➊ <거대도시 서울 철도>
한 달간 휴가를 내고 바닷가에 머무르면서 읽을 책을 한 권만 고른다면, 이번 여름에는 전현우의 <거대도시 서울 철도>와 함께하는 걸 권하고 싶다. 제목에 ‘서울 철도’라고 되어 있지만, 이 책은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와 오늘날의 현황에 관한 진단,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제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이력이 흥미로운데, 철도 동호인이라는 점 외에는 철도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철학 전공자이다. 책을 펼치면 세계적으로 중요하고 거대한 도시 중 50여 곳을 선정하여 열차 착발 능력과 전국망, 도시망 등 철도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오늘날 철도의 현황을 기술하는 장면과 만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 철도의 상황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책이 지닌 물성 역시 독특하다. 커버를 비닐로 만들어 책이 물에 쉽게 젖지 않아 해변에서 읽기에 적합하다. 실로 엮는 코덱스 방식으로 제책하고 책등을 접착하지 않았다. 때문에 360도 가까이 책을 펼칠 수 있어 한 손으로 들고 읽어도 무리가 없고, 양면으로 인쇄된 그림을 가려지는 곳 없이 편안하게 살필 수 있다. 본문에 수록된 도표와 지도 등 다양한 시각 자료들은 책을 읽을 때의 지루함을 덜고, 마치 기차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기분까지 느끼게끔 한다. 표지에는 열차 다이어그램이 인쇄되어 있는데, 열차 시간을 알려주는 색이 들어간 사선이 비닐 커버에 별도로 인쇄되어 있음에도 표지에 그려진 기준선과 어긋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철도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 같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이라는 부제로 이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철도는 탄소 배출 억제에 도움을 주는 친환경적인 교통 시스템이자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간 시설이다. 높은 기회비용을 요구하는 승용차에 비해 기차는 서민들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이동 수단이기도 하다. “오늘도 당신은 교통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서론의 첫 문장으로 쓰인 저자의 말처럼 교통의 세계는 오늘날 당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준 현실적인 조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올여름에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와 함께 기차를 타고 떠나보는 건 어떨까.
WORDS 김태선(문학비평가)
➋ <미루기의 천재들>
내가 바닷가에 머물며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있을 리 없다. 인생의 절반을 계약직 노동자로 살며 서울은커녕 책상 앞조차 좀처럼 떠나본 적 없다. 낡은 2012년형 맥북 프로 없이 바다 근처에서 서성이는 날 발견한다면 그건 휴가가 아니라 非고용 상태. 글이 안 써지는 절망 끝에 죽으려는 게 아니라면, 마감을 어긴 어떤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는 한계 너머까지 미루고자 도망쳐온 것일 테다. 지난 10년간 써내는 시나리오마다 이른바 ‘메이드’가 안 되는 저주에 걸려 몸값을 키우지 못한 작가로서, 나의 유일한 생존법은 겸업, 속된 말로 ‘가께모찌(かけもち)’였다. 야심만큼 필력이 넘치는 작가라서가 아니라, 한 번에 두 편 이상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선 월세 내기도 빠듯했다. 겸업을 위해 내가 내세운 스킬은 속도. 마감은 반드시 지킨다는 호언장담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 다른 작업을 금지하는 조건을 계약서에서 지웠다. 건축물 여럿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낙수장(Fallingwater)’이라는 별장이 피츠버그 남쪽 산기슭의 폭포 위에 있는데, 미국 건축사상 기념비적인 건물이란다. 검색해 보니, 과연 초야에 숨은 IT 재벌이 몰래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노예로 부리고 있을 것 같이 멋진 건물이다. 자칭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가 이 ‘낙수장’을 설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2시간이었다. 계약을 한 뒤 약속 기한을 넘겨 무려 9개월이나 빈둥거리다, 고용주가 갑자기 방문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그린 도면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동력은 위대한 작품을 쓰려는 창조성이 아니라, 먹고 살고자 맺은 계약상의 마감이다. 작가는 타고나지 않고 오직 마감에 길들여진다. 문제는 마감 직전 임기응변으로 글을 써내는 재주는 금방 소진된다는 점. 뜨기 전에 퇴물이 되기 쉬운 작가라는 직업은 늘 부족한 시간에 쫓기는 일인데, 글쓰기보다 먼저 미루기의 경지에 도달하곤 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작가는 부지런히 꾸물거리며 번민한다. 빈둥대는 것 같아도 정신은 쓰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준비해도 아직 쓸 준비가 안 됐다. 스케줄을 확인하는 PD의 연락에 ‘곧’ 보내겠다고 답한 글은 아직 첫 문단 아니 첫 문장을 쓰지도 못했다. 딱 하나 위안은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건축가의 사례를 비롯해 ‘미루기’의 예술적 경지가 가득한 책, 앤드루 산텔라의 <미루기의 천재들>은 작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왜 중요한 일인 줄 알면서도 당장 해치우기보다 기약 없이 미루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양가감정의 근원을 찾는 동시에 독자 대신 변명해준다. 그래서 인간이란 보기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어두운 진실에 도달하는, 무서운 저작이다. 우리가 미루는 것은 일이 아니라 죽음이다. 나는 가능하다면 인생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 작가는 이 책 쓰길 미뤘고, 나는 이 책 다 읽길 미룬다. 모든 종류의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온갖 클라이언트들이 금서로 지정해도 할 말이 없는 이 책의 원제는 ‘Soon’이다.
WORDS 박수민(시나리오 작가)
➌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보름 전 속초에 있었다. 속초 해수욕장 해변에 후배의 차 트렁크에서 꺼낸 캠핑 체어를 놨다. 반 그늘, 반 햇볕을 찾아 소나무 밑에 자리를 깔았는데, 도시인답게 맨발로 설치다가 “아, 따가워!”를 연발했다. 해풍에 건조된 마른 솔잎이 모래에 숨어 발바닥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사실 휴가는 아니고, 취재차 속초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기분을 낸 거였다. 취재할 때는 줄곧 비만 오더니 서울에 간다 하니 쨍쨍 해가 났다. 절반 정도 읽다 만 책을 폈는데, 파올로 코녜티의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이다. 파올로 코녜티는 이탈리아 문학계의 젊은 거장으로 떠오른 작가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여덟 개의 산>으로 이탈리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 <여덟 개의 산>을 그해에 소개된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로 생각했기에, 그의 신작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알고 보면 <여덟 개의 산>보다 먼저 쓰인 작품이지만 한국에는 올해 소개되었다.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는 제목만 보면, 천방지축 같은 소피아가 떠오른다. 중2병처럼 염세적이고, 온몸에 피어싱을 한 주인공은 마치 오테사 모시페그의 주인공들처럼 ‘비호감’일 것만 같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는 소피아의 것만이 아니다. 소피아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소피아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피아가 태어난 순간을 지켜본 간호사는 아기에게 “태어나는 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라고 속삭인다. 피아트 자동차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사내에 젊은 애인이 있다. 미술을 하는 어머니는 불안정하고, 사회운동가이자 기자인 고모는 파리로 망명한다. 따로 존재하는 듯했던 인물도 다시 다른 인물의 이야기 속에서 소식을 듣게 된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며, 다른 생의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진실을 지극히 소설적으로 정교하게 풀어낸다. 다소 우울한 아이였던 소피아 역시 세상을 살기로 결심한다. 들여다 보면 이해되지 못할 인생도 없고, 불완전하지만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게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단편 소설을 닮은 듯한 책의 장들은, 너무나 완벽해 눈을 뗄 수가 없다. 책을 읽는 사이 보사노바 로스터스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숭늉처럼 미지근해졌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책장을 넘기는 사이 내 다리는 태양에 완전히 익었다. 해변에서의 독서는 조금 위험하다. 특히 멋진 소설을 읽을 때에는. 지금 왼쪽 발목의 피부가 벗겨지는 중이다.
WORDS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
➍ <여름의 책>
나는 여름보다 겨울 바다를 선호하는데, 그래도 바다를 떠올리면 여름이 먼저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바다 하면 여름을 떠올릴 텐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과거 인류는 밤에 맹수나 적을 식별할 수 없었으므로 인간이 어둠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데, 여름 바다도 진화의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단지 여름이 덥기 때문에 바다에 뛰어든다는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나는 바다에 입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름. 그래도 바다 하면 여름.
나에게 가장 어려운 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동시에 이해 받는 일이다. 서로가 동일해지는 건 불가능하니까. 포옹이 체온을 공유하는 하나의 의식이라면, 서로의 체온이 똑같아질 만큼 시간이 지난다면, 그렇게 너와 내가 동일해지는 순간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 바다에 서서 수평선을 보고 있자면 나는 바다의 기다란 두 팔이 떠올랐고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그건 여름에게 있어서 불쾌하지 않은 포옹이었고 누구나 위로 받을 수 있는 품이었다. 섬은 종종 외로워 보이지만 바다가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안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우정을 나눴을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자란 내가 현재의 나와 얼만큼 다를지 상상하는 밤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 섬에 사는 사람 중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쓸지도 모르고, 밀물에 떠밀려 온 쓰레기를 주워 유리병에 보관하는 취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친구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친구가 깊은 물에 빠진다면 나는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
<여름의 책>에서 소피아와 할머니는 단순히 가족 관계가 아닌 친구 관계로 등장한다. 여름과 섬, 그리고 바다에서 소피아와 할머니는 투닥거리지만 그 대화 속에는 언제나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바깥 세계와 달리 섬의 세계에서 할머니는 소피아의 인도자이자 선생이 되어 주고, 사실 섬의 세계는 현실의 축소 모델이므로, 소피아는 할머니에게 현실을 배워 나간다. 소피아에게 성장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성숙이며, 지식이 아닌 이해를 깨달아 간다. 바다는 섬을, 할머니는 소피아를 포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성장한 소피아는 할머니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할까?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것이다.
WORDS 양안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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