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미국 주류 시장 정복은 그 어떤 정교한 표현으로도 그 함의를 일일이 다 끄집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매거진 <롤링스톤>은 BTS의 위상을 ‘World's Biggest Band’라고 아주 짧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밴드라는 표현은 지금의 BTS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다. 생각해보자. 그 어떤 부가적인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는 것은 BTS가 단지 케이팝이나 아시아, 혹은 특정 산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현재 세계 주류 팝 시장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과가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면 대중음악 역사에서 서구권이 내놓은 팝 아이콘의 절대 다수가 미국과 영국의 스타들, 그것도 백인 스타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마이클 잭슨이나 비욘세처럼 아프리카계 미국 스타들이 있으나 이는 주류 산업 전체에 비추어 보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유색인종은 ‘인종 시장’이라는 틀에 갇혀 있을 정도로 주류 산업의 게이트키핑은 철저하다. 그런데 바로 그 장벽을 아시아인이자 비영어권 팝 스타인 BTS가, 그것도 그들의 시스템을 직접 통하지 않고 외부에서 치고 들어가 넘은 것이다. 팝 음악사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BTS의 성공이 각별한 것은 추상적인 수사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빌보드 HOT 100 차트를 비롯한 주류 산업의 기록으로 구체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종의 ‘착시’가 존재한다. 현재 케이팝이 국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위상을 얻었지만 여전히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케이팝은 그간 매우 제한적인 성공만 거두어왔을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의 기록은 다름 아닌 BTS에 의해 달성되었다. 빌보드 차트 가운데서도 주류 시장에서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빌보드 HOT 100에서 톱 10 이상의 성적을 거둔 한국 아티스트는 싸이와 BTS 둘뿐이다.
싸이의 경우 ‘강남스타일’과 ‘젠틀맨’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케이팝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BTS는 이에 더해 그 강도나 지속성에 있어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역사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2017년에 <DNA>(67위)로 깜짝 HOT 100 진입을 이룬 이들은 불과 1년 만에 톱 10 히트곡을 냈고, 3년 만에 1위곡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둘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추세와 지속성이다. 싸이가 그야말로 ‘바이럴’에 가까운 급격한 인기 곡선을 그리며 첫 히트곡인 ‘강남스타일’ 이후 하락세를 탄 데 반해 BTS는 미국 내에서 팬덤의 규모와 지명도를 꾸준히 키워가며 미국 ‘강제진출’ 4년 만에 쉬이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성을 구축해내기에 이르렀다.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의 잇따른 1위 소식, 그것도 10주에 이르는 장기 집권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반 대중보다는 팬덤 중심의 화력과 그들의 집요한 스트리밍 및 구매 공세로 얻은(혹은 그렇게 보이는) 이들의 1위 기록이 인기 차트 본질을 흐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BTS의 1위를 정당한 ‘인기’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냐는 문제다. 그 자체로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견이긴 하지만 BTS 현상과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전례 없는 미국 내에서의 성공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그다지 의미 있는 논의로 확장되기는 어렵다. ‘10주 연속 1위’로 대표되는 BTS의 현상적 인기는 일반대중-팬덤의 이분법적 구분이나 구매 패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이유와 동기에 대한 설명, 그러니까 ‘어떻게’보다는 ‘왜’에 집중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1948년에 빌보드 HOT 100 차트가 만들어진 이래 소위 ‘HOT 100 시대’가 63년간 지속되어왔지만 우리는 그 각각의 1위곡이 어떤 식으로 어떤 홍보와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1위곡인지 일일이 관심 갖거나 따져 묻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그 방식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자체적으로 꾸준히 규정을 개선해나가며 트렌드에 발맞춰온 빌보드 차트는 어느 음악이 상업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했냐는 것을 그들만의 기준으로 보여줄 뿐 그 인기의 성격을 알려주는 데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Butter’의 꾸준한 인기가 오로지 팬덤의 ‘화력’으로만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BTS의 히트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 압도적인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는 여느 틴 팝 아이돌 스타들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관찰되는 경향이며, 최근까지도 10~20권에 위치한 라디오 방송 횟수는 적어도 이들의 인기가 보편적이며 제도권이라는 ‘시스템’에 진입했다는 것의 방증이다.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테일러 스위프트 등을 비롯해 최근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여성 틴 팝 아티스트인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미국 메이저 레코드 회사들의 압도적인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SNS상의 수많은 팬들의 적극적인 홍보와 구매를 통해 그들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큰 틀에서 인기의 본질이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들에 비해서도 BTS 팬들의 자발적 지원의 강도는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외로 손쉬운 답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들이 당연하게 받곤 하는 미디어의 푸시나 시스템으로부터의 혜택, 혹은 문화적인 이점을 BTS는 똑같이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차이를 인식하는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메워 그들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 모습이 어딘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면, 통상적으로 미디어와 홍보 시스템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대중음악의 ‘인기’라는 것이 늘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되묻고 싶다. BTS는 외국 아티스트로서 주어진 조건의 열악함을 팬들의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지지로 채워 경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은 지명도로 일반 대중들에게 BTS라는 그룹을 각인시켜 보편적인 인기로 확장시키는, 인기의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을 남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미처 드러내지 못하는 인기의 ‘강도’를 아주 직관적이면서 본질적 요소, 즉 팬들의 ‘성원’으로 극복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옳다. 아미들의 노력으로 BTS는 주류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모두에게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보편적인 지명도를 가진, 한국이 낳고 세계가 키운 팝 슈퍼스타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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