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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상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삼탈리아 빈티지

소설가 박상의 새 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이탈리아 옆에 위치한 국가 삼탈리아를 여행한 김밥집 아들이자 파스타와 짜장면, 라멘을 전공한 시인 지망생 요리사 이원식의 일대기를 다룬다. 3백5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첫 장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웃긴다. 한국에서 가장 웃기는 소설을 쓰는 박상은 몸개그가 자신 있다고 말했다.

UpdatedOn August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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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시를 못 쓰게 된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라고 느꼈어요.
시 쓰고 싶었지만 시인이 되지 못한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그 심정을 예술적인 얘기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 요리 이야기를 했죠. 만들고 싶은 요리를 못 만드는 내용을 넣으면 독자들이 이 심정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후기를 찾아보니 대략 제 의도가 전달된 것 같아요. ‘아 그럼 시인은 굉장히 가난하겠구나. 시를 읽어야겠다’라는 후기들이었죠. 어쨌든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하게 사는 시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어요. 대략 달성한 것 같아요.

요즘도 시 쓰는 사람이 많을까요?
계속 시집이 나오는 걸 보면 쓰고 있다는 거겠죠. 하지만 예전처럼 많이 인쇄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꾸준히 시집을 구입하는 독자층이 있다는 게 신기하죠.

시는 희한해요. 독자도, 창작자도 줄었지만 꾸준히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어요. 여전히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이겠죠?
시는 어려워요. 짧게 쓴다고 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시가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어려워요. 시는 아무나 쓸 수 없는 거죠. 심지어 한참을 봐야 그 뜻이 이해될 때도 있어요. 시는 오래 생각해야 하고, 고민하고, 그 뜻을 추측해야 하는 거죠. 알고 나면 재밌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해요.

시인이 되지 못한 요리사 이야기는 자전적인 이야기인가요?
거의 그렇죠.(웃음)

특히 교수님에게 혼나는 장면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재능 없다는 얘기를 상처 안 받게 말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저희 교수님 표정이 떠올랐어요. 이건 겪어봐야만 쓸 수 있어요.
“시란 똥가루 같은 걸 종이에 흩뿌려놓고 무늬를 감상하는 게 아니다”라는 내용만 빼고는 교수님에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썼어요. 토씨 하나 안 빼고 그대로. 글자를 아무렇게나 흩어놓고 시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죠.

저 역시 시를 열심히 쓴 적이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그건 시가 아니더군요.
소설 중간에 정육점에서 자작시 읽고 혼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부분에 시가 아닌 걸 넣어야 했는데요.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제 옛날 습작 시였죠. 시에 대한 간절함과 달리 재능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죠. 글 잘 쓰는 사람이 시도 잘 쓰고, 소설도 잘 써요. 그게 재능인 것 같아요. 갈래가 명확히 나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운에 따라 갈린다고 봐요. 문학 심사에 시는 13번 내고 13번 떨어졌어요. 근데 소설은 한 번에 당선됐죠. 그게 재능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쓴다는 줄기는 같다고 봐요.

그래도 소설은 한 번에 당선됐으니 소설에 대한 감각은 남다른 것 아닌가요?
(웃음) 뭐라도 있으니까 당선됐겠죠.

책에선 시인이 되려면 시집 백 권은 읽어야 된다는 내용이 나와요. 시 백 편을 써봐도 안 되면 꿈은 접는 게 맞겠죠?
거기까지 해봐도 안 되면 접으라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서고 싶잖아요. 그래서 계속 도전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이든 뭐든 잘하면 계속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여기저기 전전하는 사람들도 많고, 외길만 파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외길만 파고들어갔더니 이 길이 아닐 때의 절망감!(웃음) 13년을 팠는데! 교수님이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만할걸, 차라리 그때부터 소설을 썼으면 20대에 작가가 됐을 텐데, 30대 후반에 등단해서 이제 책 서너 권 내고 이게 뭔가? 그런 생각도 들죠. 대신 소설은 감각보다 경험치가 쌓이는 게 중요해요. 이야기가 쌓인다는 게 곧 자산이기 때문이죠.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감각! 유머 감각이 많이 낡았잖아요. 20대 많이 만나고, 20대 뭘로 웃길지 고민했는데, 세대가 바뀐 걸 느꼈어요.

우리가 굳이 젠지를 쫓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유머도 돌고 도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 지나면 옛날 개그가 돌아올 수도 있고.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안 돌아와요. 언어유희가 가장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급식체가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졌어요. 급식체가 유행할 때도 웃긴 건지 모르겠더군요. 언어유희는 한참 지나야 돌아올 것 같아요. 말장난은 유머라 생각 안 해요. 언어가 유지되어야 유머라고 생각해요.

‘눈치를 보며 존슨을 허리띠에 끼워놓았다’ 같은 표현도 재밌어요. 그런데 허리띠에 끼울 수 있는 존슨이라면….
많이 순화된 표현이에요. 처음에는 거친 표현이 많았어요. 비속어와 의외성으로 웃기려고 했어요. 근데 비속어를 많이 쓰면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해서 거의 걷어냈어요. 존슨은 많이 나오지만.

그럼 존슨 말고 뭐라고 불러요?
애매하죠. 처음에는 김밥 같은 거라고 썼다가, 그렇게 표현하지 말자고 해서 ‘거시기’ ‘그거’ 이렇게 지칭했어요.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페이지마다 웃기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성공했다고 봅니다. 피식거린 페이지가 꽤 되거든요.
한 번만 피식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딜 펼쳐도 가볍게 피식할 수 있어야 주제에 걸맞지 않겠어요? 진지하기만 하다면 독자도 피곤하고, 쓰는 사람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환기시켜주는 측면에서 페이지마다 한 번은 웃기자고 했는데, 이 책은 3백50페이지잖아요. 그럼 3백50번 웃겨야 돼요.(웃음) 근데 유머가 몇 개 안 터졌어요. 저는 몸으로 웃기는 게 잘 맞아요.

삼탈리아 얘기도 해보죠. 삼탈리아는 시가 그 어떤 재화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 환상적인 나라예요. 이상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다운 시를 못 쓰는 저 같은 사람들에겐 부담스럽기도 해요. 시를 못 쓴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니 결코 이상적인 곳이 아니죠. 내가 쓴 시를 보고 그게 시냐고 할 테니까요. 그럼 못 살죠. 그냥 한국 시집 들고 가서 파는 게 낫죠.

시심이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봤어요. 시심이 무엇이라 생각해요?
심리적 장치죠. 마음의 눈이라든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필터. 그게 시심인 것 같아요. 그걸 가진 사람은 거의 없죠. 시심은 시를 쓰려는 마음인데, 무엇을 보고 경험하든 시로 만들 수 있는 것. 그게 핵심인데 이제는 없죠. 한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

가방에 수첩을 넣고 다니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으면 메모하는 것. 그것도 시심이겠죠?
시를 쓰려는 의도, 그 마음도 전부 시심이 아닐까요.

삼탈리아 전설의 시인이자 요리사 조반니 펠리치아노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건가요?
전설적인 바람둥이를 설정하려다 돈 조반니와 펠라치오를 적당히 섞어서 이탈리아 발음으로 약간 꼬아보려고 했는데, 편집부에서 반대해서, 네 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죠.

챕터 구성이 한국에서 요리를 하는 내용과 삼탈리아 여행이 교차돼요. 후반부를 읽기 전에는 삼탈리아 챕터가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어요.
어차피 시공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으니까요.

후반부에는 양자물리학 관련 내용도 많이 나와요. 삼탈리아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죠.
양자물리학을 완벽히 이해하고 쓴 건 아니에요. 이 용어가 이 상황에 적절하겠다 싶어 썼죠. 도서관에서 양자물리학 책도 뒤져보고, 유튜브도 보고, 수식도 넣고 싶어서 만들어봤는데. 도저히 수식까지는 못 만들겠더군요. 이해 못한 걸 문장으로 쓸 수는 없어서 양자물리학 배우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요.

수식까지 들어갔으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래도 양자물리학이 나오니까 있어 보이는 느낌은 나네요.
하지만 결국 없어 보이게 됐죠.(웃음)

시공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삼탈리아야말로 시(詩)공간이 아닐까요. 삼탈리아에선 시를 쓰지 않고 읽기만 하잖아요. 시가 소비만 되는 세상이죠.
창작만 시의 전부는 아니죠. 읽어주는 사람도 있고,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이 세계 전체가 시(詩)라고, 시(詩)공간이라고 몇 줄 더 넣고 싶었는데, 말장난하는 것 같아서 뺐어요.

주인공이 요리를 하는 현실에선 시가 가치 있게 다뤄지지 않아요. 반면 비현실적인 삼탈리아에선 시가 가치 있죠. 그러니 시를 소비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시를 읽으려면 현실과 멀어져야 한다는 거죠.
삼탈리아 같은 나라가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요. 그 나라는 굉장히 작아야 하고, 특징도 있어야 하죠. 거기선 시가 싫은 사람, 모르는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죠. 그래서 거지가 되고요. 삼탈리아를 설정할 때는 우리 사회를 조금 더 풍자할 필요가 있었어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전형성을 전복해요. 이걸 의외성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국 문학에서 비슷한 캐릭터가 많아서 좀 지겹기도 했어요. 신선한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작가 이름을 가려놓고 인물만 봐도 이건 딱 박상이 썼네 하는 느낌이 들도록.

삼탈리아에서는 2000년대 중반 한국 현대시를 가리켜 빈티지라고 부르죠. 그 시기 시를 빈티지로 여긴 이유는 뭔가요?
미래파가 등장한 게 아마 2000년대 중반일 거예요. 시인들이 전부 술 마시던 시절이죠. 술 먹다 싸우면 좋은 시가 나오곤 했어요. 그 시기를 빈티지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좋은 시가 많아서 다 소개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시들 위주일 수밖에 없었어요. 시를 소설 단락에 쓱 넣어보고 딱 떨어지면 너무 기뻤어요. 그 시가 가진 상징성이 제 소설과 맞아떨어지면 정말 기분이 좋더군요.

시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소설에 자신의 시가 실린 게 영광이라는 분도 있었고, 말 없는 분도 계시고, 거부하신 분들도 있죠. 대부분은 흔쾌히 허락했어요. 야한 장면에 넣은 시도 있어요. 시인이 싫어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죠. DM 보내서 써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마음대로 실으세요. 괜찮아요”라면서 어떤 장면인지 설명도 듣지 않고 굉장히 시원시원하게 답하신 분도 있어요.

삼탈리아가 아닌 다른 세상에선 시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왜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걸 목숨 걸고 쓰는 걸까요?
웬만큼 아름다운 건 다 해봤으니까요. 쓸데없는 것을 하는 것에도 일면 아름다움이 있죠. 인간이 부족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름다움 아닐까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예술의 근원이고 본질이 아닐까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있는 시 말고는 시가 무슨 효용이 있겠어요. 사람들의 감정을 확장시키고 깊이 있게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 역할도 안하죠. 그런데 쓰는 과정은 미친 듯이 어려워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거예요. 아무것도 없을수록 본질에 가깝죠. 달리 말하면 실용적인 만큼 순도가 떨어진다는 거죠.

미학적인 관점이네요?
고대 미학을 현대에 적용하기는 힘들겠죠. 시 말고 그와 비슷한 게 없으니까요. 미술에선 뱅크시 정도가 있겠죠.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몰래 그리는 그림이요.

가장 힘든 건 목숨 걸고 쓰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 이원식은 살기 위해 삼탈리아로 갈 수밖에 없는 거고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돈 없이 살아도 저희 집에는 시집이 잔뜩 있어요. 삼탈리아처럼 시가 자산 가치 있는 세상이 되면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달더군요.

시집 10권으로 서울 아파트를 산다거나 하는 상상이요?
서울의 아파트는 참 비싸네요.(웃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에게서 요리 내공이 느껴졌어요. 특히 짜장면과 김밥, 라멘은 요리해보지 않고는 못 쓸 수준이에요.
라멘집에서 일했어요. 아오리라멘 가로수길점 실장이었죠. 육수부터 시작해 전부 다 직접 만들었어요. 주방은 일이 너무 많아요. 알바생 뽑아도 힘드니까 금방 관두고, 대부분의 주방 일은 실장이 다 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죽겠더라고요. 대신 디테일한 묘사를 얻었죠. 중식도 살짝 해봤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전문적으로 할 게 아니라면 못 버틸 정도로.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짜장면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일찌감치 관뒀죠.

글 쓰면서 몸 쓰는 일만 했어요.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집에 있을 때는 글을 쓰고, 밖에서는 몸 써서 돈 벌자는 계획이었는데,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웃음) 몸이 지치면 머리가 안 돌아가요. 머리가 어디 다른 데 있는 것도 아니고 몸에 붙어 있는 거니까. 몸이 누우면 머리도 누워야 해요. 태블릿 사서 누워서 써볼 요량도 있었는데, 뇌가 작동을 안 해요.

문학의 역할을 SNS나 인터넷 밈이 대체한 건 아닐까요. 새로운 스토리, 사건은 온라인에서 실시간 이슈로 벌어지잖아요. 팝콘 먹으며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고.
책 읽는 것보다 누워서 그거 보는 게 더 재밌죠.

카톡창 캡처 이미지 공개되면서 전개되는 사태야말로 서사죠. 사건에 대한 커뮤니티의 반응은 서사를 확장시키는 촉매고요. 다음 날 당사자의 입장 발표는 연재처럼 기대돼요. 사용자들이 콘텐츠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소설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소설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문학이 언젠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겠죠. AI가 소설도 쓰고 기사도 쓴다는데, 소설가도 없어질 직업이 아닐까요.

AI가 시도 쓸 수 있을까요?
시는 어려울 것 같지만 모르죠. AI끼리 이해하는 시가 나온다면, AI들만 알아보는 언어로 시를 쓰겠죠.

AI가 못하는 것도 있겠죠. 책에서는 AI가 빈티지와 오래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셨잖아요.
빈티지와 오래된 것은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물질적 구성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어요. 대체 그 두 개가 무슨 차이인지 AI들은 모를 거예요.

AI가 몰라야만 해요. 걔네도 모르는 게 있어야죠.
결국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라면 시를 읽는 맛도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유희라는 점에서 시는 오래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른 무언가로 대체된다 해도 시와 같은 종류의 유희를 느끼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유희는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소설의 주제인 끈 이론이 맞다면요.

그러다 이원식은 영원히 등단 못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시공간에서는 시인이었을 거예요. 몇 개의 차원이 연결되면서 시제는 3개이되 차원은 7개인 거죠. 시인인 차원도 있고, 요리사인 차원도 있고요.(웃음)

양자물리학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예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어쨌든 우주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학문이죠. 시도 우주를 알고 있다고 우기긴 했지만 사실 시인들이 알 리가 없잖아요. 시 쓰는 사람이 그걸 왜 알아야 하겠어요. 언젠가는 우주의 비밀이 밝혀지겠죠. 왜 우주가 이렇게 돌아가는지. 엄청난 시간의 무게들이 하나씩 밝혀지면 정말 재밌을 겁니다. 소설이나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즐거움을 줄 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왜 시인이 태어나는지도 밝혀질까요?
밝혀지겠죠. 왜 나는 시를 쓰게 되었을까. 그건 굉장히 쉽게 밝혀지겠죠.

그럼 왜 나는 시를 쓸 수 없는가도 밝혀지겠네요.
만약 어떤 차원에서 시인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시인이면 불공평하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안 되고 다음 텀 정도로.

요리와 시가 닮았다고 보시나요?
거의 흡사하다고 봐요. 정성 들여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완성된 작품엔 여러 가지가 압축되어 있죠. 불을 어떻게 썼는지, 어떤 식재료를 썼는지. 대부분의 창작 행위는 비슷한 것 같아요. 시도 시 재료가 반드시 있고, 그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요. 요리도 맛있는 걸 먹으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파스타도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어요. 카르보나라는 면과 계란을 섞는 간단한 조합인데 먹는 순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뭔가가 느껴졌어요. 시도 그렇잖아요. 우리가 아는 단어를 조합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뭔가를 만들죠.

집필 활동 안 할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글을 안 쓸 때는 일을 했죠. 이제는 다시 일로 돌아가야죠.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고 있어요. 책을 내면 수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업하기도 어렵고.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신기하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먹고살 무언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게 지금 이슈인데, 그 생각을 하면 다른 생각을 못 하잖아요. 감각적으로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죠. 똥통에 허리춤까지 빠지는 꿈을 꿨어요. 로또를 사보니 5만원짜리가 당첨된 거예요. 그럼 5억 당첨되려면 어디까지 빠져야 되는지.(웃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남을 어떻게 웃길까.

차기작 구상도 하고 계신가요?
다음 소설 생각도 안 할 수 없죠. 에세이 하나 내고, 정통 기법의 소설을 써보려고요. 나도 정통 소설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당신들이 좋아하는 엄숙함 해보겠습니다, 이런 거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소설 전에 노동 에세이를 정리하려고요.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에세이로 쓰는 거죠. 호텔이나 주방, 택시 기사, 배달 일도 쓰고요. 재밌을 거예요. 이런 일을 다양하게 경험한 사람이 많진 않으니까요.

요즘 배달 알바가 짭짤하다는 소문이 있어요.
저도 이거 안 되면 배달해야 해요.(웃음) 오토바이는 있으니까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배달하고 남은 시간에 글 쓰고. 배달 문화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글 써서 먹고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문단에서 얘기하는 문학은 무거워요.
어렵죠. 소설 낭송하는 걸 들으면 매우 진지해요. 웃긴 소설을 써도 그렇게 읽어요. 내가 이상한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독자들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해요.
문학은 살짝 낭만적이어야 하고, 서정적이어야 하죠. 딱 그 지점이에요. 거기서 벗어나지 않아요.

독자들이 문학에 기대하는 건 새로운 관점과 철학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은 엄숙하고 진지하길 바라고요.
그걸 바라기 때문에 “쟤는 뭔가 철학이 없는 거 같은데?” “저 사람 문학에는 무슨 깊이가 있을까” 이렇게 되니까 딜레마예요. 저는 그게 싫거든요. 굳이 철학을 알려줄 필요 없으니 그저 스토리텔링만으로 얼마든지 재밌을 수 있어요. 그 이야기 안에는 결국 작가의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세계관을 설정하는 것이니 철학도 배워야 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고민이 반영되며 문학이 완성되는 건데, 딱딱하지 않고 가벼운 건 문학이 아니라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 편견을 깨긴 어려울 것 같아요. 유튜브로 문학이 얼마나 재밌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해도 할 수 있는 게 책을 읽어주거나, 얼마나 좋은 책인지 설명하거나, 문학의 밤 낭독 톤으로 읽거나 하는 건데. 조회수 안 나올 것 같네요.

유튜브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것만 계속 보여줘요. 알고리즘에 익숙해지면서 문학을 대할 때도 듣고 싶은 소리에만 특화된 문학만 찾아서 읽는 것 같아요.
그게 알고리즘이 경계해야 될 지점이라고 해요. 알고리즘은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었죠. 나중에는 알고리즘이 제시해주는 것 하나만 보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어요. “넌 지금 이거 읽고 싶어. 이거 읽어야 돼.” 그럼 그거 읽는 거죠. 결국엔 자기 취향도 없어질 테고.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어떤 알고리즘을 가진 사람들한테 제시될까요?
참 애매하죠. 어떤 알고리즘일까요? 여행은 아니겠고, 삼탈리아가 실존하는 나라는 아니니까. 요리 레시피가 정확히 나오는 것도 아니니 요리 쪽도 아니고, 그냥 문학이겠죠.

작가님도 다른 차원에선 육체노동 없이 글만 쓰며 살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죠. 근데 다른 차원에서 굉장히 나쁜 짓을 해서 지금 내가 벌 받는 것일 수도 있고.(웃음) 이건 불교적인 세계관인데, 전생에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이번 생에는 고생해라. 다음 생에도 지금처럼 태어날 수 있으니 잘 살아라. 그렇게 보면 나름 괜찮은 세계관이에요.

시가 우주라는 얘기도 불교적 관점이죠. 그런 점에서 소설은 언제까지 써야겠다는 생각도 있나요?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네요. 소설 쓰는 친구와 “우리는 언제까지 글을 써야 되나?” 많이도 안 팔리는 걸 왜 피똥 싸며 쓰나? 이제 슬슬 지친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결국 할 줄 아는 게 이거라 뭐 어떡하겠어요. 잘할 수 있는 거 해야죠. 목표는 독자가 한 명만 남는다 해도 그 사람을 위해 쓰는 거예요.

그전에 출판사가 없어질 것 같아요.
독자가 한 명이면, 종말이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돈 벌기 위해 소설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게요. 많이 팔릴 기대를 하고 쓰는 건 아니니까요. 출판사에 폐만 끼치지 말자. 출판사는 무슨 죄냐.(웃음) 돈은 따로 벌어야죠.

결국 삶의 중심은 문학이네요.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요? 왜 하필 문학을 만나서.
하필이면 왜 문학을 재미있어 한 걸까요. 다른 것도 재밌는 거 많잖아요. 부동산이나 주식에 재미를 느꼈다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겠어요. 하필 문학. 그냥 지나가면 됐는데 이상의 시집을 보고 반해서 시인을 꿈꿨어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이상 시집이 아니라 공인중개사 책을 집었다면 투자의 제왕이 됐을 수도 있죠.
충분히 기회가 많았죠. 컴퓨터가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게임만 잘할 수 있었더라도. 아니면 여행하고 말을 잘해서 유튜버로 자리 잡았을 수도 있죠.

두려운 거 있으세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은요?
불안한 것도 없어요. 어차피 늘 불안하기 때문에.

그래도 삼탈리아를 창조하신 걸 보면 초월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나요?
초월하면 열반에 이르는 길이 약간 보이나 봐요. 작가들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던데요. 불교 문학 몇 개 쓰다가 어느 순간 속세를 등지는 작가들 많잖아요. 저는 지금 빌딩 옥탑방에서 혼자 살아요. 아래는 학원들이 있고. 밤에는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기타를 쳐요. 서울에 기타 칠 수 있는 집이 별로 없잖아요. 구하고 구하다가 발견한 집이에요. 거기서 헤비메탈 할 거예요. 헤비메탈과 문학의 차이를 연구하다 보면, 초월적 작용이 올지도 모르죠. 인생 뭐 아등바등 살다 가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단계로 가야죠.

소설가와 시인이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글쎄요. 안 올 것 같아요. 영원히. 안 와야지 정제된 문학이 나오지 않을까요. 돈이 된다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달려들어 결국은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 쌓이므로 오히려 핵심만 남는 게 낫죠.

천재는 요절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요절 할 시기를 지나면 나는 아무리 열심히 써도 천재가 될 순 없음을 자각하죠. 그럼에도 언젠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하나요?
낭만주의 시대 작가 몇몇이 그랬을 때 나온 말이죠. 나중에 50~60대에 미친 듯이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 나올 수도 있어요. 반드시 요절할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사실 젊을 때 아니면 좋은 걸 쓸 확률이 계속 떨어져요. 스포츠 선수가 왜 20대가 전성기겠어요. 나이 먹고 축구를 잘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별수 없는 거 같아요.

콘텐츠는 사용자들한테 알고리즘화되어 제공되고, 소셜 미디어가 문학의 콘텐츠를 대체하기도 했고, 웹소설은 말초적인 자극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데, 이런 시대에 순문학은 뭘 할 수 있을까요?
못하죠 뭐. 빙산 위에 서 있는 북극곰 같은 느낌이 드네요. 빙하는 줄어들고 있는데. 지구 온난화가 큰 문제입니다.(웃음)

문단에도 그린피스가 필요하겠네요.
북극곰을 살려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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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김참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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