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S의 공식 SNS 프로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안락세계(安樂世界), 장장하일(長長夏日), 만경창파(萬頃蒼波).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기나긴 여름날의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뜻이다. “CHS를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 뻔한 답변은 하기 싫었고 음악 장르에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CHS의 기타리스트 최현석의 말처럼 이 밴드의 음악과 행보는 특정하기 어렵다. 가사 하나 없는 연주곡이 많고, 10분 넘는 대서사시 같은 곡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여름이 떠오른다는 것.
“여름은 좋은 것이라는 말의 대체어로 쓰기로 했다.”(박보민) 2018년 데뷔 곡부터 지금까지 내내 여름의 정서를 노래하는 밴드가 있다. “여름은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풍요로운 것이다.”(최현석) 이들의 말처럼 CHS에게 여름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음악에 계절의 특정한 감상을 이야기한다기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겪고 음악에 표현하는 것이라 말하는 게 정확하다. “우리 여섯 멤버가 함께 경험한 것들을 각자의 악기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달콤한 여름 사탕을 꺼내 나눠주고, 멤버들과 나눠 먹으며, 그 감상을 각자의 악기로 표현하고 한 곡에 담는다.”(최현석) CHS의 멤버는 총 여섯 명. 메인 기타리스트 최현석과 베이시스트 최송아, 슬라이드 기타의 김동훈, 퍼커션의 송진호, 건반과 코러스의 박보민, 그리고 드럼은 양정훈이 담당한다.
CHS는 시작부터 극적이었다. 2018년 밴드의 프런트 맨 최현석이 앨범 마무리 작업을 위해 하와이로 떠났으나, 거기서 녹음 파일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렸다. 절망하며 해변에 널브러졌다. 그때 머릿속을 스친 악상이 있었고, 데뷔 곡 ‘땡볕’이 되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사람들 반응이 ‘이게 뭐야?’였다.”(최현석) ‘땡볕’은 BPM은 이렇고, 작업이 어떻다에 대한 수학적인 설명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새로운 노래였다. 곡의 흐름은 파도처럼 예상할 수 없었고, 한여름 해변에서의 하루처럼 극적인 감상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후 일곱 개의 싱글 앨범과 하나의 정규 앨범이 뒤따랐다. 무드나 방향은 곡마다 다르게 빛났으나 청명한 여름의 정서를 연주했다는 점은 꼭 같았다. “계절의 음악을 한다기보다는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게 여름이니까.” 최현석은 덧붙인다.
9월 23일 발매될 CHS의 스페셜 앨범 <엔젤 빌라>도 CHS의 방식을 이어간다. 2020년 1월, 멤버들은 발리로 떠났다. 그 도시에 맞는 생활 방식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추억이 뒤따랐다. 곁에는 악기가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번쩍 집어 들어 소리를 냈다.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은 없다. 다만 이곳에서의 추억을 음악으로 표현하기에 지금 이 소리는 어색하지 않은가, 생각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각자의 소리를 함께한 추억과 나란히 둘 때 자연스러운지에 대해 골몰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한 스페셜 앨범 <엔젤 빌라>는 CHS가 음악으로 구현한 그들의 목가적인 여름 섬에서의 추억이다. 우리는 CHS가 발리에서 보낸 시간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엔젤 빌라>는 그들의 추억을 모두의 머릿속에 펼치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앨범의 곡 순서대로, 바투르(Batur) 산에 올라 새까만 어둠에서 출발해 하늘빛이 푸르스름하게 번지며 노랗게 피는 황홀한 일출에 대한 감상 ‘Semeng’, 맨발로는 도무지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해변에 대한 목가적인 감상 ‘Beachwalk’, 총천연색으로 폭발하는 석양에 대한 감상 ‘Last Sunset’, 한바탕 시끄러운 밤을 보낸 뒤 폭우를 뚫고 바이크로 시원하게 내달린 순간에 대한 감상 ‘Slowride’, 유유히 돌아가는 실링 팬(Ceiling Fan) 아래서 한껏 늘어져 벽을 기어오르는 도마뱀을 보던 여유로운 시간에 대한 감상 ‘Cicak’, 해무에 뒤덮인 적막한 ‘밤바다’에 대한 감상까지. CHS가 발리에서 보낸 시간은 그들만의 추억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치열하게 음악으로 고민한 기록물을 들으며 그 감상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는, 도무지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맞는다.
그야말로 음악이 악보를 초월하는 순간이다. “발리에서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생활 루틴이 생기더라.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나열하니, 일출로 시작해 한낮과 오후 그리고 석양과 밤까지의 경험을 나열하게 됐다. <엔젤 빌라>는 CHS가 경험한 발리에서의 순간을 하루에 압축한 형태다.”(최현석)
CHS는 <엔젤 빌라> 발매에 앞서 제주도에 다녀왔다. 인적이 드물거나 목가적인 자연 앞에서 공연을 했고, 이 모든 순간을 영상에 담았다. “우리 제주도 가서 자연에서 라이브하자, 가는 김에 투어를 하자, 이왕이면 촬영도 하자라는 말이 커져서 진행한 프로젝트다.”(박보민)
“실내도 아니고, 콘센트 하나 없는 야외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참여한 스태프들도 모두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악기 들고 적당히 연주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공연을 하니까.” 뿐만 아니라 CHS는 이런 야외에서의 공연을 더러 선보인 바 있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공연한 적도 있고, 해변을 마주한 카페 야외 공간에서 관객과 만난 적도 있다.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관객에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점이자, 관객에게 주고 싶은 건 최고의 경험이다.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은 우리한테는 홈그라운드다. 이번 공연은 음향이고 연출이고 모든 면에서 무리했다. 이게 우리 최선인데, 최선에 무리가 있겠나?”(최현석) CHS의 다음 공연은 9월 23일, 서울 노들섬에 위치한 실내 공연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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