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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커피

헬카페 보테가

헬카페는 오랜 시간 용산구에서 강배전 블렌드의 쓴맛을 알려왔다. 그건 서울 커피를 대표하는 맛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서울 커피의 진화에선 중요한 맛이다. 원효로에 위치한 헬카페의 세 번째 매장 헬카페 보테가에서 임성은 대표를 만났다.

UpdatedOn October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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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공간이다. 기능과 취향이 담긴 공간이었다. 이제는 의도가 담긴다. 커피를 비롯해 높은 수준의 음향 시스템, 조명과 그림, 사물과 가구,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에는 주인의 의도가 있다. 우리는 음료값을 내고 그것들을 체험한다. 기사에서는 자신의 카페를 창작한 사람들과 유기체로서 생동하는 카페의 모습을 쫓으며, 커피가 어떻게 서울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이 되었는지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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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서울 커피 문화는 급격히 진화했다. 진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발길은 가파른 용산경찰서 앞을 지나고 있었다. 헬카페 보테가는 용산경찰서 옆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다. 아침 10시에 문을 여는데, 조금 일찍 가서 첫 손님을 자청했다. 그 시각 헬카페의 임성은 대표도 매장에 도착했다. 그는 매일 아침 세 곳의 헬카페 매장 순방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헬카페를 대표하는 다크로스팅 커피를 마시며, 그에게 헬카페를 시작한 연유를 물었다.

피렌체에서의 커피 생활
임성은 대표는 군 전역 후 생활 속의 커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피렌체에 갔다. “이탈리아에 가면 생활 속 커피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왜 이들은 매일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어떻게 마시지? 너무 궁금해서 숙소를 잡고 3개월간 지냈어요. 한국 식당에서 밥 시키면 김치가 나오잖아요. 이탈리아에선 식사를 하면 후식으로 에스프레소가 나와요. 그들에겐 당연한 거예요. 매일 아침 6시 반에는 작은 바에 사람들이 가득 있어요. 카푸치노에 이탈리아식 크루아상을 먹고 출근하려고요. 그 일상을 체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나중에 커피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피렌체에서의 경험은 헬카페에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그는 헬카페의 바를 눈길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걸 만들었잖아요. 여기 한 뼘이 이탈리아 바예요. 정말 이래요.” 피렌체에서의 경험이 커피 맛에도 영향을 주었을까. 진한 강배전 블렌드를 마시면서 물었다. “강배전 블렌드는 이탤리언 스타일인데요. 로망이었어요. 최근 10년 동안 상업적으로 커피 하는 사람들이 주력한 메뉴는 아니에요.” 쓴맛의 강배전은 촌스런 올드 스쿨로 여겨지고, 스페셜티라는 새콤한 커피 맛이 유행했다. 그건 서울 커피의 뉴 웨이브였다.

문학에서 배운 것
임성은 대표는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운 인물 묘사가 카페 운영에 도움됐다고 한다. 그는 카페는 관찰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손님의 인상착의를 보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말을 기억하는 게 유용했다는 것. “포인트는 관찰력이에요. 처음 한 1년 반 동안은 손님이 어느 자리에서 뭐 시켰는지 거의 다 알았어요. 일단 몇 명 안 왔거든요.(웃음) 손님을 관찰하면 취향이 보이잖아요. 의자를 불편해한다거나 그런 건 조금만 신경 써도 보여요. 요구 사항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거죠.”

디테일을 지키는 힘
헬카페는 디테일이다. 귀가 호강하는 사운드 시스템, 고개를 돌리다 보면 시선에 슬쩍 들어오는 꽃의 생기, 쥐고 싶은 낮고 두꺼운 유리잔, 뒤쪽 창고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로스팅 향, 옆 사람 대화에도 청중으로 참여하는 재미가 있는 ‘ㄷ’자 바. 헬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디테일을 챙기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할까. “사람들은 제가 엄청 부지런하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꽃이 예쁘게 시들면 꽃 사러 안 가요. 근데 시든 모양이 마음에 안 들면 잠을 1시간 줄여서라도 새벽 꽃시장에 가요. 제가 못 견뎌서요.” 커피 맛도 그렇다. 본인이 먹을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수준이라면 잠이 안 오죠. 커피가 제가 생각하는 정상 범위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열심히 해요. 부지런한 게 아니에요. 성격이 그래요.” 임성은 대표의 기준이 높은 건 아닐까. 적당히 마실 만한 수준의 커피를 팔면 안 되나? “뭐 어때? 라는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요. 그런 커피는 팔면 안 되잖아요. ‘마실 만한 음료를 제공한다’가 제 직업윤리예요. 다른 건 없어요. 직업윤리에 위배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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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지속할 수 있는 건
개인 카페가 유명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테리어와 커피 이외에 마케팅 감각도 필요하다. 인지도를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더군다나 서울에선. 2013년 개업한 헬카페는 어떻게 현재까지 인지도를 지켜왔을까? “음료를 정성스럽게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직원도 없고 저희끼리 했으니까요. 경력이 있으니 맛있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으면 완성도 좋은 음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커피 맛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헬카페는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특히 감도 높은 사람들에게 좋은 카페로 언급됐다. 좋은 커피와 좋은 사운드, 보통 카페와는 조금 다른 감도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헬카페를 시작할 때부터 음향에 신경 썼어요. 좋은 스피커를 설치하고, CD로(개업 4년 차부터는 LP로) 음악을 틀었죠. 아이스 음료를 낮은 유리잔에 담는 시도도 했고, 꽃을 매장에 본격적으로 가지고 들어왔어요.” 약 10년 전 서울의 커피 전문점들이 트렌디한 감각을 택할 때(그것이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헬카페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했다. 그건 일종의 작업처럼 읽히기도 한다. 커피를 매개로 한 공간 예술 말이다. “공들여 만들었으니 작업물과 유사성이 있죠. 헬카페는 저희의 유기체예요.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으려면 저를 지우고 유행하는 것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겠죠. 하지만 제가 못 견뎌요. 왜 좋은 스피커를 두냐고요? 좋아서요. 꽃이요? 좋아서 시작했어요.”

서울 커피는 월드 클래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 서울 커피 문화는 급격히 발전했다. 약 10년간 카페를 성공적으로 유지해온 사장님의 관점은 어떨까. “처음 해외 사례를 수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은 빨리 배우고, 성장도 빨라요. 경쟁도 잘하고요. 서울의 카페는 엄청 세련되고, 정말 잘해요.” 10년 전만 해도 도쿄 커피 예찬론이 있었다. 서울 카페가 나아가야 할 방향처럼 제시됐다. “지금 서울 카페는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죠. 이렇게 급성장하기 쉽지 않아요. 외국 셰프가 서울 카페를 벤치마킹하는 경우도 있어요.” 서울 커피 수준이 급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특유의 경쟁심 아닐까요.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들이 섞여 경쟁하다 보니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 같아요. 그 경쟁은 생존과 자존감 문제이기도 해요.”

잘하는 카페란?
서울 카페의 수준이 올랐다. 그럼 잘하는 카페란 무엇일까? “의도가 있는 카페죠. 목적의식이 있어야 해요. 문학과 같죠.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어떤 것들을 만들어야 해요. 의도가 담긴 매치는 콜라주지만, 의도 없이 갖다놓으면 의미가 없어요. 한 끗 차이죠. 요소는 같더라도 어떤 의도가 담겼느냐가 중요해요.” 이제 카페는 예술 작품처럼 작업물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안 될 이유도 없겠다. “카페가 작업의 영역에 속한다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모든 카페가 그런다면 정말 멋있겠죠. 하지만 카페에서 유행하는 톤이 보인다면 그건 작업이 아니에요. 자신의 취향에 맞고, 색이 명확해야죠.” 그럼 맛은? 서울 커피는 무슨 맛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을 대표하는 카페들은 스페셜티 원두를 기반으로 한 산미 높은 커피가 많아요. 좋은 커피에는 아름다운 산미가 있어요. 그걸 표방한 카페들이 많아요. 그에 비해 저희는 다양한 쓴맛을 좋아해요. 서울을 대표하는 산미 있는 커피에 비해 진하고 다양한 쓴맛을 강조하는 게 저희 헬카페 커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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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도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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