와 조직에서 가장 힘든 게 이별이죠. 신예 아티스트들을 만났을 때 자극이 되기도 했을까요?
그럼요. 너무 자극받아요. ‘와, 저런 스타일이 있다고? 이런 스타일을 저런 개성 있는 사람이 표현한다고?’ 신기한 경험 많이 하고 있어요. 전혀 보지 못했던 걸 하는 친구도 있고, 아니면 늘상 봐왔던 걸 색다른 기교로 재창조하는 친구도 있어요. 힙합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로 나뉘잖아요. 자주 소비되어 자칫 지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르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만든 무대도 경험했어요.
미술가 오님
송민호는 미술가 ‘오님(Ohnim)’으로서도 활약 중이다. 5년째 홀로 그림을 그려온 그는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다. 연이어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동일한 기획의 전시를 선보였다. 그는 작품을 창작할 때 가장 유용한 소재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세상을 탐구한다.
송민호가 그린 작품들을 보면 피사체의 눈과 손이 강조되더라고요. 유화 페인팅에선 미감을 엿볼 수 있었고요.
미술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후로는 하나의 작품을 구상할 때 전보다 더 깊이 생각해요.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붓이 가는 대로, 또 감정의 흐름을 따라 그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개념을 넣으려 해요. 개념화하는 방법이 진짜 어렵더라고요. 그리는 시간보다 골똘히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고, 표현 방법을 택할 때도 신중해졌죠. 백지 상태에서 어떤 피사체와 색, 형태와 질감을 넣는 행위가 온전히 내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깊이 빠져들수록 어려워져요.
작품에 대해 ‘그냥 모든 나로부터 느낀 감정들에 집중했다’고 설명했죠. 여전히 감정에 집중하나요?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빈 캔버스를 앞에 놓고 ‘이번에는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담아볼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감정이 소재가 돼요. 감정의 종류나 복합적인 감정을 글로 적었을 때 딱 뜨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럼 그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요.
내면을 탐구하나요?
그렇죠. 미술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면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봤어요.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본질을 찾으려 했죠. 인생을 살면서 겹겹이 쌓여온 필터들을 하나씩 벗겨내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본연의 나는 무얼 원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 그런 행위를 처음 해본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해 탐구한 뒤엔 타인의 감정을 관찰해요. 더 나아가서는 시대와 상황으로 인해 발현되는 감정에 집중해봐요. 거시적으로 시야를 넓히며 알아가는 거죠. 어릴 때는 마냥 현재가 좋으면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요. 관찰하고 고뇌하고 탐구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해요.
시야를 넓히는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요?
내 감정과 타고난 재능을 억누르지 말아야겠다는 것. 미술과 과학은 접점이 많더라고요.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의 뇌에 대해 공부했어요. 통제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을 따르려고 하죠. 우린 사회가 정해놓은 암묵적인 규율 아래 선을 유지하며 부대껴 살아가잖아요. 서로 충돌하고 협의하는 과정 속에서 톱니처럼 살아가요. 하지만 결국 모든 결과의 원인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달리 말하면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라 할 수 있죠. 그걸 억누르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적어도 창작 활동에서는 더욱이요. 그래야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것 같거든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잘 아는 부분도 있고 모르는 부분도 있고.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웃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뭐예요?
모든 작품에 애정을 담지만 그중에서도 당시의 감정이 많이 담긴 그림이 있어요. 그런 그림을 보면 (제 기준에서) 그 감정들이 막 뿜어져 나와요. 작업실에 그림이 많은데 지인이나 다른 작가님들이 작업실에 놀러 오면 다들 그 그림 앞에 오랫동안 서 있어요. 그러곤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말씀하시죠. 내가 담고 싶었던 감정에 확실히 공감하는지, 다양한 피드백을 주세요. 그럴 때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하죠.
좋아하는 작가는 여전히 에곤 실레인가요?
옛날에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도 여전하고요. 그리고 서도호 작가님. 그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찾아볼 정도로 서도호 선생님 작품은 쇼크였어요. 섬세한 드로잉의 김정기 작가님도 너무 좋아해요. 이곳저곳에서 다양하게 영향받으려 해요. 많이 찾아보기도 하고요.
그저 송민호
그는 앞만 보고 질주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레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담담하고 꾸준히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그와의 시간을 마무리 지으며 진짜 송민호에 대해 알고 싶었다.
누구나 멘탈이 부서지는 순간이 찾아와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멘탈이 정말 강했어요. 극복도 잘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멘탈이 약해진 건지 오히려 맷집이 단단해진 건지, 그저 흐르는 대로 두려고 해요. 타격을 받았을 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다가 결국 부러지지 않도록. 고통스럽지도 않아요. 가만히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금방 다시 회복되더라고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나요?
많이, 아주 많이요. 자신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요. 자책도 자제해요.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려고요.
그럼, 본인의 어떤 점을 사랑해요?
갖고 있는 재능을 썩히지 않고 어떻게든 발휘하려는 성격을 좋아해요.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재능을 취미로만 그치지 않고 더 크게 부풀리고 진지하게 임해요. 재능에 진심이죠.(웃음) 갈 데까지 가는 성격이거든요. 그에 따른 단점도 있어요.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는다는 것. 대신 뒷심이 부족하면 안 되겠죠.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