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벽화 같은 그림도 그리고, 인디언이 연상되는 아틀리에 ‘바람’도 운영 중이다. 제주에 온 건 언제인가?
2012년에 왔으니, 얼추 10년이다. 스물네 살 때쯤 온 것 같다.
서울에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패션 브랜드도 운영했다고.
맞다. 10대 때부터 옷을 만들었고, 20대가 되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 돌아오자마자 빌딩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일한 적도 있다.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의구심이 들어 접었다.
의구심? 어떤 의미인가?
스스로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오래된 엔티크, 빈티지 옷들을 해체하고 재해석한 개인 의류 브랜드를 운영했는데, 자리가 잡히며 내 기준에서 욕심을 부려 판매가를 높게 책정했다. 홍대에서 거주할 때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면의 작업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겉을 가꾸는 것에 몰두하는 나에게 적잖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인도 배낭 여행이 현재 삶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왜 인도를 선택했나?
서울에 있을 때 가장 따르던 형이 인도 잡화점을 운영했는데, 그와 그의 가게를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라 생각해보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겁 없이 덜컥 떠난 것 같다. 그렇게 떠난 인도에서도 별일이 많았다. 해발 4,000m의 마을에서 지낼 때는 백 년 만의 폭우가 내려 한 달 넘게 고립되고, 국내 공중파 뉴스 실종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재난 같은 상황에서 느낀 감정도 있을 것 같다.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사실 거대한 히말라야를 처음 마주했을 때, 작디작은 내 모습에 그간의 온갖 걱정이 부질없는 것임을 느꼈다. 이후 그 경험에서 얻은 것들을 연료 삼아 삶과 작업을 이어간 것 같다. 여행 후 돌아온 한국에서는 ‘머리 쓰지 말고 몸 쓰자’라는 생각으로 건설 현장 잡부 일을 전전하며 정직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며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틀리에 바람은 제주에 정착한 직후 시작한 건가?
바람은 이제 4년 차다. 제주에 와서는 목수 일을 주로 했는데 일하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직접 내 공간을 꾸며보자 했다. 남는 나무 조각에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하다 보니,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은데 육체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는 몸이 고되어 그럴 에너지가 모일 틈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일하여 쌓은 것들을 처음 인도에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내려놓고 내 작업물을 평소 수집하던 에스닉, 트라이벌한 소품들과 엮어 작업과 판매를 하는 공간을 꾸리게 되었다. 바람의 이름과 큰 틀은 홍대에서 따르던 형의 소중한 것들을 이어받았다.
바람의 인테리어를 비롯한 공사도 직접 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폐가 수준이었다. 그래도 내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배운 게 있으니까, 직접 고쳐볼 만하겠더라. 그래서 내부를 꾸미고, 마당도 취향대로 만들었다. 당시 가게 인테리어나 마당에 있는 유목을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일본의 몇몇 에스닉한 숍에서 영감을 받았다.
인테리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닥이다. 바둑판 같은 배열에 저마다 크기가 다른 나무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일반 타일로 바닥 마감을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재료값이 비싸더라. 그래서 직접 깔아서 만들었다. 공사하며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바람의 상징이 됐고, 덕분이 인테리어 외주 일도 받게 됐다. 재밌는 일이지.
제주의 몇몇 가게 인테리어를 맡았고, 최근에는 건물 두세 채 규모의 인테리어도 진행한다고 들었다.
바람을 운영하기도 하고, 그림을 비롯해 개인 작업도 하니까 여력이 없어서 못 하다가 도전하게 됐다. 관련 학교를 나왔다거나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라 고민이 많았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공사에서 안전 관련 사항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다 의뢰인이 ‘온전히 자유롭게 작업해달라’라고 했다. 내구성, 미적 요소, 실용적인 부분에 따라 중요도를 매겨 최선의 결과물을 전달했다.
인테리어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도 함량 높은 작품을 만든다.
목수 일을 할 당시 버려지는 자재목이 아까워 작은 조형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해변을 산책하며 모은 유목 조각들을 짜맞춰보고 배열한 게 현재 작업의 시발점이었다. 어떤 리서치나 정보 없이 취미로 시작한 것들이라 살면서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이후 작업을 이어가며 ‘자연미술’ ‘대지미술’ 등에 포함되는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며 정처없이 헤매던 작업 방향에 뿌리를 내리는 고마운 상황도 종종 있었다. 가장 최근 전시로 제주도 내 동백동산 숲에서 유목 프레임 거울들을 배치하여 진행한 전시 <서로>가 있으며, 이후에는 음악이나 영상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다. 어디선가 받은 좋은 영감이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바탕이 되는 것 같다.
제주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나?
배낭 하나 메고 터덜터덜 돌아다니다 객사하는 모습만 그려질 때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처음으로 정착한 이곳에서의 삶이 참 다행이라 느낀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더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나?
도시에 대한 향수에 자주 잠기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도시 생활을 하는 건 영 어렵게 느껴진다. 제주도 생활이 정리되면 전라도에 자리를 잡고 싶다. 거친 섬 생활과는 사뭇 다른, 육지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대지를 빌려 새로운 삶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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