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FING•
조준희
조준희는 언제부턴가 서퍼가 되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더 큰 파도를 찾아다녔다. 새카만 파도에 잡아먹히는 건 무섭지만 그는 자기 키보다 높은 파도에 맞선다. 발아래 쇼트 보드를 붙인 채.
최초의 해변
죽도 해변 블루코스트 앞. 당시 내가 알던 바다는 그곳뿐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해변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어제, 오늘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만 살던 내게 매일 달라지는 바다의 절경은 신선했다. 서핑 숍에서 밤새 일하고 쪽잠을 잔 후 씻지도 않은 채 죽도 해변에 뛰어들기 위해 웨트 슈트를 입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핑 여행
경이로웠다고 하는 게 맞겠다. 2018년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지낼 때, 1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고래를 만났다. 저 멀리 웅장하게 헤엄치는 고래를 발견하고 패들을 챙겨 나섰다. 고래는 어느새 내 앞에 와 있었고 친절히 인사를 건넸다. 고래는 두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바다는 경이로웠다. 파도를 타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무섭고도 행복한 추억이다.
내게 맞는 파도
아직도 모르겠다. 한국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발리, 수마트라, 프랑스, 대만, 일본, 호주에서도 서핑을 했지만 내게 딱 맞는 파도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파도는 늘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좋아하는 시간대는 확실하다. 석양이 질 때, 파도에 스며드는 노을빛을 배경으로 한 파도가 제일 좋다. 잡생각이나 욕심이 모두 사라지고,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된다.
에어리버스
‘에어리버스’라는 기술을 연마 중이다. 이전에는 파도라는 도화지 위에 보드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게 파도타기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파도의 면을 이용하는 서핑을 중시했다. 하지만 파도의 면을 점프대로 삼아 파도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보다 다이내믹한 기술인 ‘에어 기술’이 궁금해졌다. 현재 연습하고 있는 에어리버스는 솟아오르는 파도 위에서 180도 돌아 거꾸로 착지하고 나머지 180도를 돌리는 기술이다. 그간 경험했던 국제대회에서 해외 유명 프로 서퍼들이 쉽게 선보이는 기술들은 마냥 멀게만 느껴져 자신감이 떨어진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파도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진정한 서핑’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는데, 파도의 힘을 점프대로 삼는 매력은 또 다르더라. 하루 빨리 완성하고 싶다.
•FISHING•
이다리
인내와 성취 그리고 호기심. 오로지 낚싯대를 잡은 손의 감각과 초릿대 끝으로 모으는 집중력이 다리가 느끼는 쾌감이고 원동력이다.
은빛 잉어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길이 90cm에 이르는 잉어를 낚았다. 낚아챘을 때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묵직함에 겁을 먹었다. 거대한 고기를 낚은 낚싯대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작고 저렴한 것이었기 때문. 노심초사 긴장을 늦추지 않던 중, 낚싯줄 끝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은빛 잉어가 보였고 들어 올리기 위해 20분간 사투를 벌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날 낚시를 했는데, 마치 SF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보이지 않고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바다 한가운데에 반복적으로 내리꽂히는 걸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러한 풍경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어쩌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웅장한 광경이었다.
낚시가 안겨준 것
내 삶은 낚시 전후로 나뉘는데, 낚시를 경험한 이후부터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나름 끈기가 있어 물고 늘어지기도 하고, 뜻대로 잡히지 않는 날도 이에 연연하지 않고 뚝심 있게 묵묵히 낚싯대를 거머쥔다. 낚시는 자연과의 패기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싸움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끝까지 바다를 지킨다.
바다는 변치 않고
수면 위가 잠잠해지면 자연스레 ‘물멍’을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가장 유의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소위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라던데, 후회되는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면 고기를 낚는 시간이 마냥 적적하지만은 않다. 바다에 의지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바다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기 때문이다.
•WIND SURFING•
조원우
부산 해운대에서 태어나, 해운대에서 요트를 타기 시작한 조원우는 크로아티아, 아일랜드, 터키, 스페인, 마이애미, 브라질의 해변을 누볐다.
사랑한 호수
이탈리아의 시골 동네와 바람을 사랑한다. 특히 가르다 호수는 참 신기하다. 스위스까지 연결되는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호수인데, 1년 365일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변함없다. 오전에는 찬바람이 강하게 불다, 점심 시간 이후 2시간 정도 바람이 훅 사라진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정면으로 해풍이 불어댄다. 요트는 바람을 이용하는 종목이라,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중요하다. 가르다 호수만큼은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곳이다.
자연의 힘
영국에서 거센 바람 때문에 장비가 부서질 뻔한 적이 있다. 억지로 세일링을 해서 헤쳐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강한 돌풍이 불어 장비에 장착된 줄을 다 끊고 구조 보트까지 왔지만, 육지에서 더욱 멀어져만 갔다. 배가 한번 깊숙이 빨려 들어가면 들어 올리기 힘들고 엔진이 망가지기도 한다. 자연의 힘은 무섭고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의외의 모습
해변이 지겨운 순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선수로서 성장하기까지 나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는 해운대는 아름다운 바다로 유명하다. 하지만 바다에서 보는 육지의 모습이야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해운대 끝으로 가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백사장을 시작으로 마린시티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광안대교와 동백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도 요트를 타고 나선다.
바람과 파도
선수 생활 이후 삶에 여유가 생겼다. 파도와 바람에 휩쓸리며 항해하다 보면 지칠대로 지치지만, 수면을 둥둥 떠다니는 단 몇 분이 내게 여유를 안겨준다. 그 짧은 여유가 내가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15년 선수 경력이 쌓이면서 바람과 파도만 보아도 세기와 방향이 눈에 훤하다. 파도와 바람이 빠지면 인생은 공허해진다.
•FREE DIVING•
이영건
2017년 8월 제주 월평포구에서 첫 잠수를 시도했고 그 일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다이빙을 하는 조원우는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세상과의 단절을 사랑한다.
MUTE
30대가 될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고, 직업을 다섯 번이나 바꿨다. 현재 4년 차 프리다이빙 강사인데, 강사라는 직업을 떠나 여전히 물속에 잠기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깊이 잠수하면 육지와 주변의 소음이 차단되고 귀에 울리는 웅웅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육지에서의 일상을 잠시 꺼둔다는 의미로 프리다이빙 팀 이름도 ‘뮤트(Mute)’로 정했다.
아찔한 순간
극한의 순간을 두 번 겪었다. 첫 번째는 30m 이상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자격 테스트에 임했을 때다. 30m 이상 높이에서 뛰어내려 물속에 잠기는 순간 조류에 떠밀려 겨우 수면으로 올라왔다. 조류에 떠밀리면 자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생사의 경계에 선 듯했다. 두 번째는 2019년 일본에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스피어피싱을 했었다. 잡은 물고기를 안고 육지로 향하던 도중 화이트 팁이라는 작은 상어 여섯 마리가 따라왔던 기억이 있다. 화이트 팁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종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찔했다.
소중한 스폿
대만, 사이판, 울릉도. 프리다이버이기도 하지만 수중사진을 찍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속 시야와 볼거리, 바닷속 환경이다. 사이판은 이미 ‘시력이 시야’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맑고 투명한 바다로 유명하며 다양한 수중 포인트가 있다. 대만의 바다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맑은 바닷물을 자랑하고 특이한 지형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울릉도 주변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발견
프리다이빙을 접하기 전엔 매달 2회 이상 백패킹과 클라이밍을 즐겼다. 오랜 기간 안고 있던 물 공포증을 극복하고자 프리다이빙을 시작했고 오히려 산보다는 바다, 풀보다는 물에 이끌리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프리다이빙은 평생의 취미이자 직업이 되었고, 바다는 소중히 지키고 가꿔야 할 자연이자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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